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2007
축구, 황우석, 심형래, 이명박
올해 가을, 디워 광풍이 몰아쳤을 때, 황우석 사건과 디워가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지적한 사람들이 많았다. 스포츠의 축구, 과학의 황우석, 영화의 심형래가 도래했으니 그 다음은 무엇이 될까 궁금했다. 그게 정치의 이명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현실은 상상보다 재미있을 때가 있다.
스포츠의 축구는 이제 김연아와 박태환으로 이어진다. 스포츠 업계에서 민족주의는 역사가 오래 됐다. 스포츠 종목별 협회의 밥그릇은 민족주의로 제련된 철밥통이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러할 것이다. 종목은 바뀌겠지.
과학의 황우석은 아직 대체할 만한 인물이 나타나질 않는다. 자기 연구성과가 돈이 된다는 걸 과장되게 보여주는 또다른 허풍선이가 나타나기 전에는 과학 민족주의는 다시 불붙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황우석 연구 자체에 열광한 것이 아니고,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그게 300조원의 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환상에 열광한 것이니까. 마약은 적응되니까 다음 번에는 더 쎈 dose가 필요하다.
영화의 심형래… 당분간 누가 심형래만큼 구라를 칠 수 있을까? 하지만 심형래가 꾸준히 C급 영상물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있다. 모 블로그를 보니 심형래가 1년에 1편씩 꾸준히 영화를 만든다면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하던데, 그건 의미가 있는 말이다. C급 영상물을 꾸준히 만들어서 20개 정도의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진다면 나도 심형래를 인정할 의향이 있다. 나는 확신범을 미워하지 않는다.
정치의 이명박이 어떻게 될지는 향후 5년을 지켜봐야겠지. 인수위 조직된지 1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포퓰리즘 정책들이 여러 개 나오고 있다. 이명박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추진력”이 포퓰리즘 정책들을 강력하게 밀고 나갈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보고 싶기도 하다. 내년 한 해는 다이내믹할 듯.
스포츠, 과학, 영화, 정치를 잇는 다음 장르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On Writing – Stephen King
건축에 비교해서 내가 하는 일의 성질을 정의하자면, 커다란 강당을 짓는 일에서 기둥을 세우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수십 개의 기둥 중에 하나를 세우는 일인데, 그것도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랑 같이 세우는 일이다. 나중에 만들어질 강당의 모양이 어떻게 될지 대략 짐작은 하지만, 내가 기둥을 원래 설계도와 약간 다르게 만든다 해서 강당의 모양이 심히 달라질 것 같지는 않은 그런 기둥이다.
작가의 일이란 커다란 강당을 혼자의 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짓는 일이다. 지반 다지기부터 시작해서 주춧돌 놓기, 기둥 세우기, 지붕 올리기까지. 그 모든 것들은 작가의 상상의 세계 속에서 설계되며, 작가의 언어를 통해 완성된다.
하나의 건축물을 혼자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작가라는 직업이 주는 만족감의 원천이다. 다른 직업에서는 흔히 느낄 수 없는 그런 만족감. 그래서 많은 이들은 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그들 중 극소수만이 글을 꾸준히 쓰게 된다. 그리고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 중 극소수만이 글을 쓰는 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언감생심 작가가 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나조차도 SF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해왔다.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소설로 만들어보려고 하지만 막상 소설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짜나가야 하는가의 문제. 그 이야기를 어떤 구조로 독자들에게 들려줄 것인가의 문제. 문체는? 시점은? 묘사는? 비유는? 이런 끊이지 않는 질문들을 고민하다 보면 정작 이야기는 써내려가지 못하게 된다.
그럴 때는 Stephen King의 ‘On Writing’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소설 쓰기에 대해 지금까지 읽어본 책 중 가장 실용적인 가이드이면서 독자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책이다. 우리말로는 ‘유혹하는 글쓰기’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Stephen King은 유혹하는 글쓰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는 않다. 이 책 어디에도 ‘유혹’과 비슷한 단어는 없다. 한국에서 책이 팔리려면 그 정도의 낚시질은 해야 하는 것은 이해한다.
이 책은 분명히 작가 지망생을 독자로 상정하고 있다. 나처럼 제대로 된 소설 한 편 써보지는 않았지만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진지하게 부지런히 써야 한다는 교훈을 주면서 동시에 어떻게 소설 쓰기에 접근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이미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더 잘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쓰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권할 만한 책이다.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소설쓰기에 대한 책이다.
