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2007
아이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
출산을 앞둔 예비엄마들한테 설문조사를 해보면 좋겠다. “태어날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인지? 나는 주변에 예비엄마들한테 건너들은 게 하나 있다.
미국시민권
미국시민권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은 원정출산 서비스 업체에서 마케팅용으로 만들어놓은 문구라고 생각한다. 그걸 마치 자기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양 왱알앵알 대는 예비엄마들은 무뇌아인가? 그건 아니다. 확신범들에겐 명분을 주는 복음이며, 불확신범에게는 확신을 주는 믿음의 말이며, 주판알을 튕겨보니 이게 수지가 맞는 일인지 잘 모르겠는 사람들에게는 지름신이 강림하도록 하는 주문이다.
정의하기 어려운 ‘된장녀’라는 말을 정의할 때 꼭 들어가야 하는 요소는 ‘마케팅용 문장 따라하기’이다. 광고에 낚이는 거랑도 비슷하다. 광고를 책보다 더 열심히 보고, 책보다 더 확실하게 믿고, 그대로 따라하는 그런 행동이 된장녀를 규정한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뉴요커가 되는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커피샵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뉴요커스럽다는 이미지가 광고로 이미 주입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마케팅이란 게 물건/서비스를 파는 사람들이 전달하고 싶어하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면도 있지만, 소비자의 숨겨진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면도 있다. “숨겨져 있던 나를 찾았어요”라는 건데, 소비자가 스스로 숨겨져 있던 자기를 찾은 게 아니고 마케터들이 대신 찾아준 거다. 소비자는 그게 자기가 찾은 거라고 믿는다.
예비엄마들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던 자기는 이렇게 말한다.
“태어날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미국 시민권이예요.”
왱알앵알 왱알앵알.
그렇게 자기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는 간증의 시간도 가진다. 산후조리원에서. 그리고 나중엔 스타벅스에서.
아이가 좀더 크면 새로운 선물을 준비한다. 그게 뭘까? 바로 이것.
멋진데. 좀 있으면 성형한 미국 시민권자가 상류층을 구성하고 동남아 이민자가 하류층을 구성하는 사회가 되겠다.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 전수일
독립영화는 대부분 저예산 영화이다. 그래서 저렴한 배우를 쓰고 저렴한 장비를 쓰고 저렴하게 촬영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면 독립영화속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하고, 대사가 문어체고, 이야기가 지리하게 늘어지는 게 미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십몇년 동안 독립영화계에서 영화 만들었다고 소위 원로급 대우를 받으면서 꼰대짓 하는 게 곱게 보아져서도 안 된다.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 이 영화, 사람 생각 많이 하게 만들더군. 심지어 내가 낸 7,000원의 입장료가 한국 독립영화의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인가 하는 가치 판단까지 하도록 만들더라구.
1. ‘그녀에게 묘하게 끌리게 되는데 …”
영화를 보기 전에 받은 전수일 감독 특별전 감상노트에는 “개늑시”에 대해 이렇게 쓴다.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기 위해 두려운 여행을 계속하는 그녀에게 묘하게 끌리게 되는데…”
영화를 보면서 내가 든 생각은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끌리는 게 참 짜증난다’였다. 걍 개가 발정난 것보다 더 고차원일 게 없는 순수한 욕정일 뿐인 것을 ”감상노트”를 쓴 사람은 ‘묘하게 끌린다’라고 해주는 건 서로서로 빨아주는 동업자 정신인가?
2. 맥없고 부자연스러운 주인공들
남자 주인공도 그렇고 여자 주인공도 그렇고 조연들도 그렇고 엑스트라도 그렇고 모두들 연기가 축 늘어져서 힘들이 없다. 내가 독립영화를 뜨문뜨문 보아온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독립영화 연기자들은 맥아리가 없는 연기를 한다. 감독이나 배우들은 그런 연기가 삶의 깊이를 드러내는 연기라고 DDR 치는 것 같은데, 관객의 입장인 나는 그런 연기가 참 짜증난다. 삶이 깊이가 있으려면 정사신도 맥아리 없이 연기 하든가. 그건 아니고 정사신은 나름 열심히 하대.
