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디워

  • 잠수 1:15 pm on April 22, 2008 Permalink | Reply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지 

    http://blog.hani.co.kr/medicine/12173

    2006년에 황우석이 있었고, 2007년에 디워가 있었다.  그다음에 MB가 있는 건지는 확실치는 않다.  그 계보에 넣는 게 일관성을 해칠 우려도 조금 있기도 하고. 

    MB가 아니라면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할 유력 후보는 한의학일 수 있다.  황우석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깨는 거가 아주 어려웠는데, 한의학으로 자리를 옮기면 이놈도 만만치 않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 그 중에서 자연과학 내지 공학을 공부했다는 사람들도 한의학에 대한 막연한 신비주의를 마음에 품고 있는데 그걸 깨는 게 진짜 어렵다.  하기야 나도 한 때 한의학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정부 돈으로 황우석에게 퍼준 게 얼마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한의학의 과학화, 표준화를 하는 데 5000억 넘게 퍼준단다.  ‘퍼주기’라는 말은 북한지원에 쓰는 것보다 이런 사업에 갖다 붙여야 제격이다.  ‘한의학의 과학화, 표준화’에 연구비 지원을 하는 게 뭐가 문제냐라고 질문할 사람이 많을 것인데, 말하자면 구구절절. 

    난 그래도 황우석 사태, 디워, 그리고 앞으로 찾아올 한의학 사태 이런 걸 통해서 한국 사회가 조금씩이나마 근대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 말은 우리 사회가 아직 근대화되지 않았다는 걸 전제로 한 거다.  근데, 황우석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좀더 근대화에 가까워졌나?  잘 모르겠다.  밑천 없던 (국수주의자, 파쇼 등등) 인간들이 밑천 드러난 것 말고 얻은 게 별로 있나 모르겠다.  디워 사태에서 여전히 사람들은 국수주의 장단에 춤을 추었으니 말이다. 

    * MB가 황라인(황우석, 디워, 한의학) 계보에 들기가 애매한 게 MB는 국수주의를 적극 이용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 발없는새 6:36 am on April 23, 2008 Permalink | Reply

      허경영님께서 저 계보에 스스로를 리스트 업 하셨습니다.

  • 잠수 3:08 pm on December 30, 2007 Permalink | Reply  

    축구, 황우석, 심형래, 이명박 

    올해 가을, 디워 광풍이 몰아쳤을 때, 황우석 사건과 디워가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지적한 사람들이 많았다.  스포츠의 축구, 과학의 황우석, 영화의 심형래가 도래했으니 그 다음은 무엇이 될까 궁금했다.   그게 정치의 이명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현실은 상상보다 재미있을 때가 있다. 

    스포츠의 축구는 이제 김연아와 박태환으로 이어진다.  스포츠 업계에서 민족주의는 역사가 오래 됐다.  스포츠 종목별 협회의 밥그릇은 민족주의로 제련된 철밥통이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러할 것이다.  종목은 바뀌겠지. 

    과학의 황우석은 아직 대체할 만한 인물이 나타나질 않는다.  자기 연구성과가 돈이 된다는 걸 과장되게 보여주는 또다른 허풍선이가 나타나기 전에는 과학 민족주의는 다시 불붙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황우석 연구 자체에 열광한 것이 아니고,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그게 300조원의 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환상에 열광한 것이니까.  마약은 적응되니까 다음 번에는 더 쎈 dose가 필요하다.

    영화의 심형래…  당분간 누가 심형래만큼 구라를 칠 수 있을까?  하지만 심형래가 꾸준히 C급 영상물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있다.  모 블로그를 보니 심형래가 1년에 1편씩 꾸준히 영화를 만든다면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하던데, 그건 의미가 있는 말이다.  C급 영상물을 꾸준히 만들어서 20개 정도의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진다면 나도 심형래를 인정할 의향이 있다.  나는 확신범을 미워하지 않는다.  

    정치의 이명박이 어떻게 될지는 향후 5년을 지켜봐야겠지.  인수위 조직된지 1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포퓰리즘 정책들이 여러 개 나오고 있다.  이명박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추진력”이 포퓰리즘 정책들을 강력하게 밀고 나갈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보고 싶기도 하다.  내년 한 해는 다이내믹할 듯.  

    스포츠, 과학, 영화, 정치를 잇는 다음 장르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 잠수 3:03 pm on September 12, 2007 Permalink | Reply  

    보도 자료 좀 잘 써서 줘 

    얼핏 들으면 그럴싸 하지만, 좀 생각해보면 코메디인 일이 있다.  신문사 기자나 통신사 사장 같은 사람들이 정부 부처나 기업체를 돌면서 홍보 교육을 한다.  홍보 교육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정부 기관이나 기업체에서 좋은 일을 하면 그걸 잘 알리는 게 필요하니까.  그런데 그 홍보교육의 상당 부분은 ‘보도 자료 잘 쓰기’에 할당된다. 

