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2006
멍텅구리 디자인 꼽기
Poorly designed objects 에서 실생활에 쓰는 것 중에 가장 형편없이 디자인된 것을 CD 케이스라고 꼽고 있는데, 나도 대충 동의한다. 항상 쓰면서도 정말 바보같이 디자인했으면서 아직도 전혀 개선된 케이스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좌절.
내가 추가로 꼽자면, 이미 박혀있는 스테플러 알을 뽑는 기구이다. 이걸 unstapler라고 해야 하나? 이빨처럼 스테플러 알을 꽉 물게 되어 있는데, 쓸 때마다 정말 멍청하게 디자인 된 거라고 생각한다. 10년전에 보험 아줌마가 준 스테플러 알 뽑는 기구가 있었는데, 그건 스테플러 알 밑으로 살짝 찔러넣고 손잡이를 눌러주면 알이 잘 빠져나오게 되어 있는 효과적인 기구였다. 그런데 더 효율적인 이 기구는 이제 찾기가 힘들고 멍청한 이빨 unstapler밖에 못 구하겠다. 게다가 이건 비싸기까지 하다. OTL
사회부적응자인지 용감한 건지
면접 때 자기 속마음 그대로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나? 미국이 사실상 우리나라 안보에 가장 큰 위험요소라고 생각할 여지는 충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생각을 면접관들 앞에서 굳이 그대로 말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면접이 요식행위라고 생각했다면 “적절한” 답변으로 시간만 때우고 나오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니면 미국이 주적이라고 생각하는 걸 밝힐 기회가 지금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을까?
It’s Now or Never?
그건 사랑을 고백할 때 쓰는 말이지, ‘미국이 주적이다’라고 말할 기회는 지금이 아니라도 나중에 언제든지 있지.
남희섭 변리사는 변리사이면서도 IPLeft 진영에서 목소리를 많이 내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변리사 최종 면접 때(변리사도 면접 보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IPLeftist입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Fugue in G minor – Quintessence Saxophone Quintet
대학 1학년 때 학교에 맥킨토시 센터(이름은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란 게 있었다. 당시엔 엘렉스컴퓨터란 회사가 애플을 들여와서 팔았는데, 이 회사가 홍보의 일환으로 몇 개 대학에 맥킨토시 컴퓨터를 주면서 그런 센터를 만든 것이다. 그때의 엘렉스컴퓨터나 지금의 애플코리아나 사용자들한테 욕먹는 정도는 비슷한 것 같다. 아무래도 한국은 애플이 포기한 시장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그 때 썼던 Macintosh SE나 LC 등의 모델들은 클래식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될 정도로 잘 만든 컴퓨터다. Macintosh SE가 약 130만원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 나는데, 그 때 386컴퓨터보다 훨씬 비싸서 도저히 사서 쓸 수는 없는 컴퓨터였다. 그래서 종종 맥킨토시 센터에 가서 맥을 써보곤 했다.
그 때, SE에 깔려있던 프로그램 중에 작곡 프로그램이 있었다. 당시 PC 호환 컴퓨터에는 복잡한 소리를 내는 사운드카드가 발달하지 않아서 컴퓨터를 이용해서 작곡한다는 개념이 PC 호환 컴퓨터에는 거의 없었다. 나는 작곡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신기한 마음에 프로그램을 열어서 실행을 시켰다. 그 프로그램에 딱 하나 들어있던 샘플 음악은 바로 Johann Sebastian Bach의 Fugue in G minor였다.
음악을 컴퓨터로 연주시켜 보니 모니터 상으로 음표 하나하나를 움직여주면서 연주하는데, 컴퓨터로 그 정도의 소리가 나온다는 것도 당시로선 굉장했고, 또 바흐의 소품 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에 몇 번이고 다시 들었다. 그리고는 레코드점으로 가서 Fugue in G minor를 음반으로 샀다. Fugue in G minor는 당시 우리나라에선 음반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몇 군데를 돌아다닌 다음에야 구할 수 있었다. 원곡이 오르간에 맞춰진 음악이라 음반도 오르간 연주로 되어 있었다. 오르간으로 듣는 Fugue in G minor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대위법의 완성자이면서 오르간의 효과를 극한으로 이용할 줄 아는 작곡가였던 바흐가 만든 Fugue 중 (내가) 최고로 꼽는 작품이다.
