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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수

Archive for May 2007

첫 만남에서 교회를 내세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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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특정 종교에 대한 비방이 있으므로, 특정 종교를 강하게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읽지 말고, 다른 페이지로 옮겨가거나 웹브라우저를 닫기를 권고합니다. 

살면서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날 때도 있고, 내가 만나고 싶지 않아더 억지로 만나야 할 사람이 있기도 하고, 길이나 공공 장소에서 조그마한 도움을 주고 받기 위해 잠시 말을 나누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나는 건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스트레스 받는 일을 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자면 그다지 높은 스트레스 등급은 받지 못하는 R-12 정도 등급이라 하겠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대개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인상이 결정지어진다.  그것도 만난지 5분 안에 상대에 대한 판단을 어느 정도 내리게 된다.  내가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면 그 사람에 대한 인상 점수가 즉석에서 100점 만점에 50점 감점 된다.그 “어떤 행위”란 상대가 자신을 교회의 장로라고 소개하거나, 목사라고 소개하거나, 혹은 어떤 큰 교회에 다닌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사람을 처음 만나서 자신을 소개할 때 어떤 교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하거나 어떤 큰 교회를 다닌다고 말하는 사람은, 내 경험상으로는, 같이 일을 하기에는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이 얘기를 새삼 쓰는 이유는 어제 그런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줘야 할 이유도 없고, 내가 만나서 해줄 일은 아무 것도 없는데 막무가내로 찾아와서는 만나자고 한 사람이 나한테 내민 명함에는 모모 교회 장로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감리교회 장로는 그 자체로는 수입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교회 장로가 명함에 파넣을 만큼 직업의 성격이 있는 직함인가? 

그 명함을 받는 순간 그 사람의 자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신만의 세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꿈을 키워온 사람이었다.  그 공상은 현실성이 부족했고, 준비해온 문서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전문가에세 상담을 받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권고해주고 돌려보냈다. 

언젠가 한 번은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하는데, 어떤 사람이 접근하더니 자기가 어느 교회 목사라며 명함을 보여주더니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하며 오도가도 못할 처지니 돈을 좀 달라고 했다.  음.. 그 사람이 자기를 목사로 소개만 안 했어도 돈을 얼마 줬을지도 모른다.  목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니, 일단 사기꾼으로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 반응은 ‘내가 사기 당할 정도로 어수룩해 보이나?’라는 기분 나쁨이었다.  결국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교회에 속해 있기만 하면 믿을만한 사람이며 선한 사람이라는 보증이 된다고 스스로 믿는 것인가?  그러니까, 교회 장로라는 명함이나 교회 목사라는 명함은 그들이 영적으로 1등 시민이며, 나처럼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은 영적으로 2등 시민이라고 볼 수도 있단 거지?  2등 시민이 1등 시민을 도와주면 1등 시민이 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질테고.  ㅋㅋㅋ

교회, 장기적 보수화의 일등공신 :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칼럼 : 한겨레21
를 읽으면서 박노자가 넘 쎄게 나가는 거 아닌가 생각도 했지만, 기독교인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수구꼴통 몰아내듯이 한국 기독교도 한 번 청소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뭐 대부분의 기독교인/목회자들이 수구꼴통이니 수구꼴통 몰아내면 기독교인/목회자들도 상당수 청소가 되겠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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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잠수

May 31, 2007 at 3:4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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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혹은 선에서의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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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서였는지도 모른다.  감기가 걸려서인지도 모르고.  혹은 더운 날씨에 감기 걸린 몸으로 소개팅 (혹은 선)에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화는 처음부터 잘 진행되지 않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결국에 헤어질 때쯤에 나는 ‘이번 소개팅(혹은 선)은 성과가 없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헤어질 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내뱉은 말은,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잘 들어가세요.”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정도의 대사가 생략된 표현은 ‘다시 연락 안 하겠습니다’하고 비슷한 말이다.  분위기로 봐서는 서로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대사였다고 보는데, 그 말이 끝나고 나는 그녀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지는 것을 보아버렸다.  그건 의도적인 것도 아니고, 잠시 표정 관리가 안 되었던 거였다. 

나의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내 생각과는 달리 만남이 중간 이상의 성과는 있었다고 본 거였나?  아니면, 만남이 성과가 없었다 하더라도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정도의 대사도 없이 끝내는 건 모욕적이라고 생각한 거였나?  그렇다면 내가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정도의 대사를 했어야 했나? 

하지만, 과거의 경험으로 봤을 때, 마음에 없는 데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상대는 연락을 기다리기도 한다는 걸 알기에 섣불리 그 말을 할 수도 없는 거였다.