    그게 코미디다.  왜냐하면, ‘보도 자료 잘 쓰기’의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신문 기사하고 유사하게 쓰느냐이기 때문이다.   한 번 더 풀어서 쓰면, 공무원이나 기업체 홍보담당 직원이 보도자료를 신문기사처럼 써갖고 오면 그걸 그냥 카피 페이스트(CTRL+C, CTRL+V)만 하면 신문 기사 완성이라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신문기자가 갖다 쓰기 쉽게 보도 자료를 만들어서 주면 신문기자한테 간택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그렇게 홍보력을 높이는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찬 나같은 사람들은 그냥 기자들이 보도 자료 받아서 날로 하루 일거리 채우려는 것으로 보인다.  기자실 통폐합 한다 할 때 기자들이 그렇게 들고 일어난 것은 이런저런 여러 이유가 있지만, 예전처럼 날로 받아서 하루 일거리 채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마당에 결정타를 정부가 날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음, 아까 NYT의 디워 까는 기사 이야기를 쓰다 보니, 영어권 기자들의 훌륭한 글들과 한국 기자들의 그저 진부하고 판에 박힌 듯한 글들 사이의 차이를 생각하다 보니 이것도 생각이 나서…

     
    • daighter 12:41 pm on September 15, 2007 Permalink | Reply

      인터넷 시대가 사람들에게 끼친 무수한 영향 중 하나는 신문 기자들에 대한 실상을 드러냈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자들의 글솜씨, 인식, 기사의 부족함 등등이 블로거나 네티즌들에 의해 지적되죠. 전에는 신문 기사를 그렇게 비판적으로 읽을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느낌. 이렇다 해도 특정신문사들이 70% 가까이 시장을 독식하지만 말이죠…

    • 3:32 pm on October 10, 2007 Permalink | Reply

      저 보도자료 잘 써요…쿨럭. ^^;;

    • 잠수 9:54 pm on October 10, 2007 Permalink | Reply

      그렇다면, 보도자료 써 주세요.

  • 잠수 5:01 am on September 12, 2007 Permalink | Reply  

    NYT 디워 까는 기사 

    뉴욕타임즈에 디워가 기대된다는 평이 떴다길래 찾아 봤으나 잘 안 나오길래 잊고 있었는데, 오늘 wallflower 블로그에 링크가 되어 있네.  영어권의 주류 매체 기자들은 글 쓰는 기술이 탁월하다.  어떻게 다들 훈련을 받는지 모르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보면 전달하는 내용에 신경을 쓸 뿐 아니라 전달하는 방법(수사)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뉴욕타임즈 기사는 읽기에 재미있다.  근데 너무 많은 걸 동시에 까네.  첫 문단에서 삼성하고 현대부터 까기 시작하더니 두번째 문단에서 바로 심형래를 깐다.  ‘an ambitious and expensive endeavour called “Dragon Wars”‘라는 표현부터가 이 기사가 디워 까는 기사라는 복선이다. 

    다섯 번째 문단에서는 한국 영화 산업의 규모를 놓고 한 번 까는데, 이건 디워가 제작비는 미국 SFX(특수효과) 영화의 평균에 못 미치지만 마케팅비는 미국 기준으로도 많은 액수를 썼다는 문구와 대비를 이루면서 디워가 내용보다는 마케팅으로 승부하는 영화라는 말을 한다. 

    그 다음에는 정부 지원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왜 뜬금없이 언급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심형래 쪽에서 준 보도 자료를 쓴 것이 아닌가 싶은데.  문화관광부나 유관 기관에서 영화 제작에 지원을 해주는지 모르겠으나, 디워가 영어로 제작되는 영화라서 정부 지원을 못 받은 것이 사실인가?  왜 이런 위험한 발언들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영구 아트는 산업자원부로부터 3D 그래픽 기술 개발 명목으로 연구비 지원을 받은 것으로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알맹이를 들여다보니 지원할 만한 내용이 아니라 판단되어서 지원이 중단된 바 있다.   이런 기사를 보고도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 정부는 또 무엇인지?  요즘은 정부가 지나치게 ‘친절’한 것 같다.  (김승연, 정몽구, 심형래 같은 사람들한테만)

    어쨌든.

    그 다음 문단부터는 걍 디워 갖고 말장난 하는 것이다.  ‘헐리우드는 디워 개봉에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다’ –> 이건 걍 팩트이다.  근데 거기에 가수 비가 덩달아 까인다.  거기다가 영화 ‘괴물’도 같이 까인다.  미국에서 겨우 230만 달러 한 영화가 나름 성공한 영화로 취급된다는 조소다. 

    디워 땜에 삼성, 현대, 한국 정부, 가수 ‘비’, 영화 ‘괴물’이 줄줄이 끌려나와서 까인다. 

    그 담에는 걍 스트레이트로 디워를 깐다.  영화 각본이 Z 등급(N이나 O 등급도 아니다)이라느니 ‘I will petition for the makers of this movie to crawl under rocks”라느니 하는 말들은 비록 인용한 표현들이지만 이 기사의 핵심 부분이다. 