그리고 속초의 할머니들은 어찌 그리 잘 배우시고 점잖으신지 대사를 또박또박 책을 읽으시더만. 김희선 뺨치는 연기를 지도한 감독에게 박수를. 사람이 나이가 들면 책 읽듯이 대사하라 그래도 그리 하기가 힘들 것 같은데, 속초 토박이 할머니들이 책읽기 신공을 펼치도록 한 감독의 연출 공력에 찬사를!
3. 이런 건 다큐멘타리로 찍으시죠
영화 다 보고 나서 한 줄로 요약하려니, “아, 그래서 사북은 그렇게 없어져 가는구만요.”이다. 사라져 가는 폐광촌에 대한 이야기는 다큐멘타리로 찍는 게 더 쟝르 특성이 맞거든요. 사는 게 갑갑한 패배자 감독 얘기를 찍을라면 극영화 쟝르에 맞게 찍는 게 맞는 거고, 폐광촌 사북이 카지노에 먹혀서 없어지는 게 안타까우면 그걸 다큐멘타리로 만들어서 보존하는 게 맞는 거거든요. 처음에는 패배자 감독 얘기를 찍을라나보다 했더니, 십몇년 지나서 느닷없이 잃어버린 동생 찾는 여자 얘기로 가는가 싶더니, 주인공인 패배자 감독이 발정나서 껄떡대는 이야기로 가더니, 사북 다큐멘터리로 빠지는 이 팔색조 쟝르의 영화를 뭐라고 정의내리기도 힘들다.
4. 매너리즘에 빠진 꼰대짓은 고만
제일 맘에 안 들었던 건, 십몇년은 된 거 같은 영화문법(??)을 그대로 쓰면서 십몇년 된 것 같은 연기 연출을 하고 또 십몇년 된 것 같은 스토리 전개 기법을 쓰면서 영화를 만들어놓고는 서로들 아트무비라고 빨아주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걍 90년대 초반에 나왔으면 좀 먹어줬을 영화를 2007년에 보고 난 불쾌감이었다.
대전 구시가지의 발견과 재발견
발견이 있은 후에야 재발견이 있는 것이다. 내가 대전 구시가지를 발견한 적이 없으니 재발견한 적도 없다. 그래서 거창하게 대전 구시가지의 발견이라 하겠다.
첨에 대전으로 이사 왔을 때는 둔산동 쪽의 모던한 모습에 마음의 위안이 되곤 했다. 그래도 내가 적응하기는 쉽겠다는 생각에서였다. 1년이 넘게 지난 지금 둔산동은 마음 편하게 돌아다니고 있고 많은 생활 편의시설들이 있으나 딱 거기까지다. 시가지에 재미가 없다. 걍 소비하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쉽게 흥미가 떨어지는 곳이다.
지난 토요일에 독립영화를 보러 구시가지를 가게 되면서 처음으로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구시가지를 돌아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곳이더군. 둔산동 같은 깔끔함이나 현대적인 거리는 절대 아니고, 경제활동의 활기를 둔산동 쪽의 신시가지에 점점 뺏겨가고 있는 곳이지만 오래된 곳은 그 나름의 문화라 할 것은 있는 법이다.
‘즉석 왕만두랑 찐빵 타운’이라는 절대 상표등록될 수 없으며 상호등록도 잘 안 될 거 같은 무미건조한 이름을 가진 이 가게가 실상은 대전에서 제일 맛있는 만두와 찐빵을 파는 가게이다. 왕만두 6개에 2000원, 찐빵 6개에 2000원. 가격이 아주 저렴하면서도 맛이 기가 막히다. 고향의 화교 중국집 만두의 맛이랄까? 여기서 만두를 먹으면 어릴 적 고향의 만두집이 생각난다. 화교 부부가 하던 만두집이었는데, 아주 가게가 작아서 손님이 앉을 의자는 2개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들 포장을 해서 집에 가서 먹었다. 그 집에서 파는 군만두는 맛이 기막혔다.
나는 중학교2학년 때 도시로 이사가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그런 맛의 만두를 먹어보지 못했다. 대학 들어가고 나서 고향에 다시 가보니 그 화교 부부의 자식들이 아주 큰 만두 식당을 차려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즉석 왕만두랑 찐빵 타운’의 만두는 그 화교 중국집 만두의 맛과 비슷하다. 저기서 군만두도 만들었음 얼마나 좋을까? 만두의 피는 무릇 이스트로 부풀린 것을 써야 한다. 부풀린 만두피의 냄새와 만두소의 맛이 결합되어서 식욕을 돋구는 만두가 만들어지는 거다. 요즘 흔히 마트나 분식집에서 구할 수 있는 만두는 만두맛이 50%도 내지 못한 것이다.