약 6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다음 주 토요일에 시간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선약이 있는데요.’라고 대답했다.  이건 소개팅(혹은 선) 후의 대화에서 정해진 프로토콜이다.  결국 그녀 역시 만남이 별로 성과가 없다 생각했던 거였다. 

내가 전화를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1. 둘 다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2. 무례하게 보이지 않기.  1보다는 2가 더 큰 이유였다.  친한 분이 소개시켜주신 자리이기 때문에 무례하게 끝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매너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보다는 그냥 내가 거절당함으로써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자는 생각.

그런데 막상 전화를 하고 나니 과연 그런 행동이 필요한 거였나 하는 의문이 생겼다.  만남에서의 클리셰가 되어버려 너무나 진부하지만 안 하면 맘에 걸리는 이런 행동들. 

전화 안 했으면 찜찜했겠지만, 전화 하고 나서도 상쾌하지는 않다.

Written by 잠수

May 27, 2007 at 3:5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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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지처참과 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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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3일에 일어난 일이니 이틀 전 일인데, 오늘에서야 인터넷으로 보게 됐다.  텔레비젼에는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돼지 다리가 몸통에서 찢겨나가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지는 못했겠지. 

부처님 오신 날 이틀 전에 새끼 돼지가 죽어 인간으로 환생하기를 바랬던 것도 아닐테다.  짐작하기로는 특전사를 이천으로 이전하면 새끼 돼지처럼 팔다리를 뜯어서 죽여버리겠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던 게 아닐지?  그러니까 그 대상인 특전사를 옮기려는 국방부와 반도체공장을 옮기지 못하게 한 환경부 공무원들을 능지처참해서 죽여버리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새끼 돼지를 대신 죽인 거라고 보여진다. 

80년대 대학생들은 자신의 뜻을 정부에 전달하는 가장 극렬한 방법으로 분신을 택했다.  자기 한 몸을 불살라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전달될 수 있다면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새끼돼지 능지처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을 잔인하게 희생시킨 행위이고, 분신은 자기를 희생하면서 대의를 살리려는 행위였다.  새끼 돼지 능지처참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실행한 사람은 남을 위해 자신의 손가락 한 마디도 희생할 생각이 없겠지?  그들에겐 반도체공장이 들어오느냐 특전사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땅값만이 관심사니까.

Written by 잠수

May 24, 2007 at 3:4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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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3000, 혹은 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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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가듯 블로그에 영화 300에 대한 펌글이 있어서 거기에 대해 내 글을 약간 쯔끄려 본다.

1. 헐리우드 그래픽은 재활용

나만 느끼는 건 아닐 터. 이아고님과 ‘300′을 같이 보고 나오다가 한 대화의 내용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시리즈가 거의 매년 연말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그때 영화를 보면 희한하게도 유사한 괴물들이 나온다. 특히나 얼굴이 문드러지고, 어깨가 넓으며 팔이 길고, 다리는 비교적 짧은 괴물은 ‘해리 포터’에 나오고, ‘반지의 제왕’에도 나오며 심지어 최근 영화 ‘스파이더맨 3′에도 나온다. 스파이더맨3에서는 모래 괴물로 나와서 그 재질(texture)가 다르지만 골격은 유사하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면서 ‘300′에 나오는 괴물들도 있다. 거대 코끼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수천 개의 화살이 하늘을 뒤덮는 장면은 ‘반지의 제왕’이래 고대 전쟁을 그린 영화에서는 벌써 클리셰가 되어버린 듯 하다.

스파르타가 보리 농사를 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왜 하필 레오니다스가 그의 아내에게 작별을 고하는 장소가 ‘글레디에이터’가 죽기 전에 회상하는 보리밭이어야만 했지?

2. 미국 육군 solicitation 선전용 영화

‘300′에서 레오니다스가 외치는 말 ‘No Retreat! No Surrender!’

이거는 미국 텔레비젼에서 육군 병사 모집할 때 쓰는 구호라고 이아고님이 증언해주셨다. 텔레비젼 광고에서도 상당히 폼 나게 그림들을 만들어서 보여주는데, ‘300′에서 보여주는 멋진 격투장면들은 어린 남자애들을 꼬시기에는 적절한 듯. 게다가 미국은 지금 이란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지 않나? 페르시아는 과거의 이란이고. 한 가지 다른 점은 이란의 전력을 300으로 놓는다면 미국의 전력은 1000만 정도 된다는 점.

‘Freedom’이란 말은 미국이 전쟁 나갈 때면 언제나 자국 군대의 병사들을 세뇌시킬 때 쓰는 말이었지. 자기들은 자유를 지키는 군대라는 공작.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일 때도 이란 국민들에게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서라고 선전을 하겠지.

