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pril 2007
어느덧 5월
작년 9월에 대전에 오면서 아파트 계약을 할 때, 올해 5월에 주인이 에어컨을 달아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리하여 어언 8개월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5월이 바로 앞으로 다가 왔다. 오늘 주인에게 전화를 거니 주인이 5월말경 해서 달아주겠다고 한다.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이었다지만, 보일러를 켜면 온돌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던 계절이 지나가고, 이제는 한달 가스 요금이 5000원 이하로 나오는 때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좀 있으면 한달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는 계절이 되겠지.
대전에서 살면서 맞이하는 봄은 처음인데, 여기저기 공원도 있고 나무도 많은데다 공기도 좋은 편이어서 봄 바람을 맞으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 아주 좋다. 자전거에 걸고 다니기 좋은 자그마한 손가방도 하나 사서 필수품만 넣어서 들고 다닌다. 그 가방에 작은 책도 하나 넣어서 자리에 앉을 때마다 읽곤 한다.
시간 거스르기
대전은 나름 큰 도시이다. 지하철도 있고. 과학기술도시로 중점 발전시켜온 곳이라 연구단지도 많고, 그래서 많이 배운 사람들도 많은 곳이다. 그래서 나름 대전을 좋아하며 살고 있는데, 그 동안 한 가지 거슬려 왔던 건 대전 사람들의 운전 습관이다.
운전의 기본 규칙이라고 할 것들이 여기선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대전의 도로에서 적용되는 가장 상급의 규칙은 ‘잘 판단하여 적절하게 운전한다’이다. 이 규칙보다 하급의 규칙이 빨간 불일 때 멈추고, 파란 불일 때 통과하기. 우회전할 때는 일단 멈춰서 좌우를 살핀 후 가장 바깥 차선을 이용해 우회전하기. 등등의 운전의 기본 규칙들이다. 그렇다고 거리가 ‘매드 맥스’ 수준은 아니지만, 출퇴근 시간에 도로를 보면 정말 가관이다.
며칠 전부터 보궐선거 유세를 ‘억지로 듣게 되면서’ 대전의 촌시러움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내 방이 대전의 큰 도로를 향해 있다 보니 보궐 선거 유세가 본의 아니게 잘 들리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파트촌에 사는 사람도 같은 불평을 하는 걸 보고서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이번에 대전 서구을에서 당선된 국민중심당 후보가 유세기간 내내 빵빵하게 틀어준 곡명 모를 뽕빨 트로트를 지역 주민들은 다 기억하리라. 트로트를 개사해서 유세곡으로 쓴 후보나, 그 후보를 찍어서 당선시킨 지역주민들이나 다 수준이 비슷하다. 국민중심당이라면 … 에잇! 말하기도 귀찮은데. 박정희 시절부터 지역감정 유발 공작에 화답하며 지역감정 증폭기 역할을 담당했던 정당이 아닌가?
유세곡으로 힙합 랩을 하거나 아니면 오페라를 쓴다 하여 수준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트로트라 하여 수준이 낮다고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중심당 후보는 트로트가 귀에 쏙쏙 잘 들어오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해서 트로트를 틀어주기면 가장 효과적으로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결국 ‘요놈의 촌구석에서는 막걸리 같이 마시면서 트로트 노래 같이 불러준’ 한 집 건너 국민중심당을 찍어주는 그런 동네라는 거 아닌가? (국민중심당이 불법선거운동을 했다는 얘기는 아니고, 비유적으로 쓴 말임) (당선되기 전이나 당선된 후나 국민중심당 후보가 지역주민들과 막걸리 마실 일은 절대 없겠지만) 결국 그게 맞아들었고. 그러니까 다음 번 선거에서는 또 뽕빨 트로트를 틀겠지.
대전에서만 가요 순위를 별도로 매긴다면 트로트가 1위를 할까?
배장은의 The End and Everything After 리뷰
배장은의 앨범 The End and Everything After 에 대한 리뷰가 All About Jazz에 실렸네요. All About Jazz는 아주 유명한 사이트라고 합니다.
영상폰이 보급되면서 생길 새로운 직업
영상폰으로 은밀한 대화 나누는 직업이 아닐지?
예전엔 컴터로만 가능했던 영상통화가 휴대폰으로 가능해졌으니.
Utopia v. Anti-Utopia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것이지. 원래 탱자였던 게 물 건너 가서 쓴 맛을 내는 게 아니다.
자기 잘못은 인정하기 싫고, 남의 잘못만 손가락질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까 대략 이해는 한다. 하지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걸 이해한다 하여 그게 옳다는 건 아니다.
지구상 최악의 anti-utopia인 미국이라는 사회가 비디오게임 속에서 총을 난사하는 1인칭 시점을 현실로 튀어나오게 한 거지.
적절한 Kurt Vonnegut을 인용하자면,
Human beings will be happier – not when they cure cancer or get to Mars or eliminate racial prejudice or flush Lake Erie but when they find ways to inhabit primitive communities again. That’s my utopia.
구독 블로그 읽기도 헉헉
여기 저기 흥미로운 블로그들을 구글 리더로 긁어모아놓다 보니, 하루만 글들을 청소하지 않으면 100개 이상의 글들이 밀리게 된다. 이걸 몰아서 다 보려면 정말 헉헉이다.
내용들이 대부분 전문적인 것들이라 제목만 읽어 내려가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드디어 관심도 낮은 블로그를 삭제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몇 개를 삭제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읽어야 할 글들은 많다.
이렇게 블로그 글에 시달리다 보면, 좀더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을 한 권 사서 읽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책에는 나오지 않는 최신의 정보들을 블로그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어찌할 수 없으니…
글에 치이며 살다.
Kurt Vonnegut을 추모하며
Kurt Vonnegut died.
좋아하는 현대 작가인 Kurt Vonnegut이 죽었다.
“So it goes.”
영어 하면 지능지수 50 감소
영어를 하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건 아니고…
약간 낚시성 제목임은 인정.
오늘 아침에 출근 하면서 라디오로 모닝스페셜을 들었다. 주제가 ‘한-미 FTA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로 진행되면서 청취자들이 전화를 해서 자기 의견을 밝히는 차례가 되었다.
한 여대생이 전화를 해서는 하는 말: “I major in economics. So, I support FTA.”
이걸 우리말로 옮겨놓으면, “제 전공이 경제학이라서 저는 FTA를 찬성합니다”이다.
경제학과 교수가 이 말을 들었으면 그 여학생의 시험 점수와 상관없이 D학점을 주지 않았을까?
저 두 문장을 영어로 자신있게 말했다는 걸 칭찬해야 할까? 아니면, 경제학 전공하는 대학생의 사고 수준이 저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걸 개탄해야 할까?
그 여대생도 우리말로 말할 때는 저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지적인 말을 하지 않을까?
영어로 이야기할 수만 있다면 어떤 바보같은 말을 해도 다 용서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저런 말도 자신있게 방송에 대고 말할 수 있는 거겠지?
내 젊은 날도 지나갔다
bolshevik님의 젊은 날.
그녀를 사랑했던 것만큼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느낄 때, 나의 젊은 날도 지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