저번달에 중국에 갔을 때 사온 Swinging Bach라는 DVD를 오늘에서야 처음부터 찬찬히 듣고 있다. 라이프치히의 시장광장(Marktplatz, marketplace)에서 공연하는 실황을 담은 DVD이다. 2시간 짜리 DVD인데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다. 그 중에 가장 반가웠던 건 Quintessense Saxophone Quintet이 연주한 Fudge Fugue in G minor이다. 밴드의 이름따라 5명의 색소폰이 연주하는데,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Fugue in G minor는 이런 맛이 있구나… 색소폰은 음색이 부드러운 데다 깊게 울리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오르간과 유사한 점도 있다. 5대의 색소폰이 Fugue을 연주하는 것은 오르간에서 느껴지는 웅장함과 성스러움의 이미지는 빠지고 색소폰의 재지스럽고 자유스런 느낌이 대신 들어간다.
이 DVD는 “잠수가 꼽는 올해의 DVD”에 올려야겠다.
사족:
재즈연주가들이 가장 매력을 느끼는 클래식 음악이 바흐인 것 같은데, 내가 추정하는 이유는 바흐의 음악이 테마를 강하게 내세우기보다는 음악의 구조를 중시하여 탄탄한 전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재즈 연주가들이 재지하게 편곡하기 쉽기 때문인 것 같다. 베토벤과 그 후대들의 음악은 테마가 강하기 때문에 재즈로 편곡해도 클래식스런 원곡의 분위기를 탈색하기가 쉽지 않은데, 바흐는 약간만 편곡해도 재즈스럽게 연주할 수 있으면서 원곡의 탄탄한 전개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 부동산 경기
미국 부동산 경기가 가라 앉은 것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 됐다. 이제 주제는 이 미국 부동산 경기 침체기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4년간은 이 상태 혹은 (지금보다 더 떨어진다면) 최저점에서 유지되고, 그 이후에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건 엄밀한 경제적 분석을 한 건 아니고, 과거 미국 부동산 시장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그렇게 될 거라는 느슨한 추측이다.
근데 어떤 이들은 미국 부동산 경기가 금방 다시 살아날 거라고 말하면서 논쟁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2005년 즈음 미국 전국에서 부동산 거품 논쟁이 있었을 때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없다고 주장한 사람들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National Association of Realtors의 David A. Lereah 같은 사람들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부동산 시장엔 거품이 상당히 끼어 있었다. 나는 David Lereah가 관여한 논쟁들을 보면서 NAR 쪽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NAR은 부동산 거래가 많이 이뤄지면 돈을 많이 버는 부동산중개업자들의 단체이므로 부동산에 거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자신들한테 유리하니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 말에 속아서 흔히 말하는 상투를 잡은 사람들도 꽤 될 것이다.
근데 똑같은 사람들이 이제는 부동산 경기가 저점을 지나서 바로 상승기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 역시 거짓말이다. 상승기로 돌아서야 부동산 거래가 활발해지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시장이란 정보 비용과 거래 비용이 있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정확하게 맞춰지기 힘들고, 그런 와중에 여러 가지 왜곡된 정보들이 시장을 왜곡하는 것을 막기가 힘들다. NAR의 앞잡이들이 하는 거짓말들은 시장을 왜곡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 숨어 있다.
현재 미국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부동산 중개인들이 상당히 타격을 받는 것은 사실이라 그들은 부동산 경기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겠지만, 거시적으로 봤을 때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긴 힘들다. 게다가 만약 내년에 웹2.0으로 인터넷 산업이 다시 붐을 맞이하게 되면 부동산은 더 침체될 것이다. 2000년의 리플레이처럼 보이지 않나? 앨런 그린스펀은 주식시장 꺼질 때 부동산 불 붙는 거 가만 놔뒀지. 내년에 FRB는 부동산 꺼지고 웹2.0 살아나는 거를 어떻게 할 건지?