또 이야기가 사천으로 샜는데, 대전의 구시가지는 둔산동 신시가지가 가지지 못한 매력이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려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대전 아트시네마에 가게 되면 구시가지도 한번씩 둘러보고 와야겠다.
대전 아트시네마에서 개늑시를 보다
지난 토요일(11월24일) 대전 아트시네마에 갔다. 여기는 대전의 구시가지 중심지인 대전역 쪽에 있다. 대전역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2번 출구(중앙로 방면)로 나가서 약 100미터 정도 걸어가면 나온다. 가장 가까운 랜드마크는 대훈서적이다. 간판은 겸손한 크기로 만들어져 있어서 눈에 확 띄지는 않으나 여기를 찾으러 가는 사람에겐 찾기 아주 어려운 건 아니다.
대전 아트시네마는 예전에 동보극장이라 불리던 고풍스런 장소를 개조한 곳이다. 나야 대전 토박이가 아니니 동보극장이 어떤 곳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위치로 보아서는 대전 유흥의 중심지에 위치한 꽤 알려진 극장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건물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지 못하고 작은 건물의 3층만을 차지하는 소규모 극장이다.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면 그제서야 ‘아트’스런 간판과 영화 포스터가 극장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아주아주 소박한 매표소는 영화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창구인데, 그나마 표를 파는 곳은 아니다. 사람이 많이 안 오니까 매표소에 사람을 따로 하나 앉혀 놓을 이유가 없다. 표는 극장 안의 매점에서 판다. 매점에서는 좋은 커피 냄새가 난다. 독립영화 컬렉션을 대여해주기도 하는 다용도의 매점이다.
영화관의 스크린은 단 하나이다. 70년대 80년대에 영화관에 가지 않으면 새 영화를 보기 힘들던 시절에는 스크린 하나 짜리 영화관도 나름 인기 있는 장소이었을 거다.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 아담한 사이즈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헐리우드 갑부들이 개인 저택에 갖추고 있는 개인용 극장보다 작아보이는 사이즈이다. 한 줄에 10명이 앉을 수 있고, 대략 20줄이 되려나 하니 상영관에 앉을 수 있는 의자는 200개 정도이다. 옛날 영화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 영화관에서 오후 3시에 시작한 전수일 감독의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을 보았다. 관객은 딱 4명.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홀(^^)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홀을 예술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쓰고 있는 듯.
영화 시작하기 전에 기다릴 때 클래식 음악이 들려왔는데 그 소리가 아주 좋아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 보았는데, 아주 오래된 듯한 태광 에로이카 스피커와 소니 앰프로 이루어진 음향시스템이 있었다. 대학 1학년 때 태광 에로이카의 오디오를 기숙사 방에 두고 음악을 듣던 생각이 요즘 많이 난다. 그때 스피커와 앰프는 기숙사 방에 두면 안 될 정도로 큰 것들이었다. 지금의 방도 그때 기숙사보다 조금 큰 정도이니까 그런 스피커와 앰프를 둘 수 없겠지만, 자꾸 탐이 난다.
대전역 가까이에 새로 생긴 중고 오디오샵이 있어서 잠시 들렀는데, 오래된 인켈 스피커 한 조가 1만원이었다. 7, 80년대식의 나무로 된 큰 박스에 구경이 큰 베이스 콘이 달린 그런 스타일. 게다가 예전엔 꽤 고가였을 것 같은 인켈 앰프가 6만원이었다. 까딱 하면 지를 뻔 했다. 그거 사갖고 오면 내 방에 둘 데가 없다.
사천으로 많이 샜는데, 동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 같은 3명의 타인들과 영화를 보는 것도 오랫만에 경험했다. 그리고 독립영화라는 거… 마음에 안 들면 씹어야 하는 내 성격상 함 씹어야겠는데, 독립영화 자체를 씹으면 안 되겠고 전수일의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을 함 씹어야겠다. (다음 글에서)
대전 아트 시네마
대전에는 스크린 6개가 넘는 극장이 별로 없다. 스타게이트에 있는 프리머스 영화관이 스크린 6개인 것 같고, 갤러리아 타임월드에 있는 극장이 스크린 5개인 듯. 롯데백화점에 있는 극장도 스크린 5개인 것 같다. 그래서 그 극장들에 걸리는 영화들은 거의 똑같다.
