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경향신문, 김인성, JTBC, 알 권리

1.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성완종씨는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 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성완종씨는 자신과 인터뷰한 경향신문 기자에게 인터뷰를 녹음하도록 했고, 인터뷰 중 녹음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거듭 확인했다고 한다.

2. 경향신문은 성완종씨와의 인터뷰 녹음본을 바탕으로 녹취록을 만들었고, 조금씩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3. 김인성은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임을 자처하며 경향신문 기자에게 접근해서 경향신문이 검찰에 제출할 인터뷰 녹음파일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경향신문 기자는 김인성과 함께 검찰에 가서 김인성이 검찰청 건물 내에서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한 파일을 검찰에 제출하고 나왔다고 한다.

그 이후 김인성은 알고 지내던 JTBC 기자의 전화를  받았고, JTBC 기자는 김인성에게 인터뷰 녹음 파일을 달라고 요구했고 김인성은 보도 후에 활용하라고 하면서 음성 파일을 JTBC 기자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4. JTBC는 그 다음날 오전 7시경에 음성 녹음 파일을 방송했다. 손석희 JTBC 사장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음성 녹음 파일을 방송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5. 절도는 유형의 물체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무형의 정보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김인성이 경향신문이 갖고 있던 음성녹음 파일을 자신의 컴퓨터에 복제하는 순간 절도가 성립된다. 만약 김인성이 컴퓨터에 파일을 복제하는 것이 디지털포렌식 작업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면, 복제 자체만으로 절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디지털포렌식 작업이 끝났을 때 김인성은 복제 파일을 자신의 컴퓨터에서 지웠어야 했고,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절도가 성립된다. 이후 JTBC에 그 파일을 넘긴 것은 추가적인 절도.

6. 업무상 배임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함으로써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성립한다. 김인성은 경향신문을 위해 디지털포렌식 작업을 수행했고, 그 임무상 필요한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하여 경향신문에 손해를 가했기 때문에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한다. 만약 김인성이 JTBC에 파일을 넘겨줌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얻었다면 역시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

7. 알 권리는 정부가 갖고 있는 정보에 대해 국민이 열람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알 권리”는 민주국가에 있어서 국정의 공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우리 헌법에 보면 입법의 공개(제50조 제1항), 재판의 공개(제109조)에는 명문규정을 두고 행정의 공개에 관하여서는 명문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나, “알 권리”의 생성기반을 살펴볼 때 이 권리의 핵심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 즉, 국민의 정부에 대한 일반적 정보공개를 구할 권리(청구권적 기본권)라고 할 것이며, 또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천명하고 있는 헌법 전문과 제1조 및 제4조의 해석상 당연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청구인의 자기에게 정당한 이해관계가 있는 정부 보유 정보의 개시(開示) 요구에 대하여 행정청이 아무런 검토 없이 불응하였다면 이는 청구인이 갖는 헌법 제21조에 규정된 언론 출판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의 한 내용인 “알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이외에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핵심이 되는 기본권이라는 점에서 국민주권주의(제1조), 각 개인의 지식의 연마, 인격의 도야에는 가급적 많은 정보에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제10조) 및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제1항)와 관련이 있다 할 것이다.

위의 헌법재판소 결정 요약 내용과 같이,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이 국민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제약되거나 억압되지 않아야 함을 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알 권리” 역시 국가가 국정 정보에 대한 국민의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국가 대 국민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위 결정 요약에서 유추하면, “알 권리”는 사인(私人) 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알 권리”를 주장하면서 어젯밤 친구와 어떤 룸살롱에서 술을 마셨는지 대답하라고 요구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 다른 개인이 경향신문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경향신문이 성완종씨와 인터뷰한 녹취록을 갖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다 알고 있는 경우에도, 국민들은 경향신문에 “알 권리”를 주장하면서 녹취록 전부를 즉시 공개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음은 당연하다.

오히려 사인(私人) 간에는 개인정보 보호 의무, 프라이버시권, 초상권과 같이 개인이 갖고 있는 정보나 개인 그 자체에 대한 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나 보호할 의무가 존재한다.

8. 손석희의 알 권리의 수호자 자임은 견강부회다. 위에서와 같이 성완종 음성파일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JTBC가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나설 근거도 없다. 이런 말도 큰 의미는 없다. 어차피 JTBC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음성파일을 공개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자기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공개한 것이지. 손석희가 이런 사정을 모르고 음성파일 방송을 결정한 것은 물론 아니었을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 운운하며 자신의 결정을 번드르르하게 치장하는 게 뻔뻔스럽다.

