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블로그

By 잠수

Archive for August 2007

돌아가는 배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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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2박 3일의 울릉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배(썬플라워호)에 탑승해 있습니다.  오늘 밤 10시쯤이면 대전에 도착해 있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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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31, 2007 at 5:4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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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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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방을 나서서 대전역으로 갑니다.  기차 타고 포항 가서 하룻밤 잔 다음에 아침에 배타고 울릉도로 들어갈 계획입니다. 

대전역에서 18:25시 기차를 타면 포항에 21:52에 도착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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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8, 2007 at 7:5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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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scent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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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라 하면 관객들이 보고 공포심을 느끼도록 만든 영화다. 그리고 공포영화에서는 보통 괴물이나 귀신이나 무시무시한 범죄자 등이 나와서 주인공들을 괴롭히고 살해하는 등의 행동을 하다가 주인공이 가까스로 살아나거나 아니면 모두 죽거나 한다. 즉, 일상적으로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얘기할 때는 ‘공포’의 의미는 괴물이나 귀신이나 범죄자 등의 무시무시한 행위에서 느껴지는 공포로 국한된다.

– 이 밑으로 스포일러–

영화 ‘디센트’에는 괴물이 나온다. 깊고 어두운 동굴 속에 괴물들이 산다. 그리고 여자 여섯 명이 동굴 탐험을 갔다가 이 괴물들의 희생양이 된다. 이런 굵은 이야기만 보면 공포영화가 맞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여다 보면 괴물이 여자들을 죽이는 건지 여자들이 괴물들을 죽이는 건지 헷갈린다. 정확히 세어본 건 아니지만 여자 5명이 죽는 동안 괴물은 한 20마리 정도 죽은 것 같다. 여자 한 명당 3마리 정도는 죽인 것 같다. 괴물들은 1대1로는 여자들을 제압하지 못했고 대여섯 마리 정도가 여자 1명에게 덤벼야 겨우 제압을 했다.

그런 상황이 좀 지속되니까 괴물들이 불쌍해졌다. 조용한 동굴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괴물들이었는데, 여자들이 괜히 동굴 탐험이라고 들어와서는 괴물들을 살육하는 것이다.

좀더 지나니까 여자들은 괴물들이 완전히 시각을 상실한 박쥐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고는 계획적으로 소리를 내어 괴물들을 유인해서 살해한다. 영화 후반부부터 괴물들에게 감정이입되기 시작한 나는 괴물들이 하나씩 살해될 때마다 가슴 아파하며 영화를 보았다.

주노(주인공중 한명)가 괴물들에게 살해될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은 수십마리의 괴물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 주노를 에워싸는 장면인데, 음 그 뒤로 주노가 죽은 장면은 보여주지 않았으니 주노가 수십마리의 괴물을 (아직도) 도륙하고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괴물들은 시력이 완전히 퇴화되었기에 이 영화를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 괴물들에게는 진정한 공포가 영화 디센트에서 펼쳐진다. 여자들에게는 스펙터클 동굴탐험 람보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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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7, 2007 at 4:2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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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면서 떳떳한 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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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못살 때는 책 살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읽었다는 거 이해한다.  학교 공부 하는 것도 입신양명하기 위한 것이었지 지식을 함양하고 사고를 깊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도 먹고 살기 힘든 때였으니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는 웬만큼 먹고 살만하지 않은가?  휴대전화 요금 5만원은 다들 아낌없이 내면서 한달에 책값 1만원 넘게 쓰는 이가 드물다.  인터넷 접속료 3만원은 당연히 내면서 책 한 권은 잘 안 산다.  이건 먹고 살기 힘들어서 책을 못 사보는 거 하고 다르다.  그냥 책 읽기 싫고 단편적이며 말초적인 정보들만 쉽게 쉽게 소비해버리고 싶어서인 거다.  그런 생활 패턴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런 사회가 몇 년 지속되다 보니, 인문계 대학 졸업자들은 자기 학문 영역에 관한 책도 잘 안 읽는데 언감생심 자연계 교양책을 읽지도 않는다.  자연계 대학 졸업자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그래서 나비효과에 대해 사람들 붙잡고 얘기하려고 하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뉴욕에서 나비가 날개짓 하면 북경에 폭풍이 몰아친다는 게 나비효과 아니예요?” –> 이런 말 한 사람은 뉴욕에서 나비 날려 봤을까?  뉴욕에서 나비가 날개짓 한다고 북경에 반드시 폭풍이 몰아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텐데.  사실적 인과관계(cause in fact)와 과학적 인과관계는 다른 것인데, 이거 설명할 엄두도 못낼 만큼 멍청한 이야기를 해놓고 자기가 나비효과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나비효과 까대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나비효과에 대해 물어보면 잘 안다고 하면서 정작 나비효과와는 상관없는 다른 말들을 쉴새없이 내뱉으면서 자기 무식을 감추려고 한다. 

