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pril 2008
Thank you for smoking
영화 ‘Thank you for smoking’에는 담배 얘기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담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를 잘 하는 감독은 이야기하려는 주제 자체를 앞에 내세우기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쓰는 소재를 앞에 내세운다. 이 영화의 감독도 그렇다.
재미있게 봤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지 않은 영화라는 묶음을 만들어 보자면 거기에 들어갈 영화가 ‘Thank you for smoking’이다. 다른 사람들이 봤어도 재미있어 했겠지만, 영화 속 주인공의 고민을 공유할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서였다.
우리나라 (직장인과 구별되는) 직업인의 상당수는 대리인(agent)으로서 일을 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내 일의 80% 정도가 대리인으로서의 업무라고 생각한다. ‘Thank you for smoking’은 대리인의 고민이 그 주제다.
대리인은 본인(principal)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는 것이 그 임무이다. 목적은 본인(principal)이 정해준다. 대리인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서 실행해야 한다.
그래서? 고민은 무엇인가? 여기서 먹고사니즘으로 빠지면 아무런 고민도 없어진다. 이런 삼단논법이 가능하다. (1)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은 정당하다. (2) 대리인은 먹고살기 위해 본인의 목적을 달성하려 노력한다. (3) 대리인이 본인의 목적을 달성하려 노력하는 것은 정당하다. 뭐 이런 식의 간단한 논법이라면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에 대한 법률 자문을 해준 김앤장의 삼성 업무 수임도 정당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하자면, 대부분의 대리인들(즉 대부분의 직업인)은 먹고사니즘 이상의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위와 같은 삼단논법으로 모든 문제가 가볍게 해결된다. 윤리도 도덕도 체면도 올바름도 그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먹고사니즘의 신봉자들에게는 ‘Thank you for smoking’은 담배회사를 대신해 갖가지 변론 및 토론을 해주는 주인공은 돈 엄청 잘 벌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사람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갈라선다.
‘Thank you for smoking’의 주인공은 자신의 직업에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니, 그보다 영화 말미로 가면 영화 감독이 주인동의 대리인이 되어 주인공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 감독은 주인공이 먹고사니즘의 신봉자가 아니라 자신의 직업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 담배회사의 대리인인 주인공이 그냥 아무 영혼 없이 회사다니는 보통 사람들보다 자신의 인생에 깊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웅변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영화가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주인공이 엄청 쿨하게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감독이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보다 말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나도 내가 대리인이라 생각하면서 내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입장 (아니면 감독의 변론)에 대한 공감을 하는 것이 먹고사니즘에 빠지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 아닌가 자위를 한다는 거다.
야근 연속
갑작스레 잡힌 출장 때문에 이번주 내내 야근이다. 남들은 출장 가니 좋겠다고 얘기하지만, 출장 가기 전의 준비는 아주 부담이 많이 되고 출장 중에도 별로 좋은 거 없다. 갔다 와서도 결과 정리해야 하고… 게다가 출장 준비 때문에 내일 교육은 어쩔 수 없이 스킵해야 한다. 이틀만 더 들으면 한 과목을 다 듣는 건데. 쩝.
이번에는 숙소로 다운타운이 아니라 저녁에 어디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겠다.
한 가지 기대되는 것은 제네바에서 공부하는 후배를 10년만에 만나게 됐다는 것. 예전에는 예뻤는데 10년 동안 어케 변했으려나.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지
http://blog.hani.co.kr/medicine/12173
2006년에 황우석이 있었고, 2007년에 디워가 있었다. 그다음에 MB가 있는 건지는 확실치는 않다. 그 계보에 넣는 게 일관성을 해칠 우려도 조금 있기도 하고.
