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합리화 – 담배

보건복지부에서 담배값을 인상하겠다는 뉴스가 포털 사이트에 떴을 때 흥미로운 댓글을 하나 읽었다. 원문은 찾을 수가 없다. 그 내용은 이렇다.

돈 많은 사람들은 담배 안 핀다. 그들은 오히려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생활습관만 가진다. 힘들게 사는 서민들만 담배를 핀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그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게 담배이다. 누가 담배가 몸에 안 좋은 줄 모르나?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피는 거다. 담배 값 올리면 힘든 서민들 더 힘들게 하는 거다.

댓글 읽고 나서 든 생각은: “흐음.. 그럴싸한데.”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이 댓글은 중독자들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중독 합리화 행태였다. 중독자들은 물질(담배, 마약, 술)에 중독되었든지 혹은 행동(도박, 섹스)에 중독되었든지 상관없이 자신의 중독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댓글 단 사람과 비슷한 정도로 현실이 고달픈 사람들도 담배를 안 피고 잘만 살고 있으므로 담배가 꼭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더구나, 댓글 단 사람(혹은 모든 담배 중독자들)은 현실이 고통스럽기 훨씬 이전에, 그러니까 중고등학생 시절에, 담배를 피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중독 때문에 계속 피는 것이라서 담배를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 피는 거라는 주장은 근거가 더 약해진다. 현실이 괴로워서 담배를 피기 시작한 사람이 현실이 괴로울 때만 담배를 핀다면 위 댓글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다 하겠지만 대부분의 담배 중독자들은 그저 습관적 의존성 때문에 담배를 필 뿐이다. 대부분의 담배 중독자들이 식사 후에 담배를 피는 것 역시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담배를 핀다는 주장에 반증이 된다. 밥 먹고 나니 현실의 고통이 너무 아파져서 담배를 피는 건 아닐 것이기 때문에.

형식논리학에서는 위 댓글을 ‘중독자의 합리화’라고 규정하는 걸 ‘우물에 독타기(poisoning the well)’이라는 오류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게 우물에 독타기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생략.

담배 중독의 기전은 상당 정도 규명된 걸로 알고 있다. 내가 생물학자가 아니므로 정확하게 이해는 못하지만, 담배의 성분이 신경전달 체계를 간섭하면서 중독증세가 생긴다고 설명한 백과사전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담배 중독은 그저 중독일 뿐이다. 여러 가지 변명으로 합리화하지 말고 중독임을 인정하고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 근데, 위의 백과사전 기사에 따르면 담배 성분이 신경전달체계에 영구적인 변화를 줄 경우에는 담배 중독을 끊을 수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던데…

6 thoughts on “중독 합리화 – 담배

  1. “댓글 단 사람과 비슷한 정도로 현실이 고달픈 사람들도 담배를 안 피고 잘만 살고 있으므로 담배가 꼭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라는 문장은 ‘엄마친구아들’의 경우와 비슷한 인용인 것 같은데요. 저는 스물넷들어 처음 담배를 피기 시작했고, 집에 있을때는 전혀 피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 역시 그렇지만 일부 케이스로 전체를 규정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 요인들이 주는 영향자체를 무시할순 없지 않을까요?
    모든 문제의 진위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직접 소비세의 증가는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의 전체 세부담율을 높인다는 주장에 동의하며 우려를 표합니다.(한 사람의 스모커로서도 ㅠ_ㅠ)

  2. 모노레일/ 그게 꼭 엄마친구아들의 경우는 아닙니다. ‘댓글 단 사람’의 현실이 얼마나 고달픈지 모르지만 그 사람보다 더 고달픈 사람이 없을까요? 정작 저 스스로도 담배 안 핍니다. 그리고 전 잘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요는 (1) 현실이 고달픔 (2) 고달픔을 잊기 위해 담배 피움 (3) 현실 고달플 때는 담배를 피움의 단계를 거친다면 ‘댓글 단 사람’의 주장이 타당하겠지만, 대다수의 담배 중독자들은 (1) 어쩌다 담배 피움 (2) 중독됨 (3) 현실이 고달프든 아니든 상관없이 담배 계속 피움의 단계를 거치죠. 모노레일님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집에 있을 때 피든 피지 않든 상관없이 님이 담배 피는 이유는 중독되었기 때문 아닙니까? 그게 현실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여러 가지 선택 사항 중에 하나를 택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중고등학교 때 처음 피우든 아니면 그 후에 처음 피우든간에 그게 글의 요지와는 크게 상관이 없지요.

  3. 소비세(간접세)를 증가시키는 정책방향은 물론 잘못되었지요. 제대로 되려면 담배를 불법물질로 분류해서 생산 및 판매를 금지하고, 보건복지 비용 충당을 위해서는 직접세 형태로 세수를 늘려야 하겠지요.

    한국 정부의 전형적인 일처리 방식인 “왼팔이 하는 일을 오른팔이 모르게 하는” 방식이 여실히 드러나죠. 담배인삼공사는 점점 더 값비싼 담배를 만들어서 팔면서 보건복지부는 흡연인구도 줄이고 건강보험재정도 보충할 겸 담배에 붙는 세금을 올린다는 이 실제상황은 차라리 코메디보다 더 코믹하죠.

  4. 중독이 주변 환경에 영향받는다는 것은 알렉산더라는 심리학자가 내놓은 이론입니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책에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쥐공원실험’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악성으로 중독된 쥐라 하더라도 환경을 쾌적하게(공원처럼) 만들어 주면 마약을 피하고 중독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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