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ne 2007
두 가지 문제 해결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었다.
휴대폰 끄고 잠적한 집주인 «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블로그에서 말한 대로 화요일(6월 19일)에 내용증명 편지를 보냈다. 다음주 월요일(6월25일)까지 에어컨 안 달아주면 내 돈으로 달 것이고, 그 돈 다 보전될 때까지 월세 안 내겠다는 내용이었다. 오늘 이마트에 간 김에 에어컨을 둘러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하이마트 에어컨 기사였다. 내일(토요일) 에어컨 달아주러 가게다고 한다. 내가 에어컨 주문한 적 없다고 하니까, 집주인 이름을 대면서 그 사람이 주문한 거라고 했다. 결국 내용증명 편지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기분 나쁜 건, 결국 달아줄 거면서 전화 한 통화 없이 하이마트에 가서 에어컨 주문해버리는 집주인의 일처리 방식이었다. 자기 나름 기분 나빴을지 모르지만 자기가 원인 제공했으니 결자해지 원칙으로 해결해야지.
윈도우즈 작업표시줄 (태스크바)가 이상해서 퀵슬롯이랑 언어바랑 등이 두 개씩 나오기도 하고 표시되는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서 컴퓨터 켤 때마다 짜증났었다. 깔끔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블레즈의 Reverie Memoir :: 네이버 블로그에 있다. 윈도우즈는 XP까지 왔으면서도 기본적인 운영체제의 작동에서도 에러가 많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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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끄고 잠적한 집주인
작년 9월 이사 들어올 때 임대차계약서에 적어놓기를, 집주인은 2007년 5월 30일까지 에어컨을 설치해주어야 했다. 3주전에 내가 집주인한테 전화하니 5월말까지 달아주겠다고 했고, 2주전에 집주인이 전화해서 한 주만 미루자고 했다. 그후로 연락이 없길래 지난 주에 전화했더니 “전화기 전원이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전화기를 잃어버려서 그런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도 있겠지만, 내 전화번호는 임대차 계약서에도 나오는 것이니 주인이 그 전화번호 찾아서 전화하면 될 일이다.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주인이 에어컨 달아주기 싫어서 전화기 꺼놓은 거다. 월요일에 내용증명 우편을 보낼 계획이다. 안 달아주면 내 돈으로 달고 그만큼 월세 안 내겠다고.
Homo Eroticus로서의 자신을 아는 것
Homo Eroticus로서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아주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교조적인 사상이나 종교를 믿는 사람 중에 Homo Eroticus로서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은 허황되게도 초월적이거나 우연한 사건의 발생을 믿으며 그걸 기다리기까지 하며 인생을 허비한다.
인간이 이성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동물적인 현상이다. 한 인간 개체는 다른 인간 개체의 특정한 특성에 이끌리게 되어 있고, 그렇게 특성에 이끌리게 되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생리적인 반응에 따른 것이다.
인간이 사랑을 느끼는 현상은 사향노루 수컷이 빨갛게 충혈되고 부풀어오른 암컷의 성기를 보고 발정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며, 엄마 제비가 짹짹거리며 입안의 노란 살을 보여주는 쫙 벌린 새끼의 소리과 입을 보면 그 안에 벌레를 집어넣어주는 행동과도 본질적으로 같은 행동이다. 다만 인간의 사랑이란 동물의 사랑보다는 좀더 패턴이 다양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간은 사랑이 상당부분 생리적 반응이라는 걸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자신이 어떤 특성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가를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Homo Eroticus로서의 자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하고 헐리우드에서 만들어놓은 ‘번개가 꽂히는 것 같은 사랑’을 찾는다면 평생을 허비할 뿐이다. ‘번개가 꽂히는 것 같은 사랑’을 해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왜 그 사랑이 ‘번개가 꽂히는 것’ 같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를 잘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자기를 잘 이해한다면 ‘번개가 꽂히는 것 같은 사랑’을 다시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운명적인 만남’은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며 나태하게 지내거나 초월적 존재에 의존하려 한다면 많은 시간을 소득없이 보내버린 채 그저 쫓기듯 결혼으로 들어가거나 포기하게 될 것이다.