MB가 아니라면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할 유력 후보는 한의학일 수 있다. 황우석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깨는 거가 아주 어려웠는데, 한의학으로 자리를 옮기면 이놈도 만만치 않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 그 중에서 자연과학 내지 공학을 공부했다는 사람들도 한의학에 대한 막연한 신비주의를 마음에 품고 있는데 그걸 깨는 게 진짜 어렵다. 하기야 나도 한 때 한의학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정부 돈으로 황우석에게 퍼준 게 얼마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한의학의 과학화, 표준화를 하는 데 5000억 넘게 퍼준단다. ‘퍼주기’라는 말은 북한지원에 쓰는 것보다 이런 사업에 갖다 붙여야 제격이다. ‘한의학의 과학화, 표준화’에 연구비 지원을 하는 게 뭐가 문제냐라고 질문할 사람이 많을 것인데, 말하자면 구구절절.
난 그래도 황우석 사태, 디워, 그리고 앞으로 찾아올 한의학 사태 이런 걸 통해서 한국 사회가 조금씩이나마 근대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 말은 우리 사회가 아직 근대화되지 않았다는 걸 전제로 한 거다. 근데, 황우석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좀더 근대화에 가까워졌나? 잘 모르겠다. 밑천 없던 (국수주의자, 파쇼 등등) 인간들이 밑천 드러난 것 말고 얻은 게 별로 있나 모르겠다. 디워 사태에서 여전히 사람들은 국수주의 장단에 춤을 추었으니 말이다.
* MB가 황라인(황우석, 디워, 한의학) 계보에 들기가 애매한 게 MB는 국수주의를 적극 이용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CD 겉표지
음… 뭐 이런 말을 블로그에 쓰는 것이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몇 달 전에 CD 자켓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마고 했다. 근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너무 늦어졌고, 그 사람은 사진으로 대체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시라고 했다. 그 과정에 기분 나쁜 거나 그런 건 없다. 내가 그림을 못 그려줬으니 내 탓이지.
바빴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삐까삐까하게 큰 이유는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세번째 이유는 그 사람이 그려달라는 그림을 내가 그려줄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내가 이전에 그린 그림과 비슷하면서도 자기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그림을 그려달라 했는데, 그 말을 듣기 훨씬 전에 나는 이미 아주 엉뚱한 그림을 생각 중에 있었다.
앞에서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림을 생각하고 있었다니 그건 무슨 앞뒤 안 맞는 말이냐?라고 한다면 구차하게 얘기하자면 길다. 암튼, 나는 알아버렸다. 누가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구했을 때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래서 생각했다. 앞으로는 그런 부탁은 일단 사양해야겠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만 그려야겠다. 발로 그리든 턱으로 그리든.
에드워드 하퍼(혹은 호퍼)
사람들이 갑자기 에드워드 하퍼를 잘 알게 된 것 같았다. 에드워드 하퍼는 몇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듣보잡 화가였다. 교과서에 작품 하나가 실리긴 했나? 하지만 평균적인 한국의 사회인에게 에드워드 하퍼는 치즈 와퍼보다 덜 유명한 이름이었다.
그 이유를 어제 알게 됐다. 작년 내 생일에 선물 받아놓고선 안구건조증 때문에 안 읽고 있던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었는데 거기에 에드워드 하퍼 얘기가 나오는구나. 아하! 베스트셀러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라서 사람들이 알게 되었구나.
‘여행의 기술’은 미스테리물이다. 이 책이 왜 유명해졌는지를 알려면 책 끝까지 다 읽어야 할 것 같다. 책 뒤표지를 탁! 덮고 나면 ‘아하!’ 하고 해답이 나올 것 같다. 안 나온다면? 속편 ‘행복의 건축’을 읽어보도록. 그래도 해답이 안 나온다면, 그건 거대한 음모임에 분명하다.
그건 그렇고, 나는 에드워드 하퍼를 좋아한다. 화보를 통해서가 아니고 실제 그림을 보면 더욱더 아름답다. 단순해 보이는 사물과 인물을 통해서 그렇게 깊은 정서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 모작을 해보고 싶은 작가이다. 모작을 통해 이미지는 재현할 수 있겠지만 그 정서를 전달할 수 있을까?
옛날 사진
우짜다 보니 4~5년전 사진을 보게 됐다. 그러고 보면 한국 들어오고 나서는 너무 짧은 time span만 들여다보고 살았다. 마치 내 삶의 1막이 2005년에 내려지고 그 다음 막이 시작된 것처럼. 그래서 2005년 전의 일들은 그닥 다시 들추어보지 않고 살았던 듯.
