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n v. Board of Education

이전 네이버 블로그에 써놓은 글을 이번 기회에 약간 손질해서 이 곳으로 옮긴다. 상당히 지루한 글이다.  요약글을 펼치면 워드 문서로 약 28페이지에 해당하는 글이 나온다.  긴 글 싫어하는 분들은 참고 요망.

———————————————————–

미국의 기념비적 대법원 판결 (1)
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 Kansas (347 US 483, 1954)

50년전 5월 17일 = 1954년 5월 17일에 있었던 일 중 하나. 미 대법원에서 Brown v. Board of Education의 결정을 내렸다.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은 별 신경쓰지 않고 지나가는 이 사건은 인권운동가들과 법률가들에게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이른바 기념비적 결정 중의 하나로 꼽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1. Brown이 누구일까?
(http://www.watson.org/~lisa/blackhistory/early-civilrights/brown.html)

Brown v. Board of Education은 아마도 미국의 역사에서 영원히 회자되는 사건일 것이다. 그런 판결의 제목에 자기의 이름이 쓰여진다는 건 굉장한 영광일 거다. 만약 Kyeong v. A**holes in the White House란 판결이 있다면 내 이름도 아마… ^^

위의 링크를 따라가보면 배경 설명이 나온다. 귀차니스트들을 위해서 대충 설명을 하자.

1950년대 초반에는 공립학교에서 인종분리(racial segregation)이 미국 전체의 규범이었다. 백인은 백인학교에 흑인은 흑인학교에. 이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회분위기였다. 그리고 상상하기 어렵지 않게, 흑인학교는 백인학교에 비해 모든 면에서 현저하게 뒤떨어져 있었다.

Brown v. Board of Education의 제목을 장식하는 원고 Linda Brown은 캔자스주의 토피카에 사는 초등 3학년생이었다. 린다는 백인학교가 집에서 7 블락 떨어져 있는데도 (가깝다) 흑인이기 때문에 백인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1마일 (1.6킬로미터)이나 떨어진 흑인학교를 걸어서 다녀야 했다. 린다의 아빠 올리버 브라운씨는 린다를 백인초등학교에 전학시키려 했는데, 백인학교의 교장이 거절했다.

올리버 브라운씨는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NAACP, 아주 유명한 인권단체임)으로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고, NAACP는 브라운씨 가족을 돕기로 한다. 그리고 이 소송에 많은 사람들이 합류해서 집단소송(class action)의 형태로 법정에 가게 된다.

2. 일심에서의 재판

1951년 6월 25/26일 캔자스의 연방일심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었다.

NAACP의 주장은 이랬다:

(1) 학교에서 인종을 분리하면 흑인 어린이들에게 그들이 백인보다 열등하다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에 분리는 본질적으로 불평등하다.

이에 대해 Board of Education (피고였음. 한국으로 말하면 장학회 쯤 되는 듯)은 이렇게 반박했다.

(1) 미국 전지역에서 인종분리가 만연해 있고, 생활의 모든 면에서 인종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인종을 분리하는 것이 흑인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겪게 될 인종 분리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다.

(2) 인종분리가 흑인 어린이에게 해로운 점이 없다. Frederick Douglass, Booker T, Washington, George Washington Carver같이(누군지 잘 모름) 훌륭한 흑인 미국인들은 인종분리된 학교보다 더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 성공했다.

얼마나 어이없는 주장인가? 진짜 x 같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주장인데,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1950년의 미국이었던 것이다. 제 정신이 박힌 판사였다면 장학회의 논리를 그냥 웃어넘겼을 거다. 그리고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들은 제 정신이 박혔던 사람들 같다. 그래서 그들은 아래와 같이 쓴다.

백인과 유색 어린이를 학교에서 분리하는 것은 유색 어린이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 열등감 때문에 어린이들이 배울 동기를 잃게 된다.

Segregation of white and colored children in public schools has a detrimental effect upon the colored children…A sense of inferiority affects the motivation of a child to learn. [8]

(공립학교에서 백인과 유색 어린이를 분리하는 것은 유색 어린이에게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 열등감은 어린이가 배우려고 하는 의욕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일심법원에서는 넘기 힘든 벽이 있었다. 대법원 판결에서 결국 뒤집게 되는 Plessy v. Ferguson 판결이다. 대법원에서도 Plessy v. Ferguson과 Sweatt v. Painter 케이스를 갖고 교통정리를 하기 위해 무던 애를 쓴다. 어찌 됐든, 대법원이 Plessy v. Ferguson을 뒤집기 전까지는 일심법원은 Plessy v. Ferguson을 따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일심법원은 장학회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Plessy v. Fergusond은 대법원 판례로서 여전히 유효했기에 그 판례를 뒤집기 전에는 Brown v. Board of Education 케이스를 대법원이 원했던 대로 끌고 가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Brown v. Board of Education 케이스에서 미연방대법원을 그토록 골치 아프게 했던 Plessy v. Ferguson 케이스를 짚어보기로 하자.

3. 뒤집히게 되는 대법원 판례: Plessy v. Ferguson (163 US 537, 1896)

1896년은 1865년으로부터 31년이 지난 후다. 1865년은 13th Amendment가 통과된 해다. 13th Amendment는 노예제 폐지를 헌법상에 추가하는 수정법안이다.

Amendment XIII to the Constitution
Section 1. Neither slavery nor involuntary servitude, except as a punishment for crime whereof the party shall have been duly convicted, shall exist within the United States, or any place subject to their jurisdiction.
Section 2. Congress shall have power to enforce this article by appropriate legislation.

13th Amendment는 그야말로 노예제의 폐지일 뿐, 백인과 흑인의 평등을 지향하는 법안은 아니었다. 13th Amendment가 통과된 후에도 인종차별은 버젓이 미국사회를 뒤덮고 있었다.

인종간의 평등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안은 14th Amendment였다. 14th Amendment는 13th Amendment가 통과된지 3년 후인 1868년 통과되었다. 이 수정헌법의 1항은 미국헌법재판 사상 가장 많이 주제가 되는 조항이다. 흔히 Privileges and Immunities Clause, Equal Protection 및 Due Process clauses라고 불리는 조항들이 들어있다. 14th Amendment는 1868년 통과되었다. 시민의 평등을 보장하는 14th Amendment가 통과된지 28년만에 Plessy v. Ferguson 케이스가 판결된다.

Amendment XIV
Section 1. All persons born or naturalized in the United States, and subject to the jurisdiction thereof, are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and of the state wherein they reside. No state shall make or enforce any law which shall abridge the privileges or immunities of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nor shall any state deprive any person of life, liberty, or property, without due process of law; nor deny to any person within its jurisdiction the equal protection of the laws.

 

4. Plessy는 누구인가?

이 판결의 원고인 Plessy는 루이지아나주에 사는 사람이었다. Plessy는 흑인의 피가 1/8 섞여 있는 사람이었다. 1/8의 피가 섞이려면 증조할아버지대에 흑인피가 섞이고, 그 이후로는 계속 백인과만 결혼이 이루어진 집안이어야 한다. 아마도 증조할머니가 흑인이고, 그 이후로는 계속 백인과만 결혼을 해서 Plessy가 태어난 게 아닌가 싶다.

1/8이 흑인피라면 겉으로 보기에 쉽게 드러나진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1/8이 흑인피라면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라고 볼 수 있지도 않을가 싶다. Plessy는 그의 Writ of Prohibition에서 자신의 흑인피는 거의 표시가 안 난다고 주장하며, 백인이 가지는 모든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루이지아나의 법원은 Plessy를 유색인(colored person)으로 판정한다. 연방대법원은 사람이 백인인가 유색인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법에 따라야 한다며 루이지아나 법원의 판결을 승인한다.

