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모: 환상의 카메라인가? 마케팅의 성공인가?

이 글은 이전의 네이버 블로그에 2005년 9월 22일에 올린 글인데 여기다가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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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모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게 벌써 5년은 족히 넘은 듯 하다. 디카가 거의 완전히 대세를 장악해서 왕년의 명기라 불리던 필름카메라들이 거의 없어지고 있는 지금에도 로모는 나름대로의 영역을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옥션에 가면 중고 로모가 25만원대가 대세이다.
Lomo-4989.jpg

이 카메라가 한국에 팔리기 시작할 때에는 가격이 20만원 가까이 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중고가 25만원대에 팔리니까 카메라 꿍쳐놓았다가 팔기만 해도 돈 번 셈이다.

성능 제원을 보면
Specs

Produced: 1991-? (1999) LOMO, St. Petersburg, Russia
Film type: 135 (35mm)
Picture size: 24mm x 36mm
Weight: 250g
Lens: Minitar 1 1:2.8 32mm (4 elements in 4 groups)
Focal range: .8m to infinity in 4 zones
Filter size: n/a
Shutter: 2 blade behind-lens
Shutter speeds: 2m-1/500 aperture-priority automatic
Viewfinder: telescopic with bright line frame
Exposure meter: CdS with over/under LEDs
Battery: three SR44 / S76 silver oxide button
ASA 25-400
Hotshoe (sync at 1/60)
Thumbwheel winder
Size 107×68×43.5mm

카메라의 기술적 제원들에 익숙한 사람은 즉시 알 수 있겠지만, 로모 LC-A는 지극히 평범한 똑딱이 카메라다.

이 카메라와 비교할 만한 카메라들이 몇 개 있다. 하지만 대부분 로모보다 좋은 카메라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재 중고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은 로모보다 낮은 게 보통이다.

1. Minox 35

이름이 말해주는 대로 작은 카메라의 대명사다. 크기는 100×61×31mm로 로모보다 작으며, 무게도 200g으로 로모보다 50g이나 가볍다. 소스. 게다가 로모보다 더 귀엽게 생겼다는 게 내 견해다. 이 카메라는 이베이에서 대략 130불 정도면 살 수 있다.

Minox-292.jpg

카메라의 기능적인 제원들은 로모와 거의 비슷하다. 렌즈도 Minotar렌즈를 쓴다. 그런데 이 렌즈는 플라스틱인지 유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렌즈의 성능은 뛰어나다는 평가가 있다. 소스. 다르게 말하면 사진 가장자리가 어둡게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카메라도 나름대로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다.

2. Rollei 35

카메라의 역사에서 Rollei를 빼놓으면 안 되겠다. 게다가 Rollei 35는 카메라 역사에서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35mm 카메라 중에서는 제일 작은 카메라이며 (97×60×32mm) 그 작은 몸체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가격에 팔리던 카메라였다.

Rollei35SE1.jpg

지금은 필름카메라가 몰락해서 이 카메라도 옥션에서 25만원 정도에 거래가 되던데 내가 예전에 중고카메라 상가를 돌며 가격을 알아보던 때(약 92년 93년)에는 100만원 가까운 가격에 팔리던 카메라였다. 이 카메라의 구성품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 카메라가 로모랑 비슷한 가격대에 나와있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을 것이다.

우선 몸체부터가 크롬도금된 고급스런 소재니까 렌즈부터 밑바닥까지 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로모와는 비교가 될 수 없다. 그런 관계로 무게는 320g정도 나가는 작지만 무거운 놈이다.

이 카메라 역시 기능적인 제원은 로모와 비슷하다. 하지만! 사진의 화질은 훨씬 낫다.

롤라이 35는 매니아층이 두터우며, 수집용으로 사는 사람도 꽤 된다. 모양이 워낙 예쁘니까.