청자와 막걸리
다카키 마사오는 쥐 실험을 하는 심리학자가 쥐를 보듯이 한국 국민들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든 건 과거 전매청을 통해 청자, 백자, 거북선 등의 담배를 팔고,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통주조법이 다 맥이 끊긴 후에 밀가루를 누룩에 쪄서 만든 술인 막걸리를 전국적으로 보급했던 일을 상기하면서다. 조국근대화의 책무를 짊어지고 새마을운동의 기치 아래 밤낮으로 일하던 국민들은 값싸게 중독되어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방도가 필요했을테고, 지도자로서 국민들의 그런 열망을 외면할 수 없었던 다카키 마사오는 (고쳐 쓰면, 그래도 한 놈이라도 덜 낙오하고 열심히 부려먹으려면 현실과 환상을 오락가락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으므로) 담배와 막걸리를 전격 보급하기로 한다.
담배를 아무나 팔게 하면 현실을 너무 과도하게 잊는 나머지 폐에 구멍이 나서 죽어버릴지도 모르므로 (고쳐 쓰면, 담배처럼 돈 되는 장사는 역시 나랏님이 해쳐먹어야 하고, 담배 피는 인구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최대한의 수익을 올릴 수 있으므로) 전매청이라는 관청을 만들어 담배 재배와 판매를 관할하게 하여 현실 망각과 국민 건강이라는 타협할 수 없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줄타기 하게 만들었다.
여느 나라처럼 3년 묵은 포도주나 10년 숙성한 위스키로 국민들의 시름을 잊게 해주면 좋으련만,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그나마 머리를 짜내어 값싸게 중독될 수 있게 만든 술이 막걸리였다. 막걸리 마신 다음 날 머리가 미칠듯이 아파도 그건 전날의 시름을 잊는 데 도움이 되는 추가적인 약효였다.
중독이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중독합리화 란 포스트에 달린 댓글 때문에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를 사서 읽었다고 말하는 게 가장 사실에 가깝다. 그 댓글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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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이 주변 환경에 영향받는다는 것은 알렉산더라는 심리학자가 내놓은 이론입니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책에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쥐공원실험’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악성으로 중독된 쥐라 하더라도 환경을 쾌적하게(공원처럼) 만들어 주면 마약을 피하고 중독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어봤더니, 쾌적한 환경에 사는 쥐는 마약 중독이 안 되고 열악한 환경에 사는 쥐는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실험의 결론이었다. 우울증에 걸려본 사람이라면 경험으로 이해가 될 것이다. 우울증이란 것도 우울한 상황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많고, 그런 환경하에서는 향정신성 물질에 중독될 가능성도 높고 중독에서 잘 헤어나지 못한다. 그 책에 나오는 중독 실험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실험 이전에 물질 결정론적 중독 이론에 약간 다른 향내(flavor)를 불어넣은 것이다. 즉, 중독이란 중독성 물질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중독이 되도록 유인하는 악성 환경의 영향도 있다는 것이다.
이 실험 결과를 읽고 나서 빠지기 쉬운 함정은 중독이 환경에 의해 지배적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실험의 결과에 따르면 쾌적한 환경에 사는 쥐는 마약을 자연스레 끊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만약 중독이라는 현상이 환경에 의해 지배적으로 결정된다면 의학계와 심리학계는 중독성 물질의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할 것이다. 중독을 깊게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중독성 물질이란 게 있고 거기에는 담배, 히로뽕, 코카인, 대마초, 엑스터시 등등이 있으며 이들의 중독성은 약간씩 다르다는 걸 상식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대마초의 중독성이 담배보다 약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모든 상식 혹은 비상식적인 이해와 논란의 배경에는 중독성 물질의 존재와 중독성의 차이가 전제로 깔려있다.
브루스 알렉산더의 쥐 중독 실험이 만약 이러한 중독성 물질이나 중독성의 정도 차이를 전면 부정하고 중독의 환경결정론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그 이론의 모순을 쉽사리 지적할 수 있다. 중독성 물질이란 게 없다면 그의 중독 실험 자체가 자가당착인 것이다. 환경에 의해 중독이 생기는 것이고 중독성 물질에 의해 중독이 생기는 게 아니라면, 그의 실험 결과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쥐의 마약 중독은 마약의 중독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결정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야 할것이다. “쥐의 환경이 열악하다면 쥐는 초근목피에도 중독이 됩니까? 하얀 쌀밥에도 중독이 됩니까? 환경이 열악하기만 하다면 쥐는 어떤 물질에든지 중독이 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마약을 실험 도구로 이용할 필요는 없었겠군요?”
