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자들

싸이코짱가의 블로그에 공감가는 글이 있었다. 도박중독: 경험금욕주의의 부작용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당한 실용주의자들이다. 뭐든 돈이나 물질로 직접 환산이 되어야 그 가치를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 아니던가. 이번에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 도 꼭 소나타 몇 천대 판셈으로 환산해야 뿌듯해진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했던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실용주의자들에게는 언제나 물질이 만물의 척도인 셈이다.

이게 꼭 IMF 외환위기 탓으로 돌릴 일인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IMF 외환위기 이후에 이런 경향이 너무 강해졌고, 사람들은 ‘실용주의’에 대해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다.

내가 그닥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에게는 스페인어를 공부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면 열에 열 돌아오는 말은 ‘스페인어도 쓸데가 좀 있죠’라든가 ‘여기에선 스페인어가 쓸모가 별로 없어요’ 등의 말이다.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스페인어의 ‘값어치’를 나한테 들려준다. 그리고 한국에서 스페인어의 가치는 상당히 낮다.

그런 사람들에게 스페인어를 배워서 “거미 여인의 키스”를 스페인어로 읽어보고 싶다든지 “돈키호테”를 읽고 싶다든지 아니면 중남미를 여행하고 싶다든지 하는 얘기를 하면 한 명도 납득시키지 못한다. 납득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페인어를 배우면 연봉이 얼마가 더 오른다라든가 아니면 스페인어 강사가 한 달에 얼마를 번다더라 하는 걸 설명해주는 것이다. 아니면 스페인어를 해서 스페인이나 중남미 쪽에 파견이나 주재관 근무를 할 수 있다든지 라는 걸 말해주는 것도 좋다. 그제서야 한국에서 스페인어의 객관적 값어치가 얼마인지를 알게되고 사람들은 궁금증을 해소한다.

이런 천박한 실용주의는 정부의 정책 수립과 실행과정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모든 정책은 최종적으로 몇 원의 가치를 창출했느냐로 판단이 된다. 이런 천박한 실용주의의 피해자이면서 소위 ‘국가 경쟁력’ 발전에 가장 필요하면서도 가장 낙후된 쪽이 순수학문, 그 중에서 자연과학이다. 자연과학과 그의 실용적 적용인 공학의 전통을 몇 백년 동안 가지고 있는 서구에서는 자연과학도에게 당장 파란 종이의 장수로 표시할 수 있는 결과물을 재촉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과학 연구의 결과물을 돈이 얼마가 되느냐로 판단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황우석의 “300조원”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줄기세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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