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2009
그랜저로 답하니 벤츠로 응수하더라
대기업에서 소프트웨어나 컨텐츠 관련한 사업을 하지 말라는 류한석님의 글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대기업에만 국한된 얘기일 것이다. 사업의 규모로 봤을 때 Microsoft나 Google은 이미 우리나라 대기업 이상의 수준이니까, 사업의 규모가 크다 하며 반드시 소프트웨어나 컨텐츠 사업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특성상 유연한 사고를 필요로 하는 사업은 어렵다는 것.
이걸 국방색 꼰대기질이라고 해야 할까? 정확히 녹색은 아니고 그보다는 좀 구린 국방색으로 머리 속에 염색된 꼰대들의 기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국방색 꼰대기질이 잘 드러나는 최근 광고가 현대 그랜저 광고다.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다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다시 만날 필요 없이 절교해야 할 놈이라고 판단내리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정서일거라고 믿는다. (아닌가? 내가 이미 소수인가?)
근데 현대에서 광고를 주문하고 광고안에 대해 오케이 할 수 있는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사람들의 정서와는 아주 동떨어진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친구가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면 리모컨으로 자동차를 켜서 자랑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람인 거다. 이게 얼마나 천한 것인지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바로 국방색 꼰대기질이다. 현대 자동차에서 임원으로 일하기 때문에 벤츠나 BMW로 답하지 못하고 그랜저 정도로밖에 답하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속이 쓰릴까?
글 쓰다보니 생각나는데, “그랜저로 대답했다”는 건, 그랜저 못 타고 다니는 너같은 거렁뱅이랑은 이제 어울리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대신하는 건 아닐까?
똑똑함, 실수, 악화, 양화, 국카스텐, 콩댄스
따라서 똑똑한 것이 꼭 생존에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삼성, LG, 현대 등 대기업에서 선호하는 인재는 SKY 출신이 아닐 수 있다. 이걸 날파리 가지고 실험해본 사람들이 있네. 조직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해서 꼭 똑똑한 사람은 아닐 수 있다.
관리자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정확히 분석하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왜냐하면,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면 똑똑한 부하직원이 한 일을 엎어버리고 멍청한 버전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거든.
우리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행동은 보통 작은 일탈행위입니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고, 어떤 사람은 노래방에 가고,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비디오를 보죠. 이러한 행위는 보통 비생산적이고, 지나치면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지만, 지나치지 않다면 내적인 문제가 표출될 수 있는 통로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작은 일탈행위 조차 용납하지 않고, 그 결과 나중에 정말 큰 일탈행위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누구나 그런 게 필요하지.
국카스텐의 거울 뮤비를 보는데, 리드 싱어의 몸동작이 자꾸 콩댄스를 연상시키는데 …
국카스텐
주목할 만한 밴드이다.
국카스텐.
요즘 세상과 요즘 남자
‘인구통계학적으로 분석한 요즘 남자들의 문제점’ http://blog.daum.net/yiyoyong/8932839 이라는 글 읽고 나니 생각나는 글은 김어준이 그까이꺼 아나토미에 쓴 ‘의사 표현 모호한 그녀, 날 좋아하는 걸까‘(http://www.hani.co.kr/arti/SERIES/153/333394.html)라는 글이다.
Lifestyle Report에서 말하는 “1. 문자를(문자만) 보내는 남자, 2. 우는 소리하는 남자, 3. 대충 연락하다 대충 연락 끊어버리는 남자, 7. 여자를 물주로 아는 남자”는 ‘의사 표현 모호한 그녀’에 나오는 여자 마음 모르겠다고 징징대는 남자랑 다른 남자가 아니다. 이들은 모두 요즘 급격하게 늘어나는 한 무리 남자들의 공통된 특징을 나열해 놓은 것이다.
Lifestyle Report는 이게 다 외동아들로 곱게 자라서 마마보이가 되어버린 남자들이며, 하나만 낳아 잘 기르는 시대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본다.
김어준은 다른 분석을 한다.
이 수컷들 연애 간땡이의 대규모 축소 현상, 경제력과 피임술 그리고 여권 신장이 구성한 새로운 권력 환경에, 수컷들 스스로가 자신을 맞춰가는 적응이라 할 수도 있겠다. 성은 언제나 권력의 문제였으니까. 그 지형이 변하면 새로운 사회적 진화, 진행될밖에.
김어준은 이런 현상의 이유가 되는 사회적 여건 변화가 있다 해서 그 현상이 바람직해지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Lifestyle Report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도가 아니라 불만이 가득하다.
이 현상의 해설에 Lifestyle Report의 분석과 김어준의 분석 중 어느 것이 더 그럴싸한지는 각자 선택할 문제이다.
