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ly 2008
차악으로서의 소련 체제
박노자의 바램이야 십분 이해하고, 정글 원숭이처럼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이상국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에 동의한다. 근데, 박노자가 말하는 그런 사회로 한국이 움직여갈 수 있을까? 그건 아주 어렵다. 50대 이상 영감들은 이데올로기적 이분법이 너무 강해서 ‘빨’ 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 이 사람들이야 죽어갈테니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만, 더 문제는 3,40대 이하 확신범들이다. 40대 이하로 어떤 나이대, 어떤 계층대를 살펴봐도 자유주의에 바탕한 자본주의에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70%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나마 젊은 날의 낭만으로라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빠져들어볼 만한 20대는 오히려 더욱 자유주의/자본주의에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들의 현실은 여기저기 비정규직 알바를 전전하는 시궁창일지라도 말이다.
IMF 외환위기라는 특별한 역사적 경험도 여기에 일조한다. IMF 외환위기는 섣불리 성급히 신자유주의/세계화 테크를 타면서 약점을 노출시킨 한국 경제를 여러 다국적 자본들이 털어먹은 사건이다. 이걸 개발경제학적으로 보면, 한창 잘 나가던 개도국 경제 하나를 선진국들이 다리 한 번 걸어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경험 때문에 한국인들은 과도하게 민족주의적이 되었다. IMF 외환위기 이전에도 민족주의적 성향이 과다한 국민들이었는데, IMF가 그 농도를 더 높여놓았다. 그래서 경제 내부의 계급 문제가 파묻혀버렸다. 외국과 한국의 싸움이라는 테제는 언제나 큰 힘을 발휘하지만 내부의 착취 문제는 별반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당장 당하는 사람들에게만 중요한 문제가 될 뿐. 한국은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인식되지 않는가? 그래서 rat race는 현재의 20대가 죽어 없어지기 시작하는 21세기 말이 되어서야 끝날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까? 넘 비관적인가?
시시비비
블로그 구경 돌다가 시시비비를 가리는 포스트를 하나 읽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라는 단체에서 낸 사무국원 모집광고가 있는데, 그거가 언론사에 보도자료로 발송되었다 한다. 그 보도자료를 보고 서울경제신문의 강동호라는 기자가 비아냥대는 메일을 보냈다 한다.
“뭐 노비 구하냐? 관노비냐 사노비냐. 영화업계의 고질적인 단면을 보는 것 같다… ㅎㅎ 기본적인 노사인식도 없는 무지한 딴따라들… ㅎㅎㅎㅎ” /서울경제신문 강동호 기자의 답장.
이게 문제가 되자 강동호 기자가 해명글을 발표했다. 그건 여기 댓글에서. 이런 싸움질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니까 샅샅이 읽어봤다.
처음 메일만 봐서는 강동호 기자가 한독협 사람들하고 잘 아는 사이인 줄 알겠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듯. 그니까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반말로 비아냥대는 메일을 적어서 보냈다는 건데, 이건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된다. 자기 생각에 아무리 웃긴 메일이라고 해도 모르는 사람한테 반말하면서 무시하고 비아냥대는 메일을 보내는 일을 잘 하진 않으니까.
해명글에서는
보통 인터넷 포털에서 댓글 달 듯이 앞뒤 생각없이 몇마디 주어 삼긴 말에 불과했습니다.
라고 썼는데, 기자이면서 인터넷 악플러였군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드네. 그리고 인터넷 악플러라 할지라도 그런 악플을 이메일에 담아서 보내지는 않으니까 역시 해명력 부족이다. 상습적으로 악플을 메일에 담아보내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드는데.
게다가 통화 도중에 ‘고영대씨의 뒷조사를 해보겠네’ 같은 말을 했다고 하네. 참 나. 영화 산업에서 기자와 영화사의 관계라는 걸 안다면 기자와 한독협 간의 힘의 관계는 쉽게 짐작될 터. ‘뒷조사’ 운운한 배경 설명 역시 납득 안 간다. 자기 가족 중에 고씨에 영자 돌림이 있어서 혹시 알지 몰라서 그런 말 했단다. 그래서 아는 사람 나오면, ‘아이고, 우리 사촌 처남의 형님 되시네요. 친척인줄 모르고 실례가 많았습니다’라고 할라 했나?
추격자
영화 ‘추격자’가 대종상 여러 부문을 수상했다 하던데, 대종상이 원래 여름에 주는 상이었던가? 더워서 기사도 별로 챙겨보지 못했네. 남우주연상을 김윤석이 받았다는 것만 지나가는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난다.
MBC 베스트극장인가에서 김윤석이 나오는 걸 본 기억이 있는데 그 단막극에서도 김윤석은 형사 역할로 나왔다. 아, ‘추격자’에서는 형사가 아니고 퇴직한 형사이면서 포주로 나오지. 근데, 역할은 꼭 형사란 말이지.