암튼 4~5년 전 사진을 보니 무쟈게 젊었네. ㅋㅋㅋ
오늘 이사를 마치고 인터넷을 넣을까 하고 아파트 단지내에 쳐놓은 메가패스 천막에 가서 설명을 들었다. 상품으로 휴대폰을 준다길래 어떤 휴대폰이냐고 물어봤더니 Ever 휴대폰 좀 쌔끈해보이는 거하고 Cyon 모델 약간 덜 쌔끈한 거를 보여준다. 그래서 좀더 좋은 거 없냐고 물어보니까 영업소에 전화를 하더니 “휴대폰 모델 새 거 없어요? 손님이 좀 젊어~“라고 한다. 내가 젊다는 말을 들을 나이는 이제 아닌데, 외모는 그래도 젊게 보이나? 그것도 아닌 거 같은데. 가입 시킬라고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듣기 나쁜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 가입은 생각 좀 더 해보고 알려주마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 한 번쯤은 겪었겠지만,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아니면 도박을 하든간에 어떤 일을 하느라 몇년을 꼴아박고 나서는 할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한숨 돌리고 뒤돌아 보면 좋았던 젊은 날은 다 가버렸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고시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케이스라고 생각 되는데, 나도 유학을 가면서 내 인생의 나름 좋았던 시기가 한 번 지나갔고, 그 후에 병에 걸려 골골하다가 나아서 다시 보통의 삶으로 돌아오고 나니 진짜 좋았을 수 있었던 날은 다 간 느낌이다.
그치만 그닥 억울한 생각은 안 든다. 좋았을 수 있었던 날은 다만 좋았을 수 있었던 가능성만 있었을 뿐이었지. 게다가 나는 나의 선택으로 유학을 갔으니 순수하게 내 선택으로 나의 좋았을 수 있을 날을 공부에 바치겠노라 선택한 것이다. 만약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유학을 갔을지는 모르겠으나 역시 좋은 날을 좋게 보내는 것보다는 유학에 필적할만큼 고생스런 길을 선택했을 것 같으니까 선택을 후회할 것도 없다. 그니까 걍 생긴대로 사는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누가 얘기한다 해도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난 내 삶에 큰 불만이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내 삶에도 어느 정도 변화는 있겠지만 끼니를 걱정해야 할 일은 당장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분노할까 하다가도, 우리 국민 대다수가 그걸 원한다는데 내가 나서서 뭘 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차분하게 마음을 먹는다면 답답할 일도 별로 없다. 나와 비슷하게 투표한 사람이 전체 국민 중 10%도 되지 않는다. 나는 정치적으로 절대 소수에 속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생각이 옳으니 나를 따르시오라며 다른 사람을 선동할만큼 적극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그저 5년 동안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볼 밖에. 다행인 것은 나는 “MB를 찍어놓고 급후회하며 손가락을 짜르고 싶”(다 말하지만 그것은 말뿐인) 집단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사 완료
이사를 완료했다. 도배까지 다 끝난 집에 짐을 옮겨 놓으니 일이 깔끔하게 처리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깔끔해졌다. 벽지는 노란 바탕에 빨간색 꽃무늬인데, 구리구리한 집에 붙이면 우울해지지만 밝은 집에 붙이면 집이 화사해지는 마법의 무늬다.
좀더 넓은 곳으로 옮기니 공간도 여유가 있고 좋네. 직장에서도 좀더 가까운 곳이다. 이제 남은 것은 반신욕조와 기모노 입은 마네킹인가?
몇달 전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인켈 앰프를 하나 사두었다. 방 사이즈에 맞는 아담한 스피커를 살 생각이다. 그리고 음원은 CD 혹은 인터넷 라디오. ‘작업’을 할 때에는 재즈 채널을 틀어놓으면 좋을 것이다.