지난 주말에 백화점 가는 길에 극장을 잠시 둘러봤는데, 보고 싶은 영화가 하나도 없는 거야. 상업적 마케팅에는 알러지가 생기게 체질이 변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하고 찾아 봤더니, 대전 아트 시네마라는 곳이 있더군. (http://www.cinei.org/)
대전 아트 시네마는 대전시 동구 중동에 있다고 나오는데, 쉽게 가자면 지하철 대전역에서 내리는 게 가깝다.
내가 사는 동네와 가까운 월평동에는 선사시네마라는 조그마한 극장이 있는데, 그것도 독립영화관으로 새롭게 태어난 듯 하다.
이번 주말에는 두 극장 중에 하나, 혹은 둘 다를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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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좀더 찾아보니, 원래 선사시네마에 열었던 아트시네마가 문을 닫고 대전역 부근으로 옮겨간 듯. http://citynews.daejeon.go.kr/citizen/article.html?seq=171
커피 프린스 1호점
1. Orchards
커피 프린스 1호점을 최근에 다 봤다. 거기 나오는 커피샵이 예전에 한 번 가봤던 곳이더군. 가정집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오래된 커피샵이었다. 가구는 아주 오래되었고, 주인 아저씨는 히피스런 외모에 가게 운영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분위기였고, 라디오인지 인터넷 라디오인지에서는 정체 불명의 영어 방송이 계속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여름에 갔는데 탁자 밑에 모기들이 왜 그리 많던지.
2. 부잣집 아들
노현정 신드롬 때도 얘기하던 것인데, 요즘은 돈 많은 집 아들만 먹어주지 개천에서 용 나서 좋은 직업을 갖고 있는 남자는 안 먹어준다. 드라마를 봐도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열심히 노력해서 고시에 합격하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남자는 주인공으로는 멸종된지 오래다.
3. 신데렐라
그래도 신데렐라는 여전히 유효하다. 여자는 못 사는 집에 태어나서 학벌도 안 좋고 직업도 변변치 않아도 부잣집 아들 낚아서 한 번에 인생역전할 수 있다. 자꾸 요런 얘기를 드라마로 들려주니까 여자들이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버릴 수가 없다.
4. 바리스타
내가 커피의 세계를 잘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나한테는 바리스타 = 커피샵 알바일 따름이다. 설사 바리스타가 요리사에 맞먹는 정도의 전문적인 기술을 갖고 있다 한들 그런 바리스타를 고용할 만한 일자리가 대한민국에 몇 개나 될까? 대부분의 요리사들이 평범한 식당 주방장을 하고 있듯이 대부분의 바리스타는 커피샵 알바이다. 바리스타 할려고 이탈리아에 2년 유학 간다는 설정은 아무리 봐도 이해 안 간다. 이 드라마 보고 나서 바리스타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더 이해 안 가고.
5. 갈매기 식당
영화 ‘갈매기 식당’을 보고 나서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 3달 동안 장사 잘 안 되면서도 직원들 안 짜를 수 있는 사장은 정말 행복한 거다. 커피샵 장사가 그렇게 안 되면서도 직원들 안 짜를 수 있는 건 정말 행복한 거다. 그러니까 직원하고 사랑도 할 수 있는 거고, 해피엔딩도 있는 거고. 사회가 그렇게 변한다면 좋겠으나, 현실은 거리가 멀다.
그래서 드라마가 좋은 거다. 현실과 동떨어진 꿈을 마치 현실처럼 보여주니까.
김성모 걸푸
“만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만화를 무엇이라고 보느냐?”라는 질문을 만화작가에게 던진다면 답이 제각각 나올 것이다? “만화작가”라는 말이 대상자를 축소할 수 있으니까 “만화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자?
김성모라면 “만화는 공산품”이라는 대답을 할 것 같다?
어제와 오늘에 걸쳐 36권에 달하는 김성모의 “걸푸”를 읽었다?