말투가 무당스러운 것 같네. ㅡ.ㅡ
(누구 읽으라고 쓴 건 아닌데, 누구 때문에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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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가입서 안 내면 생일 안 챙겨주지
한 십년 전만 해도 개인정보가 중요하다는 의식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누가 개인정보 달라 그러면 덥석덥석 주던 때였다. 인터넷 초기 시절에 그런 관성은 계속 이어져서 웹사이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을 요구했고, 사용자들은 덥석덥석 그런 정보들을 친절하게 입력해서 갖다바쳤다.
그렇게 갖다바친 정보들이 이리 팔리고 저리 팔려서 전혀 뜻하지 않았던 요상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서 사기에 가깝게 이용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사람들이 개인정보를 내놓는 것에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여전히 서로 믿는 게 좋고 ‘좋은 게 좋은 거’라 믿는 분들은 덥석덥석 내주고 있긴 하다만.
인터넷에서 사이트운영자들이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배경에는 한국 정부가 개인 정보를 속속들이 손에 쥐고 있던/있는 체제와도 관련이 있다. 정부기관에 가서 신청서 내려면 당연히 모든 정보를 속속들이 다 내놔야 하고, 불법 불심검문할 때 주민등록증 안 내놓으면 경찰서에 끌려가서 험한 꼴 당해야 하는 사회였던 게 불과 몇년 안 되었다.
구글로 주민번호 검색이 가능하다는 게 언론에 보도되고 그걸로 휴대폰 개설해서 사기치는 게 가능하고 신용카드 만들어서 사기치는 게 가능하다는 게 알려지면서 개인정보를 함부로 내주면 안 되는 거라는 데 대해서 공감대는 높아진 듯 하다. –> 라고 생각하면 좋겠는데, 얼마 전 겪은 일 때문에 혼란스럽다.
오프라인 동호회를 몇번 나간 적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간단하게 공부를 하는 모임이었다. 나는 이미 가입해서 활동하는 지인을 통해서 나가게 되었고, 처음 나가서 대충 인사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 네 달 정도 지났다.
메신저로 얘기를 가끔 주고받던 부회장이란 사람이 아침에 메신저로 말을 걸더니 ‘가입할 때 신청서 안 내셨죠?’라면서 파일을 하나 전송해주더니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한다.
신청서 양식을 보니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직장명/학교명,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가입동기, 동호회에서 바라는 것 등을 적어내게 되어 있었다. 이건 입사지원서 양식 아닌가? 동호회 활동을 하기 위해 내 생년월일과 주소, 학력, 직장명 등이 왜 필요한 걸까?
요구하는 정보들이 너무 많다는 의사표시를 부회장에게 하자 부회장은 ‘임원진은 회원들을 관리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정보를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이 사람은 개념을 달나라로 보내 절구를 찧게 하고 있는 건가? 언제부터 동호회 임원진이 회원들을 ‘관리’하게 됐지?
그래놓고서는 또, ‘쓰기 싫은 건 안 쓰셔도 돼요’라고 한다. 그거 안 쓰면 관리 못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자가당착스런 말을 해놓고선 또 웃기지도 않는 협박을 한다. “생년월일 안 쓰시면 생일 못 챙겨드려요.”
아니 내가 동호회에서 생일 안 챙겨주는 게 그렇게 겁날까봐서? 협박을 하려면 겁나는 걸로 해야지.
왜 이걸 임원진이 보게 되어 있는 거냐고 내가 물으니까, ‘사실 임원진이 보지도 않아요. 그냥 형식상 받아두는 거예요.’라고 한다.
“관리”하기 위해 받아야 한다 해놓고 임원진도 안 본다? 그럼 아무도 안 보는 거네.
“아무도 안 보는 거 왜 요구하세요? 안 볼 거면 요구 안 하면 되죠?”라고 했더니, “쓰기 싫으면 안 쓰셔도 돼요. 하지만 임원진은 회원을 관리할 책임과 권한이 있기 때문에 회원의 정보를 알아야 합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대화가 안 통하는 거다. 거기까지만 하고 대화(이런 건 대화도 아니다. 면벽 멍멍이지) 끝내고 동호회 탈퇴했다.
나는 이런 사람을 볼 때 머리 나쁜 건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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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전 합시다
너무 심한 결단력과 추진력은 자제효
야후! 블로그 – 싸이코 짱가의 쪽방에 “37개 서울언론사 기자, 청와대에 항의방문”이란 기사가 링크되어 있고 그 기사에 붙은 핵심 찌르는 댓글이 인용되어 있다.