이건 나비효과가 무엇이냐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비효과가 무엇이다라는 것을 책이나 신문으로 접했을 때, 그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자세를 가지고들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사회가 몇년 더 지속되다 보니, 황우석이 구라 친 거에 대해 검증하자 하니까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거다.  이른바 몇 백년 전 데카르트가 말한 회의하는 인간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멸종 직전의 외눈박이가 되어버렸다.  합리적인 재검토나 회의를 하는 것에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건만 목숨을 걸고 반대한다.  그리고 그런 반대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무식하고 생각 안 하는 군중들이 다수가 되다보니 무식하고 용감한 기질이 발동되어서 여기저기 쳐부수고 다닌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7년, 그 무식하고 생각 안 하는 군중들은 대상과 자아의 거리두기라는 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사고방식까지 싸그리 까먹은 채 대상에 자기를 일체화시키는 유아적 태도로까지 무장하여 무식하고 용감하고 유아적 군중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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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3, 2007 at 3:2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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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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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건 남자나 여자가 마음이 변하거나 혹은 다른 이성의 페로몬에 더 혹해서 다른 이성과 elope하는 상황을 사회제도로 막아놓은 것이다.  그 제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사회구성원들은 서로에게 결혼을 권유한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총각 동료가 자기 마누라랑 자고 돌아다닐 거라는 정도의 상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게 구체적으로까지 상상한 것을 일반화된 ‘결혼권유주의’로 발전시키려면 상당한 사유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그 총각 동료에게 결혼을 권유하는 이유가 자기 마누라랑 바람피는 걸 방지하기 위함은 아니다.  일반화된 ‘결혼권유주의’로부터 구체적으로 자기가 아는 사람들이 바람피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도 상당한 사유과정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결혼권유자(이거 이름 괜찮네)들은 습관적으로 결혼을 권유한다.   그게 습관으로 굳어지기 전에는 여러 가지 생각의 갈래들을 탔겠지만 그들에게 결혼을 절대선이다.   그게 절대선인 이유 중에 하나가 난교와 난혼 예방이다.  사회의 엔트로피가 높아지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결혼권유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두 쌍의 부부가 있을 때는 엔트로피가 0이라고 하자. (기준점을 잡는다는 의미에서)  남편 A가 아내 B와 자고, 남편 B가 아내 A가 자게 되면 엔트로피가 100으로 늘어난다. (100은 엄밀하게 계산한 것은 아님)  결혼권유자들은 이렇게 엔트로피가 높아진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을 위해 마련된 영화의 결론은 …

스포일러 주의 (여담으로, 디워에 스포일러라 할 만한 스토리가 뭐가 있나?  디워의 스포일러 논란은 디워를 둘러싼 또 하나의 코메디였다.)

남편 B가 아내 A와 결혼하고 남편 A가 아내 B와 결혼하면 네 사람 사이의 엔트로피는 다시 예전의 0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결혼권유자들은 안심한다.

이 영화가 아주 사실스럽게 네 사람의 로맨스를 (네가 해도 로맨스라고 인정) 그리면서 역시나 엔트로피가 0으로 회복되는 지점을 영화의 결말로 잡은 것은 결혼권유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결혼권유자든 아니든 그런 결말이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결말이기 때문이다. 