김윤석 연기 보면 설경구 생각이 난다. 설경구 같이 연기를 해서가 아니라, 연기가 이미 딱 형사 역으로 틀이 박혀갖고 연기가 앞으로 발전하거나 변화할 것 같지가 않다. MBC 베스트극장에서의 연기랑 ‘추격자’에서의 연기가 너무 똑같다. 그 뜨악하게 만드는 오버스러움과 눈 부라림. 필요이상의 감정 과잉. 설경구가 아무 영화에서나 ‘박하사탕’ 연기를 해대서 볼 때마다 답답한 걸 앞으로는 김윤석 연기보면서 답답해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재미있는데, 역시나 경찰은 까야 맛이라는 기조는 좀 식상하고.
하정우가 범인으로 드러나도록 한 설정은 나름대로 범죄심리학 같은 걸 공부를 한 흔적은 있지만, 그래도 좀 대충이다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이야기 전개를 보고 있으면, 모든 걸 드라마로 풀어나가던 (감정 대립과 해소로만 때운다는 거하고 같은 말) 한국 영화계(시나리오계)에서 CSI니 하는 것들 보고서 아 범죄물도 좀 전문성을 가미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만들었던 영화 중에 ‘세븐 데이즈’가 있었고, ‘세븐 데이즈’랑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게 ‘추격자’이다. 이런 류의 스토리에서는 범인의 성격이 잘 드러나야 하는데 영화 다 보고 나서도 하정우가 정상적 판단을 잘 못하는 완전 사이코패스인지, 아니면 감정을 잘 숨기는 용의주도한 시리얼킬러인지 잘 모르겠더라. 뭔가 대단히 두려운 범인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이것저것 섞여버린 느낌.
3년
7월 25일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2005년 7월 25일. 그날에 내가 CML에 걸린 걸 알게 됐다. 다음주 금요일이면 3년이 된다.
한 4년 정도 더 지나면 그때 있었던 일들 중 흥미로운 것 몇 가지를 얘기할 수 있을 거다.
백령도 여행 취소
이번 주말에 백령도 여행을 갈라 했는데, 태풍이 온다 해서 취소 됐다. 그래서 this weekend is wide open.
내가 자연재해를 좋아한다는 걸 몇몇 사람들은 알고 있다. 여기서 ‘자연재해를 좋아한다’는 게 토네이도 속을 지프차를 몰고 돌진한다든지,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서핑 보드 하나만 믿고 바다에 뛰어든다든지 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연재해를 관전하는 입장에 서는 걸 좋아한다는 거다.
예를 들면 시원한 방안에 앉아서 영화 투모로우를 본다든지 하는 것과 유사한 체험을 말하는 거다. 영화 투모로우보다 훨씬 강도높은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는 텔레비젼 영상이 있다.
내가 중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여름 장마철이었다. 텔레비젼 뉴스에 모 강(아마 금강 어디메였던듯)에서 갑자기 불어난 물로 낚시를 즐기던 몇 사람이 고립되었는데 한 사람은 구조되고 한 사람은 물에 쓸려갔던가 그랬다. 나머지 한 사람은 구조하는 사람들이 쳐놓은 줄을 붙들고 근근히 버티고 있었다.
난 이 부분이 정말 궁금한데, 그 줄이란 게 강의 한 쪽 변에서 다른 쪽 변으로 강을 가로질러 쳐진 줄이었다. 원래 평소에도 그런 줄이 쳐져 있는 강이 없다는 걸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때 물이 불어서 사람이 위태로워지자 줄을 친 건데, 그렇게 줄을 칠 수 있었다면 사람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나의 궁금함은 답변을 얻지 못한 채, 텔레비젼에는 그 줄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있는 낚시꾼이 30여초 가량 비춰졌다. 30초의 동영상이란 건 아주 긴 거다. 30초 동안 눈으로 들어오는 생사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의 영상은 아주 강한 기억을 남긴다.
뉴스는 그 사람이 물에 쓸려내려가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앵커가 그 낚시꾼이 힘이 빠져 줄을 놓게 되었고 결국 물에 쓸려가게 되었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구조대원들이 줄을 잡고 낚시꾼에게 가까이 가려 했으나 물살이 너무 세어서 중간에 포기했고, 헬리콥터가 출동했으나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낚시꾼이 쓸려내려갔다는 상황이었다.
그 뉴스 영상이 이후로 내가 본 어떤 재난 영화보다 더 분명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되었다.