기자실 없애겠다는 노대통령의 방침을 들었을 때, 그냥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깊이 생각을 안 했다는 거다. 그런 실험을 한 번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라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대충 다들 알겠지만, 정부부처에 있는 기자실이라면 기자들이 앉아서 날로 기사를 받아먹는 곳이다. 기자이기 때문에 장관, 차관한테 반말 찍찍 하면서 이거 내놔라 저거 내놔라 명령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장관, 차관이라 해서 기자들이 떠받들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반말 찍찍 하는 것도 보기 안 좋다. 그건 다 예전의 군사정권 때부터 내려오는 정부와 언론의 유착 관계에서 내려오는 관습 아닌가?
그래서 기자실을 없애는 실험을 한 번 해볼만하다 생각한 것이다. 기자들이 (기자실이 없으니까 앉을 때가 없어서라도) 발로 뛰어서 (더워서 뛰기 힘들면 걷거나 택시를 타서라도) 기사를 만들어보는 것도 해봐야 할 시대가 아닌가? 안 그래도 요즘엔 블로그 글들을 갖다가 고대로 베껴서 기사를 쓰는 도둑넘들도 많은데.
자기가 직접 취재원 관리하면서 정보를 캐가면서 기사를 써봐야 정보원이 중요한 줄도 알고, 정보원과의 도의적인 관계도 유지할 것이다. 기사 한 번 잘못 쓰면 정보원들이 다 떨어져나갈테니 기사를 쓰는 데도 더 책임의식도 생길 것이다. 이런 단계까지 나가려면 꽤 시간이 걸릴테지만, 그런 기반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이번 방침은 괜찮은 실험의 첫발로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노대통령이 한미 FTA 타결 이후, 국민 지지도가 올라갔다는 사실에 한껏 도취되어 약간 high 한 상태에서 일을 저지른 것 같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초기부터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려다가 한 발 물러선 노대통령이 한미 FTA 이후 용기 있게 밀어붙인 거 같단 말이지. 한미 FTA를 세게 밀어붙여서 타결되니까 국민 지지도가 높아졌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나한테 부족한 건 결단력과 추진력 뿐이었어’라는 판단을 내린 게 아닌가 하는 것. 이러다가 좀더 큰 일에 잘못된 결단력과 막을 수 없는 추진력을 보이는 것 아닌가? 한미 FTA보다 더 큰 일이 남아있을 것 같진 않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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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보수적인 게 아니라 이기적일 뿐이야
수구꼴통들이 자기들을 보수라고 부르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보수의 의미를 잘 모르고 그 단어를 쓴다. 수구꼴통을 정의할 수 있는 핵심은 ‘이기적인 인간들’이란 개념이다. 수구꼴통들은 정치적 노선에서 보수파들과 같을 때도 있지만 진보파와 같을 때도 있다. 좌파와 같은 노선을 걸을 수도 있고 우파와 같은 노선을 걸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피해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기존의 부도덕하고 불법적이기도 한 체제를 유지할 때 수구꼴통들이 영구히 이익을 착취할 수 있기에 수구꼴통은 보수와 유사한 노선을 걸을 때가 많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제 안정적이면서 괜찮은 급여가 나오고 사회적으로도 자랑할 만한 직업을 얻었다고 해서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선언하지 마라. 거기다가 마치 자기는 몰랐던 양성애적 본성을 깨달은 듯이 수줍게 너만 알고 있으라는 듯, ‘나 알고 봤더니 보수적인 사람이었어’라고 말하며 커밍아웃 세레모니를 펼치지도 마라. 내가 놀라주지는 않을 거거든. 넌 단지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야. 그러니까 넌 수구꼴통에 가까워졌다는 걸 너도 모르게 발설한 것일 뿐이야.
애들 사교육비를 걱정하는 척 하며, 마누라가 애들 영어교육에 너무 목을 맨다고 걱정하는 척 하며, 사회를 걱정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넌 그런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애들이 경쟁에서 앞서나가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것일 뿐이잖아.
이제 보수적임을 선언한 네가 부자의 반열에 들어선다면, 너는 성공적으로 수구꼴통들의 집단에 자연스레 녹아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너는 다른 수많은 생쥐들과 함께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한 마리 생쥐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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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나쁜 건 죄악인가?