바람을 피거나 이혼/재혼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처음에 제대로 된 사랑을 못 만났기 때문이고, 인연을 만나면 이혼/재혼을 하면서 그 인연과 결혼을 함으로써 제대로 된 사랑을 하게 될거라는 믿음이 아직은 만연해 있다는 것을 영화 만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리고 바람을 피는 사람이든 이혼/재혼을 하는 사람이든 결국 결혼권유자들만큼이나 엔트로피 0인 안정을 희구하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사랑이란 동물들이 짝짓기를 하기 위해 이성을 선택할 때 특정 개체를 선택하는 행위와 본질상 다를 바 없는 호르몬의 작용이며 우성 선택의 과정이다.   그걸 알 수 없는 신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라고 생각하는 건 영화 티켓 한 장 더 팔고, 초콜렛 한 박스 더 팔고, 사탕 한 박스 더 팔고, 덤으로 예쁘장한 카드 한 장 더 팔기 위한 마케팅에 낚인 것일 뿐이다.  그래서 호모 에로티쿠스로서의 자신을 아는 게 필요한 거다.  영원한 사랑?  후풋!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하려는 걸 0으로 붙들어두려고 하면 어느 순간에는 엔진이 폭발한다.

한채영과 엄정화의 베드신이 나온다길래 보러 간 건 아니었다.  영화를 보다보니 그게 나오던데.  여자의 몸이란 건 벗기 전의 모습이 더 유혹적이다.  벗고 나면 별 거 없다.   그래서 너무 보여주는 엄정화보다는 잘 안 보여주는 한채영이 더 유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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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1, 2007 at 10:4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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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 – C급 코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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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가 권해주길래 영화 ‘보랏’을 봤다.   화면 연출은 다큐멘터리처럼 해서 실화 같은 느낌이 다른 영화보다 더 들긴 하는데, 조금 보다 보면 다큐멘터리처럼 만든 극화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심형래 못지 않은 자의식을 갖고 심형래 못지 않게 영화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Sacha Baron Cohen이라는 영국 코메디 배우가 좌충우돌 미국 여행을 한다.   영화에서 그는 Borat Sagdiyev라는 카자흐스탄 사람이다. 

“까기” 그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까기” 그 자체는 재미있을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다.  “까기” 그 자체는 정치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영화 ‘보랏’은 많은 것들을 엄청나게 깐다.  하지만 그 ‘까기’는 까는 사람인 Sacha Baron Cohen을 대단한 코메디언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Sacha Baron Cohen이라고 했다.  Borat Sagdiyev가 아니고.  그러니까 극중 보랏은 자기가 웃기는 줄 모르고 계속 웃기고 다니는 사람이고, Sacha Baron Cohen이 사람을 웃기고 있는 거다.   영화에 몰입하면 보랏은 그다지 웃기는 사람이 아니고, 과장되고 현실인식을 못하는 돈키호테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좀 이격되어 영화를 둘러싼 상황까지 다 보게 되면 이건 Sacha Baron Cohen의 코메디극이라는 걸 알게 되고 웃을 수 있게 된다.   쓰다 보니 이거 디워랑 비슷하네. 

그냥 가볍게 웃자면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영화인데, 너무 많이 ‘까니까’ 뭔가 정치적이거나 풍자적이라거나 해학적이라거나 조소라든지 그런 게 있을 법한데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없다.  그냥 딱 1초의 웃음만 주면 된다는 식의 소재 활용적 까기이다.  만약 그 까기 밑에 뭔가 함의가 있었다면 B급 코메디였을텐데, 그게 없어서 C급 코메디라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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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1, 2007 at 10:1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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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 – two thumbs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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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는 뭘 소재로 만들든지 코메디 영화만 아니면 그 허무 정서란 게 자연스럽게 배어들어가나 보다.  protagonist와 antagonist의 긴장관계를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하게 이어나갈 수 있구나. 

요근래 본 영화 중에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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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9, 2007 at 3:2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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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는 B급 코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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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드뎌 보고야 말았다.  영화 같이 보러 간 사람이 디워 보고 싶어 하길래 봤다.  웬만하면 안 보고 싶었으나 영화 선택권을 내가 안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볼 수 밖에 없었다. 