3. ‘300′의 원작자인 프랭크 밀러의 다른 작품인 ‘신시티’를 보면 남성 캐릭터들이 모두 마초이다. 그래서 ‘300′의 캐릭터들이 마초라는 건 전혀 새롭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러웠을 뿐이다. 다만 그들이 국가주의자이기까지 한 건 보기 껄끄러웠다. 마초 국가주의자들 하면 생각 나는 건 한나라당 아닌가? 우리나라 국회의원수가 298명이니까…. 머 대략 비슷하네.

Written by 잠수

May 14, 2007 at 1:5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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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애정이란 걸 견딜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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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드니로와 웨슬리 스나입스가 나오는 옛날 영화 ‘팬 (The Fan)’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팬이 스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서 팬이 스토커로 변해버리고 급기야는 스타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내용을 줄거리로 담은 스릴러물이었다.

유사한 내용을 소재로 한 에미넴의 랩이 ‘스탠 (Stan)’이다. 가사를 듣지 않고 멜로디만 들으면 (랩을 가사 안 듣고 듣는단 것도 웃기긴 한데) 디도 (Dido)의 단순한 노래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기에 좋은 노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 같다. 하지만 가사는 꽤 섬뜩하다.

우리는 누구든 일방적으로 주는 애정에 익숙하지는 않다. 애정을 준다는 것도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지니까. 내가 애정을 주면 그 상대방이 나한테 애정을 돌려주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주는 애정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정도의 보상은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자신이 주는 애정에 대해 보상을 바라는 건, 생각을 통해 기대가 생기는 과정은 아닌듯 하다. 애완동물에게도 사랑을 주었을 때 그 동물이 반응을 보여야 애정을 가지게 되듯. 팬도 스타가 어느 정도의 반응을 보여줘야 지속적인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반응이 “팬 여러분 사랑해요~”라고 생방송에서 마이크로 외치는 것 정도라 할지라도.

자신이 애정을 바친 대상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혹은 거리를 두려고 한다면 영화 ‘팬’에서처럼 그 대상에게 보복을 하거나 혹은 랩 ‘스탠’에서처럼 주변사람을 해치거나 자해행위를 할 수도 있다.

나도 일방적인 애정을 바쳐본 사람인데, 그 대상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무시하거나 혹은 멀리했을 경우에 애정이 그 반대의 감정으로 바뀌려고 한 걸 느낀 적이 있다. 나는 애정의 강도가 높지 않았기에 그 대상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자해를 하기보다는, 그냥 애정이 사그러드는 것에 그쳤다.

일방적인 애정을 바친다는 건 그래서 쉽지 않은 듯. 보상없는 막연한 희생까지도 할 수 있을 준비가 되기 전에는…

아, 그리고 21세기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 내가 생각하는 ‘The Incredibles’에서 막강한 적으로 자라나는 아이도 원래는 Mr. Incredible의 팬이었다.  Mr. Incredible이 그 아이를 대수롭지 않게 대접하니까 그 아이가 앙심을 품고 대단한 천재적 발명가/악당이 되어버린 거지.  음, 이걸 아동 교육에 이용해 보는 건 가능할까? 

Written by 잠수

May 1, 2007 at 1:2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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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홈피는 머리카락 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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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머리를 자르거나, 파마를 하거나, 염색을 하거나 하면 무슨 일이 생겼다는 표시로 받아들이면 70%는 맞다. 가정주부가 가구배치를 새롭게 할 경우에도 심리의 변화가 있을 경우가 많다.

사이홈피를 ‘닫았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다.

여자는 자기 마음을 불편하게 하거나, 불쾌하게 하거나, 슬프게 하거나, 기타 그와 유사한 정도의 감정의 변화가 생길 때 남들이 (특히 남자가) 그걸 알아줬으면 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누군가가 사이홈피를 ‘닫으면’ 무슨 일이 있냐고 친절하게 물어봐 주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귀찮다. ㅡㅡ; 언젠가 다시 열릴 사이홈피..

덧붙여서, 요즘은 일촌신청을 받아주지도 않는다. 특히나 여자의 일촌신청은 안 받는다. 일촌 받아주면 맨날 방문해서 사소한 심경의 변화까지 캐치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여자가 어느 날 머리 스타일을 바꿔서 왔을 때, 머리 스타일이 바뀌었는데 잘 어울린다고 말해줘야 한다거나, 신발이 바뀌었을 때 신발이 예쁘다고 말해줘야 하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새로운 의무를 발생시키는 일이다.

Written by 잠수

May 1, 2007 at 1:0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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