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교수 강연

어제(15일 금요일) 김민수 교수가 내가 다니는 직장에 와서 강연을 했다. 김민수 교수는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 선배들의 친일 행적을 논문에 언급했다는 이유로 해직되었다가 오랜 기간의 법정 투쟁을 거치고, 또 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으려 미적거리는 서울대와의 투쟁 후에 복직한 사람이다. 김민수 교수 이름은 많이 들었으나 강연을 들을 기회는 없었는데, 좋은 기회가 생각하여 참석했다.

강연은 우리나라 지폐의 인물 도안을 일본 화폐, 네덜란드 화폐, EU 통합 화폐 등과 비교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미 언론에 기사화된 대로, 1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을 그린 사람은 운보 김기창이고 그는 자신의 얼굴을 모델로 하여 세종대왕의 얼굴을 그렸다. 세종대왕의 영진은 남아 있는 게 없으므로 김기창이 세종대왕의 영진을 보고 그렸을 리는 없고, 또 그가 달리 이용할 사료가 없었다. 운보 김기창이 자신의 얼굴을 모델로 하여 그린 것까지는 참아준다 하더라도, 그가 대표적인 친일화가로서 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 얼굴을 그린 것은 문제라고 김교수가 지적했다.

김기창은 1944년 ‘결전 미술전람회’에 ‘적진육박’이란 그림을 출품하여 상을 받았다. (한겨레기사) 기사를 클릭하여 그 그림을 보시라. 이건 묵과 붓과 화선지를 이용한 동양화인데, 아무리 김기창이 달인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의 선의 힘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려면 온 마음이 그림의 정신에 쏟아부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김민수교수 왈,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보면 압니다. 화선지에 붓으로 선을 그어서 대검을 그린 것. 저건 화가의 마음이 감동으로 엑스터시에 있어야만 가능한 겁니다.”

아마추어인 내가 보기에도 이 그림은 구도와 구성과 테크닉에서 경지에 오른 그림이다. 그리고 그런 그림이 친일을 위해 그려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과 거의 똑같은 그림이 월남전 참전을 찬양하는 주제로 탈바꿈되어 국방부 청사에 걸려있다는 것이다.

미군에 맞서 옥쇄하려 돌진하는 황국병사와, 미군의 지휘를 받아 베트콩을 척살하려 돌진하는 한국군병사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으니 그림을 그대로 이용해도 되겠지.

운보 김기창의 만원권 세종대왕 뿐 아니라, 5천원권과 1천원권, 그리고 100원짜리 동전도 문제이다.

오천원권 율곡 이이 영정은 이종상, 천원권 퇴계 이황은 이유태 화백이 그린 거고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백원권에 세종대왕이 있는데 그건 월전 장우성이 그린 겁니다. (오마이뉴스)

이런 열받는 이야기들이 이어진 후, 이른바 문화 선진국의 디자인 사례들이 소개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Jean Nouvell이 디자인한 아랍문화관이었다. 철제와 유리로 만든 현대식 건물인데, 그 테마를 아랍의 전통 미술을 채용한 것이다. 세부를 보면 현대식 건물이고 전체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아랍식 건축물.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윤두서의 자화상. 우리 화폐의 세종대왕, 율곡 이잉, 퇴계 이황의 맥빠진 초상화를 보고난 후에 윤두서의 자화상이 뜨자 그 자화상이 그렇게 칭송받는 이유를 0.1초만에 알게 되었다. 자그마한 책의 도상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포스가 느껴지는 그림.

4 thoughts on “김민수 교수 강연

  1. 최호영 says:

    저는 김민수 교수에게서 마지막으로 정식 학점을 받은 운좋은 학번이었죠. 제가 수강한 다음 해던가 해직되었으니까요. 수업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시인 이상(李箱)의 시(詩)를 미학적으로 해석한 부분이었는데, 국문과에서도 초월적, 초형적 등등 초(超)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못하던 이상의 난해한 시가 미학적으로 보니 저같은 평범한 둔재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더란게 신기했죠. 세상을 보는데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방향에서의 접근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어린 제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구요. 그 때만 해도 친일행적 교수에 대한 문제로 해직될거라곤 생각못했지만 이상의 시 해석에 대해 국문과 교수들과 험악한 분위기를 맺었던 걸로 봐서 저 양반 평탄치 않겠구나 하고 생각은 했었죠. 어쨌거나 말도 달변이고 무엇보다 생긴것도 (^^) 약간 반골타입 아닌가요? 주변에 하두 그런 사람이 많아서… 뭔가 당장에라도 이죽거릴것만 같은 그런 표정..

  2. 그런 일도 있었구나. 권영민교수가 편집한 이상문학 60년사라는 책에 논문이 실렸군. 그거 한 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김민수 교수가 강연 중에 한 말이 우리나라의 대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죽고 나면 작품과 함께 사라진다고. 그 이유는 그 사람이 대가라고 불린 이유가 패거리 문화에서 보스였기 때문에 대가였던 것이지 그 작품이 대단해서 대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야기는 우리 나라의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것 같아. 학계도 그렇고 말야.

    퍼뜩 떠오르는 이름은 서울대 국문학과 김윤식 교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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