1. B급 코메디 or 개쓰레기 

총평을 하자면, 디워를 좋게 봐주면 B급 코메디 영화이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개쓰레기다.  내가 본 영화 중에 all time worst를 뽑으라면 넣을만한 영화다.  굳이 비교 대상을 찾자면 Plan 9 from Outer Space가 동급이다. 

그러니까, 심형래는 Edward D. Wood, Jr.와 동급의 영화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는 아니다.  Edward D. Wood, Jr.는 초저예산으로 (정말 초초 저예산으로) Plan 9 from Outer Space를 만들었는데 심형래는 700억원을 들여 디워를 만들었다는 게 큰 차이다. 

Plan 9 from Outer Space는 그 뜬금없는 이야기 전개와 출연자들의 어색하다못해 어이가 없는 연기, 그리고 마지막에 관객을 민망하게 만드는 억지 피날레 씬으로 특징을 잡을 수 있는데, 그 모든 특징들이 디워에 고스란히 체현되어 있다. 

그래도 마음을 곱게 써서, 디워를 B급 코메디로 보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심형래가 디워의 관객으로 상정한 사람들이 기존 영화의 문법들에 익숙하고, 또 기존의 표준화되다시피한 연기에 익숙하며, 기존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러한 기존의 문법과 연기와 스토리텔링 방식을 모두 깨부순 파괴자적 영화를 보고 코메디임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관객들이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다 만족된다면 디워는 훌륭한 B급 코메디 영화이다.  A급 코메디가 아닌 이유는 사람을 대놓고 웃기는 영화가 아니고, 기존의 틀들을 비꼬고 냉소하는 그런 B급 정서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해야만 코메디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디워는 개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게 더 진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이건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다.  간단하게 설명가능한 것과 복잡하게 설명해야만 하는 두 가지 이론이 있을 때 간단한 이론이 맞다는 것. 

SF의 정의에서 디워가 SF가 아니고 기껏해야 환타지로 쳐줄 수 있다고 한 건 영화를 보고 나니 논의할 가치도 없는 주제였다.   SF냐 환타지냐의 문제가 아니고, 디워는 간단하게 괴수물이다.  코메디물로 치자면, 이건 의도하지 않은 블랙코메디냐 아니면 성공한 B급 코메디냐의 문제이다. 

2. 심형래의 슬랩스틱 세계관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나는 게 있었다.  스토리가 부족한 정도가 아니고, 스토리 자체를 얘기할 수 없을 정도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바 있다.  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스토리 전개를 보다가 심형래가 한 말들이 기억났다.  반지의 제왕도 이야기가 재미없고, 쥬라기 공원은 공룡들이 뛰어다니기만 하고 하는 등등 심형래가 다른 영화들에 대해 내린 평가.   그 평가들이 심형래의 진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이 있다고 사람들이 보는 이미지가 다 같지는 않다.  근시인 사람은 가까운 것은 잘 보지만 먼 것을 잘 못 본다.  색맹이나 색약은 색깔을 구별하지 못한다.  심형래는 영화나 소설을 볼 때 스토리 전개를 보지 못하는 스토리맹이나 스토리약이 아닐까?  디워를 보면 이야기 전개는 뜬금없고 어이없기까지 한데 가끔씩 한 장면씩에 굉장히 공을 들인 것 같은 흔적이 보인다.  정말 그는 스토리 전개라는 건 잘 보이지도 않고 따라서 중요하지도 않은 것이며, 그래서 짧은 장면에 집중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방식의 진행은 영구의 슬랩스틱 코메디의 연출 방식과 흡사하다.  슬랩스틱 코메디에는 스토리가 없다.  주기적으로 튀어나오는 슬랩스틱이 웃음의 요소이다. 

영화 중간중간에도 심형래식 슬랩스틱이 나오고 그것 때문에 이게 B급 코메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되지만 심형래는 끝까지 진지하다.  그저 심형래는 슬랩스틱이 너무나 몸에 배어서 세계관 자체도 슬랩스틱이 되어버리고 영화를 만들 때도 슬랩스틱이 본능처럼 나오는 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진지하게 만든 영화 여기저기에 슬랩스틱이 나오는 걸 볼 때는 반은 우습고 반은 어이가 없어서 웃게 되더라.