3. Olympus XA2

Olympus XA2는 XA의 2세대인데, 크기가102 X 64.5 X 40mm로 롤라이나 미녹스에 비해서는 크지만 로모에 비해서는 작다. 그리고 무게가 200g으로 미녹스와 같다. 이 똑딱이 카메라는 이베이에서 40불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olympus_xa2.jpg

이 카메라는 로모의 전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로모가 이 카메라를 본떠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카메라는 미녹스를 본떠서 만들었다. 좀 웃기는 얘기지만 여기서 카메라 계보가 나온다. 미녹스가 독일에서 나오자, 작은 카메라 만들기에 일가견이 있던 올림푸스에서 비슷하게 만든다고 만든 게 XA2고 이걸 ‘어설프게’ 베낀 게 로모라는 거다.

이 카메라 역시 기능적인 제원은 로모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 카메라에 장착된 Zuiko렌즈는 Minotar의 플라스틱 렌즈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사실 로모의 플라스틱 렌즈하고 비교될 만한 렌즈를 찾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이 카메라도 나름대로 매니아층이 있다.

비교할 만한 카메라를 이 정도 끌어와 놓고 로모를 한 번 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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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뛰어난 휴대성의 로모 vs. 그 크기와 250g의 무게

로모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휴대성이 뛰어난 로모라는 말을 홍보용으로 많이 했더랬다. 요즘은 디카가 하도 작아져서 이런 말은 쏙 들어가버렸는데, 그래도 필름카메라치고는 작다는 말들도 있다. 전통적인 SLR카메라보다는 확실히 작다. 게다가 좀 작다고 할 수 있는 레인지파인더식 카메라들에 비해서도 확실히 작은 카메라이긴 하다. 107×68×43.5mm정도의 크기면 필름카메라로서는 충분히 작은 크기다. 하지만!! 위에서 봤듯이 더 작은 카메라도 많다.

2. KGB가 썼던 첩보용 카메라?

지금도 어딘가에 가면 로모가 첩보용 카메라로 쓰였다는 말이 있는데, 이걸 입증할 만한 다른 문헌을 본 적이 없다. 구라가 아닐까 싶다.

3. 견고한 바디와 고장 안 나는 내구성?

파는 사람 입장에서야 그렇게 말하고 싶겠지만, 로모의 실체는 플라스틱 부품으로 어설프게 대량생산한 똑딱이카메라다. 실제로 카메라를 분해해본 사람의 말에 의하면 내부가 엉성하게 조립이 되어 있다고 한다.

4. 간단한 조작 – 순간포착에 유용?

위에 나열한 네 가지 카메라, 로모, 미녹스, 롤라이, 올림푸스 XA2 모두 목측식 카메라다. 무슨 말이냐 하면 눈으로 거리를 재는 카메라라는 말이다. 이를 다시 풀어서 말하면 렌즈 초점을 맞추는 데 기계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자기가 알아서 거리를 계산해서 렌즈의 초점을 맞춰줘야 한다는 것이다. 피사체가 5미터 앞에 있으면 렌즈를 5미터에 초점이 맞도록 돌력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위의 기계들은 롤라이를 제외하고는 존포커싱이라고 해서 초점을 대략 맞추는 시스템이다. 옛날 카메라 중에 렌즈에 사람 얼굴 하나 그려져 있고, 여러 사람 그려져 있고, 나무 하나, 나무 세 개 그려져 있는 거 본 사람이 있을 거다. 그게 가까이서 찍으면 사람 얼굴에다가 바늘을 맞추고, 사람 몸이 다 나오면 여러 사람에 맞추고 그렇게 대충 초점을 맞추도록 되어 있는 카메라다. 위의 카메라들도 롤라이 빼고는 다 그렇다.

그냥 대충 찍는 거다. 그래도 되는 것이 똑딱이카메라들은 대부분 렌즈초점거리가 짧아서 대충 놓고 찍어도 웬만하면 초점이 맞는다.

초점은 그렇게 맞췄다 치고, 노출은 어떻게 맞추냐 하면 조리개를 어떤 수치에 갖다 놓으면 셔터속도가 노출에 맞춰서 자동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 이걸 조리개우선노출방식(aperture-priority)이라 하는데, 다시 말하면 신경 안 쓰고 대충 찍어도 된다는 얘기다. 정 불안하면 조리개를 제일 낮은 수치인 2.8에 놓고 누르면 카메라가 알아서 해준다는 거다.