1. “걸푸”의 첫번째 특징은 작명 센스이다?
‘걸푸’는 주인공 이름이다? 이름을 왜 이따구로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짐작하자면 ‘걸푸’는 걸푸렌드를 위해 목숨을 거는 사나이이기 때문이다?
‘걸푸’가 구사하는 권법은 ‘렉권’이다? ‘렉권’은 세계 최강의 권법이다? ‘렉’이란 글자는 키보드에서 가장 치기 쉬운 글자이다? 그래서 렉권이다? 세계를 양분해서 노나먹는 두 세력은 ‘X 정부’와 ‘Z 정부’이다? X, Y 정부가 아니고 X, Z 정부인 것은 수학 시간에 3차원 좌표축을 좋아해서?
‘걸푸’의 스승은 ‘가리’이다? ‘가리’ 역시 키보드에서 치기 아주 편한 이름이다?
2. ‘걸푸’의 두번째 특징은 적절한 불량률이다?
개별 그림의 완성도도 상당히 낮은 편일 뿐만 아니라, 앞 컷과 뒤컷이 맞지 않는 장면도 많다.
대놓고 틀리는 오탈자는 무수히 많고, 문법이 틀리는 곳도 많다?
엄청난 ‘악력’이어야겠지? 하지만 ‘압력’이라고 해도 다 말이 통한다? 왜냐 하면 김성모 만화니까?
3. 세번째 특징은 적절한 베끼기이다?
드래곤볼의 초사이언 모드로 변한 걸푸.
위는 북두신권의 대사를 약간 바꾼 것. “넌 이미 죽어있다?”
이건 슬램덩크의 채소연?
4. 그래도 김성모를 미워할 수는 없다?
만화 만드는 사람한테 작가 정신을 기대하는 사람은 김성모의 만화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의 눈높이를 맞춰줄 수 있는 만화를 김성모는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 하여 김성모를 쓰레기 만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폄하해버리는 것도 너무 성급하다.
김성모의 만화는 대본소용 만화로는 적절한 정도의 품질과 적절한 이야기 전개 템포와 적절한 분량으로 만들어진다. 김성모의 만화는 대본소에 공급할 만화를 만들기 위해 최적으로 세팅된 공장에서 생산되는 만화이다. 그래서 10% 정도의 용인할 만한 불량률로 생산된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불량률이 제품 자체를 쓰지 못하게 할 정도의 불량이거나 혹은 심각한 위험을 야기할 불량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불량은 오히려 애교가 아닌가? 마치 1500원 짜리 짜장면의 면발이 몇 가닥 떡이 져서 나와도 그냥 먹어줄 수 있는 것 같이.
김성모 만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예술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 위쪽에 있지 않고 아래쪽의 다른 차원이다. 애시당초 예술적인 만화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만화가 돈을 벌기 위한 공산품이면서 동시에 문하생들을 연습시키기 위한 실전 훈련용인 것 같다. 새로운 문하생들을 받아들여서 김성모 시스템에 빠른 시간에 적응시키면서 동시에 노동력을 낭비하지 않고 계속 만화를 생산해 내는 효율적인 공장을 김성모가 만들어낸 것이다.
5. 김대중 정부 시절 만화 대본소 ‘사태’
김성모의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달리 말하면 만화계에서 김성모식 비즈니스 모델만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은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에 저작권법상 ‘대여권’의 입법 여부를 놓고 도서 대여점 단체들과의 힘싸움에서 정부가 밀리면서 시작되었다. 도서의 대여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출판시장의 전체 파이를 줄이면서 저자들에게 가야할 이익의 일부를 도서대여점에 이전시키는 정책이었다. 정부가 밀린 것은 IMF위기 이후 생계형 도서대여점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이들을 문닫게 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암튼 구구절절이야 대부분 알고들 있는 내용이고.
요즘 웹에서 만화를 보여주는 방식이 만화 보여주기의 주류로 등장하는 듯 한데, 이거는 결국 광고 모델, 포탈에 기생 혹은 2차적인 출판을 통한 인세 수입이 없이는 저자들에게 수익이 발생할 수 없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결국 전국 4000여개밖에(혹은 그 이하? 요즘 만화방도 계속 문을 닫는 추세니까) 안 되는 대본소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종이만화를 만드는 제작 공장이 생존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검증되는 일이 김성모 공장을 통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성모 만화를 낄낄 대며 보는 것에 아무런 불쾌감이 없다. B급 혹은 C급 만화도 나름의 즐거움을 주니까.