나도 이 현상의 바람직하지 않음에 한 표를 던진다. 남자들이 소극적이 되면 세상이 쵸큼 덜 행복해지거든.
여자들의 경제력이 신장되고 여권도 신장되었다 한들, 여자들이 연애에 있어 생래적인 수동성을 후천적으로 타파하고 적극적인 연애 유전자를 취득하게 되지는 않았다. 여자들은 아직도 연애에서 기다리는 쪽이다.
한 세대가 지나면 좀 달라질지 모르지.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여자애들이 남자애들을 차지하려고 싸움을 한다는 얘기도 듣긴 했지만, 아직도 사춘기를 지난 남녀간의 관계에서 여자가 먼저 대시하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
여자들은 기다리고 기다리다 또 기다리는데, 일회용 도끼들은 당췌 간만 볼 뿐 뚝심있게 찍질 않거든. 열번은 고사하고 딱 두번 정도만 찍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딴 나무를 찍는다. 나무들에는 잔 도끼 자국이 무수하지만 언제 자빠질 수 있을지 기약도 못하겠다. 맘 같아선 여자가 확 들이대고 싶지만 여자 자존심에 그럴 수도 없다. 이게 이 시대의 불행이다.
분자 레벨에서 정자가 난자를 찾아 헤엄치고 난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을 하는 것이 거시 단계에서 그대로 재생되는 것이 남녀간의 관계일진대, 어찌된 것인지 요즘은 정자가 난자 껍질을 뚫고 들어가려 하기보단 난자가 정자한테 헤엄쳐 오길 기다리는 거란 거지. 난자한테는 꼬리가 없어서 헤엄을 못 친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것도 모르고.
일회용 도끼들은 하지만 나름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요즘 세상에서는 결혼을 하는 것, 아이를 낳는 것이 인생의 불확실성과 위험을 증가시킨다. 세상은 risk management가 극도로 중요한 시대로 들어섰다. 자칫 잘못해서 안 좋은 일 생기면 신불자로 떨어지고 노숙자가 되기 십상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절대선이었던 과거와는 다르다는 거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멍청한 짓일 수도 있는 시대에서 결혼과 육아로 이어지는 테크를 타기 위해 올인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일회용 도끼들은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Lifestyle Report나 김어준처럼 남자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그 이전에 “왜 바뀌어야 하는데?”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그래서 나무가 좀더 자주 쓰러지게 되면 뭐가 더 좋아지는 것이지? 뭐 이런 질문이다. 김어준은 일회용 도끼의 무서운 증식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왜 바람직하지 않은지는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사회 환경이 변화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양식 변화에 섣불리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위험할 수도 있다. 일회용 도끼들은 나름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 불행할 수도 있겠지. 일회용 도끼들이 바뀌어서 돌쇠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마냥 기다리는 여자들이 적극적으로 도끼를 손에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사이에 어떤 것이 요즘 세상에 더 적합한 해법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어의 영향력 – Wiki 지수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생각이지만, 2009년 1월에 시점을 고정시키고서 세계의 수많은 언어들을 그 영향력의 순서대로 랭킹을 매겨보기로 하자. 그렇다면 어떤 데이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잣대가 될까?
Wikipedia 첫 페이지를 보면 언어별로 등록된 article의 갯수가 나온다. 이 갯수대로 언어의 영향력 랭킹을 매기면 대략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언어의 영향력이란 게 뭔지를 정의할 필요가 있고 그걸 측정하기 위해 wikipedia 에 언어별로 등록된 article의 갯수를 비교한다는 게 얼마나 정확한지는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현재 스코어로 Wikipedia에 등록된 article별로 순위를 매긴 것은 아래와 같다.
1. 영어 (2,715,000개)
2. 독일어 (857,0000개)
3. 프랑스어 (756,000개)
4. 이탈리아어 (535,000개)
5. 러시아어 (353,000개)
6. 일본어 (557,000개)
7. 스페인어 (439,000개)
8. 폴란드어 (572,000개)
9. 포르투갈어 (454,000개)
10. 네덜란드어 (514,000개)
영어는 2위인 독일어에 비해 3배가 넘는 article수가 올라와 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영어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이다. 그리고 이는 상당 기간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흥미로운 건, 우리가 국제기구에서 많이 쓰거나 공식어로 인정하는 국제언어인 1. 영어, 2. 프랑스어, 3. 스페인어, 4. 러시아어, 5. 중국어의 순서가 Wikipedia에서는 꽤 혼란스럽게 뒤섞인다는 점이다.
