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터커 Benjamin Tucker, 1854 – 1939

딴놈들은 안끼워줘 딴놈들은 안끼워줘
누구나 음악을 할수있다 주장해도
딴놈들이 음악을 한다하면 욕이나 실컷하지
우리 펑크다 너흰 아니다 뱉어대고
걔도 아니다 쟤도 아니다 씹어대고
이것도 저것도 펑크가 아니라 싫다하고
희생군 저항군 혼자 다 해먹어

이세상에 펑크는 없다 이세상에 펑크는 없다
진짜 펑크는 자신을 펑크라 얘기하지 않는법

딴놈들은 안끼워줘 딴놈들은 안끼워줘
레지스탕스라구 흥!신나찌
오~ 펑크 돌머리에 과격하지 지저분하지
그 말에 화를내면 진짜 펑크는 못되신다
아나키 인더 u.k 아나키 인더 u.s.a
아나키 아나키 온 세상을 거부해도
딴놈이 아나키 한다하면 그꼴 못봐

– 진짜 펑크 by 허벅지 밴드 (출처: 벅스뮤직)

일전에 마르코 폴로의 봉토라는 짤막한 예화를 썼다. 글의 목적은 그 글에서도 밝혔지만 재산권의 철학 사상들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글을 쓰는 도입부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 글을 쓰기 전에 이전의 기억들을 몇 개 되살리고 이런 저런 사상가의 이름과 대략적인 철학 사상들을 수집하는 작업을 했다.

이 생각들을 어떻게 짜임새 있게 맞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시간이 꽤 지나버렸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김근태 우리당 고문이 개헌을 통해 부동산 공개념을 헌법에 포함시키자는 말을 한 적이 있었고, 거기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표현한 사람들도 있었는데다가 생각이 있지만 표현하지 않은 이들도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글의 짜임이나 논리적 전개와는 상관없이 일단 내가 사상적으로 제일 가깝다고 느끼는 벤자민 터커를 소개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는 애너키즘(Anarchism)이 잘 소개가 되지도 않았고 잘 유통되지도 않는다.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애너키스트로 정의하면서 살거나 혹은 서브컬처 중의 서브컬처를 쿨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애너키즘을 패션 아이템으로 장착하고 다닐 뿐이다. 하지만 애너키즘이란 단순한 사상도 아니며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가주의의 농도가 너무 짙은 한국에선 용액 희석을 위해서 애너키즘을 섞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전에 쓴 아무 이유없이 군대 가기 싫어서 안 가고 징역살이 한 사람에 쓴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의 주인공처럼 자생적 애너키스트가 자라나는 것도 기다리고 있다.)

벤자민 터커(Benjamin Tucker, 1854-1939, 미국)가 재산권 사상을 소개하는 글에 등장하는 이유는 그의 애너키스트 철학을 따라가다보면 현재 전세계적으로 만연한 부동산 소유제와는 다른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며 이는 존 로크(John Locke)의 사상과 큰 문제없이 결합할 수 있으며 또한 부동산 공개념과도 일맥상통하게 되기 때문이다.

터커는 미국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생활조건에 시달리는 이유가 네 가자의 정부관리 독점 체제 때문이라고 봤다. 그 네 가지 독점은:

(1) 화폐의 독점,

(2) 부동산 관리제도의 독점,

(3) 조세의 독점, 그리고

(4) 특허의 독점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

소스: 위키피디아

여기서 부동산 제도의 독점의 문제에 대해 터커는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As the foregoing comments indicate, Tucker solved the ‘land question’ with the doctrine of occupancy and use as the sole basis and limit of land ownership. This doctrine was based upon the teachings of Josiah Warren who advocated that natural wealth is not property at all and that neither the State nor the individual can set a price upon it without violating the first principle of commercial justice, that cost is the equitable limit of price. (28-2) The Anarchists of this school were definitely against the payment of rent by tenants (the actual occupiers of a given piece of land) to a landlord. 원문은 여기.

위의 코멘트가 말하는 바처럼, 터커는 ‘부동산 문제’를 점유와 이용이 부동산 소유권의 유일한 근거가 되도록 하자는 원칙으로 해법을 마련했다. (나머지 부분은 알아서들 읽으시길)

부동산 소유권이 점유와 이용에 근거해서 판단된다는 사상이 현실에서 적용되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위의 원문에도 나와있고 좀더 많은 논의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는 주제이다.

몽고의 마르코폴로 봉토 이야기에서 암시되어 있는 재산권 제도의 필요성은 재산권의 목적물의 희소성이다. 부동산이 희소성이 없다면 재산권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몽고처럼 땅이 무진장 넓으면서 그 땅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고 인구수는 작은 나라라면 땅을 가지고 싸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몽고에는 땅 소유권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몽고의 마르코폴로 봉토라는 가상의 이야기에서 말이다. 실제로 몽고의 부동산 제도가 어떤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한국의 현실은 몽고와는 정반대로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부동산은 절대적으로 희소한 자원이다. 터커의 주장대로 부동산 소유권이 점유와 이용에만 바탕한다면 부족하기 짝이 없는 땅을 어떻게 나눈단 말인가? 그 대답은 간단하다. 실제로 바로 지금도 4천8백만의 인구는 남한의 영토에 있는 부동산을 ‘점유’하고 ‘이용’하면서 살고 있고 그렇게 ‘점유’하고 ‘이용’할 부동산이 부족하다고 아우성대지는 않는다. 단지 부동산 가격상승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해줄 투자대상으로서의 부동산이 부족할 따름이다. 터커의 사상은 한국의 실정에는 오히려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터커의 사상이 근대 소유권의 기틀을 마련한 존 로크(John Locke)와 맞닿는 지점은 존 로크 역시 재산권의 기반이 노동이라고 규정한 부분이다. 터커의 사상과 존 로크의 사상이 결합하게 되면, 재산권은 스스로의 노동으로 만들어낸 가치에 대해 부여되어야 하며 부동산은 그러한 노동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기 위한 장소로 점유되고 이용되는 한에서 소유권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아름다운 사상이 만들어진다.

터커와 존 로크가 만나면서 만들어낸 사상은 21세기형 뉴타입 파쇼국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그 무언가와 닮아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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