1.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서양에서 만들어진 말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중, 고등학교 때 가르치는 내용 중에서 학생들의 머리에 쉽게 주입이 되고 아주 오래 머리에 남는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진리를 좀 멋있어 보이는 말로 만들어 교과서에 실어놓고 외우라고 했으니 얼마나 잘 외어지고 기억에 오래 남겠는가? 그 말을 만들어낸 사회에서 어떤 뜻으로 썼든지와 상관없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한국의 평균적인 성인들에게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과 같은 말이고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하고도 비슷해진다. “사회적 동물”로 오래 살다 보면 싫은 거 싫다고 못하고 잘못된 거 잘못되었다 못하게 되기까지 한다.
2. 입 밖에 내뱉으면 키보드로 던지는 돌멩이를 맞아 압사당할 수 있기에 말하기 힘든 것 중에 하나는 이미 이 블로그를 통해서 해버렸다. 그건 “부모 될 자격 없는 사람은 애를 못 낳게 해야 한다”이다. 이 말 하고 나서 돌멩이는 별로 안 날아오더라. 다 자기는 부모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겠지. 이혼 해서 애 서로 안 맡으려고 싸우는 부부도, 피시방에 유모차 끌고 와서 카트 하는 아줌마도, 부부 싸움 끝에 마누라가 집 나가자 아이한테는 과자만 갖다 먹이는 남자도 다들 자기는 부모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블로그에만 그런 사람들이 안 오나?)
3. 오늘 할 또 다른 돌멩이 맞을 말은, “머리 나쁜 건 죄악이다”이다. 이아고님은 좀 다른 이유 때문에 “머리 나쁜 건 죄악이다”라고 믿는 쪽으로 개종했는데, 나는 사실 좀 오래 전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살인은 죄악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통들 생각하지만, “머리 나쁜 건 죄악이다”라고 말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머리 나쁜 건 죄악이다”라는 생각은 약간 다른 노선으로 흐르면 “신체적 장애는 죄악이다”라는 말과 연결될 수도 있고 “유태인인 것은 죄악이다”라는 것까지도 확장될 수도 있는 방식의 사고다. 그래서 상당히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이런 소위 선민 사상에 유혹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히틀러였고, 또다른 예로 미국의 대법관이자 명판사로 이름이 남아있는 Oliver Wendell Holmes, Jr.도 있다.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이면서 그 사람의 가족들을 불행하게 한다. 머리가 나쁘면 그 가족들 뿐만 아니라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만약 어떤 행위나 어떤 존재가 죄악이냐라는 판단이 공공의 이익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 하는 척도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라면, 머리 나쁜 사람의 존재가 살인 행위보다 더 큰 죄악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쯤에서 박찬욱이 한 말을 인용해 보자.
- 요즘 부자들은 교육도 잘 받아서 착해요. 얼마 전
‘21세기를 준비하는 모임’에 초대 받아서 갔더니, 전부 재벌 3세, 의사, 변호사 등 잘나가는 30대 그룹이었는데 어찌나들
예의 바르고 겸손한지. 흠잡을 데가 없어요. 속된 말로 얼굴 예쁜 여자들이 마음도 예쁘다고도 하잖아요. 임원희의 불만은
이것이에요. 나는 너무 가난하게 자라서 성격이 삐뚤어지고 날로 포악해지는데. 너희들은 뭐 하나 부러울 것이 없으니까 점점 선하게
된다. 왜 착한 것까지 독차지하려고 드느냐! 가난한 사람은 성격까지 나빠진다는 이 현실이 문제라는 거죠.
머리 나쁜 것들은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경쟁에서 뒤처지고 살기가 팍팍하다. 그래서 성격도 비뚤어져 간다. 주변에는 비슷하게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비슷하게 성격이 비뚤어져 있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 다툰다. 마치 머리 나쁜 상대방과 싸워 이기기라도 하면 자기가 조금이나마 더 나은 존재가 되기라도 하듯이…
부자의 자식들이 잘 생기고 똑똑할 뿐 아니라 착하고 겸속하기까지 한 이 체제에서는 부자 삼대 못 간다는 속담도 통하지 않는다. 돈이 뒷받침되는 데다가 똑똑하고 잘 생기고 착하기까지 한 이들을 경쟁에서 제치고 나아갈 머리 나쁜 가난한 집 자손들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머리 나쁜 이들은 그렇게 체제를 공고화하기 때문에 존재 자체로 죄악이다. 더 큰 죄악은 머리 나쁜 이들이 머리 나쁜 자식을 낳아서 돈 많고 똑똑하고 잘생기고 착하기까지 한 부자 자제들의 착취 구조에 기꺼이 편입시키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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