3. 컬트의 대상이며 패로디의 소재

이 영화를 디빠들이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게 된다면, Edward D. Wood, Jr.의 Plan 9 from Outer Space에 필적하는 못만든 영화에 대한 컬트가 한국에서 자생하게 될 것이다.  Ed. Wood는 살아서는 Plan 9 컬트를 누리지 못했다.  심형래는 영화 발매 하자마자 컬트가 생겼으니 이건 심형래가 Ed. Wood를 능가하는 점이다.   (컬트(cult)는 우리말로 정확하게 번역하면 ‘사이비종교‘이다.)

앞으로 기다려지는 건, 코미디언이나 쇼호스트들이 디워를 가지고 농담을 만드는 거다.  디워에서 농담 만들 거리는 꽤 많아서 아마 한 달 정도는 디워로 우려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패러디 영화의 소재로 쓰일 수 있을 거다.  예를 들면, ‘무서운 영화’ 시리즈에 디워를 이용할 수도 있을 듯.  하지만 그 전에 디워가 미국에서 성공해야 한다.  ‘무서운 영화’ 시리즈는 성공한 영화만 패러디하기 때문이다.

또다른 가능성은 미국 케이블 채널인 Sci-fi TV의 토요일 오전 프로그램인 Mystery Science Theater의 제작에 디워가 이용되는 것이다.  Mystery Science Theatre는 내가 좋아했던 프로그램인데, 못만든 영화들을 계속 보여줘서 죄수들이 재미없어서 혹은 괴로워서 죽도록 하는 감옥이 배경이다.  단 3명(로봇도 사람이라면)만이 살아남는데, 이들은 어떤 영화를 보여줘도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영화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긴다.  그 감옥에서 틀어주는 영화들은 어쩌면 모두들 그리 못만들었는지.  하지만 그 3명의 죄수들이 농담 따먹는 것을 들으면서 영화를 보면 그런 영화들도 훌륭한 코메디 소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워도 언젠가는 토요일 아침의 Mystery Science Theatre에서 훌륭한 오락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 의도하지 않은 코메디도 재미있다

사실 난 Plan 9 from Outer Space를 좋아한다.  그리고 죠니 뎁이 주연한 Edward D. Wood, Jr.의 전기 영화 Ed Wood도 좋아한다.  영화 Ed Wood는 감동적이라서 좋아하고, Plan 9 from Outer Space는 격식을 파괴한 영화라서 재미있어서 좋아한다.

디워를 보고 나서 좋았던 건, 같이 영화를 본 사람하고 디워의 어이없어서 웃긴 장면들을 같이 짚어가면서 같이 웃을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어주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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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9, 2007 at 2:5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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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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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 보낸 글은 달군님의 포스트입니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 (First Amendment)는 여기저기서 하도 많이 이름이 불리는 놈인데, 이놈이 미국 사회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미국 사회에 좀 살아보거나 미국법을 좀 공부해보거나 해야 한다.  왜냐하면, 수정헌법 1조는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법이나 조례를 제정하는 데 기본적인 요구조건이기 때문에 살면서 혹은 공부하면서 법들을 들여다보면 수정헌법 1조의 향기가 나는 장치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때문이다.  연방법 뿐만 아니라 주법, 조례, 규칙과 학교 및 사기업의 코드 등에 여기저기..

음란표현물의 문제, 시위와 집회의 자유 문제, 학교 교칙에서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제한 문제, 등등 살다 보면 엄청 많은 문제들이 표현의 자유와 관련이 있다.  근래 들어서는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가 중요해진다.  이런 많은 이슈들에서 미국과 한국의 법은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면서 게시물을 삭제할 것을 서비스제공자(네이버 등)에 요구하면 서비스제공자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Communications Decency Act of 1996가 온라인서비스제공자들의 책임에 관해 규정하고 있고, 이 법이 주법이 개입할 소지를 제거했기(preempt)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법은 CDA가 유일한 법이다.  이 법의 Section 230(c)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동법상의 ‘publisher’나 ’speaker’가 아니라고 명확히 함으로써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을 최소화했다.