    근데, 이런 기사가 ‘디워가 기대된다’라고 썼다고 옮긴 국내 신문들은 도대체 무엇인지?  옳바름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확함에 대해서는 굳건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적어도 언론계에는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

     
    • daighter 12:39 pm on September 15, 2007 Permalink | Reply

      해외 기사 마저도 맘대로 편집하는 건 인터넷 이전에는 그래도 좀 속을만했지만… 요즘도 달라지지 않았군요. 저는 관심있는 외신이 국내 신문에 소개되면 너무 짧고 가끔은 일부만 가져와서 해당 외국(주로 미국) 신문사로 가는데, 요즘은 바빠서리… -_- 이래서 아직도 신문사들이 장난치는지도 모르겠군요.

  • 잠수 10:44 pm on August 21, 2007 Permalink | Reply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결혼이란 건 남자나 여자가 마음이 변하거나 혹은 다른 이성의 페로몬에 더 혹해서 다른 이성과 elope하는 상황을 사회제도로 막아놓은 것이다.  그 제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사회구성원들은 서로에게 결혼을 권유한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총각 동료가 자기 마누라랑 자고 돌아다닐 거라는 정도의 상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게 구체적으로까지 상상한 것을 일반화된 ‘결혼권유주의’로 발전시키려면 상당한 사유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그 총각 동료에게 결혼을 권유하는 이유가 자기 마누라랑 바람피는 걸 방지하기 위함은 아니다.  일반화된 ‘결혼권유주의’로부터 구체적으로 자기가 아는 사람들이 바람피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도 상당한 사유과정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결혼권유자(이거 이름 괜찮네)들은 습관적으로 결혼을 권유한다.   그게 습관으로 굳어지기 전에는 여러 가지 생각의 갈래들을 탔겠지만 그들에게 결혼을 절대선이다.   그게 절대선인 이유 중에 하나가 난교와 난혼 예방이다.  사회의 엔트로피가 높아지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결혼권유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두 쌍의 부부가 있을 때는 엔트로피가 0이라고 하자. (기준점을 잡는다는 의미에서)  남편 A가 아내 B와 자고, 남편 B가 아내 A가 자게 되면 엔트로피가 100으로 늘어난다. (100은 엄밀하게 계산한 것은 아님)  결혼권유자들은 이렇게 엔트로피가 높아진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을 위해 마련된 영화의 결론은 …

    스포일러 주의 (여담으로, 디워에 스포일러라 할 만한 스토리가 뭐가 있나?  디워의 스포일러 논란은 디워를 둘러싼 또 하나의 코메디였다.)

    남편 B가 아내 A와 결혼하고 남편 A가 아내 B와 결혼하면 네 사람 사이의 엔트로피는 다시 예전의 0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결혼권유자들은 안심한다.

    이 영화가 아주 사실스럽게 네 사람의 로맨스를 (네가 해도 로맨스라고 인정) 그리면서 역시나 엔트로피가 0으로 회복되는 지점을 영화의 결말로 잡은 것은 결혼권유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결혼권유자든 아니든 그런 결말이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결말이기 때문이다. 

    바람을 피거나 이혼/재혼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처음에 제대로 된 사랑을 못 만났기 때문이고, 인연을 만나면 이혼/재혼을 하면서 그 인연과 결혼을 함으로써 제대로 된 사랑을 하게 될거라는 믿음이 아직은 만연해 있다는 것을 영화 만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리고 바람을 피는 사람이든 이혼/재혼을 하는 사람이든 결국 결혼권유자들만큼이나 엔트로피 0인 안정을 희구하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사랑이란 동물들이 짝짓기를 하기 위해 이성을 선택할 때 특정 개체를 선택하는 행위와 본질상 다를 바 없는 호르몬의 작용이며 우성 선택의 과정이다.   그걸 알 수 없는 신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라고 생각하는 건 영화 티켓 한 장 더 팔고, 초콜렛 한 박스 더 팔고, 사탕 한 박스 더 팔고, 덤으로 예쁘장한 카드 한 장 더 팔기 위한 마케팅에 낚인 것일 뿐이다.  그래서 호모 에로티쿠스로서의 자신을 아는 게 필요한 거다.  영원한 사랑?  후풋!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하려는 걸 0으로 붙들어두려고 하면 어느 순간에는 엔진이 폭발한다.

    한채영과 엄정화의 베드신이 나온다길래 보러 간 건 아니었다.  영화를 보다보니 그게 나오던데.  여자의 몸이란 건 벗기 전의 모습이 더 유혹적이다.  벗고 나면 별 거 없다.   그래서 너무 보여주는 엄정화보다는 잘 안 보여주는 한채영이 더 유혹적이었다. 

     
    • 프링글스 10:52 pm on August 22, 2007 Permalink | Reply

      혹시 40대 ‘엄정화’가 벗어서 상대적으로 젊은 한채영이 유혹적이었던 아니였나요? ㅋㅋㅋㅋ

    • 잠수 10:58 pm on August 22, 2007 Permalink | Reply

      솔직히 엄정화 몸도 좋았습니다. 엄정화는 나름 글래머입니다. 나이 든 표시도 별로 안 나구요. 몸의 나이로는 한채영과 많이 차이가 안 나는 듯 합니다.

