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의 재산권 사상

대학 1학년이나 2학년 때 샀던 책으로 기억되는 조해일의 [임꺽정에 관한 일곱 개의 이야기]라는 연작소설이 책장에 꽂혀 있어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130쪽 남짓되는 얇은 책이다. 조해일은 이 글들을 쓸 때,

명종조(明宗朝)에 그 성망은 높았으나 평생 환로(宦路)에라곤 나간 적이 없는 재야 선비 허순(許洵)의 [근기야록(近畿野錄)]이라는, 경기도 일원과 그 주변의 충분히 기록할 가치가 있으되 다른 서책에는 기록되지 않은 사실들을 모아 엮은 책자[를]… p.32.

바탕으로 썼다고 했다. 허순의 [근기야록]이 실재한 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동아일보 김정희 기자의 책소개는 허순의 [근기야록]이 이야기의 근거가 되었다는 걸 확인해주지만 이 기사가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낀 것이라면 대략 낭패다. 그외에 허순의 [근기야록]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다른 사료가 없으므로 조해일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픽션일 수 있다.

그 두번째 이야기에 임꺽정이 서림의 배신으로 관군의 공격을 받아 27대의 화살을 맞고 잡혀서 죽을 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임꺽정이 토포사(討捕使) 남치근(南致勤)과 나눈 대화가 기록이 되어 있다.

남치근: 묻는 말에 대답할 수 있겠느냐?

임꺽정: 대답 못할 바 없다.

남치근: 화살을 그렇게 맞고도 입을 열 힘이 남은 걸 보면 네 기운이 듣던 바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겠다. 헌데 그 기운을 왜 바르게 쓰려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구나.

임꺽정: 난 내 기운 바르게 쓰다가 죽는다.

남치근: 도둑 소굴 만들어 인명 살상하고 남의 재물 빼앗는 게 기운 바르게 쓰는 게냐?

임꺽정: 나는 옳은 인명 살상한 적 없고 바른 재물 빼앗은 적 없다.

남치근: 그러면 네가 살상한 인명은 모두 살상당해 마땅한 인명이며 네가 빼앗은 재물은 모두 빼앗겨 마땅한 재물이란 말이냐?

임꺽정: 그렇다.

남치근: 어째서 그러하냐?

임꺽정: 내가 빼앗은 재물은 모두 백성의 피땀을 짜내어 만들어 가진 재물이며 나는 그것을 빼앗아 본디 임자에게 돌려 주었다. 내가 살상한 인명은 그러한 바르지 못한 재물을 가진 자거나 그것을 지키려던 자들이다.

pp. 34-35.

이 기록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면, 임꺽정의 재산권 사상은 존 로크의 노동에 기반한 재산권 사상과 부합한다. 백성이 땀흘려 만든 재산은 백성의 것이라는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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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임꺽정의 재산권 사상

  1. 짤막하지만 호쾌한 기분이 들게 하는 대화네요. 가끔 누렇게 빛바랜 옛 책들을 펼치면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죠. 그래서 고전이나 역사서가 소장하기 좋은 책인가 봅니다. 오래 가지고 있어도 그닥 내용이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거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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