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특별한 이유없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포스트를 옮겨온다. 애너키스트 논의를 위해.

—————————————————

아이가 질문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하는 질문은 “이게 뭐야?” 질문이란 걸 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들의 질문의 종류는 다양해진다. 그리고 질문을 잘 하는 아이일수록 똑똑한 아이일 가능성이 많다.

범재는 문제를 끙끙대고 풀며, 수재는 문제를 잘 풀고, 천재는 문제를 만들어낸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말은 없나? 비슷한 말을 옛날에 들은 거 같은데) 문제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질문을 하는 능력과 같다. 단순하게 “이게 뭐야?”라는 질문을 잘 하는 것 말고, 남들이 잘 묻지 않는 질문 중에서 의미가 있는 질문들이 있다. 그런 질문들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다.

아이의 단계에서 가장 진보된 질문 중 하나는 “왜요?”라는 질문이다. 아이 때에는 대부분 부모가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그냥 그렇게 따른다.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동물적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자기의 주체가 되기 시작하는 시점은 “왜요?”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할 때이다. 자신의 행동의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본능만으로 살아가던 시기가 끝나고 동기가 있어야 행동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본능으로 하게 되는 일은 먹고, 자고, 싸는 일들이다. 이외의 일들은 동기가 있어야 하게 됨이 당연함에도 많은 사람들은 관성적으로 부모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게 되고, 부모의 역할을 학교 선생님이 대신하게 되면서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다. 그러면서 점점 “왜요?”라는 질문은 안 하게 된다.

군대를 가게 될 때도 “왜 군대를 가야 하죠?”라는 질문은 안 하게 된다.

그닥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기억나는 한 가지 상황을 들어보자. 대학 다닐 때 대동제 때에 윤도현밴드가 왔었다. 윤도현밴드가 아니면 다른 밴드였으리라. 그 당시도 인기 좋았으니까 모두들 우르르 보러 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나는 별로 보러갈 생각이 없었다. 과방에 선후배들이랑 같이 있는데 한 후배녀석이 물었다. “형은 윤도현밴드 보러 가요?” 난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후배가 묻는 질문은 “왜 안 가요?”

그 녀석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왜요?”라는 질문을 하고 다녔는데, 그 질문은 나를 잠시 당혹하게 했다. 질문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난 그 후배에게 말했다. “내가 만약 윤도현밴드를 보러 간다면 보러 가는 이유가 있겠지. 그렇다면 왜 보러가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겠지. 그런데 보러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왜 안 가냐고 묻는다면 별로 대답할 말이 없네.”

적극적인 inaction이라고 한다면 inaction에 대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저 아무런 동기가 없는 사람에게 왜 안 가냐고 묻는 것은 잘못된 질문인 것이다. 물론 후배녀석의 생각에는 모두들 보러 가니까, 내가 안 보러 가는 것은 적극적인 inaction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수 공연 안 보러 가는데 적극적인 inaction까지 필요한 것은 좀 황당하다.

그냥 군대 가기 싫어서 병역거부를 하게 된 이승규씨의 입장도 나랑 비슷할 것이다. 그에게 적극적인 inaction도 상당부분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승규씨에게는 왜 군대를 가야하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직접 드러내놓고 “왜 군대를 가야하죠?”라고 물어본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질문을 마음 속으로는 이미 했을지도 모른다. “왜 군대를 가야하죠?” 따위의 질문을 했다가는 쇼비니스트들에게 두드려 맞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도 나름대로 입조심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나키스트는 태어나는 게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행동할 이유가 없을 때 행동하지 않을 권리는 자연적인 권리인데, 이 권리를 직접적이고 폭력적으로 침해하는 기관은 국가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승규씨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가 앞으로 아나키스트가 될 것인지 아닌지는 그의 선택이고 내가 그의 동향을 계속 관찰할 수 없으므로 의미 없는 말이지만 한 명의 아나키스트가 만들어지는 것을 기대해본다.

Technorati : ,

2 thoughts on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Leave a Reply

Please log in using one of these methods to post your comment: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