      다만, 엄정화가 벗는 순간 걍 무덤덤해진다고 할까요? 한채영과 단순 비교가 불가한데, 한채영은 너무 적게 보여줘서 노출이라 하기에는 부족하더군요.

    • 5:31 am on August 27, 2007 Permalink | Reply

      저도 봤어요. 이거. 한채영의, 깡마른 팔다리가 불쌍하게끔 큰 가슴에서 오는 몸의 불균형과 오랜 성형으로 흘러내릴 것 같은 엄정화의 얼굴이 안쓰러워서 보는 내내…ㅜㅜ 두 사람 앞으로 같이 나오면 안 되겠습디다. 중심 여배우 둘이 쌍으로 인공미를 너무 풍겨대니 눈이 어지럽더라고요. ㅎ

    • 잠수 5:35 am on August 27, 2007 Permalink | Reply

      네, 한채영 몸이 좀 기형적인 건 사실이더군요. 팔다리를 젓가락이고 이른바 쇄골도 며칠 굶은 기아형이구요. 마치 졸라맨의 여성형 같더군요. ㅋㅋ

      엄정화는 뭐…

    • 5:40 am on August 27, 2007 Permalink | Reply

      엄정화는 뭐요? 말할 것도 없어요? ㅋㅋ

    • 잠수 5:46 am on August 27, 2007 Permalink | Reply

      사실 전 엄정화가 성형을 많이 했다고 해서 거부감을 느끼진 않았어요. 영화를 찍든 노래를 하든 열심히 하는 게 느껴져서 비교적 좋은 인상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그 결과물도 나쁘진 않구요. 연기도 나름대로 하는 편이고 노래도 (기계로 조작을 했는지는 몰라도) 괜찮은 편이구요. 그래서 성형을 많이 한 건 자기 직업에 충실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입니다.

    • 7:22 am on August 27, 2007 Permalink | Reply

      아, 저도 엄정화 괜찮아요. 연기 되잖아요. >< 2, 3년 전부터 충무로에서는 엄정화만한 배우가 없다고들 했데요. 역할마다 다 잘해주니까. ^^ 성형을 해서 싫다는 것이 아니라, ‘업계’에 있는 친구들이 종종 실제로 볼 때 얼굴이 무너지는 징후들이 나타난다기에, 그게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하고…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줘야 할텐데…하는 마음이랄까. ^^;;

    • 잠수 9:45 am on August 27, 2007 Permalink | Reply

      네, 그런 징후들은 보이더라구요. 약간 힘겹기 시작한다는 느낌. 그것도 성형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요?

    • 12:48 pm on September 3, 2007 Permalink | Reply

      마이클 잭슨 보면 아시잖아요. ㅜㅜ

    • 잠수 12:54 pm on September 3, 2007 Permalink | Reply

      성형이 gross하게 묘사되는 것의 극치는 영화 ‘Brazil’에서지요? Face lifting에 중독된 주인공의 엄마가 나오죠. 얼굴이 처지면 다시 끌어올려서 젊은 얼굴이 되었다가, 다시 처지면 또 끌어올리고. 그래서 주인공은 가끔씩 엄마를 못 알아보죠. ㅋㅋ

    • 2:32 pm on September 3, 2007 Permalink | Reply

      아, 브라질! 그게 아마 ‘여인의 음모’라는, 택도 없이 엉뚱깽뚱한 한글 제목이 붙은 영화였죠? 진짜 기괴하면서도 서글픈 영화였는데…블레이드 러너의 기괴 버전같은 느낌도 들고. 그 엄마…ㅎㅎ

  • 잠수 10:15 pm on August 21, 2007 Permalink | Reply  

    보랏 – C급 코메디 

    직장 동료가 권해주길래 영화 ‘보랏’을 봤다.   화면 연출은 다큐멘터리처럼 해서 실화 같은 느낌이 다른 영화보다 더 들긴 하는데, 조금 보다 보면 다큐멘터리처럼 만든 극화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심형래 못지 않은 자의식을 갖고 심형래 못지 않게 영화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Sacha Baron Cohen이라는 영국 코메디 배우가 좌충우돌 미국 여행을 한다.   영화에서 그는 Borat Sagdiyev라는 카자흐스탄 사람이다. 

    “까기” 그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까기” 그 자체는 재미있을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다.  “까기” 그 자체는 정치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영화 ‘보랏’은 많은 것들을 엄청나게 깐다.  하지만 그 ‘까기’는 까는 사람인 Sacha Baron Cohen을 대단한 코메디언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Sacha Baron Cohen이라고 했다.  Borat Sagdiyev가 아니고.  그러니까 극중 보랏은 자기가 웃기는 줄 모르고 계속 웃기고 다니는 사람이고, Sacha Baron Cohen이 사람을 웃기고 있는 거다.   영화에 몰입하면 보랏은 그다지 웃기는 사람이 아니고, 과장되고 현실인식을 못하는 돈키호테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좀 이격되어 영화를 둘러싼 상황까지 다 보게 되면 이건 Sacha Baron Cohen의 코메디극이라는 걸 알게 되고 웃을 수 있게 된다.   쓰다 보니 이거 디워랑 비슷하네. 