Man from Earth
http://alphageek.pe.kr/archives/336 에서 소개된 Man From Earth를 봤다. 올해 본 Sci-Fi 영화 중에서 최고 자리에 올리겠다. 300억의 돈이라면 이런 영화 3,000편은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저예산으로 만들 수 있는 영화지만, 영화의 재미는 대략 100배 정도 뛰어나다. 그러니까 비용 대비 효과로 따지면 300억 들인 이무기 영화보다 무력 30만배나 뛰어난 영화다.
단, 교조적 기독교인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다.
대선後
1. 민노당은 NL/PD가 갈라서야
운동권이라는 좁은 물에서 정파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 제도권으로 들어와서도 습관적인 정파간 정치를 하고 있다. 권영길이라니!!!
정파간 다툼을 할 정치력은 있어도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정치적 감각은 없는 집단인가? 결국 해법은 NL과 PD가 갈라서는 것이다. PD는 NL이 없을 경우 당이 축소될 것을 두려워하는 모양인데, 파이는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다가 이제는 더 축소될 것도 없지 않나? 3% 미만을 득표한 정당에 기득권이 어디 있으며 세력이 어디 있으며 뭐가 남아있나? 자꾸 작은 걸 붙잡고 아쉬워하고 놓기 힘들어하는 게 너희들의 아둔함이다.
2. 사회당은 활동력 필요
나쁘게 말하면 허경영에 0.1% 뒤진 한심한 득표율이긴 하지만 사회당은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좋게 말하면 이인제와 0.2% 차이로 경합했으니까.
열린우리당이 좌파고 노무현이 좌파라는 부당한 딱지 붙이기가 참여정부 내내 수구언론들의 무기였는데, 노무현은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것인지 아니면 속수무책으로 당한 건지 속내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은 좌파가 아니다. 참여정부가 밀어붙인 좌파 정책이 뭐가 있길래?
좌파라고 부를 만한 정당은 민노당과 사회당인데, 이들 두 정당(그리고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다른 좌파 정당)의 외연이 확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권에 먼저 진입한 좌파 정당이 꾸준히 외연을 확장했어야 했는데, 민노당의 대실패로 좌파 정당의 가능성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민노당은 정말 머리가 나쁜 인간들이 모인 곳인가?
3. 문국현이 정동영과 단일화하지 않은 것은 합리적 판단
민노당이 NL과 PD의 정파 싸움으로 3%이하 정당으로 전락한 예를 보면 알겠지만, 정동영과 문국현은 단일화하면 안 된다. 그것은 문국현에게 손해다. 정동영은 대선 이전에 이미 정치적 생명이 끝났다. 그런 시체와 단일화 하면서 색깔도 선명하지 않으면서 참여정부의 정치적 부채를 끌어안는다는 건 바보짓이다.
6%가 안 되는 낮은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문국현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고 계속 뛰어야 한다. 그 동안에 자기와 노선이 다른 사람을 세불리기 목적으로 합쳐서는 안 된다.
와인 열풍
요근래에 소개팅 혹은 그와 유사한 만남을 가진 여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들은 질문이 있다.
“와인 좋아하세요?”
2~3년 전에는 다른 질문을 받았다.
“사진 좋아하세요?”
채소연이 강백호에게 “농구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것과 문법은 같은 문장이지만 의미는 많이 다르다. 문맥이 다르니까.
소개팅에서 ‘와인 좋아하세요?’나 ‘사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그 문맥을 떼어놓고는 큰 의미 없는 단순한 질문이 된다. 소개팅이라는 문맥에서는 단순하지 않은 질문이다.
소개팅에서 하는 일 중에 나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 안 하지만 상대로 나온 여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로 판단되는 것은 양측이 서로의 취향이나 기호가 비슷한가이다. (내가 이걸 별로 중요하게 생각 안 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거를 비슷하게 좋아하는 여자를 찾기 힘들다는 포기이다.)
2~3년 전에는 사진을 좋아하는지를 물어보다가 요즘은 와인을 물어본다. 바뀌는 질문을 통해 취미의 유행도 시절에 따라 바뀌는 걸 알 수 있다. 요즘은 DSLR이 워낙 대중화되어 있어서 “사진이 취미예요”라는 말은 “시간 나면 친구들이랑 술마셔요”만큼이나 하나마나한 말이 되어버렸다.
사진이 취미로서의 쿨함이 시들해가는 시점에 그 자리를 급속도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 와인이다.