그 의미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를 보호하는 데 있기보다, 온라인서비스제공자들을 사용자들의 표현물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면 전반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그 반대방향으로 온라인서비스제공자들의 책임을 최소화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 

Section 230(c) resolved the debate about who is or is not a “distributor” or “publisher” in cyberspace. See, e.g., Stratton Oakmont, 23 Media L. Rep. at 1794 (holding that online service providers can be held to be “publishers” of third party comments); Cubby, 776 F. Supp. at 140 (holding that CompuServe was a distributor, not a publisher, because it had no “opportunity to review” content before it was made available to subscribers, and “no more editorial control … than [a] public library, bookstore or newsstand”). It reflects “the policy of the United States . . . to preserve the vibrantand competitive free market that presently exists for the Internet and other interactive computer services, unfettered by Federal or State regulation.” § 230(b)(2).  http://ilt.eff.org/index.php/Defamation_in_Cyberspace

미국 법원은 누구나 자유롭게 표현해서 시끌벅적하게 만들면 진실을 가리기도 더 쉬워지고 사회적 정의를 이루기도 더 쉬워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도 동의한다.

반면 우리법은 혹여나 사람들이 마구 떠들게 놔두면 이런저런 명예훼손이 발생할 소지가 있으므로 법원으로 사람들이 가기 전에 행정부 차원에서 적절하게 입막음을 해서 차분하고 분쟁이 적은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spirit이 섞여 있다.  이런 법체계는 예전에 국회의원들의 구린 데가 폭로되기 시작하면서 국회의원들이 곤란해졌던 90년대 중후반 때 만들어진 걸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이런 spirit을 가진 법들의 결과는 이렇다.  대기업 욕하면 바로바로 게시물 차단된다.  사이비종교 욕하면 바로바로 게시물 차단된다.  국회의원 욕하면 바로바로 차단된다.  이들의 특징은 언론이나 인터넷을 모니터하고 마음에 안 드는 표현물이 있으면 인터넷서비스업체게 항의할 자원과 인력이 있다는 점이다. 

좀 삐딱한 글 올렸다가 게시물 차단당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신속한지. 

내가 워드프레스를 쓰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는, 워드프레스는 미국회사이기 때문에 그나마 좀 낫기 때문이다.  여기는 바로바로 게시물을 내리지는 않는다.  내 표현의 자유는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그나마 더 잘 보호된다. 

Written by 잠수

August 16, 2007 at 11:2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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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중국으로 올라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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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태풍이 여러 개 발생했는데, 우리나라에는 그 소식이 별로 전해지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를 지나가지 않고 중국으로 직진해서 올라가서 소멸해 버렸으니까. 

예전의 통계들을 내가 안 갖고 있어서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는데, 예전에는 10개가 생기면 3~4개는 우리나라나 일본을 걸쳐서 지나갔던 것 같다.  올해는 제8호 태풍 Sepat까지 오는데, 그 중에 딱 1개가 대한해협을 지나서 일본열도를 쓸었다. 

재미있는 건, 최근의 제6호 파북(Pabuk), 제7호 우딥(Wutip), 제8호 스팟(Sepat)의 진로는 중국 대륙으로 직선 경로로 북상해서 소멸했다는 점이다.  이 중에 제6호 파북과 제7호 우딥은 중심기압이 990 헥토파스칼을 넘는 약한 태풍이었고, 제8호 스팟은 중심기압이 910~960의 강한 태풍이다. 

약한 태풍은 중국 대륙으로 북상하거나 혹은 홍콩 마카우 등으로 좌회전 하는 경우가 흔하니까 별로 이상한 건 아니다.  근데 제8호 태풍이 중간에 꺾어지지 않고 중국대륙으로 직진 북상하는 건 좀 이상하다.   내가 태풍 전문가가 아니므로 더 이상 쓰면 소설 같아질 거 같아서 여기서 대략 마무리 하고. 

음, 난 태풍이나 집중 호우 같은 걸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건, 태풍이 몰아치거나 비가 미친 듯이 내리는 그런 날씨에 집에 있거나 밖으로 쏘다니거나 하는 걸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근데 이번 여름에는 제대로 된 태풍 하나 아직 안 왔다.  

Written by 잠수

August 16, 2007 at 1:3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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