    그냥 가볍게 웃자면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영화인데, 너무 많이 ‘까니까’ 뭔가 정치적이거나 풍자적이라거나 해학적이라거나 조소라든지 그런 게 있을 법한데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없다.  그냥 딱 1초의 웃음만 주면 된다는 식의 소재 활용적 까기이다.  만약 그 까기 밑에 뭔가 함의가 있었다면 B급 코메디였을텐데, 그게 없어서 C급 코메디라 할 수밖에.

     
  • 잠수 2:57 pm on August 19, 2007 Permalink | Reply  

    디워는 B급 코메디 

    오늘 드뎌 보고야 말았다.  영화 같이 보러 간 사람이 디워 보고 싶어 하길래 봤다.  웬만하면 안 보고 싶었으나 영화 선택권을 내가 안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볼 수 밖에 없었다. 

    1. B급 코메디 or 개쓰레기 

    총평을 하자면, 디워를 좋게 봐주면 B급 코메디 영화이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개쓰레기다.  내가 본 영화 중에 all time worst를 뽑으라면 넣을만한 영화다.  굳이 비교 대상을 찾자면 Plan 9 from Outer Space가 동급이다. 

    그러니까, 심형래는 Edward D. Wood, Jr.와 동급의 영화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는 아니다.  Edward D. Wood, Jr.는 초저예산으로 (정말 초초 저예산으로) Plan 9 from Outer Space를 만들었는데 심형래는 700억원을 들여 디워를 만들었다는 게 큰 차이다. 

    Plan 9 from Outer Space는 그 뜬금없는 이야기 전개와 출연자들의 어색하다못해 어이가 없는 연기, 그리고 마지막에 관객을 민망하게 만드는 억지 피날레 씬으로 특징을 잡을 수 있는데, 그 모든 특징들이 디워에 고스란히 체현되어 있다. 

    그래도 마음을 곱게 써서, 디워를 B급 코메디로 보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심형래가 디워의 관객으로 상정한 사람들이 기존 영화의 문법들에 익숙하고, 또 기존의 표준화되다시피한 연기에 익숙하며, 기존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러한 기존의 문법과 연기와 스토리텔링 방식을 모두 깨부순 파괴자적 영화를 보고 코메디임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관객들이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다 만족된다면 디워는 훌륭한 B급 코메디 영화이다.  A급 코메디가 아닌 이유는 사람을 대놓고 웃기는 영화가 아니고, 기존의 틀들을 비꼬고 냉소하는 그런 B급 정서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해야만 코메디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디워는 개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게 더 진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이건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다.  간단하게 설명가능한 것과 복잡하게 설명해야만 하는 두 가지 이론이 있을 때 간단한 이론이 맞다는 것. 

    SF의 정의에서 디워가 SF가 아니고 기껏해야 환타지로 쳐줄 수 있다고 한 건 영화를 보고 나니 논의할 가치도 없는 주제였다.   SF냐 환타지냐의 문제가 아니고, 디워는 간단하게 괴수물이다.  코메디물로 치자면, 이건 의도하지 않은 블랙코메디냐 아니면 성공한 B급 코메디냐의 문제이다. 

    2. 심형래의 슬랩스틱 세계관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나는 게 있었다.  스토리가 부족한 정도가 아니고, 스토리 자체를 얘기할 수 없을 정도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바 있다.  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스토리 전개를 보다가 심형래가 한 말들이 기억났다.  반지의 제왕도 이야기가 재미없고, 쥬라기 공원은 공룡들이 뛰어다니기만 하고 하는 등등 심형래가 다른 영화들에 대해 내린 평가.   그 평가들이 심형래의 진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이 있다고 사람들이 보는 이미지가 다 같지는 않다.  근시인 사람은 가까운 것은 잘 보지만 먼 것을 잘 못 본다.  색맹이나 색약은 색깔을 구별하지 못한다.  심형래는 영화나 소설을 볼 때 스토리 전개를 보지 못하는 스토리맹이나 스토리약이 아닐까?  디워를 보면 이야기 전개는 뜬금없고 어이없기까지 한데 가끔씩 한 장면씩에 굉장히 공을 들인 것 같은 흔적이 보인다.  정말 그는 스토리 전개라는 건 잘 보이지도 않고 따라서 중요하지도 않은 것이며, 그래서 짧은 장면에 집중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방식의 진행은 영구의 슬랩스틱 코메디의 연출 방식과 흡사하다.  슬랩스틱 코메디에는 스토리가 없다.  주기적으로 튀어나오는 슬랩스틱이 웃음의 요소이다. 

