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이든지 메인이든지

나는 원래 시골 출신이다.  중학생 때 중소도시로 이사했고, 대학 들어가면서 서울로 옮겼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 중에 1/3은 시골에서 살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으나 한국 남자 평균 수명의 절반 정도 살았으니까 평균대로라면 지금만큼 더 살게 될 거 같다.  

어릴 때는 도시에서 사는 게 그렇게 신나고 좋더니, 이제는 시골에서 살고 싶다.  시골도 걍 시골이 아니고 불곰이 출현하는 콜로라도나 길 가다가 스티븐 킹을 만날지도 모르는 메인(Maine) 같은 인적 드문 곳에서 살고 싶다.  한국에서라면?  글쎄.  강원도의 어느 조그만 마을 같은 데라면 좋겠지?  겨울 되면 눈이 많이 내려서 누가 찾아오기도 힘들고 내가 다른 동네 마실 가기도 힘든 그런 곳.   이틀에 한 번 정도 책 배달 받고, 기름 보일러로 방 덥히는 그런 곳. 

아리조나 있을 때는 I-40 주변의 랜치(ranch)를 방문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거기는 보통 640에이커를 하나의 농장 단위로 쓰는데, 이건 아마 서부 개척 시대 때 1마일씩 땅을 잘라서 나눠주었을 때의 구획이 계속 이어져왔기 때문으로 짐작한다. (640에이커는 가로 1마일, 세로 1마일 짜리 땅의 넓이다.  1마일은 1.6km.  640에이커면 꽤 큰 땅이다.)   어떤 땅들은 320에이커, 160에이커, 80에이커 등으로 쪼개져 있긴 한데, 척박한 땅에 소 키우려면 640에이커 정도는 되어야 방목할 맛이 난다. 

농장이 640에이커 짜리면 거기에는 랜치 하나가 있다.  농장 주인이 사는 곳이다.  거기 사람들은 카우보이 태가 난다.  카우보이 후손들이 많다.  외지인도 있긴 하지만, 우리처럼 투기 목적으로 사들일 만한 땅들이 아니기 때문에 주로 소를 치는 목적으로 땅을 소유한다.  640에이커에 랜치 하나씩 있으면, 옆집까지 거리가 보통 1마일, 즉 1.6km이다.  걸어서 가기는 쫌 멀다.  게다가 도로가 제대로 안 닦여 있고, 기껏해야 흙길이기 때문에 차로 이동해도 멀게 느껴진다. 

이런 랜치에는 전력선이 닿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워낙 주택 밀도가 낮은 곳이라 전력선을 까는 비용 대비 효과가 너무 낮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랜치는 태양열 발전을 이용한다.  낮에 태양열로 만들어둔 전기를 밧데리에 넣어두었다가 밤에 이용한다.  냉장고는 저전력 전기 냉장고이거나 혹은 가스로 작동하는 냉장고이다.  가스로 작동하는 냉장고라는 건 거기서 처음 봤다.  가장 중요한 물은, 지하수를 뽑아서 쓴다.  지하수가 안 나오면 죽음이다.  물을 사서 써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큰 탱크 로리가 와서 물을 탱크에 채워주고 간다.  

전화는 무선을 이용한다.   텔레비전은 인공위성 접시로 받는다.  인터넷도 그렇다.  그래서 대부분 랜치에 인공위성용 접시가 달려 있다. 

태양열 발전으로 대규모 전력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밤에 불을 환하게 밝힐 수 없다.  최소한의 불만 켜놓는다.  자연스레 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밤에는 프레데터들이 우는 소리도 들린다.  늑대나 mountain lion 등등. 

여름에 비가 오면 지표수가 갑자기 많아지면서 국지적인 홍수가 발생하는데, 이 넘이 길을 다 망가뜨린다.  애시당초 흙길이니 물이 한 번 쓸고 지나가면 다 없어진다.  게다가 개울의 모양도 바뀌어버린다.  이전에 차로 건널 수 있던 계곡이었는데 이번엔 안 건너지기도 한다.  그래서 SUV나 픽업 트럭만인 유효한 자동차이다.  SUV도 모양만 그럴싸한 것 말고 하드 코어 SUV여야 한다.  미국인들의 SUV와 픽업 사랑은 나름 이유가 있다. 

나는 아리조나 같은 사막보다는 콜로라도 같은 산악이 좋다.  아리조나는 모래 사막은 아니다.  관목들이 있고 생명력 질긴 풀들이 자라는 사막이다.  모든 생명체들이 가진 극악의 생명력.  나도 그런 생명력을 가져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사막에서는 무력함과 의욕상실이 온다.   고독의 강도도 여기가 최강이다.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서도 고독에 대한 두려움을 여기서만큼 강하게 느껴본 적은 없다.  무서웠다.

사람 10명이 손을 잡고 둘러싸야 아우를 수 있는 나무들이 자라는 산악이 그래도 여유롭다.  동물들도 살지는 산악.  거기서라면 이웃까지 가는 데 1마일이라 하더라도 괜찮을 듯.  영화 ‘미저리’의 배경 같은 곳이 딱 좋은데.   언제 그런 곳에서 살게 될까?

9 thoughts on “콜로라도이든지 메인이든지

  1. daighter says:

    미국의 시골, 외진 곳은 한국과 좀 다른 느낌. 자연 그 자체가 정말 엄청난 포스로 다가온다고나 할까요? 여하튼 저는 native 도시맨인데, 이런 저마저도 서울을 떠나고 싶으니 변해가나 봅니다. -_-

  2. 메인 주, 너무 북쪽에 있어요.
    알라스카로 갈 거야 적응하면 되겠지 못할게 뭐가 있어 생각했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에 머리속이 얼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알라스카는 역시나 무리구나 싶더군요. 추위에 엄청나게 약해요. 그래서, 여기서 이 글 읽은 생각이 들어서 메인주는 어떨까 찾아봤는데, 역시 춥다는 증언들만 있어요. 여기도 포기. 음, 콜로라도. 그런데 곰이 나타나면 어떡하지. ;;

  3. 실은 실제로 간곡하게 옮겨갈 생각보다는 살고싶은 곳들을 찾아보며, 찾아보는 이 상태를 즐기는지도 몰라요. 천년여우에서, 여주인공이 ‘ 그 ‘를 사랑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 그 ‘를 평생 좇는 자신을 더 사랑했을 수도 있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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