9. 이구아나들. 이구아나는 해초를 주로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육식을 하는 종도 있다고 한다. JTBC는 육식 이구아나인듯. 성완종이 말한 이구아나떼에는 인터뷰에서 언급된 정치인들 말고도 언급 안된 저질 언론들도 묵식적으로 포함된다고 봐야겠지.

이번에 사는 차가 당신이 마지막으로 사게 되는 차입니다

주변에 차를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해주는 말이 있다.

“이번에 사는 차가 당신이 생애에서 마지막으로 사게 되는 차입니다. 그러니까 조금 무리해서라도 사고 싶은 차를 사십시오.”

농담이 아니다. 만약 BMW 3를 몰고 싶다면 2천만원 정도 무리해서라도 사라. 포르쉐는 너무 무리하는 건가? 그래도 5천만원 정도 차는 무리하면 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차를 사지 않는다면 BMW (Bus, Metro, Walk)을 타고 다니냐고 반문하지 말 것. 멀지 않은 미래에 자동차는 모두 운전자 없는 차가 될 것이고, 심지어 대부분 자동차가 중앙통제시스템에 의해 효율적으로 운영될 것이고, 사람들은 차를 소유하기보다 사용료를 내게 될 것이다.

사용자의 시각에서 미래의 대중교통이 어떻게 될 것이냐를 보자.

나는 오전 10시30분에 출장을 위해 서울역을 가야 한다. 서울역에서 부산 가는 KTX를 타고 부산에 가서 벡스코를 방문해야 한다.

현재는 지하철, 버스,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서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거기서 아마도 택시를 타고 벡스코를 가게 될 것이다.

미래에는 나는 스마트폰(혹은 다른 디바이스)으로 10시30분에 사무실 앞에 차가 올 것을 요청한다. 10시30분에 운전자가 없는 차가 사무실 앞에 도착할 것이다. 안에 다른 승객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차를 탄다. 그 차는 인공지능의 운전에 따라 나를 서울역에 데려다준다. 나는 KTX를 타면서 부산 도착시간에 맞추어 차량이 오도록 요청한다. 부산역에서 내리면 그 시간에 맞춰 역시나 운전자가 없는 차가 도착한다. 나는 그 차를 타고 벡스코로 간다. 물론 내가 운전할 필요는 없다. 사용료는 건당 낼 수도 있고 한달치 사용료를 합산해서 한꺼번에 지불할 수도 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을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는 차가 모자랄 건데 어떡할 것이냐? 그게 문제가 된다는 의심은 현재의 과학이나 수학의 수준이 어디까지 와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런 문제는 운전자 없는 차 시스템에 완벽하게 현재 시스템을 대체하기 훨씬 전에 이미 해결되어 있을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 미래가 오는 건 아마 10년이면 충분할 듯 싶다. 그래서 지금 BMW3를 사서 10년 정도 타고 다니고 나면 어느새 다시는 자동차를 살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올 것이다. 모두다 사용량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는 조금 더 이용자에게 유리한 시스템이 될 것이다. 물론 자동차 업계들은 좀더 이윤을 내기 위해 그 시스템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려고 하겠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나도 다음차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차종을 고민하는 중이다.

부동산 학습효과

부동산의 문제에 있어서는 사람들의 기억은 다음 세대로 상속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부동산 투자에서 얻은 경험이 아들에게 전수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부동산 투자에 대해 아들에게 얘기해줘도 아들이 그 말을 잘 접수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달리 말하면 부동산 경험은 한 사람 혹은 한 세대 안에서는 잘 보존되는 편이다. 부동산은 언젠가는 오른다는 경험에 바탕한 믿음이 좋은 예이다. 우야든둥 부동산은 언제든 오른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이 “좋아질” 때 부동산을 사고 싶어 한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조금 다른 믿음이 형성되어 있다. 2008년의 버블 버스트를 경험한 미국인이나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인은 부동산은 언젠가는 오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부동산이 빠질 때는 무섭게 빠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다시 생기기 어렵다. 부동산 거품이 다시 생기려면 2008년과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세대들이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후가 될 것이다.

한국은 아직도 부동산 불패신화가 만연해있다. 지금 전국에서 가장 핫하다는 세종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보기엔 이미 꽝인데. 한국의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지려면 부동산 거품이 빠져야 한다. 그러면 현 경제활동 세대는 부동산 불패신화를 버리게 된다. 다시 부동산 거품이 형성될 수 있는 건 경제활동 세대의 교체가 일어난 후가 될 것이다.