국제어로서의 지위는 거의 상실해버린 독일어가 2위이며, 반면 국제어로서는 3위의 지위를 갖고 있는 스페인어는 Wikipedia에서는 7위에 그친다.
좀 과격하게 말해서, 미래의 언어 영향력을 Wikipedia의 article 갯수로 예상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미안하지만 스페인어는 아웃이다. 흥미롭게도 중국어는 리스트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경제적인 영향력으로 봤을 때 중국어가 향후 중요한 언어가 될 것이라는 것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단, Wikipedia로 알 수 있는 언어의 영향력이란 것이 문화의 수준, 언어공동체가 공유하는 지식의 정도, 그리고 더 나아가 흔히 말하는 ‘민도(民度)’의 정도라고 정의를 한다면 중국어가 세계의 중요한 언어가 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10억이 넘는 인구 덕분에 세계 2~3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여전이 3,000불 정도에 그치고 있는 나라에 불과한 것이니까. 거기다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아직도 심하게 통제되고 있는 나라이니까.
일본어는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언어이다. 특허 서양인들 사이에서는 일본어 몇 마디 할 줄 아는 게 교양으로 인정받는 유행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게다가 일본인들은 어떤 정보이든지 잘 정리해놓기로 유명하다. 마치 집단정보편집증이라는 병리학적 현상이 있다면 그건 마치 일본인을 묘사하기 위해 생겨난 말인 것처럼. 그리고 일본어를 제1언어로 쓰는 언중(言衆)이 1억이 넘는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일본어는 Wiki지수에서는 6위로 상당히 낮다.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정보를 얻는다는 목적으로 배워야 할 언어는 영어 다음으로는 일본어이다. 그만큼 일본어로 된 좋은 책이나 정보들이 많다. 그런데도 Wiki article은 6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일본인들이 Wiki에 대해 가지는 태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국인이 집단지성에 가지는 자세와는 또 다른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한국어. 안습이라 할 수 있지만, 한국어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언어가 될 때는 21세기 내에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가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적이 2007년에 있었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국제특허시스템(PCT)에 이용되는 국제공개어로 한국어가 포함되었다. 이때 같이 포함된 언어로 포르투갈어 등이 있는데, 이후로 PCT 국제공개어는 9개가 된다. 의미가 있는 사건인데, 이는 한국에서의 국제출원수가 세계 4위로까지 도약하면서 한국어가 국제특허시스템에서의 중요성이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일이 사회 다방면에서 발생해야 한국어가 국제언어로서 중요해지게 된다. 특히 문화에서 그런 일이 발생해야 한다. 현재 한국어판 wikipedia를 보거나, 혹은 naver 지식인을 보건대, 그러한 추세는 잘 보이지 않는다.
사족: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국제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들, 즉, 해외 주재관, 외교관 등등의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일본 문화(상품)이 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이유가 일본인들이 자국 문화를 잘 포장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국제사회에서 사람들과 어깨를 비비다보면 일본의 위상과 한국의 위상이 너무 차이가 나거든. 그래서 자존심도 상하는데, 그런 열등감을 보상받고 싶어서 만들어내는논리이다.
나도 한 때 일본을 그렇게 폄하한 적이 있었다. 이거 큰 착각이다. 우물 안 개구리식 생각이다.
단재 신채호의 민족사관과 여타 민족을 강조하고 한민족의 긍지를 드높이려 한 많은 사학자들의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지만, 그런 노력들 속에서 일본을 야만족의 섬나라이며 문화란 것은 죄다 신라-백제, 고려, 조선에서 전수받은 것 뿐이라는 주장/믿음은 사실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해보자. 장보고가 해상왕이고 서해/남해의 해로를 장악했다고 한다. 그거가 사실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장보고가 해상을 호령하고 있었을 때는 같은 바다를 놓고 경합하는 다른 세력들이 있었을 것이다. 풀한포기 없는 사막에 사자 한 마리가 앉아서 사파리를 호령했다고 하는 건 웃긴 일이니까. 그 경합하는 다른 세력이 일본이나, 중국의 강남 지역 해상 세력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이야기 아닌가? 장보고는 그러한 경쟁세력들보다 우위에 서서 해상을 장악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말이 되는 것일게다.
장보고 이야기는 하나의 예일 뿐이고, 한반도의 역사는 한족의 거대한 영향력과 일본 열도의 세력들의 중간에서 그들과 교류 또는 경쟁하면서 이어져온 역사라고 보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해석일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일본은 섬나라의 야만족이라고 폄하할 수 없는, 우리 혹은 한족과 당당히 맞설 정도의 세력을 유지해온 나라라고 봐야할 것이다. 몽고가 긴 여정을 무릅쓰고라도 정복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무시할 수 없는 나라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