술 거의 안 마시는 내가 와인을 취미로 할 턱이 없지. 내가 술을 좀 마신다 하더라도 와인 유행 (열풍으로 접근 중)은 불편하게 생각할 거다. 오디오 매니아들은 음악을 좋아하는 것보다 기계를 더 좋아하는 부류들이므로 고깝게 생각하는데, 그만큼이나 so-called 와인 애호가들도 고깝다. 와인을 마시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는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좀 살만한 사람들이 고급스런 취미활동을 즐길 여력이 있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와인을 즐기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 들어가고 싶거나 혹은 자기가 이미 그 계층에 들어가 있다고 착각하는 부류들까지 와인 유행에 동참해 있다.
요즘에 여기저기서 말이 들리는 ‘와인 배우는 모임’은 또 뭐란 말인가? 와인이 언제부터 배워서 마시는 고급 학문이 되었나? 평소에 책들은 안 읽고, 공부도 별로 안 하면서 와인은 특별히 ‘배우는’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 와인 유행을 부채질 한 것이 탈아입구를 갈망하는 일본에서 나온 ‘신의 물방울’이라는 것도 좀 웃기다. 하기야 미식가 유행도 ‘맛의 달인’ ‘초밥왕’ 등 일본의 음식 만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지.
나는 와인 열풍을 하나의 거대한 hoax라고 본다. 몇년 전에 유수의 와인 잡지 (프랑스 잡지)에서 와인 전문가들을 상대로 blind-test를 한 적이 있었다. (reference를 잃어버려서 제공이 안됨) blind-test의 목적은 전문가들이 그렇게 칭송해마지않는 와인들이 대중적인 와인에 비해 정말 맛이 뛰어난가를 검증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예상하겠지만, 전문가들은 최상급의 와인과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와인을 정확하게 구별해내지 못했다.
이 결과로 최상급 와인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졌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 대중적인 와인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볼 수도 있는 거니까. 다만 최상급 와인과 대중적인 와인 사이의 격차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와인 전문가들도 최상급 와인과 대중적인 와인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면, 와인을 ‘배우는’ 의미가 있을까?
이야기는 사천으로 오래 빠졌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소개팅에서 서로의 취미와 기호를 맞춰보는 데 “와인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적당하지는 않다. 와인 열풍도 몇 년 지나면 다른 유행에 밀려날 테니까.
하지만 그 질문은 한 가지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남자와 여자가 새로운 유행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그 수용의 속도가 비슷한가를 맞춰볼 수 있다. 이건 서로의 취미와 기호가 비슷한가라는 문제만큼이나 중요하다. 유행은 계속 새로이 만들어질테고 사람들은 사진에서 와인으로 옮겨타고 와인에서 또 새로운 유행으로 옮겨탈 것이다. 그럴 때 나처럼 그런 유행 무시하고 좋아하는 덕후 놀이나 하고 있는 사람과, 유행에 민감하며 새로운 취미 활동을 적극 받아들여서 ‘와인 배우기 모임’에 돈 내고 나가는 여자는 잘 맞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The Simpsons Movie
서울-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서 본 또 하나의 영화.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가 21세기의 새로운 빅브라더이다?
배꼽 잡으면서 본 영화였다. 재미와 교훈을 주는 영화? 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남.
밀양
서울-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서 본 또 하나의 영화.
처음 1시간은 많이 지리하지만 (‘지루하지만’이 표준어가 아니라 하던데, 아직도 그런가?) 그 다음부터는 볼 만하다.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세븐 데이즈’에서도 아이를 유괴당한 엄마가 나오는데,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 이야기는 요즘 너무 많이 나오는 거 아닌가? 그런 장면 보는 건 좀 불편하다. 이 불편함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주제를 잘 잡아서 성공한 영화이다. 이야기 진행은 좀더 짜임새 있었으면 좋겠다. 중간에 좀 늘어진다. 언제부터인가 1시간 이상 영화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그나마 영화가 짜임새가 있으면 2시간 동안 볼 수 있겠는데, 안 그러면 견디기가 쉽지 않다.
이 영화의 핵심 부분은
— 스포일러 주의 —
유괴범이 교도소에서 형을 사는 중에 전도연이 면회를 간다. 전도연은 ‘당신을 용서하겠다’라는 말을 하러 간 것인데, 유괴범이 선수를 친다.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참회했더니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다.’라고 말한다.
“이런 죵니 XX지 없는 ㅅㄲ”라고 말하며 뱃가죽을 갈라 곱창 길이를 재어봐야 할 상황이지만, 기독교인은 그래서는 안 되지. ‘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가르침이 있지 않은가? 용서함으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보여주려 했던 전도연의 의도는 유괴범의 선제적인 자기 용서(preemptive self-pardoning)로 무력화되고, 전도연은 미쳐버린다.