저주하는 건 아니고, 한국의 부동산 거품이 빨리 빠지면 좋겠다. 부동산 거품은 어떻게든 터지거나 가라앉거나 하게 된다.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냐는 미지수지만, 종국적으로 어떤 곳으로 나아가게 될지는 거의 분명하다. 그런 경험은 빨리 하는 게 낫다. 조금 속도를 늦춰보려고 돈을 부어넣어봐야 거품만 키우게 된다.

디플레이션

인플레이션과 마찬가지로 디플레이션도 순환성이 있다. 순환성이 있기 때문에 사건의 고리는 결국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디플레이션의 경우 사건의 시작이 어디이고 끝(그러니까 처음으로 돌아오기 전의 단계)가 어디인지는 경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디플레이션에서는 물가하락은 중간 단계이지 시작 단계가 아니다.

엔하위키에서는

물가 하락 -> 상품의 가격이 하락 (아싸! 물가 떨어졌네?!) -> 근데 내 임금도 하락이네?! -> 돈이 귀해지니 투자, 고용등의 소비 전반 위축 -> 결국은 소득 악화 -> 경기 침체 -> 반복 -> 디플레 가속

이런 체인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물가가 그냥 내려가는 건 아니고 그 원인이 되는 이벤트는 소득악화, 투자 위축 등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아니라 선후가 분명하다. (최근 연구로는 달걀이 닭보다 먼저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하던데…)

한국에서의 디플레이션은 임금하락 -> 소비 위축 -> 기업 투자, 고용 위축 -> 실업률 상승, 임금하락 -> 물가하락 -> 거의 동시에 자산가치 하락(아파트값 떨어진다고) ->

이런 순서가 될 것인데, 물가하락이 통계로 잡힐 시점이면 이미 디플레이션이 상당 수준 진행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가하락은 좋은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게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감소하면서 발생하는 사태라서 기업들의 매출 감소로 이어지고 이후의 악순환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라 좋은 것이 아니다.

물가하락 이후에 자산가치 하락이 이어질 것인데, 이번 정부 들어서도 신나게 풀어놓은 주택담보대출(이걸 요즘은 “주담대”라고 하더군)의 회수가 난망해지는 상황이 될 것이고 그 경우 은행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2008년 이후에 뱅크런이란 단어를 또 듣게 되는 것인가?

그 와중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안을 들고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이제서나마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해법이 잘못된 걸 어떡하나? 올해 초에 연말정산 대란 일어났을 때,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100분 토론에 나와서 연말정산을 변호했었다. 그때 방청객 중 한 명이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 인상하지 않고 서민들에게 세금 인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최경환 부총리는 순수했다. 최 부총리는 아마 정치인은 못될 것 같다. 최 부총리의 답은 이랬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많이 걷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씩 걷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젼 토론쇼에서 이렇게 솔직해도 됩니까?

최 부총리가 솔직하다는  것은 작은 흠결이다. 흠결이 아닐 수도 있다. 속 생각을 그대로 말해주니까. 큰 흠결은 이거다. 올해 1월에 이미 디플레이션 경고가 나오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서민 증세를 하겠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3월이 되어 디플레이션 우려가 더 커지니까 최저임금 인상을 들고 나왔다.

세금 구조를 서민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것은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이고 그렇게 했어야 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효과가 현재로서는 미미하다. 최저임금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편의점 알바 같은 일자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편의점주 같은 영세 자영업자에게 마찬가지로 큰 영향을 미친다. 가계의 대부분을 이루는 월급생활자들은 최저임금 이상 수준을 대부분 받는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월급이 올라갈 가능성이 낮다. 즉,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나지 않고 디플레이션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다.

가끔은 나도 궁금할 때가 있다. 최 부총리나 경제부처들이 정말 진지하게 경제를 고민하는 것인지 아니면 포퓰리즘에 매몰되어 듣기 좋은 말들만 양산하는 것인지. 가끔은 진지한 정책을 내놓으려 할 때도 있어 보이거든. 대부분은 안 그래서 결국 정해진 결론을 내리게 되긴 하는데.

 

국뽕 쿨타임이 다 되었나?

명량은 우째 국뽕 토네이도가 안 분다 했다. 아직 쿨타임이 안 되어서 그랬지?

영화 국제시장에서 국뽕 타임이 돌아왔네. 여전히 허지웅, 진중권 이런 이름들이 불려나오고 이번엔 듀나도 끌려나오는듯. 국뽕 좀 빨지 말라고 말해도 중독자한테 그 말이 들릴 리가 있나? 그래서 뽕쟁이는 교정시설에 집어넣어야 한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