토마스 제퍼슨이 많은 흑인 노예들과 잠을 자서 후손을 만들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토마스 제퍼슨 뿐만 아니라 많은 백인들이 흑인들과의 잡종교배를 통해 피가 섞인 후손을 낳았을 것이다. 흑인과 백인이 잡종교배가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백인이나 유색인이냐를 가르는 문제만큼은 분명했을텐데, 그 문제마저도 간단하지는 않다.

이 문제에 대해서 대법원은 주법을 그대로 따른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조금만큼의 검정색이(any visible admixture of black) 눈에 띄어도 유색인으로 간주했고, 오하이오에서는 흑인의 피가 50% 이상이면 유색인이라 간주했고, 어떤 주에서는 백인의 피가 75%이상 있어야 백인으로 간주했다.

백인과 유색인을 가르는 전국통일의 기준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대법원은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다.

It is true that the question of the proportion of colored blood necessary to constitute a colored person as distinguished from a white person, is one upon which there is a difference of opinion in the different states.
(유색인이 되는 데 유색인의 피가 얼마나 섞여야 하는 데는 주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문제이다.)

당연히 주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다른 의견을 용인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헌법에서 14th Amendment만큼이나 많은 주제가 되는 항목이 Commerce Clause인데, Interstate Commerce에 영향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 연방의회가 법률을 통해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Commerce Clause의 범위를 놓고 많은 판례들이 있어왔고, 아직도 Interstate Commerce와 Intrastate Commerce사이의 경계선은 대법원의 구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주경계선을 넘어서 여행을 하고 있고, 또 그 과정에서 인종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다면 Commerce Clause에 따라 연방의회가 인종 구분의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데는 역대 어떤 대법원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찌 됐든, Plessy가 유색인종이란 것은 대법원이 루이지아나의 판정을 승인했으므로 더 이상 논쟁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Plessy의 케이스는 스스로가 유색인종으로서 차별을 받았다는 요지이기 때문에 Plessy로서도 자신이 백인이라고 주장할 이유는 없었다.

5. Plessy v. Ferguson 의 사건 개요: 무슨 일이 발생했나?

Plessy는 1892년 6월 7일 (대법원 판결이 1896년이니까 4년 동안 재판을 했다는 얘기다) 뉴올리언즈에서 코빙턴까지 1등석 요금을 내고 기차를 탔다. 뉴올리언즈와 코빙턴은 둘다 루이지아나주에 있는 도시인데, 두 도시 다 루이지아나주에 속해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 된다. 루이지아나에는 그 당시 기차에 백인 기차간과 유색인 기차간을 분리해놓도록 하는 법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차를 타면 유색인은 유색인 칸에만 탈 수 있고, 백인은 백인칸에만 탈 수 있었다.

Plessy는 자신의 1등석 기차표를 들고 백인칸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판결문에 의하면, Plessy는 스스로를 백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당당하게 백인칸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차장이 백인칸에 들어갔다가 Plessy를 보고는 흑인칸으로 옮기라고 요구하고 Plessy는 이를 거부한다. 그 거부의 이유가 자신이 백인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백인과 유색인의 차별에 항거하기 위한 숭고한 행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처음에는 자신이 백인이라고 계속 주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사건이 소송으로 이어지자 기차칸 차별법의 위헌을 주된 소송의 이유로 내세우게 되었던 것 같다.

어쨌든 Plessy는 계속 고집을 부리면서 백인칸에 남아있겠다고 하고 결국은 경찰까지 출동해서 Plessy를 강제로 흑인칸으로 보낸다. 그리고 그 이후 형사상의 기소를 받게된다. 이후 법적인 절차를 거쳐 연방대법원에 항소하게 되면서 이 판결이 내려지게 된다.

6. Plessy v. Ferguson 판결의 정치성과 수사

재판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정치적 판결’이다. 과연 정치적 판결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있다면 과연 어떤 판결이 정치적 판결인가?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 질문을 새롭게 만들어 보자. 과연 정치적 판결이 아닌 판결이 있을까?

일심이나 이심에서는 정치적 판결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일심이나 이심 재판부에서 판결할 때는 대법원을 비롯한 상급법원 및 법률에 의한 제약을 많이 받기 때문에 판사의 임의대로 판결을 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일심 및 항소심과는 많이 다르다. 대법원 재판에서는 헌법의 의미가 무엇이냐에 대한 판사들의 의견이 재판의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대법관들이 ‘나는 헌법의 이 구절이 이런 의미라고 생각해’라고 말해버리면 이의를 달 수 있는 사람은 동료 대법관들 뿐이다. 하나의 판결을 통해 미국 전체의 교육구(school district)를 바꿔버릴 수 있기에 대법관들의 권력이란 엄청난 것이다.

그들을 제어하는 기관은 누구일까? 삼권분립(Checks and Balance) 원칙에 의해 대통령과 의회가 대법원을 견제하지만, 대통령은 대법관 임명의 권한을 가질 뿐이고 일단 임명한 후 대통령은 대법관에 대한 통제력이 없어지고, 의회는 탄핵(impeachment)에 의해 대법관을 견제할 수 있지만 탄핵이 쉽지도 않고 탄핵이 이뤄졌다 하더라도 탄핵 심판을 거쳐 대법관이 파면당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거의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체이면서 그들의 판결문이 갖는 엄청난 효력 때문에 실제적으로 현재 미국에서 대법원은 대통령이나 의회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듯 보인다.

그런 그들을 제약할 수 있는 것은 헌법 뿐이다. 그리고 그 헌법이란 많은 법률가들에게 밥벌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겠지만 아주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게 쓰여져 있다. 오늘도 수많은 법률가들이 추상적인 헌법의 글귀들을 현실세계에 적용시키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거나 혹은 부유한 삶을 산다.

그 추상적인 헌법이 실제 상황에 적용될 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에 대해 최종적인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대법관들이다. 그들이 헌법의 최종적인 해석자이고 판단자라고 선언한 것이 그 유명한 Marbury v. Madison 케이스이고 그 이후 대법원을 위시한 사법기관들은 법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배타적인 권한을 누려왔다.

그러면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은 헌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있어 정치성이 배제된 판결을 내리고 있는 것인가? 내 대답은 ‘아니오’이다.

모든 인간의 행위는 정치이다라는 근본주의적 시각을 가지지 않더라도, 대법원의 판결들은 항상 정치적이었다. 대법원이 판결하는 케이스들 자체가 정치적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또한 정치적인 입장 없이 법리만으로 판결을 한다는 것이 과연 법철학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하는 질문도 해볼만 하다.

<Billings Brown 대법관 사진>

거두절미(긴 대가리를 잘라서 몸통으로 들어가자면)하자면…. (대가리가 너무 길었는데) 이 판결 역시 상당히 정치적이다.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수사적(rhetoric) 표현이 이용되고 법리와 논리와 수사의 다툼이 벌어진다.