6. 해체적 텍스트로서의 “걸푸”
애시당초 드래곤볼류의 권법 만화지만 그나마라도 진지하게 보자면 황당하면서 짜증이 날수도 있는 “걸푸”. 하지만, 만화에서 이격되어 “걸푸”를 포스트모던한 해체적 텍스트로 보는 방법도 있다. 나름 재미있다. 이건 작가주의적 만화에 대한 비웃음이다. 마치 ‘팔아봐야 돈 얼마 되지도 않는 만화 열심히 그려서 뭐합니까? 빨리빨리 만들어서 회전수 올려야죠’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읽는 사람도 부담없이 책장을 넘긴다. 40단 콤보킥이 40페이지에 걸쳐서 나오는 것도 페이지 넘기는 데에 도움이 된다.
신희승
한동안 안 보던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보다가 신희승이란 선수를 알게 됐다. 소위 ‘포스트 임요환’이니 ‘전략가’이니 하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선수이다. 김택용 선수의 게임을 찾아서 보려고 2007 온게임넷 스타리그 하반기 VOD에서 신희승 對 김택용 전을 보게 됐는데, 그 이후로 김택용 선수 게임보다 신희승 선수 게임을 챙겨보게 됐다.
눈 밑에 다크서클처럼 까만 게 보이는 게 너무 연습을 많이 해서인지 아니면 밤에 잠을 잘 안 자고 딴 짓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덕에 다소 나이 들어보이는 모습인데 아직 19살이다.
신희승의 경기는 재미있다.
최연성 이후로 매크로 같은 손놀림으로 기계처럼 플레이하는 머신들의 시대가 몇년 지속되면서 스타크래프트판이 좀 재미없게 진행되었다. 신예들의 능력들은 놀라웠지만, 대부분 멀티태스킹 능력과 손놀림이 극단까지 개발된 게임 기계들이었고 대부분의 경기가 정확한 빌드 오더에 따르면서 상대와 수읽기를 하면서 중후반을 도모하는 운영형들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기가 20분을 넘어간다. 재미없다.
그런 트렌드에 신선한 물줄기로 나타난 게 신희승이다. 매 경기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작전계획을 가지고 나온다. 이번엔 어떤 작전일까? 하는 궁금함 때문에 경기 보는 것이 재미있다. 소위 전략형이기 때문에 경기도 다이나믹하게 진행된다. 초반 전략이 먹히지 않았을 때는 양측이 흐트러진 빌드 오더 때문에 운영형 경기로 진행 되는 데에 시간이 걸리고 그 동안에 역동적인 공방이 오가기 때문이다.
이번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에 신희승이 이름을 올렸는데, 강호들 사이에서 어떤 활약을 보일지 기대 되기도 하고 결승전에서 멋진 승부를 보여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러면 4강에서도 경기를 하게 되고, 결국 더 많은 경기를 하게 될테니까.
탄트라의 시대 막 내려
낚시에 대한 사과
낚시 1. ‘탄트라’가 남녀간의 성희의 예술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클릭하신 분들께 사과 합니다.
낚시 2. 한빛소프트의 온라인 게임 탄트라가 드디어 서버 내리는구나라고 생각하고 클릭하신 분들께 사과합니다.
낚시 1에 걸린 분은 여기로 가시는 걸 추천하고, 낚시 2에 걸린 분은 여기로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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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제목과는 정반대로 탄트라는 남녀간의 성희의 예술이든 명상의 비전이든간에 많은 사람들이 연구 및 연습하고 있고, 한빛소프트 탄트라는 새로운 게임들이 계속 쏟아져나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골수 플레이어들을 확보하고 있다.
진짜로 하려던 말은 내가 탄트라 게임을 접었다는 것.
70레벨 격간과 65렙 방나, 그리고 59렙 법사 캐릭이 있던 계정을 지운 후 55렙 힐러와 51렙 공나가 있던 계정을 지움으로써 탄트라 계정이 모두 없어졌다.