이게 위의 카메라들의 메카니즘이다. 엄청 단순하다. 그래서 작동이 단순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초점은 맞춰줘야 하고 조리개도 날씨 상황에 따라 조절해줘야 한다. 날이 아주 밝은데 조리개를 2.8에 두고 찍으면 위의 카메라들의 최고셔터속도가 1/500밖에 안 되기 때문에 과다노출이 나올 거고, 주변이 어두운데 조리개를 11에 두면 어두컴컴 아무것도 안 나온다. 그러니까 이거 은근히 신경써줘야 되는 시스템이다.

이런 걱정 말끔히 없애주는 카메라가 바로 올림푸스나 삼성에서 많이 만들던 전자동 똑딱이 카메라들이다. 진짜 조작이 간편한 카메라는 바로 이런 전자동 똑딱이카메라들이다.

이러니 순간포착을 하는 데도 위의 네 가지 똑딱이 카메라가 최선은 아니다. 진짜 순간포착에 최선인 카메라는 니콘 F-4s나 캐논EOS-1 이런 카메라다. 셔터 누르면 최단 시간 내에 초점 잡고 노출 잡아서 찰칵 찍어주고, 셔터 계속 누르고 있으면 1초에 최대 6장까지 연사로 찍어주니까 순간을 제일 잘 잡아준다.

예전에 라이카니 콘탁스니 하면서 완전수동 고집하던 당대의 명사진가들은 자기들의 카메라 조작속도가 기계보다 빠르다고 자랑하곤 했지만, 실제로 자동 SLR의 속도를 이긴 수동카메라 이용자는 없었다. 로모도 여기서 빠지지 않는다. 제 아무리 똑딱이 카메라라 해도 조절할 거 조절해줘야 하는 시스템이라면 순간포착 느리다.

5. 독특한 색감

로모 광고 문구 중에 뭔 말인지 이해 안 되는 것이 바로 독특한 색감이란 표현이다. 마치 카메라에서 독특한 색감이 나온다는 이 뉘앙스의 말은 도대체 근거가 있는 건가? 일반적인 카메라의 작동원리는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이 필름에 닿으면서 이미지를 기록하게 되어있다. 이 과정에서 필름에 기록되는 이미지의 색감이 달라지려면 렌즈에 색이 묻어있거나 아니면 렌즈의 색수차가 심해서 색상의 왜곡이 나타나야 한다는 거다. 로모 렌즈에 색이 묻어있는 거 같지는 않으므로 렌즈의 색수차 때문에 색이 왜곡된다고 보는 게 맞을 거 같다. 그런데 막상 로모로 찍은 이미지를 보면 좀 뿌옇다는 느낌이 있을 뿐 색감이 독특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저 싸구려 렌즈 때문에 생기는 색수차를 독특한 색감이라고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6. 비네팅(vignetting) 효과

로모 때문에 처음 알게 된 단어이다. 렌즈의 색수차가 있으면 사진의 가장자리가 가운데보다 어둡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건 그냥 렌즈가 싸구려니까 그렇게 된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비네팅 효과를 꼭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다음의 방법을 권유한다.

(1) 일회용 카메라를 쓴다.
(2) 적당한 뚝딱이 카메라를 사서 카메라 렌즈의 가장자리에 얇게 검은색이나 회색 셀로판을 붙인다.

여기까지는 로모를 다른 카메라와 비교해 보고 로모가 25만원에 팔리기에는 너무 비싸다는 근거를 제시해본 것이다.

그런데 왜!! 로모가 25만원에 팔리냐 이게 문제다. 나보고 25만원 주고 간편한 필름카메라 하나 사오라고 하면 삼성이나 올림푸스의 전자동 똑딱이 카메라 사온다. 절대 로모 안 사온다. (근데 삼성은 이제 필름카메라 생산 안 하나?)