브루스 알렉산더는 중독이 환경 결정적이라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마약을 사용했고, 마약은 중독성이 있다는 전제하에 실험을 전개했다. 그래서 그의 실험이 자가당착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도출한 결론이 ‘중독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정도의 강도 약한 것이었다면 중독성 물질의 존재라는 상식과 배치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독이 전적으로 환경에 의해 지배된다고 그가 주장한다면 자가당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쉬운 것은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서 저자 로렌 슬레이터는 독자들이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브루스 알렉산더의 실험결과를 찬양하고 있다.
나는 상식적인 선에서 중독이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데에 동의한다. 한 때 우울증에 빠졌던 나도 물질 남용(substance abuse) 유혹에 시달렸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론에 기대어서 자신의 중독이 환경 때문이라고 책임전가하는 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중독자들이 흔히 행하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고 본다. 담배 피는 사람들이 상당수는 스트레스 레벨이 낮아져도 여전히 담배를 피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가? 환경이 변해서 담배 끊었다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적이 없다.
숨은 뜻을 찾는 사람들
나는 (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하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한다. 하지만 가끔씩은 진짜 이유를 숨기고 다른 이유를 대기도 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세상 좀 살아봤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 일부는 이상한 성격의 트리를 타는데,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행동의 진짜 이유를 숨기고 핑계거리를 갖다댄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진다. 그래서 행동의 진짜 이유를 알려면 추궁하거나 꼬아서 질문을 해보거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항상 궁금해 한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하지?”
경제학에서 가끔 언급되는 오컴의 면도날처럼 가장 간단한 설명이 제일 들어맞는 설명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오컴의 면도날 같은 건 무시한다. 이들의 구미에 잘 맞는 이론은 아담 스미스식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처럼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기 극대화’이론을 극단까지 가지고 가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조직을 위한다느니, 사회를 위한다느니, 국가를 위한다는니 하는 말은 절대로 믿지 않는다. 그런 사고방식도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뭔가가 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먼 미래에 일어날 측정하기 힘든 보상을 위해서 현재의 측정가능한 작은 이익을 포기하기도 한다. 사실 사람들이 가치를 두는 것들은 꽤 다양하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그런 다양한 가치가 일단은 현재의 측정가능한 가치로 환원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이론을 펴나가기도 하는데, 이론상의 세계에선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 세계에서는 인간을 움직이는 유인들은 측정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지?”라는 질문을 끝없이 하면서 결국엔 “그 사람은 그걸 노리고 그렇게 행동한 거였어”라는 답이 나와야만 만족해 하는 사람은 경제학자가 이론을 만들기 위해 단순화한 세상보다 훨씬 단순화된 세상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재단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세계관이 그러하기에 스스로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사람에게 이타적인 행동을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조직을 위한 행동이나 국가를 위한 행동 역시 기대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무선 인터넷 시대 개막
무선 인터넷 사용 시작
집에선 인터넷이 없어도 그닥 불편함이 없어서 인터넷을 깔지 않았다. 회사에서야 당연히 인터넷이 되니까 문제가 없었고. 그런데 국내 출장을 다닐 때 인터넷 쓰기가 까다로워서 불편했다. 인터넷을 쓸 수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도 있고, 그 와중에 필요한 파일을 USB 메모리에 담아서 옮겨야 하기도 하니까 이래저래 번거롭다.
요즘 새로 나온 HSDPA를 써볼까 했는데, 모뎀을 8만원 주고 임대(사실은 구매)해야 하고 가입비가 5만원이나 되니까 초기 비용이 13만원이나 된다는 데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HSDPA가 정착된 서비스가 아닌데 괜히 실험용 테스터(좋은 말로는 얼리 어답터)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생겼다.
좀더 알아보니 휴대폰을 이용한 전화접속 인터넷이 가능했다. 한달 동안 1GB 데이터 전송에 대해서는 2만3천원의 정액이고 그 이상 사용량은 종량제로 넘어간다. 나처럼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지 않으면서 출장 갈 때 길에서 인터넷을 쓰기에는 최적의 환경처럼 보인다. 가격도 요즘의 인터넷 이용료 중에선 가장 싼 편이기도 하다. 한 가지 단점은 속도가 많이 느리다는 것. 접속하면 230kb/sec이 표시되는데 파일을 다운받아보면 15kb/sec 정도의 속도가 나온다. 하지만 이메일 정도 이용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다. 1GB의 용량은 좀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
좀 써보다가 HSDPA로 전환할지 아니면 계속 이용할지를 결정할 계획.