The object of the amendment was undoubtedly to enforce the absolute equality of the two races before the law, but, in the nature of things, it could not have been intended to abolish distinctions based upon color, or to enforce social, as distinguished from political, equality, or a commingling of the two races upon terms unsatisfactory to either. Plessy v. Ferguson, 163 U.S. 537, 544.
(14차 수정헌법의 목적은 의심할 바 없이 법 앞에서 두 인종간에 절대적인 평등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물의 본질상, 14차 수정헌법이 피부색에 따른 차이를 말소한다거나, 정치적 평등과 구별되는 사회적 평등을 강제하려 한다거나, 혹은 한쪽 인종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조건에서 두 인종이 섞이도록 하는 것을 의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판결의 다수 의견은 Justice Brown이 썼다. 위의 문단은 이 판결의 다수의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우선 문장의 톤을 보면 Brown은 너무나도 확신에 차서 14차 수정헌법의 목적이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가 14차 수정헌법의 목적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다. Brown의 약력을 살펴보지 않았지만 14차 수정헌법이 Plessy v. Ferguson보다 30년 정도 앞서기 때문에 Brown이 그 때도 판사를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가 14차 수정헌법을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14차 수정헌법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대해 확신에 차서 말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대법관들은 항상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한다.(“의심할 바 없이”) 헌법의 목적은 이러이러한 것이었다고. 대법관들 나름대로 연구하고 조사해서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의견을 썼겠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한 문헌은 없다. 어떻게 아냐고? 소수의견을 읽어보면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14차 수정헌법의 의미가 무엇이냐에 대한 의견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

헌법의 목적에 대한 문헌을 찾아봐도 자기 입장을 지지하는 자료를 찾을 수 없을 때 대법관은 자연의 본성에 의지하기도 한다.(“사물의 본질상,…”) 언제부터 사물의 본질이 대법원의 판결의 근거가 되었나? 그리고 사물이 본질상 사회적 평등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과연 옳은 명제인가?

이런 물음들은 유려한 문장에 파묻혀서 지나가 버리고, 이 하나의 문단은 50여년 동안 미국 사회가 ‘동등하지만 분리된 (equal but separate)’ 사회로 유지되도록 뒷받침하는 가장 권위있는 언어가 된다.

이 문단이 정치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가? 대법원의 모든 판결은 정치적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정치적인 판결은 유려한 문장과 정치한 논리 그리고 수사를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다른 사람에게 납득시키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니까.

Brown은 법앞의 평등과 사회적 평등 그리고 인종의 섞임에 대한 구분을 하고 있다. 기차칸에서 백인과 흑인이 구분되어 앉는다고 해서 법앞의 평등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Brown이 말하는 법앞의 평등은 법률에 의해 제공되는 권리를 동등하게(똑같이가 아니고) 누릴 수 있을 때 이뤄진다고 말하는 듯 하다. 다시 말하면, 투표의 권리, 참정권, 교육의 권리 등등의 권리들이 “동등하게” 제공된다면 법 앞의 평등이고, 거기에 ‘사회적 평등’이 제공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Brown이 말하는 정치적 평등에 따르면, 백인 기차칸과 흑인 기차칸이 같은 스펙의 차량이고 시설도 같고, 같은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백인칸과 흑인칸으로 갈라놓는다고 해서 정치적 평등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Brown이 말하는 사회적 평등은 백인이 다니는 학교를 흑인도 다닐 수 있고, 백인이 타는 기차를 흑인도 탈 수 있고, 백인이 묵는 호텔에 흑인도 묵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물의 본질상, 14차 수정헌법을 만든 사람들이 사회적 평등 및 흑인과 백인의 뒤섞임을 의도했을 수 없다고 Brown은 말한다. In his own fancy world! Or in his own limited world.

Brown이 살아오면서 접한 사람들은 결코 백인과 흑인이 뒤섞여사는 걸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스스로도 백인 가정에 태어나 흑인 노예를 부리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 개인적 경험을 갖고 있는 Brown과 그리고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백인 주류 친구들이 14차 수정법안을 작성했다고 가정하면, 그들은 머리 속에 백인과 흑인이 섞여 사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고 14차 수정법안을 썼을 거라고 Brown이 상상했을 것이다.

자신의 세계와 경험을 사물의 본질(nature of things)라고 표현한 Brown은 아마도 의식의 본질(nature of minds)이라고 까지 말할 용기는 없었는지 모른다. 흔히들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게 마련(Reasonable minds may differ)이라는 말을 연상시키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다. 흑인들이 수정헌법을 썼으면 그들의 의식(minds)에서는 분명 사회적 평등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John Marshall Harlan 대법관>

‘법리’라는 말이 있다. Legal Reasoning이랄까 아니면 그냥 간단하게 Law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법을 공부하다 보면 과연 ‘법리’란 게 존재하는 것인지 궁금해하게 된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케이스가 법리에 의해서 결정지어지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그 첫번째 이유는 미국의 법관들이 대부분 학부에서 영문학이나 유사한 인문학을 전공해서 문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뛰어난 문장력과 수사법으로 독자를 현혹시킬만한 판결문을 써내려 간다. 비판적인 마음을 가지지 않고 읽게 되면 너무나 쉽게 판결문의 논리에 따라 흘러가게 된다.

두번째 이유는 법리라는 게 종종 판사들이 자신의 판결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하나의 이슈에 대해 적용가능한 법리가 하나 이상이다. 그리고 법리들은 서로 상충하기도 한다. 판사는 자신의 판결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의 법리를 이용하고 다른 하나의 법리를 극복하려 한다.

Plessy v. Ferguson에서 Brown 대법관이 이용한 법리는 Police Power이다. 미국의 연방제도는 연방정부와 주정부간의 마찰과 협조를 통해 발전해왔다. 그 근간을 이루는 내용은 10차 수정헌법(10th Amendment)이다.

The powers not delegated to the United States by the Constitution, nor prohibited by it to the States, are reserved to the States respectively, or to the people.
(주정부에서 연방정부에 이양하지 않은 권력을 각각의 주가 여전히 가지게 된다.)

 

원래 10th Amendment의 정신이 어떠했든간에, 이 조항은 대법원이 주정부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 할 때 좋은 핑계거리로 이용된다. 연방정부에 이양되지 않은 권력의 대표적인 예는 police power이다. Police power라 해서 경찰을 유지하고 운용하는 것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고, 건강, 복지, 의료 등의 주민생활 전반에 걸친 공적인 서비스를 규제할 수 있는 권력을 말한다.

Brown대법관이 루이지아나의 백인칸/흑인칸 기차법을 합헌이라고 판결하기 위해 이용한 법리가 바로 Commerce Clause과 Police Power (10th Amendment)이다. Brown대법관은 여러 가지 예를 들어가며 백인칸/흑인칸 기차법이 Police Power의 영역에 들어가며 따라서 Commerce clause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연방대법원에서 이러쿵저러쿵할 문제가 아니라 주정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라고 판결을 내린다.

Laws permitting, and even requiring, their separation, in places where they are liable to be brought into contact, do not necessarily imply the inferiority of either race to the other, and have been generally, if not universally, recognized as within the competency of the state legislatures in the exercise of their police power. Plessy v. Ferguson, 163 U.S. 537, 544.
(두 인종이 접촉을 할 가능성이 높은 장소에서 인종간의 분리를 허용하거나 혹은 강제하기까지 하는 법이 있다고 해서 한 인종이 다른 인종에 대해 열등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법은 일반적으로, 비록 모든 주에서 그렇지는 않지만, 주 입법부의 police power 행사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을 제거하고, 아주 단순하게 법률을 바라본다면 Brown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백인, 흑인, 아시안, 인디안이 아무런 사회적 불평등 없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백인 기차칸, 흑인 기차칸, 아시안 기차칸, 인디안 기차칸을 나누어 놓았다면 Brown의 말대로 한 인종이 다른 인종에 대해 열등하다는 암시를 하는 게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노예제도가 폐지된지 30년밖에 되지 않은 1896년에 인종간의 분리가 흑인이 열등함을 암시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소수의견을 쓴 Harlan 대법관의 의견에는 분통이 가득차 있다. Harlan이 일갈한다.