    영화 중간중간에도 심형래식 슬랩스틱이 나오고 그것 때문에 이게 B급 코메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되지만 심형래는 끝까지 진지하다.  그저 심형래는 슬랩스틱이 너무나 몸에 배어서 세계관 자체도 슬랩스틱이 되어버리고 영화를 만들 때도 슬랩스틱이 본능처럼 나오는 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진지하게 만든 영화 여기저기에 슬랩스틱이 나오는 걸 볼 때는 반은 우습고 반은 어이가 없어서 웃게 되더라.

    3. 컬트의 대상이며 패로디의 소재

    이 영화를 디빠들이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게 된다면, Edward D. Wood, Jr.의 Plan 9 from Outer Space에 필적하는 못만든 영화에 대한 컬트가 한국에서 자생하게 될 것이다.  Ed. Wood는 살아서는 Plan 9 컬트를 누리지 못했다.  심형래는 영화 발매 하자마자 컬트가 생겼으니 이건 심형래가 Ed. Wood를 능가하는 점이다.   (컬트(cult)는 우리말로 정확하게 번역하면 ‘사이비종교‘이다.)

    앞으로 기다려지는 건, 코미디언이나 쇼호스트들이 디워를 가지고 농담을 만드는 거다.  디워에서 농담 만들 거리는 꽤 많아서 아마 한 달 정도는 디워로 우려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패러디 영화의 소재로 쓰일 수 있을 거다.  예를 들면, ‘무서운 영화’ 시리즈에 디워를 이용할 수도 있을 듯.  하지만 그 전에 디워가 미국에서 성공해야 한다.  ‘무서운 영화’ 시리즈는 성공한 영화만 패러디하기 때문이다.

    또다른 가능성은 미국 케이블 채널인 Sci-fi TV의 토요일 오전 프로그램인 Mystery Science Theater의 제작에 디워가 이용되는 것이다.  Mystery Science Theatre는 내가 좋아했던 프로그램인데, 못만든 영화들을 계속 보여줘서 죄수들이 재미없어서 혹은 괴로워서 죽도록 하는 감옥이 배경이다.  단 3명(로봇도 사람이라면)만이 살아남는데, 이들은 어떤 영화를 보여줘도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영화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긴다.  그 감옥에서 틀어주는 영화들은 어쩌면 모두들 그리 못만들었는지.  하지만 그 3명의 죄수들이 농담 따먹는 것을 들으면서 영화를 보면 그런 영화들도 훌륭한 코메디 소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워도 언젠가는 토요일 아침의 Mystery Science Theatre에서 훌륭한 오락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 의도하지 않은 코메디도 재미있다

    사실 난 Plan 9 from Outer Space를 좋아한다.  그리고 죠니 뎁이 주연한 Edward D. Wood, Jr.의 전기 영화 Ed Wood도 좋아한다.  영화 Ed Wood는 감동적이라서 좋아하고, Plan 9 from Outer Space는 격식을 파괴한 영화라서 재미있어서 좋아한다.

    디워를 보고 나서 좋았던 건, 같이 영화를 본 사람하고 디워의 어이없어서 웃긴 장면들을 같이 짚어가면서 같이 웃을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어주었다는 점이다.  

     
    • rakko 4:46 am on August 20, 2007 Permalink | Reply

      저도 식구들과 D-War 재.미.있.게. 봤어요.

    • 잠수 5:46 am on August 20, 2007 Permalink | Reply

      재.미.있.게. 보셨으면 됐네요. 영화는 더이상 극장 안에서만 즐기는 게 아니다. ^^

  • 잠수 1:25 pm on August 13, 2007 Permalink | Reply  

    SF의 정의 

    SF가 아닌 걸 SF라 부르니… 에서 이어지는 글. 

    SF는 science fiction의 acronym이고, Sci-Fi는 축약형이다.   Sci-Fi는 이제는 B급의 저예산 저급 science fiction을 가리키는 말로 종종 쓰이면서 다른 뉴앙스를 갖게 되었으니, 이 글에서는 Sci-Fi는 논외로 하고 science fiction만 이야기한다.

    우리말로는 공상과학이라고 번역이 되어서 오랫 동안 고착되었는데,  ’공상과학’이란 표현이 science fiction을 애들이나 보는 소설 혹은 주의가 산만한 열등생들의 백일몽을 도와주는 문학 정도로 인식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거기다가 사농공상의 봉건적 계급 관계에서 이름조차 들어가지 않는 ‘과학’이 그 위계관계에서 최하위를 차지함을 의미한다는 조크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다.  (공상과학이면, 공인과 상인 밑에 과학자가 있으니 상인보다 낮은 계급)  ‘과학소설’이라고 번역했으면 science fiction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전반적인 인식이 나아졌을 것이다. 

    근데 막상 science fiction이 무엇이냐에 대한 정의는 확고한 게 없다.  (Arthur C. Clark once said in a preface of his book, “Attempts to define it will continue as long as people write PhD theses.”) 

    Science fiction 작가이자 편집자인 Damon Knight는 “science fiction이란 내가 어떤 작품을 가리켜 ‘아, 그건 science fiction이야’라고 말하면 science fiction이다”라고 했다. (“Science fiction is what I point to and say “That’s science fiction.”)