그리고 노트북에서 배터리와 DVD롬을 빼면 무게가 꽤 줄어든다는 것도 좋은 팁이다. 상당히 모바일한 생활패턴이 가능해질듯.
고흐는 일본 판화를 좋아했다
일본인들은 고흐를 좋아한다. 그가 뛰어난 화가이기 때문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일본 판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의 편지들에도 나온다. 한 때 고흐는 일본 판화에 푹 빠져 지내서 판화를 모사하기도 하고 수집하기도 했다.
이주헌이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에서 동양화가들은 일찌감치 사물을 정묘하게 그리는 것의 덧없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안 난다. 서양의 미술사에서 네덜란드 화가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에 반 다이크니 반 에이크 형제로 대표되는 네덜란드 (풍경)화가들이 남긴 그림들은 극도의 정밀화였다. 코로와 쿠르베, 베르메르로 이어지는 그런 화풍은 인상파의 대두와 함께 저물어 갔다.
반면, 동양화의 전통에서 극도의 정밀한 묘사를 추구한 화풍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옛날 동양화가들의 마음을 정확히 들여다볼 수는 없으나, 그들은 이주헌이 말한대로 극도의 정밀함이 그림의 수준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찌감치 구상과 관념이 혼합된 반추상의 세계로 들어간 것 같다.
일부 서양철학 수입업자들이 극찬해마지않는 르네 마그리뜨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그림으로 엄청나게 유명해졌지만 사실 그림 속의 파이프가 파이프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아는 것이고 마그리뜨 이전의 철학자들도 무수히 지적해놓은 것이 아니던가? 그런 철학적 사유들을 그림에 써먹으면서 한 번 힛트친 것이지. 그런 그림들과 그림을 소개한 책 몇 권을 읽고 마그리뜨 빠돌이, 빠순이 짓 하는 사람들은 마그리뜨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의 의미를 정답처럼 줄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림을 모르는 무식쟁이 취급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방식으로 특정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정말로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자의 소치일 뿐이다. 또한 자신의 잘난 독서목록 리스트에 한두 줄의 책이름을 더 얹어놓고 남에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허영심을 만족시킬 뿐이지.
이제는 철학이나 물리학 한두 마디 읊지 못하면 미술가 대열에도 못 끼는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같은데, 그건 미술 자체만으로는 튀는 데 한계가 있으니 현대 사상이니 사회학이니 물리학이니 하는 것들을 접목해서 이름 한 번 날려보려는 소수 화가들과 그 분위기에 편승한 평론가들이 합작해서 만들어내는 쇼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림 자체의 이미지로 표현할 것이 없으면서 그림을 하나의 소품으로 이용해서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를 의심한다.
게다가 아주 단순하기까지 한 나는, (볼만한) 그림을 간단하게 정의한다. 내가 내 머리 속에서 본 (혹은 상상한) 이미지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도구가 그림이다. 동물은 못하고 인간은 할 수 있는 행위 중의 하나가 머리 속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미지들 중에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려서 보여달라. 하지만 단순히 풍경이나 정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면 사진을 찍어서 보여달라. 파이프라고 그려놓은 것은 파이프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으면 말로 하라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달리를 좋아한다.
과감하게 추측하건대, 고흐는 자신의 머리에 떠오른 이미지를 그리는 데 적합한 방식을 일본 판화에서 찾았던 것 같다. 일본 판화의 영향은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도 볼 수 있다.
(오늘의 횡설수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지금 직장으로 옮길 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을 결국 겪고 있다. 나만 겪는 건 아니고, 나보다 더 오래 있었던 사람들은 더 오래 겪어왔다.
어디서나 있는 조직 내의 인간 관계 문제인데,
그것의 해법이나 하는 것을 찾기보다는,
요즘은 시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조직 내의 인간 관계 때문에 실기(失機)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나 스스로가 하고 싶었던 일이 막히는 일이 생기는 것도 실기이고,
그로 인해 조직이 실기하는 것도 문제이고,
그래서 일의 큰 흐름이 어긋난다는 것도 문제이다.
그저께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나보다 8살이 어린데, 여기가 첫 직장이라 한다.
조직 내의 인간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큰 흐름이 있다는 걸 놓칠까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