로모를 사는 사람들은 그 가격을 주고라도 로모를 사야 할 이유가 있는 건가? 그러니까 기계적 성능만 따져봤을 때 10만원도 안 되어야 할 카메라를 25만원에 산다는 건 15만원에 상당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그 무언가는 바로 ‘life style’이다. 애시당초 로모를 전세계적으로 팔아먹을 때, 판매자는 Lomographic Society International이라는 회사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Lomographic Society International (LSI)에서 독점수입권을 따낸 사람이 독점판매했다.

LSI는 로모를 팔 때 기계를 팔지 않았다. 기계만의 가치로 따지면 10만원이 안 된다. LSI는 젊은이의 라이프 스타일이란 걸 팔았던 거다. 언제 어디서나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복잡한 생각 할 것 없이 셔터를 눌러라. 그러면 이 카메라는 그 장면을 마치 60년 전의 과거 일인 것처럼 빛바랜 사진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지나치게 심각한 건 싫다. 조리개니 셔터니 초점이니 하는 건 신경쓰고 싶지 않다. 카메라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도구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피사체에 한 발 더 다가간다.

뭐 이런 컨셉인데, 이건 물건을 팔기 전에 물건에 대한 종교를 먼저 만드는 기법이다. 사람들이 물건에 대한 종교적 욕심을 가지게 되면 더 이상 물건의 성능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없다. 컬트가 사람을 지배하고 그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게 하는 것이다.

이건 정말 대단한 상술이다. 객관적으로 보아 허접해 빠진 카메라를 그렇게 기막힌 방법으로 마케팅하여 15만원을 더 받고 팔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25만원 주고 카메라를 사서 15만원어치만큼 더 행복해지면 본전치기일 것이다. 과연 15만원어치만큼 더 행복할까?

Technorati : , , , ,

5 thoughts on “로모: 환상의 카메라인가? 마케팅의 성공인가?

  1. mh says:

    전 가난한 학생인지라 투웨이 비스타를 쓴답니다. 플라스틱렌즈라서 로모랑 비스끄무리해요 ㅋㅋ 색감이야 포토샵으로 뚝딱거리면 되는거 같아요 ㅋㅋㅋ

    이런느낌~?
    사실 저 사진은
    투웨이비스타->현상->핸드폰카메라로 안되는 접사 억지로 하기
    랍니다 하하하

  2. 투웨이 비스타라는 카메라를 처음 들어보았기에 잠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이건 아주 오래전 제가 썼던 Konika Pop이란 카메라와 흡사하네요. 카메라의 기본 기능에 충실하면서 가볍고 저렴한 카메라. 마음에 드네요.

    사진도 클래식한 색감이 좋네요. 핸드폰 카메라로 접사해서 컴터로 옮긴 건가요? ㅋㅋㅋ 원래 사진은 아주 잘 나왔을 거 같은데요. 두 분이 미인이신 것으로 판단되기도 하구요.

  3. H says:

    카메라랑 상관 없는 얘기지만, 제주도 중문에 요트타는 곳이 있는데, 1시간짜리 다른 사람과 어울려타는 해피코스라고 있어요. 인당 6만원짜리 행복이라… 함서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4. 요즘도 로모를 들고 다니는 15년차 사용자로서(나이가.. 쿨럭;;) 25만원이 비싸냐고 한다면 저에겐 정말정말 싼 가격이죠. 기계적으로 허접한 건 쓰면서 아주 잘 알게 되었고 100롤 넘어가면서 남대문에서 수리도 했고.. 하지만 저 허접한 카메라로 세계 곳곳 다니면서 남긴 기록들은 정말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가 없네요 저에게.
    수요곡선으로 치면 왼쪽 끄트머리, 아마도 한 250만원쯤에 제가 서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이런 사람도 있다구요 ^^

    • 네, 쓰는 사람에게 좋은 도구가 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겠지요. ^^

      요즘은 필름 현상해주는 데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예전 필름 사진들 보면서 그 느낌들이 그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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