    때로 science fiction은 환타지(fantasy), 공포(horror)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폭넓은 개념은 적당하지 않다.  작가나 평론가나 편집자들이 science fiction을 정의 내리기 힘들어하는 이유에는 science fiction과 환타자니 공포물 등을 깔끔하게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지 science fiction이 환타지와 공포물을 다 포함하는 개념이 되도록 방기한 것은 아니었다. 

    science fiction에서 ’science’라는 단어가 지배적(operative)인 단어라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나는 환타지와 science fiction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 과학적 개연성(scientific probability)라고 본다.  

    이 차이점에 대해서 Arthur C. Clark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science fiction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이 그런 일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는 이야기이며, 환타지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인데도 사람들이 한 번씩 공상해보는 것이다.” (“Science fiction is something that could happen – but usually you wouldn’t want it to.  Fantasy is something that couldn’t happen – though often you only wish that it could.”)

    Robert A. Heinlein은 science에 좀더 비중을 둔 정의를 내렸다.  ”간편하고 짧은 science fiction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개연성 있는 미래의 사건에 대한 현실성 있는 상상으로, 과거와 현재의 현실 세계에 대한 적절한 지식에 기초하고 과학적 방법의 성질과 의미에 대한 깊은 이해에 바탕한 것.”  (a handy short definition of almost all science fiction might read: realistic speculation about possible future events, based solidly on adequate knowledge of the real world, past and present, and on a thorough understanding of the nature and significance of the scienctific method.”)

    ‘공상과학’이란 말은 science fiction과는 동일한 말이 아님은 위의 설명을 읽으면 이해가 될 것이다.  굳이 용어를 정확하게 만들자면, 공상과학이라는 말에서 공상만을 떼어놓으면 환타지가 되고, 과학이란 말만 떼어놓으면 science fiction이 되는 것이다.  즉, 공상소설 = 환타지, 과학소설 = science fiction이 되는 것이다. 

    공상과학이라 하면 환타지와 science fiction을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이다.  그게 science fiction을 ‘공상과학’이라고 번역했을 때 발생하는 오류이다.

    ‘공상과학’이라는 번역이 얼마만큼의 책임이 있는지는 모르나, 우리나라에서 황당무계하거나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에 바탕을 둔 공상영화까지도 SF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내가 공상영화(환타지)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science fiction이란 장르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은가를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science라는, 즉 과학이라는 영역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환타지의 친구로 인식된다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이번 디워 난동에서 디빠(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심빠)들 중에 ‘한국형 SF’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SF’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한국형 SF’가 뭔지를 물어보는 것은 가당치 않다. 

    심빠들에게는 디워가 SF이든 환타지이든 상관이 없는 것이며, 그 영화가 과학적 개연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SF’의 S가 science가 아니고 심형래의 Shim이고, F가 fiction이 아니고 Forever라는 거니까.  (심형래 Forever!!) 

    밑에 댓글에 달린 ‘SF’가 더 적절하네. –> Shim 형래 Fighting! 

    아니면 간단하게 ‘심빠’?  –> Shim Fa.   그러면 ‘한국형 SF’ = ’한국형 심빠’인데 이 조어는 말이 된다.  

    애국영웅 + 과학(science) –> 이게 황구라 사건과 심구라 사건을 같이 엮을 수 있는 매듭이라는 건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지?

     
  • 잠수 12:42 pm on August 11, 2007 Permalink | Reply  

    SF가 아닌 걸 SF라 부르니… 

    워낙에 한국이 SF 불모지인 것은 사실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대충 들어본 사람들이 많아도, 아서 클락 (Arthur C. Clarke)이나 로버트 하인라인 (Robert A. Heinlein)은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는 나라이니까.   필립 딕 (Philip K. Dick)은? 

    그러니까, 그래도, 어떤 영화가 SF이다라고 말을 하려면 SF가 뭔지 정도 개념은 잡는 게 필요조건 아닌가?  요즘 논란이 되는 어떤 영화는 절대 SF가 아니다.  그 영화를 SF라고 부르는 이는 SF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 영화를 SF라고 부르는 행위는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offensive할 수 있다. 

     
    • duoh5log 12:52 pm on August 16, 2007 Permalink | Reply

      몇 년 전에 친구가 책 한권을 주더군요. 제목은 “높은 성의 사나이”. 다 읽고서 이런 작가도 있구나 싶어서 여기 저기 찾아보니, 이 사람 물건(?)이더군요. 유명한 영화들의 원작자라는 것도 그 때 알았구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책을 검색해보니 그때 기억으로 두세권 밖에 없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요즘은 번역된 작품들이 좀 있으려나요. :-)

      아마도 D-War얘기를 하시는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SF도 스토리가 우선이다, 뭐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 글인가요? 꾸벅.

    • 잠수 12:57 pm on August 16, 2007 Permalink | Reply

      그책의 저자가 필립 K. 딕인가요? 워낙 유명한 소설을 많이 쓴 사람이라…

      어떤 소설(혹은 영화)이 SF이냐라는 걸 결정짓는 것은 과학적 개연성에 바탕한 배경 설정 혹은 사건 전개라고 보는데요, 디워는 이야기의 배경이나 사건의 전개 어떤 것도 과학적 개연성에 바탕하지 않죠. 그러니 디워는 SF가 아니라고 봅니다.