광우병으로 지금까지 죽은 사람과 앞으로 죽을 사람을 다 합친 숫자보다 바다낚시 하다가 파도에 쓸려가서 죽은 사람의 수가 더 많지 않을까라는 짐작도 든다. 먹을 것에는 무쟈게 민감하면서도 정작 태풍 오는 날 바다 낚시나 소나기 올 때 강 낚시 하는 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라고 단정짓기보다는 좀더 팬시한 심리학적 설명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태풍 갈매기라는 게 온다는데, 이건 부산으로 오는 건가요? 부산 갈매기?
태풍 이름에는 동물(특히 새나 곤충) 이름을 많이 붙이던데, 굳이 동물 이름을 붙여야 되는 게 아니라면 이번 태풍은 광우병이라 붙이든지 꼬리곰탕이라 붙이는 것도 비슷한 정도로 태풍의 무서움을 표현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암튼, 재난영화가 고프다. 개않은 재난영화 없나?
리눅스용 아래아한글 2008 출시
2달 전에 데스크탑을 장만하면서 우분투 리눅스를 기본 OS로 깔고 윈도우XP를 보조 OS로 깔았다. 우분투 리눅스를 쓸 때 불편한 점은 딱 한 가지. 아래아 한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이번 달에 한컴에서 아래아한글2008 리눅스용을 출시하면서 그런 문제도 해결되었다. 지금은 체험판을 쓰고 있는데, 조금 써보고 별다른 버그가 없으면 한 카피 구입하려 한다.
아래아한글2008 리눅스용은 아시아눅스에서만 테스트되었다고 한다. 한컴이 아시아눅스 개발사라서 그렇겠지. 그래도대중적으로 많이 쓰는 리눅스는 우분투인데 우분투 배포본도 만들어주면 좋겠구만.
우분투에서 쓰려면 약간의 ‘삽질’을 해야 한다. 그 방법은 여기에.
대천해수욕장
There Will Be Blood
약자들은 사필귀정이니 인과응보니 하는 말들로 자신의 복수심을 어루만지며 살아간다. 그래 그놈은 언젠가는 비참하게 죽을 것이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약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죽을 때 피 안 나고 죽을 수는 있겠지만, 영화 제목 ‘There Will Be Blood’가 말해주듯 주인공도 결국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그래서 사필귀정이었고 인과응보였다면 모든 사람이 해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안다는 것이 사필귀정과 인과응보의 한계이다. 악인이 벌을 받기 전에 이미 수많은 약자들이 스러지거나 나뒹굴어버리기 때문이다. 약자들이나 그들의 자손들은 그나마 악인이 죽을 때에는 비참하게 죽어주니 사필귀정과 인과응보라는 말로 자신들의 한을 쓸어내릴 수 있다는 데 감사할 따름이다.
대구 출신 여자와 소개팅 한 후
대구 출신 여자와 소개팅을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부드럽게 끝내는 방법.
남: “부모님께서 한나라당 지지자시겠네요?”
여: “꼭 그렇지는 않구요. 박근혜 지지하세요.”
남: “아 그러시군요.”
여: “어떤 당 지지하세요?”
남: “저는 사회당 지지하는데요.”
우리 안의 권위주의
얼마 전에 서울대 이용식 교수가 ‘현대형법학’이란 책에 쓴 서문을 놓고 씹은 적이 있었다. 그걸 어떻게 읽었는지 서울대 법대 쪽에서 우르르 몰려와서 이런저런 댓글들을 올려놓고 가던데, 읽어볼 가치가 있는 글들도 있긴 했으나 대부분의 경우 승인(approve)하지 않았다. 이 블로그는 댓글을 써도 내가 승인을 해야 댓글이 등록이 된다. 그리고 승인의 기준은 내 마음대로다.
승인을 안 한 댓글들 중에는 대꾸할 가치도 없는 댓글도 있고, 읽으면 기분 나쁜 댓글도 있었다. 그런 거야 당연히 짜르는 거다. 그런데 어떤 글들을 보면 이용식 교수에 대한 나름의 존경심이랄까 그런 게 묻어나는 게 있더라.
‘가까이서 이용식 교수님을 오랫동안 지켜본 바에 따르면 …’ 등의 말들이 들어간 것인데, 이런 건 저도의 이용식 교수 본인이거나 아니면 진짜로 이용식 교수를 존경해마지않는 제자라고 볼 수 있다.
누구에 대한 진정한 존경심이란 걸 별로 품어본 적이 없는 나이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존경할 때 나같은 일개(‘일개’란 말 디게 좋아하는 스토커가 한 명 있지) 블로거가 이용식 교수 까니까 기분이 나빠지는 것도 이해는 되긴 한다. 하지만, 그런 눈먼 존경심(blind respect)는 당신 스스로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정도의 조언은 내가 해도 될 것 같다.
대부분의 법대생들이 학자가 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겠지만, 이아고님이 인용한 크로토의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학자가 되기 위한 자질을 재인용한다.
“Absolute irreverence towards any authori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