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는 B급 코메디

오늘 드뎌 보고야 말았다.  영화 같이 보러 간 사람이 디워 보고 싶어 하길래 봤다.  웬만하면 안 보고 싶었으나 영화 선택권을 내가 안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볼 수 밖에 없었다. 

1. B급 코메디 or 개쓰레기 

총평을 하자면, 디워를 좋게 봐주면 B급 코메디 영화이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개쓰레기다.  내가 본 영화 중에 all time worst를 뽑으라면 넣을만한 영화다.  굳이 비교 대상을 찾자면 Plan 9 from Outer Space가 동급이다. 

그러니까, 심형래는 Edward D. Wood, Jr.와 동급의 영화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는 아니다.  Edward D. Wood, Jr.는 초저예산으로 (정말 초초 저예산으로) Plan 9 from Outer Space를 만들었는데 심형래는 700억원을 들여 디워를 만들었다는 게 큰 차이다. 

Plan 9 from Outer Space는 그 뜬금없는 이야기 전개와 출연자들의 어색하다못해 어이가 없는 연기, 그리고 마지막에 관객을 민망하게 만드는 억지 피날레 씬으로 특징을 잡을 수 있는데, 그 모든 특징들이 디워에 고스란히 체현되어 있다. 

그래도 마음을 곱게 써서, 디워를 B급 코메디로 보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심형래가 디워의 관객으로 상정한 사람들이 기존 영화의 문법들에 익숙하고, 또 기존의 표준화되다시피한 연기에 익숙하며, 기존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러한 기존의 문법과 연기와 스토리텔링 방식을 모두 깨부순 파괴자적 영화를 보고 코메디임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관객들이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다 만족된다면 디워는 훌륭한 B급 코메디 영화이다.  A급 코메디가 아닌 이유는 사람을 대놓고 웃기는 영화가 아니고, 기존의 틀들을 비꼬고 냉소하는 그런 B급 정서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해야만 코메디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디워는 개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게 더 진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이건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다.  간단하게 설명가능한 것과 복잡하게 설명해야만 하는 두 가지 이론이 있을 때 간단한 이론이 맞다는 것. 

SF의 정의에서 디워가 SF가 아니고 기껏해야 환타지로 쳐줄 수 있다고 한 건 영화를 보고 나니 논의할 가치도 없는 주제였다.   SF냐 환타지냐의 문제가 아니고, 디워는 간단하게 괴수물이다.  코메디물로 치자면, 이건 의도하지 않은 블랙코메디냐 아니면 성공한 B급 코메디냐의 문제이다. 

2. 심형래의 슬랩스틱 세계관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나는 게 있었다.  스토리가 부족한 정도가 아니고, 스토리 자체를 얘기할 수 없을 정도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바 있다.  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스토리 전개를 보다가 심형래가 한 말들이 기억났다.  반지의 제왕도 이야기가 재미없고, 쥬라기 공원은 공룡들이 뛰어다니기만 하고 하는 등등 심형래가 다른 영화들에 대해 내린 평가.   그 평가들이 심형래의 진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이 있다고 사람들이 보는 이미지가 다 같지는 않다.  근시인 사람은 가까운 것은 잘 보지만 먼 것을 잘 못 본다.  색맹이나 색약은 색깔을 구별하지 못한다.  심형래는 영화나 소설을 볼 때 스토리 전개를 보지 못하는 스토리맹이나 스토리약이 아닐까?  디워를 보면 이야기 전개는 뜬금없고 어이없기까지 한데 가끔씩 한 장면씩에 굉장히 공을 들인 것 같은 흔적이 보인다.  정말 그는 스토리 전개라는 건 잘 보이지도 않고 따라서 중요하지도 않은 것이며, 그래서 짧은 장면에 집중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방식의 진행은 영구의 슬랩스틱 코메디의 연출 방식과 흡사하다.  슬랩스틱 코메디에는 스토리가 없다.  주기적으로 튀어나오는 슬랩스틱이 웃음의 요소이다. 

영화 중간중간에도 심형래식 슬랩스틱이 나오고 그것 때문에 이게 B급 코메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되지만 심형래는 끝까지 진지하다.  그저 심형래는 슬랩스틱이 너무나 몸에 배어서 세계관 자체도 슬랩스틱이 되어버리고 영화를 만들 때도 슬랩스틱이 본능처럼 나오는 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진지하게 만든 영화 여기저기에 슬랩스틱이 나오는 걸 볼 때는 반은 우습고 반은 어이가 없어서 웃게 되더라.

3. 컬트의 대상이며 패로디의 소재

이 영화를 디빠들이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게 된다면, Edward D. Wood, Jr.의 Plan 9 from Outer Space에 필적하는 못만든 영화에 대한 컬트가 한국에서 자생하게 될 것이다.  Ed. Wood는 살아서는 Plan 9 컬트를 누리지 못했다.  심형래는 영화 발매 하자마자 컬트가 생겼으니 이건 심형래가 Ed. Wood를 능가하는 점이다.   (컬트(cult)는 우리말로 정확하게 번역하면 ‘사이비종교‘이다.)

앞으로 기다려지는 건, 코미디언이나 쇼호스트들이 디워를 가지고 농담을 만드는 거다.  디워에서 농담 만들 거리는 꽤 많아서 아마 한 달 정도는 디워로 우려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패러디 영화의 소재로 쓰일 수 있을 거다.  예를 들면, ‘무서운 영화’ 시리즈에 디워를 이용할 수도 있을 듯.  하지만 그 전에 디워가 미국에서 성공해야 한다.  ‘무서운 영화’ 시리즈는 성공한 영화만 패러디하기 때문이다.

또다른 가능성은 미국 케이블 채널인 Sci-fi TV의 토요일 오전 프로그램인 Mystery Science Theater의 제작에 디워가 이용되는 것이다.  Mystery Science Theatre는 내가 좋아했던 프로그램인데, 못만든 영화들을 계속 보여줘서 죄수들이 재미없어서 혹은 괴로워서 죽도록 하는 감옥이 배경이다.  단 3명(로봇도 사람이라면)만이 살아남는데, 이들은 어떤 영화를 보여줘도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영화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긴다.  그 감옥에서 틀어주는 영화들은 어쩌면 모두들 그리 못만들었는지.  하지만 그 3명의 죄수들이 농담 따먹는 것을 들으면서 영화를 보면 그런 영화들도 훌륭한 코메디 소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워도 언젠가는 토요일 아침의 Mystery Science Theatre에서 훌륭한 오락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 의도하지 않은 코메디도 재미있다

사실 난 Plan 9 from Outer Space를 좋아한다.  그리고 죠니 뎁이 주연한 Edward D. Wood, Jr.의 전기 영화 Ed Wood도 좋아한다.  영화 Ed Wood는 감동적이라서 좋아하고, Plan 9 from Outer Space는 격식을 파괴한 영화라서 재미있어서 좋아한다.

디워를 보고 나서 좋았던 건, 같이 영화를 본 사람하고 디워의 어이없어서 웃긴 장면들을 같이 짚어가면서 같이 웃을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어주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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