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떠들어라, 그래도 우리는 아줌마 보살들이 있다 – 한겨레21 조성택씨 인터뷰

한겨레 21, 신승근의 도전인터뷰에 고려대 철학과 교수이자 <불교평론> 주간인 조성택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내가 2005년 12월 31일에 올린 ’12월 31일은 블로그에서 남 안 깔려고 했으나’에서 한 번 지적한 문제인데 조성택씨는 불교계 내부인으로 상세하고 적확하게 황우석 사건을 대하는 조계종의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기사 원문은 여기에 있다. 일독을 권한다. 굳이 내가 논평을 달 필요가 없을 만큼 잘 된 인터뷰이다. 그 중에 핵심이라 할 만한 부분만 인용한다.

불교계는 세속 문제에 대해 말하는 논리가 약하고 역사적 경험과 노하우도 적다. 근현대에 발생한 문제에 대한 대응도 상당히 미숙했다. 황우석 옹호는 종교 간 경쟁이 펼쳐진 현대적 다원주의 종교 체제에서 불교계가 지닌 콤플렉스가 작용한 것이다.

문화적으로 불교가 우수하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근대 이후 불교는 극히 제한적인 역할을 했고, 오히려 반사회적·반민주적·반민족적 행태를 보여왔다. 이런 콤플렉스가 과학의 문제(황우석 사건)를 계기로 터진 것이다. 황우석 사건은 불교계의 호재였다. 무의식적으로 불교계가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 것이다. 불교가 교리적 측면에서 이런 문제에 기독교보다 좀더 유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는 좋은 지점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동안 불교학계의 논의를 보면 찬반이 나뉘었다. 하나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배아가 생명이냐 아니냐는 논외로 하고 이것이 가져다줄 요익중생, 즉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자비의 윤리가 더 크고 그게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뜻이라는 이유였다. 반대 논리는 비록 배아라 할지라도 생명으로 탄생할 수 있는 연장선에 있으므로 배아에 손대는 것은 ‘불살생’의 불교 윤리를 해친다는 것이었다. 불교학계에서 이 문제를 최초로 얘기한 2002년 <불교평론> 주최 생명윤리 세미나에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찬성한 것은 유일하게 나뿐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동국대 교수 등 나머지 분들은 전부 반대했다. 난 코페르니쿠스의 연구에 대해 종교가 잘못 재단했듯 종교적 가치와 과학적 사실의 문제는 다를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찬성했다. 당시 동국대 김종욱 교수 등은 불교에서 생명은 연장의 개념이고, 배아는 생명이 될 수 있는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에 손대서는 안 된다며 반대했다. 난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이후 더 깊이 연구해 2005년 춘계학술대회 때 반대자가 됐다. 그런데 2002년의 반대론자들은 이제 전부 찬성론으로 돌아섰다.

2002년에 있었던 세미나에서 비교적 심도있는 논쟁이 오고간 것 같고 동국대 김종욱 교수의 말에는 불교의 논리가 잘 담겨있다고 본다. 불교도라면 김종욱 교수의 입장을 취해야 옳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불교계는 일찌감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입장을 그렇게 정리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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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이 불교인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랬을까. 정말 모르겠다. 그게 이상했다. 또 지금도 이해 안 되는 것은 불교계가 기독교와 달리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면 그 연구를 지원해야지, 왜 특정 연구자를 지원하냐는 것이다. 그건 황우석씨가 불교인이라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00억원 지원설은 그간의 지원을 볼 때 불교계의 스타 만들기 차원이지 진정으로 국익이나 요익중생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역시 황우석이 불교인이라는 게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전두환 부부가 백담사에 들어갈 때 받아줬던 것도 역시 그들이 불교도였기 때문이었다. 전두환이 백담사에 의거하는 걸 허락한 행위와 황우석 지지 운동을 하는 행위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쁠까? 거기에 대해 조성택씨는 황우석 지지가 더 나쁘다고 봤다. 전두환은 이미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에서 불교계에서 용서와 포용을 한 것이지만, 황우석은 논문조작이 이미 드러나고서도 계속 거짓말을 하며 뉘우치지 않고 있는데 불교계가 그를 지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율이나 황우석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는 무모함과 순진함에서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환경 문제는 사실의 문제다. 얼마나 훼손하는지, 개발하지 않는다고 다 보호되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간과한 채 자기 가치관의 심증적인 문제만 갖고 덤벼드는 게 있다.

도롱뇽이, 배아가 생명이다 어쩌다 할 정도로 고도의 생명윤리를 가졌다면 육식 문제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 “도롱뇽이 아파요”라고 말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간과하는 식육 고기의 도축 과정에 대해 불교계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건 자기 모순이다. 또 불교 사찰 내에서 벌어지는 비환경적인 재건축 등 엉망진창인 일들은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그대로 놔두면서 천성산만 가지고 그러는데, 정말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반 환경단체 활동가라면 그냥 자기 목표가 ‘천성산 지키기’고 그것만 하면 된다. 하지만 종교인이기 때문에 자기 입장도 한번 물러서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종교인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태도인데, 그런 점에서 (지율 스님은) 차별성이 없다. 나만 죽으면 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독선주의고 엘리트주의다. 나 하나 죽어서 된다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이냐.

지율 스님 문제는 정말 골치 아픈 문제이다. 불교인이라면 지금도 끊임없이 이뤄지는 살생 행위들에 대해서 굽힘없는 일관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사람들이 거의 매일 먹게 되는 가축을 도축하는 행위, 바다나 강에서 생선을 잡는 행위, 그 외에 인간의 필요를 위해 살생을 하는 행위에 다 반대를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천성산 도룡뇽이 죽기 때문에 고속철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불교인으로서 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과연 그런 행동이 오늘 낮에도 도축당한 한 마리의 소를 위해서는 왜 없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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