The white race deems itself to be the dominant race in this country. And so it is, in prestige, in achievements, in education, in wealth, and in power. So, I doubt not, it will continue to be for all time, if it remains true to its great heritage, and holds fast to the principles of constitutional liberty. But in view of the constitution, in the eye of the law, there is in this country no superior, dominant, ruling class of citizens. There is no caste here. Our constitution is color-blind, and neither knows nor tolerates classes among citizens. Plessy v. Ferguson, 163 U.S. 537, 559.
(백인종은 이 나라에서 지배적인 인종이라 스스로 생각한다. 실제로 그들의 특권, 성취, 교육, 부, 그리고 권력에서 실제로 백인종이 지배적인 인종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그들의 위대한 전통을 유지하고 헌법상의 자유라는 원칙을 고수한다면 계속 지배적인 인종이 될 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헌법의 관점에서, 그리고 법의 눈으로 본다면, 이 나라에는 우월하고, 지배적이고 통치하는 시민 계층은 없다. 우리나라에는 카스트 제도가 없다. 우리의 헌법은 색을 구별하지 않으며 시민들 간에 계층을 인정하지 않으며 또한 허용하지 않는다.)

 

번역해놓으니 그다지 힘이 없는데, Our constitution is color-blind는 Harlan의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Harlan은 형식적으로는 ‘equal but separate’를 표방하면서 사실상은 인종차별을 명백히 의도하고 있는 루이지아나의 백인칸/흑인칸 기차법에 대해 ‘thin disguise’라는 말로 냉소를 보낸다.

The thin disguise of ‘equal’ accommodations for passengers in railroad coaches will not mislead any one, nor atone for the wrong this day done. Plessy v. Ferguson, 163 U.S. 537, 562.
(기차의 객차에서 승객들에게 ‘동등한’ 설비를 제공한다는 이’얄팍한 눈속임’은 아무도 속일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오늘 우리가 행한 이 나쁜 일에 대해 어떤 보상도 해주지 못할 것이다.)

 

Harlan은 다수 의견에 저주를 퍼붓기까지 한다.

In my opinion, the judgment this day rendered will, in time, prove to be quite as pernicious as the decision made by this tribunal in the Dred Scott Case. Id. 559.
(내 생각에는 오늘 내려진 이 판결은 시간이 지나면 우리 법원에서 판결했던 Dred Scott Case만큼이나 잘못된 결정이었음이 밝혀질 것이다.)

 

Dred Scott Case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1896년의 분위기에서 이 정도까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Harlan도 상당한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한편, Brown 대법관이 이용한 법리를 한 번 살펴보자. Brown대법관이 논리는 백인칸/흑인칸을 구별하는 법안을 제정하는 것은 주의 police power에 속한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이슈를 연방정부의 commerce clause power와 주정부의 police power 간의 conflict로 단순화시킨다.

Commerce Clause power는 연방헌법에서 연방정부에 권한을 부여하는 도구이다. 어떤 행위가 주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상업행위에 해당할 경우(interstate commerce) 연방정부가 법률을 제정하여 규제할 수 있고, 연방정부의 권한은 주정부의 권한에 앞선다.

Police power는 전통적으로 주정부가 규제해왔던 분야에 대해서는 연방정부가 간섭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Brown은 루이지아나주의 백인칸/흑인칸 법이 인종차별이냐 아니냐는 질문은 회피하고, 이슈를 기계적인(기계적으로 보이는) commerce clause와 police power간의 충돌로 축약시킴으로써 인종차별 이슈에 대해 과도하게 언급하는 것을 회피함과 동시에 주정부가 자유롭게 ‘분리법(segregation law)’를 입법할 수 있도록 허가증을 발급한다.

반대의견을 쓴 Harlan은 commerce clause과 police power간의 충돌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인종차별 이슈를 공격한다. 인종차별이라는 큰 주제에 대해 정치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Brown의 법리적인 논리가 과연 타당한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Brown이 말한 ‘laws permitting their separation, …, have always been recognized within the competency of the state legislatures in the exercise of the police power.’ (인종차별 법은 항상 주정부의 의회가 police power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라는 말은 과연 맞는 말인가?

Brown은 자신의 판결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예를 든다.

(1) 학교의 인종 분리

Brown은 우선 백인학교/흑인학교를 분리하는 것이 주정부의 police power의 합당한 행사에 해당한다는 예를 든다. Plessy v. Ferguson 케이스가 Brown v. Board of Education보다 약 50년 전의 케이스이므로 백인학교/흑인학교 분리가 전국적인 규범이었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Brown은 주법원에서 백인학교/흑인학교의 분리를 합헌이라고 판결해왔다는 점을 예로 든다. Brown은 수많은 케이스를 예로 든다. 여기서 판사들이 종종 쓰는 수법이 등장한다. 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놓치기 쉬운 수법인데, Brown이 예시한 판례들은 모두 주정부의 판례들이다.

주정부의 판례를 이용하면 안 되는 것인가?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미대법원의 판결은 모든 하위법원들의 판결에 우선한다. 하위법원들의 판결에 잘못이 있을 때 그 잘못을 바로잡는 판결을 내리는 것이 미대법원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대법원이 하위법원의 판결을 예로 들면서 인종분리가 police power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은 얄팍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만약 하위법원의 판결에 따라서 대법원이 판결을 내린다면, 대법원까지 케이스를 가지고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Brown이 논증하고자 하는 이슈가 연방헌법의 이슈인 commerce clause와 police power간의 경계를 긋는 작업이라면 더욱더 대법원에서 하위법원의 판결에 상관없이 최종적이고 권위있는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 Brown은 여기서 첫번째 잘못을 저질렀다.

(2) 인종간 결혼 금지

Brown은 인디아나주의 케이스 하나를 예로 들며, 백인과 유색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이 미국의 모든 주에서 police power에 속함이 받아들여져 왔다고 말한다. 제시하는 판례의 수가 하나밖에 없으면서 모든 주에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더욱 말이 안되는 것은 역시 주법원의 판례를 인용하면서 인종분리가 police power에 속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 케이스는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이고 미 연방대법원은 어떤 내용이 police power에 속하고 어떤 내용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최종적이고 권위있는 판결을 내릴 권한이 있고, 그래야만 한다. 즉, 인디아나주 대법원이 인종간 결혼 금지는 police power에 속한라고 말하더라도 연방대법원이 ‘그건 police power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그런데 Brown은 하위법원인 주법원의 판례를 들면 그런 책임을 슬쩍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3) 정치적 평등은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Brown은 투표권에 차별을 두고 있는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법이 위헌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마치 다음의 공격을 준비하며 몸을 웅크리는 것처럼. 게다가 연방대법원이 인종분리를 금지한 주법에 대해서도 police power의 영역이라며 합헌이라고 판결내린 적도 있음을 내세우며 자신이 균형잡힌 법관이라는 주장을 은근히 하는 듯 하다.

그리고 마지막 답변을 낸다. 뉴올리언즈와 코빙턴은 다 루이지애나 주에 속한 도시이다. 뉴올리언즈와 코빙턴까지 운행하는 기차는 주경계선 내의 활동(intrastate commerce)이고 주경계를 넘는 활동(interstate commerce)이 아니다. 따라서 연방법원의 관할이 아니다.

공공시설에서의 인종분리는 police power에 속할 뿐더러, 기차가 주경계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intrastate commerce라서 연방정부의 commerce clause power가 닿을 수 없다. 그러므로 주정부가 마음대로 입법할 수 있다. 결국 루이지아나주의 백인칸/흑인칸 법은 합헌이다. 땅땅!!!

동의할 수 있는지?

7. 영원한 주제 Reasonableness

인종분리가 police power의 영역에 속한다고 판결함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주정부가 police power를 행사할 때에도 reasonable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기 때문이다. Brown대법관은 루이지아나주의 백인칸/흑인칸 법이 reasonable한 police power의 행사라고 주장한다.

