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과 내셔널 지오그래픽

관련글: 동물의 왕국 인류학에 이은 동물의 왕국 스포츠학; 동물의 왕국 정치학;

원조 “동물의 왕국”에는 관찰자가 보이지 않는다. 누가 어떤 과정으로 동물들의 생활을 관찰했는지는 나오지 않고, 오로지 관찰의 결과물만을 보여준다. 시청자는 마치 인공이 배제된 순수 자연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으로 “동물의 왕국”을 본다.

물론 이는 허구다. “동물의 왕국”을 찍기 위해 많은 스탭들이 오랜 기간 동안 아프리카의 초원을 누비고 다녀야 한다. 화면에 비치지 않은 수많은 원조 관찰자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동물의 왕국”은 편집된 화면들이기에 편집자의 세계관과 동물관이 반영된다. “동물의 왕국”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했던 사자는 용맹스럽고 강한 동물이긴 하지만 언제나 정의롭기만 하지는 않았다. 다른 포식자들의 먹이를 뺏아먹기도 하며 쓰레기 청소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때 “동물의 왕국”에서 쓰레기 청소부의 역할은 하이에나가 도맡아 했으며 사자는 용맹하게 사냥하고 쓰레기를 하이에나에게 남겨주기까지 하는 너그러운 통치차로 그려져 왔다.

사자 = 통치자: 하이에나 = 쓰레기 청소부라는 도식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동물의 왕국” 시청자들의 동물관을 지배해왔지만 최근에 들어서 바뀌었다. 사자와 하이에나의 관계는 경쟁의 관계이며, 때로는 하이에나가 사냥한 먹이를 사자가 뺏아먹는 조폭스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게 최근에 들어 새롭게 형성된 패러다임이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동물 다큐멘터리 촬영 기술의 발전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면과 더불어 다른 몇 가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왕국”은 여과되지 않은 렌즈를 통해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의 생활을 보여준다는 목적으로 제작되고 방영되었다. 그러했기에 김대중 전대통령, 농구천재 허재, 그리고 잠수라는 블로거에 이르는 폭넓은 팬덤을 구축할 수 있었다.

요즘 들어 가끔씩 보게 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동물의 왕국”처럼 동물의 세계를 다루지만 종종 관찰자가 아주 대담하게 화면에 등장한다. 때로는 거대한 아나콘다 뱀의 목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혹은 아프리카 늑대 새끼들이 모여있는 늑대 우리를 배경으로 잡은 리포터의 모습으로, 심지어는 호랑이의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동물의 왕국”은 아프리카 초원이 동물들만의 공간이라는 제작자와 시청자 간의 암묵적 동의를 전제로 한 다큐멘타리였기에 영상은 자연의 톱니바퀴를 어긋나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흔적이 보인다. 그런 흔적마저도 연출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그런 노력이 거짓이라 할 지라도 그런 노력을 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은 이미 인간에게 대부분의 땅을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예의가 최소한이라도 남아있었던 때의 이야기다.

가끔 인간을 사냥하기도 한다는 거대한 아나콘다의 목을 쥐고는 ‘이런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하는 표정으로 아나콘다를 여기저기 들고 다니는 “아나콘다 전문가”에게서 자연에 대한 예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 아나콘다는 아마존 정글에서만 강할 뿐 자신에게는 지렁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우월감이 보일 뿐이다.

인간의 접근을 경계하며 불안해 하는 아프리카 늑대의 새끼들 역시 “아프리카 늑대 전문가”에게는 아량을 베풀어서 헤치지 말아야 할 존재들일 뿐 그를 해칠 능력은 전혀 없는 열등한 존재들일 뿐이다. 그가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늑대의 우리를 망가뜨려서 늑대 새끼들이 죽게 된다 하더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화면만 제대로 나오면 되는 것이니까.

심지어 호랑이의 발자국조차 이제는 전혀 무섭지 않다. 호랑이는 사람을 보면 도망갈 뿐 사람을 해칠 용기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오는 자신감 때문이다.

자연을 무시하는 눈으로 내리깔고 보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오만한 렌즈가 자연에서 세발짝 떨어진 척하며 객관적인 렌즈인 척하는 “동물의 왕국”보다 더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드러내 놓고 오만한 것과 예의를 갖춘 척 하면서 속으로 오만한 것 사이에 진정 차이가 있다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조금의 예의를 갖추는 척이라도 하는 “동물의 왕국”이 그나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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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동물의 왕국과 내셔널 지오그래픽

  1. 글의 제목이 한글로 되어 있고 길거나 혹은 특수문자가 들어갈 경우 댓글기능이 마비되는 현상이 생기는데, 아마 워드프레스의 에러라고 보여집니다. 이 글도 그런 이유로 다시 포스팅합니다.

  2. daighter says:

    자연을 자연스럽게 찍기 위해 부자연스러워야한다는… ^^ 내셔널지오그래픽도 미지의 장소와 인간들을 지나치게 미지스럽게(?!)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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