  • 잠수 10:07 am on August 5, 2007 Permalink | Reply  

    또다시 광풍 몰아치다 

    필름2.0의 허지웅 기자의 블로그가 디빠들의 맹폭을 받고 있다.  블로그에 댓글 524개(현재 시간 기준)가 달리는 것도 흔히 보는 광경은 아닌데.  ( 디워 광풍  )   황우석 사건 때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의 블로그에도 500개의 댓글이 달리지는 않았다.   디시인사이드 영화 갤러리에 가봐도 그렇고.

    얼마 전에 British Idol인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Paul Potts가 오페라 Turandot의 Nessun Dorma를 부르면서 전세계적으로 뜬 적이 있었다.  나는 오페라에 조예가 깊질 않아 Paul Potts의 성악이 얼마만큼의 수준인지는 판단을 못하겠다.   어떤 이는 실력만 놓고 따지면 대단한 건 아니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잘 부른다고 하기도 한다.

    Paul Potts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그의 성악 실력 때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설사 그가 훌륭한 노래 솜씨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성악가는 세상에 바글바글할 거라는 것 정도는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Paul Potts와 비슷한 실력을 가졌거나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성악가보다 Paul Potts가 유명해진 이유는, 그의 인생 드라마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핸드폰 세일즈맨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성악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다가 결국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를 가지게 된 Paul Potts의 드라마에 매혹된 것이다. 

    이건 심형래의 디워에서도 마찬가지다.  디워가 개봉되기 전부터 심형래는 자신의 지난 5년(아니면 6년?)간의 고난을 역설했다.  700억이라는 액수와, 영화 제작시의 어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시장에서의 성공’  등등.  그리고 나서는 ‘영화를 보고 나서 판단해달라’라는 말을 했던가? 

    많은 이들(소위 디까들)이 말하는 민족주의 열풍도 이 광풍을 몰아가는 힘이다.  그리고 이런 문맥에서 말하는 민족주의는 민족적 열등감이다.  맨날 당하고 살았는데, 이번에는 한 번 이겨보자는 그 열등감.  (이건 여러 사람들이 말한 것이기에 걍 대충 패스)

    심형래는 영화의 내러티브로는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브라운관에 들이밀면서는 드라마를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그게 어느 정도 먹혀 가는 것 같다. 

    심형래에게는 한국 최고의 코메디언으로서의 경력도 딴따라로서밖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광대의 삶이고, 신지식인으로 지명되면서 700억씩이나 영화 제작에 투자할 수 있는 능력도 그저 고난의 과정이다.  그 누구보다 영화 홍보를 위한 TV 출연을 쉽게 해낼 수 있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모든 충무로의 제작자, 감독, 배우, 스태프들이 똘똘 뭉쳐 왕따시키는 마이너이다.  

    이런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1000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다면, 심형래는 앞으로 영화 각본을 쓸 때 자신이 TV나 인터뷰에서 한 말들을 편집해서 영화로 만드는 게 좀더 드라마틱한 영화를 만드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디워 빠들조차 영화의 스토리는 별 게 없다고 인정을 하지만, 심형래의 인생 드라마에는 감동하지 않았나?

     
    • 호영 12:29 am on August 6, 2007 Permalink | Reply

      인터넷 댓글 문화의 특징은 무언가에 대해 “판단”을 강요한다는 점입니다. ‘좋다’, 혹은 ‘싫다’ 식의 이분법적 의견 피력을 강요받죠.(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말이죠) 가령 ‘디워에 드라마는 없지만 CG는 그럭저럭 볼만하더라’란 댓글을 단 사람 마음속에는 심형래에 대한 편견이나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어떠한 비평이 가미되지 않았더라도 그 댓글 자체는 달리기 무섭게 ‘디빠’ 혹은 ‘디까’ 양진영중 어느 하나로 편입됩니다. 그리고 묘한 것 가운데 하나는 인터넷 문화 가운데 하나가 익명 중에도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무언가에 대해 아주 쎄게 이른바 “까거나” 혹은 “띄웠을 때” 누군가가 짧은 댓글 한줄로라도 인정해주면 우쭐해지는거죠. 그러다보니 인터넷 댓글이나 토론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극단적 표현이 가중되는 성향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인터넷 기사를 볼 때에는 되도록 댓글쪽으로는 스크롤을 내리지 않죠. 어쨌거나 인터넷 댓글이라는거 꽤나 연구해볼 가치가 있는 사회문화적 현상이 아닌가 싶네요.

    • 잠수 6:49 am on August 6, 2007 Permalink | Reply

      응, 좋은 지적이야. 댓글을 다는 사람들마다 목적은 다 다르겠지만, 편갈라서 싸움하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말야. 현실에선 편갈라 싸우면 후유증 등이 부담되지만, 인터넷에서는 걍 잠수타 버리면 상황 끝이니까 편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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