미국법에서 reasonableness는 모든 법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이용되는 단어이다. 판례법(common law)에 기반한 사법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reasonableness에 대한 논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과연 루이지아나주의 백인칸/흑인칸 법은 reasonable한 police power의 행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Brown은 reasonablenss 이슈는 사회의 관행, 관습, 그리고 전통을 생각해서 사회가 평화롭고 질서있게 유지될 수 있도록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In determining the question of reasonableness, it is at liberty to act with reference to the established usages, customs, and traditions of the people, and with a view to the promotion of their comfort, and the preservation of the public peace and good order.
(Reasonableness 문제를 결정할 때 주정부는 확립된 관행, 용도, 전통 등을 참조하여, 사람들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공공의 평화와 질서를 보존하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판사들이 이용하는 수사법(rhetoric)의 예이다. Reasonablenss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것은 헌법에 쓰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전을 보고 사전의 뜻에 따라 판결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사전의 애매모호함은 단어 자체의 애매모호함을 능가하지 않는가?

Brown은 이 케이스에 대해 자기가 생각하는 reasonableness를 정의하고 선언한다. 그런데 그가 이용한 표현들을 보면 그가 어느 방향으로 판결을 끌고 가려는지 너무나 명확하다. 위 문장에서 쓰인 단어들은 이른바 보수주의자들이 좋아하는 단어들의 나열이 아닌가? 현상유지(status quo)가 좋아! 지금 이대로 살자!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즐겨 쓸만한 단어들이 아닌가?

만약 Harlan이 다수의견을 썼다면 이렇게 썼을까?

In determining the question of reasonableness, one must detach oneself from the locally accepted notions of what is helpful for preserving the status quo of one state, and must try to reach a universally acceptable thesis that would further the justice and equality of the people’s country.
(Reasonableness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는, 판사는 한 주의 현상유지를 위해 뭐가 좋은지에 대해 그 주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에는 신경 끄고, 국민의 국가인 미국의 정의와 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해 도움이 된다고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명제를 도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쨌든 Harlan이 아닌 Brown이 다수의견을 썼고, Brown은 자신이 제시한 Reasonableness의 정의에 따르면 백인칸/흑인칸 분리는 백인학교/흑인학교 분리보다 더 unreasonable하지 않다고 결론 짓는다. Reasonableness에 대한 최종적 결정을 대법원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대법원의 다수 판사들이 그렇다고 결정 지으면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서머리를 다시 하자면, 백인칸/흑인칸 구별법은 루이지아나의 경계 안에서 운행되는 열차에 대해 적용될 때는 police power에 해당하며, 연방대법원이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 주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다. Police power의 행사는 reasonable해야 하는데, 루이지아나주의 백인칸/흑인칸 구별법은 reasonable하다. 따라서 합헌이다.

Harlan 대법관의 반대의견

(1) 개인의 자유

Harlan은 루이지아나의 백인칸/흑인칸 법이 겉으로는 ‘equal but separate’를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흑인들이 백인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지적한다.

Everyone knows that the statute in question had its origin in the purpose, not so much to exclude white persons from railroad cars occupied by blacks, as to exclude colored people from coaches occupied by or assigned to white persons. … The thing to accomplish was, under the guise of giving equal accommodation for white and blacks, to compel the later to keep to themselves while traveling in railroad passenger coaches. 163 U.S. at 557.
(루이지아나법의 목적이 백인이 흑인칸에 못가도록 하기 이해서라기보다, 유색인종이 백인칸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모두 안다. 그 법이 이룩하려던 목적은 흑인이 기차칸에서 자기들끼리만 모여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그 목적을 흑인과 백인의 동등한 편의 제공이라는 속임수 하에서 이룩하려 했다.)

 

Brown은 형식논리를 이용해서 이슈에서 정치적 사회적 색채를 가급적 제거하고 단순한 이슈로 취급하려 노력한 반면, Harlan은 루이지아나 법의 배경에 깔린 진짜 이야기를 끌어내어서 논쟁하려고 한다.

Harlan은 Brown이 대답하기 힘들어할 질문을 제기한다.

If a state can prescribe, as a rule of civil conduct, that whites and blacks shall not travel as passengers in the same railroad coach, why may it not so regulate the use of the streets of its cities and towns as to compel white citizens to keep on one side of a street, and black citizens to keep on the other? Why may it not, upon like grounds, punish whites and blacks who ride together in street cars or in open vehicles on a public road or street? Why may it not require sheriffs to assign whites to one side of a court room, and blacks to the other? And why may it not also prohibit the commingling of the two races in the galleries of legislative halls or in public assemblages convened for the consideration of political questions of the day? Further, if this statute of Louisiana is consistent with the personal liberty of citizens, why may not the state require the separation in railroad coaches of native and naturalized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or of Protestants and Roman Catholics? 163 U.S. 537, 557-8
(만약 주정부가 시민의 행위규범으로 백인과 흑인이 같은 기차칸에 탈 수 없도록 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럼 주정부는 백인이 길의 오른쪽으로 통행하고 흑인은 왼쪽으로만 통행하도록 할 수도 있겠네? 같은 이유로, 백인과 흑인이 같은 전차(시내를 다니는 버스같은 기차)나 공공 차량에 타고 있다는 이유로 처벌해도 되겠네? 법정의 관람석에 사람을 앉힐 때 흑인은 왼쪽에 앉히고 백인은 오른쪽에 앉혀도 되겠네? 의회 건물 내에서 백인과 흑인이 섞이면 안 되도록 강제할 수 있을 거고, 정치적 논쟁을 하기 위한 모임에서도 같이 섞이지 못하도록 할 수 있겠네? 더 나아가서, 원래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과 이민와서 귀화한 시민이 섞이지 않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청교도와 카톨릭이 섞이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거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해 Brown과 피고측은 그런 법들은 “unreasonable’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대답했다. 백인칸/흑인칸으로 나누는 법은 reasonable해서 합헌이지만 Harlan이 질문한 경우들은 unreasonable하기 때문이 위헌이라는 것이다.

Harlan이 다시 매섭게 다그친다.

Is it meant that the determination of questions of legislative power depends upon the inquiry whether the statute whose validity is questioned is, in the judgment of the courts, a reasonable one, taking all the circumstances into consideration? Id. 558.
(입법기관의 권력이란 무엇인가? 입법기관의 권한은 법을 만드는 권한이다. 만약 법의 유효성(validity)가 이슈가 되었을 때, 법원이 모든 상황을 감안하여 법이 reasonable한가 unreasonable한가에 대한 답을 내린 후에야 결정된다면, 도대체 입법기관의 권한이란 무엇인가?)

The legislative intention being clearly ascertained, the courts have no other duty to perform than to execute the legislative will, without any regard to their views as to the wisdom or justice of the particular enactment. Id. 558.
(입법 취지가 분명한 경우, 법원은 입법 취지를 실행하는 의무 외에는 다른 의무를 가지지 않는다. 법원이 그 법안이 현명한 법인지 혹은 공정한 법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Harlan의 주장은 이렇다. 일단 어떤 법이 police power의 영역에 들어가면 연방정부는 간섭할 수 없고 주의회가 입법할 권한을 가진다. 그리고 일단 입법이 되면 완전히 어처구니 없어서 위헌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유효하다(valid). 어떤 경우는 reasonable하고 어떤 경우는 unreasonable하다며 법원이 주의회의 입법에 대해 유효성을 좌지우지하려 하는 것은 월권이며 삼권분립의 취지에 어긋난다.

