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누그닌의 전설

연구가 진행되면서 사료의 부족으로 애를 먹었다. 침략과 정복이 반복된 유럽의 역사가 모두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없었지만, 작은 지방의 값진 과거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가 아누그닌(Anugnin)의 역사가 기록된 두루말이 문서를 구한 것은 운이 좋았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아누그닌의 역사를 활자로 찍어냄으로써 전설을 다시 역사로 만들어놓아주기를 두루말이 문서가 나에게 바라고 있었다. 그 두루말이 문서를 한 자도 빼지 않고 이 책의 부록으로 실었다.

그 두루말이 문서가 전해주는 아누그닌의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상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성된 형태의 경제체제가 존 로크(John Locke)의 머리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와 동시에 그런 역사를 인류의 기억에서 지워버리려 했던 “그들”의 노력도 알게 해준다.

아누그닌의 전설은 이렇게 전한다. 아누그닌에서는 누구도 땅의 임자가 되지 못한다. 아누그닌에서 최초로 땅의 임자임을 주장했던 사람은 땅의 경계에 말뚝을 박고 말뚝에 이름을 써넣자마자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났다. 그후로 아무도 땅의 임자라고 주장한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은 19세까지 부모가 만들어온 식량을 먹으며 살았지만, 20세가 되는 첫 날에 성인식을 가진 후 자신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는 어떤 농토이든 들어가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할 수 있었으며, 노동의 양에 합당한 양식을 분배 받았다.

곡물이 생산되지 않는 시기에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곡물을 보관해두었다. 그 양은 항상 2년 정도의 흉작을 버티기에 충분했다.

사람이 죽으면 그가 남긴 재산은 아누그닌의 공동재산이 되었다. 그의 자식들은 죽은 부모의 재산에 대한 권리가 없었으며 오로지 공동체의 일원으로 재산의 분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평화를 누리며 살던 아누그닌이 몰락하게 된 것은 어느 날 몰려들어온 창과 갑옷으로 무장하고 말을 탄 일군의 기사단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아누그닌의 모든 땅이 그들이 섬기는 부호의 것으로 등기되었다고 아누그닌 사람들에게 알렸다. 기사단은 아누그닌 사람들이 그 땅에서 계속 농사를 지으려면 땅 주인에게 매년 세작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누그닌 사람들은 기사단의 ‘통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기사단을 아누그닌에서 몰아내려 했지만 무장되어 있지 않은 그들이 기사단을 무력으로 밀어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아누그닌 사람들은 기사단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났고, 아누그닌이라는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from K. Rudalston, Undercurrent

Technorati :

4 thoughts on “아누그닌의 전설

Leave a Reply

Please log in using one of these methods to post your comment: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