요즘엔 열심히 하지도 않고, 렙업의 열정도 사라진 터라 (라고 말하면 나를 아는 타니아들은 웃을 거다. 2년 넘게 플레이한 격간이 70렙 밖에 안 되니까) 그냥 계정을 놔두고 어쩌다 한번씩 플레이하더라도 생활에 큰 데미지는 안 들어갈 거 같지만 이쯤에서 개인사를 한 번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접었다.
탄트라는 내가 몸 안 좋아서 집에서 요양하던 때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던 게임이다. 왜 다른 게임이 아니고 하필 아무도 모르는 듣보잡 탄트라냐? 1. 공짜 게임이라서. 2. 이아고님이 플레이하던 게임이라 따라서 했다. (이아고님은 아직 탄트라 중독이다. 난 아니다.)
몸 안 좋아서 집에서 쉬던 때의 내 심리상태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병을 앓고 나서 내가 달라진 점이라면 ‘사람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지금도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생각한다. 이렇게 살다가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거라고. 꼭 같은 병이 아니더라도 다른 이유에서라도.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괜한 욕심을 부리지도 않게 되고. (욕심은 버렸지만 아직 폭탄은 사랑하지 못하겠다.)
탄트라를 드문드문 하다가 이번 봄과 여름에 조금 열심히 했는데, 그 때 개인사가 있었다. 가치 판단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일이 꼭 일어났어야만 했나 하는 의문은 있지만, 이제는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인도에서 사온 사리(인도 여성 의상)와 스카프를 장롱에 고이 모시면서 탄트라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다. 계정을 지운 것은 그것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제례에 형식이 따르는 것은 일리가 있다. 마음과 행동은 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지난 2년을 ‘탄트라의 시대’라고 명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후세 사가들이 판단할 일이지만, 지난 2년간 나와 일관되게 함께 있었던 몇 개 안 되는 물건들 중에 하나가 탄트라인 것은 사실이다. 그 시대가 11월 12일 막 내렸다.
시디가 안 팔린다지만
CD의 시대가 去했다는 건 논쟁을 벌일 거리도 못된다. 지금은 mp3의 시대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설사 지금이 mp3의 시대라 하더라도 mp3의 시대는 벌써 저물기 시작했다. mp3를 다운받아 컴퓨터나 mp3 플레이어로 듣는 방식은 음악산업을 10년도 지배하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여기에 2만원 걸 수 있다.
CD가 죽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나의 경험담. 아마존에서 Wynton Marsalis의 Hothouse Flowers 앨범을 사려고 검색을 했다. Hothouse Flowers는 Wynton Marsalis를 세계에 알린 앨범이며 그해의 앨범상 같은 걸 받은 앨범이다. 그런데 그 앨범을 아마존에서 검색하면 이제 앨범이 재고로 3개 남았으니 빨리 주문하라는 안내가 나온다. Wynton Marsalis의 최고 히트 앨범도 이제는 더 이상 프린트가 안 되고 재고만 처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 거의 죽은 CD와 좀 있으면 죽게 될 mp3 중에 뭘 선택하겠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CD를 선택한다. 내가 요즘 들어 옛날보다 CD를 더 많이 사는데, 그 이유는 일단 경제적인 여유가 조금 생긴 때문이며, 또 하나는 mp3의 음질에 만족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달 초에 중국 북경에 출장을 가게 될 예정이다. 북경은 세 번째가 된다. 저번에 출장 갔을 때 CD와 음악 및 다큐멘터리 DVD를 30장 넘게 사왔다. 이 CD와 DVD는 서점에서 산 것들이라 정품이라 믿고 있다. 정품이라도 가격은 개당 2000원 안팎이었다. 그때는 돈도 좀 걱정하고 가방도 충분히 크지 않아서 많이 사오지 않았다. 이번에 가면 좀더 많이 사올 예정이다. 중국 환율 절상 압력이 점점 커지고 있고 앞으로 세계 경제가 어떻게 요동칠지 모르는 상황이라 이번이 내가 싼 값에 대량의 CD를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다.
DVD는 영상을 보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큰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안 보게 된다. 홈씨어터 시스템이 갖춰진 집에서라면 종종 틀어놓을 것 같은데, 내 방은 그렇지 않아서이다. 컴퓨터로 틀자니… 서브 노트북으로 DVD를 트는 것은 너무나 번거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