결국, 백인칸/흑인칸의 분리가 police power의 영역에 속한다고 판결을 내렸으면 유사한 경우도 모두 police power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며 연방대법원이 다시금 이건 되고 저건 안 되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백인칸/흑인칸 분리가 합헌이라 했으면, Harlan이 예로 든 경우에 대해서도 두말하지 말고 합헌이라고 해야 한다. 뒤늦게 unreasonable하다며 사안별로 처리하지 말란 말이다라고 Harlan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유사한 경우를 모두 합헌이라고 말해버리면 미국 사회가 무지하게 웃기게 되어버릴 거 같지 않나?하고 Harlan이 반문하고 있다.

어쨌든 다수 판사는 더 이상의 답변을 하지 않는다.

Brown과 Harlan의 입장 차이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Brown은 법은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며 사회의 질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으며 판결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기획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반면 Harlan은 현실을 인정하는 판결로 인해 잘못된 사회의 관행이 뿌리내리고 또 사회가 더 나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음을 경계하며, 판결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나갈 수도 있다고 믿는다.

Brown이 대법관 임기 내내 그런 견해를 견지했다면 그 자체는 인정해줄 만하다고 본다. 법 행동주의(legal activism)가 항상 옳다고 볼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사회변화의 동력은 웅장한 그리스 스타일(혹은 로마 스타일) 건물 안의 어둠침침한 판사실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밝은 햇빛 아래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혹은 어둠침침한 미시시피의 들판 위에서 하얀 두건을 둘러쓴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라 믿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원래의 시작점인 Brown v. Board of Education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8. Warren 대법관

이 판결문은 대법원장 Earl Warren이 작성했다. 소수의견이 없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의견이었는데, 지금 대법원에서 9명의 대법관이 제각각 의견을 쓰는 분위기와 비교하면 다소 의아하다. 게다가 이렇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 소수의견이 없다는 것은 놀랍다.

대법원장 Earl Warren에 대해 잠시 설명을 하자.

1891년에 태어났으니 Plessy v. Ferguson 케이스가 판결되었을 때는 아직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1953년에 대법원장이 되었고 1969년에 은퇴했다. 1954년에 Brown v. Board of Education 케이스를 판결했으니 그의 임기 초반에 일어난 일이다.

Warren은 공화당이었고 Eisenhower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었다. 공화당이던 Eisenhower는 Warren이 중도보수일 것으로 기대하고 임명했는데, 임명하고 보니 Warren은 굽힘없는 진보주의자였다.(unabashed liberal) Eisenhower는 후일 Warren을 임명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미 대법원의 역사를 보면 Earl Warren (1953-69), Warren E. Burger (1969-1986), William H. Rehnquist (1986 – present)까지 1953년 이후의 대법원장은 모두 공화당이다. 1953년부터 반세기 동안 공화당이 대법원장을 맡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Warren이 대법원장일 때는 Warren의 공화당스럽지 않은 불굴의 진보주의로 인해 많은 진보적 판결이 내려진다. 그래서 흔히들 Warren Court라고 부르면 Burger Court와 대비되어 진보적 대법원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그리고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추억에 잠기게 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Warren이 내린 판결 중 유명한 것이 많지만, 무엇보다 Warren이 사람들에게 기억되도록 하는 케이스는 뭐니뭐니 해도 Brown v. Board of Education이다.

후일 Warren은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후 암살 조사반을 맡아달라는 린든 존슨 대통령의 부탁으로 암살 조사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 http://www.oyez.org/oyez/resource/legal_entity/88/overview )

Born: March 19, 1891
Died: July 9, 1974
Party: Republican
Time served: 15 years, 8 months, 18 days
Position: chief Justice
Nominated by: Eisenhower
Commissioned: October 2, 1953
Sworn in: October 5, 1953
Left Office: June 23, 1969
Reason for leaving: Retired

Biography
Earl Warren was an immensely popular Republican governor when President Dwight Eisenhower appointed him to the Supreme Court. Ike later regretted his choice; he had hoped toappoint a moderate conservative; Warren proved to be an unabashed liberal.

Warren joined the Court in the midst of one of its most important issues: racial segregation in public schools. The new Chief proved an effective leader (unlike his predecessor) by bringing the Brethren from division to unanimity on the issue of racial equality. At the end of his service,

Warren concluded that his greatest contribution to government was his opinion in the reapportionment cases. However, his contribution to racial equality still stands as a testament to his role as a leader extraordinaire.

In November 1963, President Lyndon B. Johnson called on a reluctant Warren to serve as a member of the special committee to investigate the assassination of President John F. Kennedy. When first approached by the Attorney General Robert Kennedy (brother to the slain president), Warren declined. He was concerned that such service would tarnish the Court’s legitimacy. But in this secretly recorded telephone call, Johnson explained to Sen. Richard Russell how he persuaded Warren to serve.

In a public address following his retirement for the Court, Warren articulated his strong commitment to the principle of equality and admonished Americans that they face continued strife and upheaval by failing to heed the rightful demands for equality.
Plessy v. Ferguson의 판결문을 작성한 사람이 Brown대법관이고, 그 판례가 뒤집어진 케이스의 이름이 Brown이니 우연이라 할 수 있다.

9. Brown v. Board of Education과 합쳐진 다른 케이스들

Linda Brown이 소송을 연방대법원까지 가지고 올라가는 동안 많은 유사한 케이스들이 있었다. 네 개의 케이스들이 비슷한 이슈를 담고 있었는데, 이 케이스들은 한 데 합쳐져서 Brown v. Board of Education케이스에서 함께 심사하게 된다. 이 케이스들을 대략 살펴보자.

(1) 캔자스 케이스 – Linda Brown양의 경우

캔자스는 인종분리(segregation)을 허용하지만 강요는 하지 않는 법을 갖고 있었다. 백인학교/흑인학교로 나눌 것인가는 학군(school district)에서 알아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였다. Linda Brown이 다니는 학교가 속한 학군인 Topeka는 백인학교/흑인학교 분리를 선택했다.

일심에서 법원은 Linda Brown양의 주장인 ‘인종 분리가 흑인 어린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를 인정한다. 하지만 Plessy v. Ferguson의 판례를 뒤집지는 못한다. 일심 법원은 대법원의 하위 법원이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례인 Plessy v. Ferguson의 판결인 ‘separate but equal’ 독트린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심 법원은 흑인학교와 백인학교가 건물, 교통, 교과과정, 그리고 교사의 자격 등에 있어서 동등하다면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2) 사우스 캐롤라이나 케이스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공립학교에서의 인종분리를 ‘강제’하는 법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모든 학군은 백인학교/흑인학교를 분리해야 했다. 일심 법원에서의 판결은 철저히 Plessy v. Ferguson을 따른다. 일심 법원은 흑인학교의 모든 면들이 백인학교보다 열등하다고 판결한다. 그리고 흑인학교가 백인학교만큼 좋아지도록 개선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Plessy v. Ferguson의 ‘separate but equal’ 독트린에 따라 백인학교/흑인학교를 통합하라는 요구는 거부한다.

(3) 버지니아 케이스

사우스 캐롤라이나 케이스와 유사하다. 역시 같은 이유로 법원은 흑인학교의 개선을 명령하지만 학교 통합은 거부한다.

(4) 델라웨어 케이스

상황은 유사하다. 그런데 일심법원은 흑인 학생이 백인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명령한다. 그런데 그 명령 역시 Plessy v. Ferguson의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 흑인학교가 백인학교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흑인 학생이 백인학교에 입학하지 못한다면 교육의 평등이 침해된다. 따라서 흑인 학생이 백인학교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만약 흑인학교가 백인학교와 시설면에서 동등했다면 델라웨어 일심 법원은 흑인학생이 백인학교에 들어가도록 명령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인학교/학군에서는 흑인학교를 개선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고 즉각 흑인학생이 백인학교에 들어가도록 명령한 것이 잘못되었다며 항소한다.