이 영화는 기독교의 내적 모순을 까는 영화다. 좋게 말하면, 진정한 종교에 다가가지 못하고 그 열매만 빨아먹으려는 99%의 기독인들을 까는 거고, 1%의 진실된 기독교인들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지. 용서를 함으로써 정신적 보상을 받으려 한다면 그건 진정한 용서가 아니라는 거지.
똑똑한 목사들은 이 영화를 재해석해서 들려주면서 신도들의 인기를 얻을 것이고, 멍청한 목사들은 신도들에게 이 영화 보지 말라고 할 것이다.
Ratatouille
Pixar는 이제 사람의 표정 정도는 명령어 하나만 집어넣으면 구현할 수 있는 정도로 시스템을 구축해놓은 듯 하다. ‘The Incredibles’에서 보았던 표정들이 거의 비슷하게 ‘Ratatouille’에서도 이용된다. 애니메이션 기술의 최첨단은 Pixar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재능이 있어도 절대로 어느 수준 이상은 출세할 수 없는 장벽인 유리 천장이, 21세기가 되어서는 방탄유리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야?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재능이 없어서 일찌감치 절망해버린 수많은 쥐새끼들은 걍 라따뚜이가 성공하면 그 한 명을 위한 수백개의 수족으로 일하면 행복하다는 거야? 그래서 한두 명의 천재만 발탁해서 “너희도 성공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심어주면서 나머지 쥐새끼들은 비정규직으로 굴리면 된다는 이건희식 ‘천재 1명이 10만명 먹여살림’이론을 헐리우드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건가?
겨우 그런 얘기 할라고 너무 이야기를 비현실적으로 몰고 갔잖아. Pixar 애니메이션은 좋아하지만 그건 ‘The Incredibles’ 같이 걍 발랄한 상상을 갖고 노는 경우이고, 보수 이데올로기를 대놓고 프로파간다하는 애니메이션은 Pixar가 만들어도 별로다.
Shoot ‘Em Up
서울-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서 본 또 하나의 영화가 ‘Shoot ‘Em Up’이다.
얼굴의 이미지하고는 안 맞게 마초 역을 많이 맡는 Clive Owen이 나와서 홍콩영화 황금기의 과장된 액션을 보여주는 영화다.
끝.
마이 파더 – 황동혁
이번 달에 제네바 출장을 갈 때 탔던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행 대한항공 747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제네바는 루프트한자 항공이었다. 서울-프랑크푸르트 노선이 경쟁이 치열한지 대한항공 비행기의 좌석 편의장치는 내가 타본 대한항공 비행기 중 최고였다. 이코노미석에 개인 LCD 화면이 있고 리모컨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온-디맨드로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온-디맨드로 되어 있으니 영화를 많이 보게 되더군. 무려 다섯 편이나 보았다. 그 중에 ‘마이 파더’는 좌석에 비치된 영화 소개 책자에서 영화 안내를 읽다가 감독 이름이 낯익어서 보게 되었다.
황동혁
황동혁은 내가 엘에이에 있을 때 모임에서 두 번 정도 만났다.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냥 간단하게 인사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이야기를 들은 정도였다. 그는 USC에서 영화학을 공부하고 졸업한 후에 영화를 만들고 있다 했다. 자세한 건 잘 몰랐다.
그 이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2006년인가에 ‘Miracle Mile’이란 영화를 극장에 걸었고 호평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에 단체 이메일을 통해 다니엘 헤니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 이후에는 황동혁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다니엘 헤니가 나오는 영화가 바로 ‘마이 파더’였더군. 그래서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 안에서 ‘마이 파더’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내 ‘생각’이 어떠했냐 하면. 예술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예술을 한답시고 이야기가 긴장감 없이 늘어지는 경향이 있고, 자기만이 아는 자폐적 세상에 빠져 사람들이 자기 예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자기의 개인적 경험 때문에 아주 특별한 이야기라고 착각하면서 사람들이 공감해주기를 바란다.
‘마이 파더’는 그렇지 않았다. 이야기는 깔끔하게 군더더기 없이 엮여져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는 특별했다.
이 영화는 ‘입양된 아이가 성인이 되어 부모를 찾기 위해 미군에 입대해 한국에 와서 아버지를 만나고 자기를 입양보내야 했던 과거를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고으고 고아서 맹물 밖에 안 나오는 곰국이 아니다. 이야기에 대한 스포일링은 안 하겠다.
볼만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