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돈으로 돌아가서 황우석을 보면

일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 옮겨두고 싶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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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은 돈의 하수인이다.

일전에 ‘두 줄기의 과학만능주의‘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과학연구란 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시작부터 자본과 결탁하거나 자본의 하수인으로 출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체 연구소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의 연구소도 모두 외부 자금을 받아서 연구를 하기 때문에 이 말은 99%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돈에서 자유로운 과학 연구는 없다.

2. 과학은 돈 열리는 나무다.

과학이 돈에 묶이게 되면서 생기는 현상은 과학을 돈 열리는 나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과학이나 의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황우석 연구를 과학자나 의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반면,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황우석 연구를 (1) 난치병 치료, 아니면 (2) 국가적 규모의 벤처 사업으로 생각을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황우석에게 기대를 걸었던 것은 난치병 치료보다 줄기세포 연구에서 오는 3000조원의 기대수익이었다.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은 이 국가적 규모의 벤처 사업을 미화시키는 악세서리였다.

이들에게 과학은 그 내적 치열함이나 진정성, 혹은 과학자의 열정이나 숨은 땀으로 보이기보다는 3000조원의 돈으로 보인다. 특허권에 의해 20년간 독점적으로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돈 열리는 나무였던 것이다.

황우석 연구는 황우석과 그 주변인들만 득을 보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렇지는 않다. 사람들이 그토록 외치던 ‘국익’은 대부분 주식시장에서 실현된다. 황우석에 대한 뉴스가 하나하나 나오면서 널뛰는 코스닥의 BT 주식들이 이를 몸소 보여준다. ‘국익’을 외치던 많은 사람들에게 ‘국익’은 ‘BT 주식에 묻어둔 내 돈’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황우석 연구가 진실이었고 특허까지 출원되고 승인이 임박했다면 코스닥 BT 주식에 몰려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돈은 엄청났을 것이다. 이로부터 단기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는 기관투자자 및 개미들은 얼마나 많겠는가? 그들에게 ‘국익’은 주식시장에서 단기실현된다.

3. 황우석 연구는 IT를 잇는 BT에 올인한 사람들의 복마전이었다.

황우석이 논문을 조작했다는 게 이미 밝혀졌고 그의 이전 연구도 계속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심리학적인 인지부조화 현상도 있지만 황우석 연구에 걸려있던 그 많은 돈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러브 황우석 카페 회원들처럼 맹목적인 광신도들을 제외하면 현재 황우석의 재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BT 주식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밖에 없다. 황우석이 재기할 가능성은 현재 0%이며 조금이나마 좋은 소식이 나올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런 와중에 ‘작전’으로 손털고 빠지려는 투자자들이 뉴스를 조작해서 루머로 퍼뜨리고 있다고도 한다. 그 뉴스는 투자자들보다는 광신도들이 덥석덥석 받아먹고 있으니 그야말로 복마전이다.

이런 현상은 황우석에 올인했기 때문에 생겼다. 도박이든 투자든 올인은 위험하다. 돈은 한 군데 묻어두지 말라는 건 오래된 격언 아닌가? 올인 투자가 실패했을 때의 충격은 감당이 힘들다. 황우석에게는 투자자들이 올인했을 뿐 아니라 정부까지 올인했으니 뒷감당이 잘 안 되는 것이다.

4. 순수과학은 순수투자로 행해져야 한다.

과학연구가 투자성(혹은 투기성) 자본을 얻어서 행해지면 이런 문제는 계속된다. 돈의 속성은 더 많은 이익을 요구하기 때문에 과학연구의 성공율이 더 높아지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과학연구의 속성상 100% 성공은 있을 수 없다. 50%만 성공한다 해도 엄청난 성공율일 것이다.

50%의 성공율은 합리적인 투자자에게는 충분히 투자할 만한 확률이다. 여러 곳에 분산투자함으로써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적절한 수익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합리적이지 않게 투자가 이뤄졌을 때는 50%도 위험한 성공율이다. 황우석 연구처럼 100%의 성공율을 기대하고 올인 투자한 경우에는 차후 대책도 없는 재앙이다. 황우석 연구가 초기부터 검증받았다면 비합리적인 투자가 이뤄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금같은 혼돈의 시간이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돈의 압박 아래서 과학자는 연구를 조작하고픈 유혹을 받게 한다. 황우석이 왜 논문을 조작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 역시도 돈의 압박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돈의 압박은 다시 말하면 성과의 압박이다. 그는 ‘불가능’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투자자들 앞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예전부터 수익과 관계없는 과학 투자를 주장해온 과학자들이 있었다. 순수과학은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수익을 기대하는 돈을 받아서 연구를 하는 것은 과학자들에게 불필요하고 과도한 성과의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과학은 성지가 아니라며 순수한 척 하는 가면을 벗어던지라고 말하는 자본의 추종자들도 있지만, 자본의 원리에 따라 황우석에 올인 투자한 결과가 이렇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에는 자본의 원리에만 따르는 게 무조건 정답은 아니라는 교훈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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