여담에 여담을 덧붙이자면, Last.fm을 쓰면 지금 나오는 곡의 이름과 연주자 및 앨범 정보까지 볼 수 있다. 라디오를 들으면 아쉬운 것은 DJ가 아티스트 이름과 곡명 얘기해줄 때는 대충 흘려듣다가 음악이 나오고 나면 ‘음악 좋네’ 하면서 아티스트 이름과 곡명을 궁금해하지만 그걸 알아내는 것은 하나의 퀘스트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 이사간 집을 충분히 즐길 시간도 없이 이번 주말에 제네바 출장을 가야 한다는 것. ㅡㅡ;
출장은 정말 몸을 지치게 한다. 게다가 제네바는 정말 지겹기 시작한다. 이제 난 대한항공 모닝캄 회원이고 아시아나 골드멤버다. 아시아나는 왜 마일리지 많은 고객을 골드멤버라고 이름 붙였을까? 골드멤버라고 하니까 Austin Powers가 생각날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골드멤버라도 여자는 별로 안 꼬이더라는…
테이큰
‘우리는 이런 영화를 기다려왔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거기서 ‘우리’는 나나 너를 제외한 4500만 중의 2000만이 아니고 나나 너의 절반씩이다.
저번 달인가 신문에서 읽었던 ‘조카 괴롭히는 아이 혼낸 삼촌 구속돼’ 같은 기사에 나오는 삼촌은 화성(혹성이든 경기도 화성이든)에서 온 사람이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는 보복심을 표현했다는 것만이 나나 너와 다른 것일 뿐.
보복심을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는 나나 너 같은 사람들이 테이큰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전기 스위치를 켜놓고 걸어나가는 모습에서 쾌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할 관객이 있을까? 그러니까, 마케팅 측면에서는 잘 기획된 상품이다.
딸래미 얼굴은 좀 덜 예뻤다. 몸매는 예쁜 것 같았으나 자세히 보여주지 않았다. 영화 설정상 여자의 몸매를 많이 보여주게 되어 있는데, 주인공의 딸은 무려 처녀이고 몸매도 잘 안 보여준다. 주인공 딸만큼은 청순해야 한다는 거야? 자식들 성생활을 부모가 콘트롤하기 쉽지 않은 미국에서 이런 설정은 가치관 측면에서 아주 보수적인걸. 하지만 막상 부모들은 그런 걸 원한다는 것.
리암 니슨이 열을 머리 끝까지 받은 건 딸이 납치되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이걸로는 열 받은 정도), 딸의 처녀성이 유린당해 창녀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겠지. 누구나 공분할 수 밖에 없는 설정을 만들어놓은 것은 감독의 재주. 그 이후로는 모든 살인이 정당화될 뿐 아니라 쾌감을 준다. 그래 우리는 이런 영화를 기다려왔어.
.rft 화일 열기
옛날 문서들 중에서 20년 가까이 된 것들은 화일 형식이 요즘의 프로그램들이 지원하지 않는 것이 많다. 현재 기준으로 보자면 듣보잡인 화일 형식인데, 그 화일 형식이 쓰일 당시에는 업계 표준이 아니었을까? 1980년대라면 IBM PC가 대중화되기 전이고, Apple의 Apple II나 Z80프로세서를 이용한 MSX를 비롯한 8bit 컴퓨터들이 대중적으로 이용되었지만, 업무용으로는 역시 서버-클라이언트 방식의 시스템들을 이용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
암튼, 요즘 대량의 옛날문서를 찾아놓고 읽어보려 하는데, 그 문서의 확장자가 .rft이다. 내가 갖고 있는 프로그램 중에는 .rft를 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rft는 IBM DisplayWrite Revisable Format Text라고 나온다. 아마 IBM 서버에 실려있던 워드프로세서에서 쓰던 화일 형식 같다.
.rft로 제공되는 문서들은 html로도 제공되는데, 차이점이라면 .rft로는 bulk download가 되지만 html은 하나하나 다운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양이 무지 많다는 것. 그래서 고민중이다.
좀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내가 했던 말이 정말 정곡을 찔렀나 보다. 그러니까 마음에 상처가 안 아물고 계속 아리고, 그래서 그러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