델라웨어 케이스에서 흑인학생이 백인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지만, 법리상으로는 새로운 변화가 아니었다. 여전히 4개의 케이스는 Plessy v. Ferguson의 결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일견 Plessy v. Ferguson의 판례를 뒤집는 듯 보이는 (하지만 실제로 뒤집지 않은) 케이스들이 몇 건 결정되었다. 그 중 Earl Warren 대법원장이 상당히 공을 들여 설명하고 있는 케이스가 Sweatt v. Painter (339 U.S. 629, 1950)이다. Earl Warren이 1953년에 대법원장이 되었고, 그 이전의 대법원장은 Frederick Moore Vinson이었고, 그는 민주당이었다. 그러므로 Sweatt v. Painter는 Warren 이전의 Vinson 대법원장 하에서 판결된 사건이다. 대법원장이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가 대법원의 성향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크면서 또한 많은 경우 대법원장의 의견이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중요하다. 시대적인 변화로 인해 Plessy v. Ferguson을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수도 있었겠고, 또 대법원의 인적구성의 변화로 인해 Plessy v. Ferguson의 뒤집기가 좀더 앞당겨졌을 수도 있었을 게다.

Sweatt v. Painter는 법대에서의 인종분리가 합헌이냐 하는 문제를 다룬다. 그 당시 법대도 백인학교와 흑인학교로 분리되어 있었던 듯 하다. 법대에서의 인종분리가 합헌이냐의 문제 역시 Plessy v. Ferguson의 ‘separate but equal’ 독트린 하에서 판결된다. 그러니까, Plessy v. Ferguson을 뒤집을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은 시대가 1950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은 Plessy v. Ferguson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법대에서의 인종분리를 깨부술 수 있는 판결을 내린다. 법대에서 인종을 ‘separate’하면 ‘equal’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법대는 본질적으로 equal한 학교를 하나 이상 만들 수 없다는 논리이다.

In Sweatt v. Painter, in finding that a segregated law school for Negroes could not provide them equal educational opportunities, this Court relied in large part on ‘those qualities which are incapable of objective measurement but which make for greatness in a law school.’ Brown v. Board of Education, 347 U.S. at 493.
(Sweatt v. Painter 케이스에서 우리 대법원은 흑인용으로 분리된 법대가 동등한 교육기회를 보장할 수 없다고 결론지으면서 주로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지만 하나의 법대를 훌륭하게 만드는 그런 특질들’에 중점을 두었다.”)

 

대학교 이상의 고등교육기관을 동등하게 만든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리이다. 서울대와 똑같은 캠퍼스, 똑같은 건물, 똑같은 커리큘럼 등등을 제공하는 제2의 서울대를 만든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제2의 서울대를 서울대라고 보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왜냐하면 서울대를 서울대로 만드는 데에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특질들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Sweatt v. Painter가 Plessy v. Ferguson을 피해가기 위해 이용한 논리이다.

그렇다면 Sweatt v. Painter의 논리를 그대로 이용해서 초등학교 및 중등학교에서도 똑같이 동등한 교육기회를 다른 학교에서 제공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Warren이 쉽게 가고자 했으면 그런 논리를 펼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논리는 반대측의 논리에 너무 쉽게 공격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굴의 진보주의자인 Warren은 Plessy v. Ferguson을 피해가는 판결을 내리기보다는 그를 뒤엎어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서 초등/중등학교에서의 분리도 공평한 교육기회를 제공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Warren은 아주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아주 단호하게 대답한다.

We come then to the question presented: Does segregation of children in public schools solely on the basis of race, even though the physical facilities and other ‘tangible’ factors may be equal, deprive the children of the minority group of equl educational opportunities? We believe that it does. Brown v. Board of Education, 347 U.S. at 493.
(이제 이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왔다; 인종에만 근거해서 공립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분리하는 것이, 비록 물리적 시설들과 다른 ‘유형의’ 인자들이 동등하다 하더라도, 소수인종의 아이들에게 동등한 교육기회를 박탈하는가? 우리는 그렇다고 믿는다.)

 

그리고 Warren은 그 근거를 댄다. 그는 Sweatt v. Painter의 ‘intangible qualities(무형의 특질)’ 그리고 유사한 케이스인 McLaurin v. Oklahoma State Regents에서 이용한 ‘intangible considerations(무형의 고려사항)’를 초등/중등학교에서 새롭게 적용한다. Warren은 ‘intangible considerations’가 초등/중등학교에서는 더욱더 의미가 크다고 말한다.

Such considerations apply with added forces to children in grade and high schools. Brown v. Board of Education, 347 U.S. at 494.
(그런 [무형의] 고려사항들이 초등/중등학교의 아이들에게는 더욱 큰 힘으로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듯이 고등교육으로 올라갈 수록 ‘separate but equal’ 교육을 제공할 수 없다는 사고와는 정반대의 입장이 아닌가? 초등/중등학교로 갈 수록 분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는 근거는 무엇일까? Warren은 학교분리가 유색인종 아이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Warren은 캔사스 일심 법원에서 Plessy v. Ferguson 판례 때문에 전면에 내세우지 못했던 논리를 인용하면서 캔사스 법원이 하고자 했던 말을 대법원의 권위를 더해서 확인한다.

‘Segregation of white and colored white children in public schools has a detrimental effect upon the colored children. The impact is greater when it has the sanction of the law; for the policy of separating the races is usually interpreted as denoting the inferiority of the negro group. A sense of inferiority affects the motivation of a child to learn. Segregation with the sanction of law, therefore has a tendency to (retard) the educational and mental development of Negro children and to deprive them of some of the benefits they would receive in a racially integrated school system.’ Brown v. Board of Education, 347 U.S. at 494.
(캔사스 일심 법원 인용: ‘공립학교에서 백인과 유색인종 아이를 분리하면 유색 어린이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인종 분리가 법에 의해 허용될 경우에는 그 나쁜 영향은 더 커진다. 왜냐하면 인종 분리라는 정책은 흑인 집단이 열등하다고 꼬리표를 붙이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열등감은 어린이가 배우려고 하는 동기에 영향을 미친다. 법이 허용하는 인종분리는 따라서, 흑인 어린이가 배우고 지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더뎌지게 만들고 또 그들이 인종통합된 학교에서 받게될 혜택을 못 받도록 한다.’)

 

그리고 미대법원은 아주 분명하게 Plessy v. Ferguson을 뒤집는다.

Whatever may have been the extent of psychological knowledge at the time of Plessy v. Ferguson, this finding is amply supported by modern authority. Any language in Plessy v. Ferguson contrary to this finding is rejected. Brown v. Board of Education, 347 U.S. at 494-5.
(Plessy v. Ferguson 당시의 심리학 지식의 범위가 어느 정도였든 간에, 오늘날 우리가 내리는 판결은 현대의 심리학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된다. 오늘의 판결에 반대되는 Plessy v. Ferguson판결문의 내용은 어떤 것이든지 오늘의 판결에 의해 거절된다.)

We conclude that in the field of public education the doctrine of ‘separate but equal’ has no place. Separate educational facilities are inherently unequal. Therefore, we hold that the plaintiffs and others similarly situated for whom the actions have been brought are, by reason of the segregation complained of, deprived of the equal protection of the laws guaranteed by the Fourteenth Amendment. Brown v. Board of Education, 347 U.S. at 495.
(공공교육의 분야에서 ‘separate but equal’ 독트린은 존재할 수 없다. 분리된 학교시설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하다. 따라서 오늘 대법원은 14차 수정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법률상의 equal protection을 침해당했다고 판결한다.)

