Archive for July 2006
골수검사
오늘은 세 번째 골수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첫번째와 두번째 골수 검사는 작년 8월과 11월에 있었다. 병이 잘 억제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6개월에 한 번씩 골수검사를 받아야 한다길래 이번에 받게 되었다.
횡설수설 하자면, 영화 엑스멘 3편에서 돌연변이를 치료하는 약이 개발되는데, 이 약은 “병”을 “억제(suppress)”하는 약이라고 설명된다. 그러니까 완전히 뿌리뽑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건 글리벡과 유사하다. 병을 뿌리뽑지는 못하고 억제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그니토가 쇠를 맘대로 움직이는 능력을 회복하듯이 백혈병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심리적으로는 첫번째 골수검사 때 가장 긴장했었고, 오늘은 가장 긴장이 덜했다. 하지만 오늘 검사가 가장 힘들었다. 의사가 두 군데를 찔러서 검사를 한 듯 한데, 처음 바늘은 아프지 않았는데 두 번째 바늘이 마취가 안 된 곳을 찔러서 아팠다. 두 번째는 바늘을 중간에 뽑고 다른 곳에 찔러야 했다. 골수 채취할 때의 아픔이야 그닥 대단한 건 아니었다. 골수채취가 끝나고 지혈을 하기 위해 누워있는 시간이 괴로웠다. 바로 누워서 바늘을 찌른 곳 밑에 모래주머니를 넣고 지압이 된 상태에서 2시간 가량 누워 있어야 한다. 2시간 정도는 그럭저럭 참을만 한데, 오늘은 이상하게 지혈이 잘 안 되어서 무려 5시간을 누워 있어야 했다. 모래주머니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기도 했다. 암튼, 5시간을 같은 자세로 누워 있다 보니 하반신이 마비 되는 것 같고 허리와 배가 아팠다.
집에 와서는 저녁 먹고 바로 잠이 들었다. 가만히 누워있는 게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만큼 힘이 들었던 것 같다.
도둑맞은 베르메르
지금 다니는 직장의 좋은 점 중의 하나는 괜찮은 자료실이 있어 여기서 책을 빌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웬만한 책은 신청하면 빠른 시일내에 사다놓기 때문에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면 직장 일과 관련된 책을 내 돈 내고 살 필요가 없다. 그리고 신간 교양서적 중에 좋은 책을 매달 구입해놓는데 이 중에도 볼만한 책이 많다.
자료실에서 빌려 이번 주말에 약간 읽은 책이 “도둑맞은 베르메르”이다. 나는 자연주의 화가를 그닥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베르메르라는 화가의 이름이 들어간 건 별로 흥미거리가 못 된다. 하지만, 일전에 네이버에서 운영하던 블로그에서 그림 도둑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의 바탕이 되었던 주제와 일치하는 책이라서 빌려 읽었다. 내 네이버 블로그의 글에서는 adverse possession이라는 영미법의 개념을 중심으로 다뤘는데, 이 책은 역사적 사실들을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읽기가 쉬우면서 재미있다.
일본의 법이 미술절도범에게는 가장 이롭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유럽 쪽의 법이 미국법보다는 미술절도범들에게 너그럽다.
여름 휴가에는 바닷가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다 오고 싶은데, 그 때 가져가서 짬짬이 읽을만한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블로그의 주인으로서의 나
직장을 구하고 일을 시작한 지 2달이 조금 넘은 즈음에 Q.M.님(http://law4u.net)이 그 동안 빼꼼히 들여다보다 지치셨는지 글 좀 올리라는 투의 댓글을 다시고 나서 “근황”이란 글을 올렸습니다. 근황에는 내가 왜 그 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간략하면서도 편리한 대답은 “그 동안 좀 바빴어요”이겠는데, 바쁜 것만이 이유는 아니기에 적절한 답변은 아닙니다. 게임 중독 때문이었다고 하면 부분적인 이유가 됩니다. 더 적확한 이유라면 복잡한 마음과 많은 생각거리입니다. 게다가 저를 오프에서 아는 분들이 이 블로그에 오시면서 이 블로그가 더 이상 익명 블로그가 아니게 된 것도 이유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뭐든 “까는” 게 주된 기조였는데, 아는 분들이 블로그에 오시면서 더 이상 맘대로 까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까기” 전용 익명 블로그를 만들었다면 나름대로 그 쪽에 글을 올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도 못했지요.
복잡한 마음의 일면만 여기다 적자면, 큰 병을 앓고 거기서 회복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제 생명은 더 이상 제 것만이 아니게 되어 버렸습니다. 죽을라 해도 맘대로 죽지 못하는 생명이 됐다는 거죠. 생명이 유지되고 연장되는 것도 다 빚으로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는 내 생명이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더 이상 내 생명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내가 집착하지 않는 내 생명에 대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집착해야 하는 상황이지요.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업보 때문에 블로그에서 “까기”도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조심스럽게 까는 것은 까는 게 아니므로 블로그에 글 올리기도 어려워졌죠. 이 업보를 다 씻어버리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까기 시작하면 깔 거리가 아주 많지만, 업보도 있는 데다가 직장에서 지득한 사실을 불법으로 유포할 우려가 있어 더욱 조심스럽네요. 민감한 얘기들은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있겠지요. 그보다는 부드러운 소재로 다시 블로그를 정상화시켜볼까 합니다.
근황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아니하여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더이다.
백혈병으로 기어이 죽은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분들이 제일 많고, 골수이식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도 많더이다.
허나, 골수이식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글리벡을 먹으면서 백혈병을 장기 관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굳혔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은 진짜 이유는 약 두 달 전부터 직장을 구해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직장인지는 블로그에 써서 널리 알리기는 곤란합니다. 다만, 지금 당장은 재미있게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은 해도 될 듯 합니다.
요근래 최고의 핫이슈인 FTA에 대한 생각은 아주 많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FTA를 하는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협상을 잘 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FTA 협상을 잘 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이대로 죽 협상이 흘러간다면 어느 시점에선가 결렬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은밀하게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