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클링 와인 v 샴페인

몇 년 전만 해도 파티에서나 터뜨리던 알코올 음료가 샴페인이었는데, 요즘은 와인 유행에 힘입어 샴페인이 스파클링 와인이란 이름으로 널리 퍼져 있다. (‘음용된다’라고 쓰려 하다가, 요즘 읽고 있는 Stephen King의 “On Writing”이 생각나서 걍 ‘널리 퍼져 있다’라고 쓰는 건데, 이것도 썩 좋은 표현은 아닌듯.  Strunk and White의 Elements of Style도 읽었건만 이젠 거의 다 까먹었다.)  

그니까 샴페인은 이제 스파클링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백포도주, 적포도주처럼 와인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갈아입은 것 같다. 

누군가 좀 쿨한 사람이 샴페인을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은 ‘오오~’거리면서 따라가는 현대의 풍조 때문에 ‘스파클링 와인’이란 이름이 유행을 타는 것으로 보인다. 

근데 ‘스파클링 와인’은 아주 세심하게 만들어진 단어이고 특정한 목적을 가진 단어이다.   이 말의 유래를 아는 사람은 ‘스파클링 와인’이 요즘처럼 자연스레 널리 쓰이는 풍조를 보고는 다소 놀랄 만하다.

‘샴페인’이란 이름은 프랑스의 지방 이름인데 여기에서 나오는 거품 나는 와인을 샴페인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 이후에 샴페인이란 이름은 거품 나는 와인을 통칭하는 보통명사(generic name)로 쓰이게 된다. 

미국에서 파티에 터뜨리는 샴페인은 프랑스의 샴페인에서 만든 샴페인일 수도 있고 캘리포니아의 나파에서 만든 샴페인일 수도 있다. 

프랑스인들이 보기에 이게 기분 나쁘니까 ‘샴페인’이라는 이름은 프랑스의 샴페인 지역에서 생산되는 거품 나는 와인에만 쓸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는데, 이와 유사한 주장들이 유럽의 주류 산업과 낙농업 관련 제품들에 아주 많았다. 

이게 소위 국제통상법에서 지리적표시(geographical indications) 논의의 배경이다.  한-EU FTA에서도 지리적표시(및 전통적 표현(traditional expressions))가 큰 이슈 중 하나다.  왜냐하면 지리적표시 보호를 주장하기 시작한 국가들이 유럽 국가들이었고 현재에도 WTO TRIPS 등을 통해 지리적표시 보호를 확대/강화하자고 주장하는 쪽은 언제나 유럽연합이었기 때문이다.  

[샛길이지만, 한-미 FTA 지재권 챕터의 지리적표시 조항은 이러한 EU측의 움직임에 대항하여 지리적표시 보호에 관심없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문안이 쓰여져 있는데, 이 문안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한국/미국/EU의 상표법과 지리적표시보호 관련법에 대해 ‘상당한'(‘대단한’이 아니라) 지식이 있어야 한다.]

프랑스(와 이를 대변하는 EU)는 ‘샴페인’이 프랑스의 샴페인 지역에서 생산되는 거품 나는 와인에만 쓸 수 있도록 다른 나라들의 법제를 변경하도록 요구해왔고, 그게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TRIPS 22조에서 24조 및 EC 혹은 EU가 다른 나라들과 맺은 주류협정을 보라.]

그런데 그들은 이러한 노력에만 만족하지 않고, 샴페인을 대체하는 보통 명사까지 개발하여 샴페인 수입국에서 이 단어를 쓰도록 요구하게 되는데 …

그 이름이 바로 sparkling wine이다. 

[샴페인 – 스파클링 와인]과 유사한 관계를 찾으라면

[콘돔 – 남성용 피임도구]

[아스피린 – 두통약]

[제록스 – 복사기]

등등인데, 샴페인이 지리적표시인 반면 콘돔과 아스피린은 상표라는 점이 다를 뿐 법적으로 보호받는 명칭과 보통명사의 관계라는 점은 같다.

술을 거의 안 마시는 내 입장에서야 스파클링 와인이든 샴페인이든 별 관심도 없고 상관할 바도 아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99% 이상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 사는 입장에서는 프랑스 샴페인에서 생산된 거품나는 와인은 ‘샴페인’을 달고 수입되고, 캘리포니아 나파에서 생산되는 거품나는 와인은 ‘스파클링 와인’을 달고 들어온다 하여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프랑스인들이 그렇게나 열심히 ‘샴페인’이란 이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게 가상하기도 하고, 거기다가 ‘스파클링 와인’이란 이름까지 만들어서 이를 전세계적으로 보급하려고 노력해온 것도 참으로 대단한 노력이다.   그러했기에 이제 샴페인이란 단어보다는 스파클링 와인이란 단어를 더 많이 볼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법적이거나 경제적인 면을 떠나서, 도덕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캘리포니아 나파에서 만든 거품 나는 와인에 ‘샴페인’이란 이름을 붙이는 게 과연 비도덕적이냐 하면 그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콘돔’이 ‘남성용 피임도구’라는 뜻으로 쓰인게 몇 십년 된 지금에는 오리지날 콘돔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 콘돔이란 이름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 그닥 비도덕적이 아니지 않은가? (이건 ‘상표 희석화(dilution)’에 대한 논의 참조)  그니까 거품 나는 와인을 모조리 ‘샴페인’이라고 부르는 게 그닥 비도덕적이지도 않게 살아온 게 몇십년이 지난 지금에 캘리포니아 나파에서 생산된 거품 나는 와인을 ‘샴페인’이라고 부르는 게 비도덕적(‘절도(theft)’라는 표현까지도 쓴다)이라는 분위기로 몰고 가는 것은 프랑스인들의 계산된 치졸함이다.

어찌 됐거나 프랑스인들의 노력은 결실을 거둬서 이제 파티에선 샴페인 대신 ‘스파클링 와인’을 터뜨리고, 식사 시에 적포도주나 백포도주가 안 끌릴 때는 ‘스파클링 와인’을 마셔주는 시대를 살고 있다.

2 thoughts on “스파클링 와인 v 샴페인

  1. 전 이제까지 샴페인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탄산이 함유된 와인, 스파클링은 인위적으로 탄산가스를 주입한 와인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혼자 납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파클링”이라고 발음하면 다이아몬드도 생각나고 왠지 폼나지 않나요? 샴페인이라고 하면 벼락출세한 졸부나 마시는 와인같은 기분이 드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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