 

10. 맺음말

다시 처음에 제기했던 사소한 문제로 돌아가 보자. 대법원의 판결은 정치적인가? 그리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Plessy v. Ferguson과 Brown v. Board of Education을 비교해보자.

Brown대법관이 학교 내의 인종분리를 인정한 근거는 그의 보수적인 세계관이었다. 법리상으로 police power를 내세운 것은 그야말로 표면적인 법리일 뿐이었다. Brown은 백인과 흑인이 분리되어 사는 세상이 좋았던 것이고 그런 세상이 유지되길 바랬다. Brown을 좀더 심오한 사람으로 생각하자면, 아마도 그는 인종통합이 가져올 사회적 불안을 염려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무엇이 진짜 이유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Harlan과 Warren은 달랐다. 그들은 인본주의자였던 것 같다. Brown v. Board에서 14차 수정헌법의 equal protection clause위반이라는 판결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법리에 의존하기보다는 개별 어린이에게 미칠 심리적인 영향을 고려하여 판결을 내리지 않았나? 분리된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유색 어린이는 본질적으로 열등감을 안고 살게 되고 그 열등감은 어린이의 발달을 저해한다. 그들은 열등감이 없이 자란 흑인아이들을 통해 진정 사회적으로 통합된 (정치적으로 통합된 사회를 넘어선) 사회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에필로그

Brown v. Board of Education 케이스가 Plessy v. Ferguson을 뒤집고 역사적인 판례가 되는 데는 Earl Warren말고 또다른 영웅이 있었다. 1967년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법관이 된 Thurgood Marshall (1908 – 1993)이다.

http://www.ai.mit.edu/~isbell/HFh/black/events_and_people/html/001.thurgood_marshall.html 요약함.

Thurgood Marshall은 미국의 인권운동 역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Brown v. Board of Education과 그 이전의 관련 케이스들인 Sweatt v. Painter와 McLaurin v. Oklahoma State Regents등이 대법원에서 심리되는 기간을 포함해서 1940에서 1961년까지 22년 동안 NAACP의 의장을 맡았고, 또한 많은 케이스들에서 대표변호사로 활약했다.

Brown v. Board of Education은 사실 그 판례 하나로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판례들이 연속되어 오다가 결국 마지막으로 초등/중등교육에서의 분리 철폐를 선언한 최종 케이스로 자리매김된다. Brown v. Board of Education이전에 법대에서의 인종분리 철폐를 이뤄낸 Sweatt v. Painter, 대학원에서의 인종분리 철폐를 얻어낸 McLaurin v. Oklahoma State Regents등은 사실상 Thurgood Marshall과 그의 지도자인 Charles Hamilton이 만들어낸 전략의 산물들이었다. 그들은 우선 대학원과 전문학교 (법대, 경영대, 의대)에서부터 소송을 시작하면 백인들로만 이뤄진 대법원에서 야심있는 젊은 흑인들에 대한 동정심을 더 쉽게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맞아 떨어져서 이들은 차츰차츰 초등/중등교육에까지 차별철폐를 얻어내게 되었다.

Thurgood Marshall을 대법관으로 임명한 대통령은 John F. Kennedy였는데, Marshall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남부의 상원의원들의 반대해서 Thurgood Marshall의 임명은 케네디가 죽고난 후 몇 년이 지나서야 승인이 되게 된다. 결국 1967년에 대법관으로 임명되고 그후 1997년까지 24년을 대법관으로 일했다.

Thurgood Marshall의 스타일은 ‘straightforward and plain-spoken’이라고 표현된다. 복잡한 미사여구나 수사법을 이용하지 않고 본질을 직설적이고 평이하게 이야기하는 스타일은 그의 ‘equal’에 대한 정의에서 잘 예시된다. Marshall은 ‘Equal means getting the same thing, at the same time, and in the same place.”라고 표현한다.

이후 린든 존슨 대통령이 Marshall을 임명할 때, 이 문구를 패로디하여 “Appointing Marshall on the Supreme Court was the right thing to do, the right time to do it, the right man and the right place.”라고 말한다.

Marshall은 재판과정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간혹 헤매고 있는 변호사들한테 냉소적인 말을 툭 던지거나 동료 대법관에 대해 한 마디 할 때 툭툭 던지는 것을 좋아했다. 1981년에 사형제 폐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을 때, Rehnquist 대법관(정통보수주의자)이 수감자들이 자꾸 항소를 하니까 국가에 많은 비용 낭비가 된다라고 말했다. Marshall대법관이 한 마디 했다. “It would have been cheaper to shoot him right after he was arrested, wouldn’t it? (그 사람 체포하자마자 바로 총 쏴서 죽였으면 돈 낭비가 더 줄었겠구만요.)”

이상의 얘기들과 또 언급되지 않은 그의 뛰어남들은 Thurgood Marshall의 수십명의 역대 대법관들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기억될 만한 대법관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A Thurgood Marshall timeline:
• 1930 Mr. Marshall graduates with honors from Lincoln U. (cum laude)
• 1933 Receives law degree from Howard U. (magna cum laude); begins private practice in Baltimore
• 1934 Begins to work for Baltimore branch of NAACP
• 1935 With Charles Houston, wins first major civil rights case, Murray v. Pearson
• 1936 Becomes assistant special counsel for NAACP in New York
• 1940 Wins first of 29 Supreme Court victories (Chambers v. Florida)
• 1944 Successfully argues Smith v. Allwright, overthrowing the South’s “white primary”
• 1948 Wins Shelley v. Kraemer, in which Supreme Court strikes down legality of racially restrictive covenants
• 1950 Wins Supreme Court victories in two graduate-school integration cases, Sweatt v. Painter and McLaurin v. Oklahoma State Regents
• 1951 Visits South Korea and Japan to investigate charges of racism in U.S. armed forces. He reported that the general practice was one of “rigid segregation”.
• 1954 Wins 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 landmark case that demolishes legal basis for segregation in America
• 1961 Defends civil rights demonstrators, winning Supreme Circuit Court victory in Garner v. Louisiana; nominated to Second Court of Appeals by President J.F. Kennedy
• 1961 Appointed circuit judge, makes 112 rulings, all of them later upheld by Supreme Court (1961-1965)
• 1965 Appointed U.S. solicitor general by President Lyndon Johnson; wins 14 of the 19 cases he argues for the government (1965-1967)
• 1967 Becomes first African American elevated to U.S. Supreme Court (1967-1991)
• 1991 Retires from the Supreme Court
• 1993 Dies at 84

Technorati : , , , , ,

15 thoughts on “Brown v. Board of Education

  1. yoona kim says:

    it was a good lecture. i have us government test tomorrow and this page helped me alot to understand clearly about segregation and other supreme court cases!
    thnx a lot:)

  2. Board of Education은 교육위원회로 번역하면 되겠군요. 현재 우리 법에서는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서 교육위원회의 근거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 무슨 시험인지 궁금한데 남의 집이라서 물어보기가…

  3. Daniel Song says:

    thank you for the condense abridged version of the whole Brown case. I used it usfully in my U.S. Government Presentation at school. Thank you.

  4. Rachel Won says:

    this is very useful and helpful.
    I came to know a lot of things that i didn’t know before. Honestly, I didn’t know any information about Brown v. Board of Education before i read this lecture. thanks a lot and also thank you for paraphrasing

  5. JI-A Kim says:

    특수교육 공부하면서 Brown 소송 얘기를 듣고 검색해 봤는데, 매우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6. Minho Park says:

    내일 20th Century of America 라는 History Final Exam이 있는데
    아주 아주 좋은 정보와 자료에 감사드립니다.

Leave a Reply

Please log in using one of these methods to post your comment: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