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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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와인 배우기 열풍에 대해 마뜩찮게 생각한다는 건 와인 열풍에서 이미 한 번 말한 바 있다.   그래도 만화의 재미는 와인 대사기극과는 별도일 것이므로 ‘신의 물방울’을 구해서 보았다.   읽어본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이고, 안 읽어본 사람들도 ‘맛의 달인’이니 ‘초밥왕’ 등의 미식가 만화들에서 익숙해져 있는, 맛 하나로 천국을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형형색색의 언어로 꿀칠되어 있는 만화이다. 

와인을 소재로 해서 간간히 사랑 이야기를 집어넣는 것도 ‘맛의 달인’과 ‘초밥왕’에서 흔히 보아온 좀 식상한 양식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재미있다.   와인을 갖고 호들갑을 떠는 그 오바질도 익숙해져서 참을 만 하다. 

‘신의 물방울’에서 자주 언급되는 Robert Parker, Jr.에 대해서는 약간의 지식이 필요할 듯 하다.  Robert M. Parker, Jr.라고 미들네임까지 써주는 게 보통인 듯 한데, 이 사람은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변호사로 10년간 일했던 사람이다.  왜 와인 평론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모르겠으나 (꽤 중요한 이야기가 있을 듯) 10년간의 변호사 생활을 때려치고 와인평론가의 길로 접어든다.   그 이후로는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와인 평론가로 이야기되어지는 인물이 되었다. 

Robert Parker, Jr. 이전의 와인평론가들은 특정 양조가에 이해관계(vested interest)가 있어 편향된 평론을 쓰는 사람들이었는데, Robert Parker, Jr.는 와인 소비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평론을 쓰려고 했다고 스스로 말했다. 

이 부분이 Robert Parker, Jr.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데 일조했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그도 보르도 와인에 집착하는 편향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가 평론을 시작할 때 보르도에 이해관계가 있지는 않았지만 명성을 얻고난 후에도 보르도 와인을 편애하면서 이해관계가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보르도 지역은 Robert Parker, Jr.를 특급대우하고 있으니까.

보르도 와인이 그만큼 좋은 것이라면 Robert Parker, Jr.의 편애도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소위 Judgment of Paris라는 사건 이후 줄곧 프랑스와인이 캘리포니아 와인에 밀리면서 Robert Parker, Jr.의 보르도 와인 사랑도 권위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Judgment of Paris는 그 작명 센스가 돋보인다.  파리에서의 심판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파리를 심판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는 이중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파리를 심판하는 것은 프랑스를 심판하는 것이고 이는 곳 프랑스 와인에 대한 심판이란 의미.

1976년에 있었던 The Paris Wine Tasting of 1976 (“Judgment of Paris”)는 11명의 유명 와인평론가, 레스토랑 관계자, 양조인을 심판으로 하여 프랑스와인과 캘리포니아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한 일이다.  

결과는 짐작하겠지만,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모두 최고 점수를 받은 와인은 캘리포니아산 와인이었다.  이 때의 결과는 캘리포니아 와인이 압도적이었다 말할 수는 없지만, 최고 점수를 받은 와인은 모두 캘리포니아산 와인이었다는 점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참가한 심판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이 결과는 미국에는 보도되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소개되지 않거나 의미가 폄하된 채로 간략하게 소개되었다.

이후 1978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재현된 테이스팅에서는 캘리포니아 와인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다.  Judgment of Paris로부터 10주년이 되는 1986년에 다시 테이스팅이 벌어지는데, 이 때 역시 캘리포니아 와인이 승리한다.  30주년이 되는 2006년에는 상위 1~5위까지의 와인이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이었고 6등부터 프랑스 와인이 등록되게 되면서 프랑스 와인은 치욕을 안게 된다.

Robert Parker, Jr.의 입맛이 이 모든 테이스팅의 심판들의 입맛과 구별되고 독특하고 또한 객관적이고 옳은 것이라면 그의 보르도 사랑도 정당화되겠지만, 거듭되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승리와 프랑스 와인의 패배로 보건대 그의 보르도 사랑도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문제는 ‘신의 물방울’ 역시 Robert Parker, Jr. 만큼이나 프랑스 와인 사랑이 끔찍하다는 것이다.   와인 초보자가 읽으면 ‘역시 보르도 와인이 최고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보르도 와인은 최고의 와인으로 칭송받는다.   이 지점에서 일본인들의 탈아입구의 욕구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도 유럽인이 되고 싶은 일본인들.  와인도 프랑스 와인을 마셔야만 하는 그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고 서구인들이 선망해하는 문화를 갖추었으면서도 정작 그들 스스로는 유럽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열등감에 싸인 사람들.  신기한 종족이다.

Judgment of Paris 사건 이후 프랑스인들의 치졸한 행동을 보면 왜 일본인들이 그리 유럽인이 되고 싶어하는지 더 이해가 안 가.  패배를 인정 안 하는 소인배스런 모습을 프랑스인들이 많이 보여주는 것 같고, 비즈니스 거래할 때의 프랑스인들의 치졸함은 그 적수가 잘 없을 정도인데. 

p.s. 1. 참고로 요즘은 칠레 와인도 상당히 좋게 나온다는 것.  

p.s. 2. 나는 와인을 마시지 않으면서 걍 귀동냥한 것으로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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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신의 물방울

  1. says:

    이탈리아 와인도 맛있더군요. ㅎㅎ
    신의 물방울, 9권까지 보다가는 “12사도 가운데 겨우 2사도 찾는 데 9권이나 걸려? 그럼 앞으로 이 장광설을 몇 권 더 참아줘야 한다는 말인가!” 하며 그만 두었다지요.

    와인을 나름 좋아합니다만, 프랑스 와인 맛있는줄 모르겠더이다.
    오히려 쌉쌀하면서도 개운한 것이, 내 입맛에는 칠레 와인이 딱이더란 말씀.
    아, 먹고 싶네. ;;

  2. Anonymous says:

    일본 만화의 특징이 스토리의 무한 연장 아닙니까? 12사도를 찾았다 해서 이야기가 끝날 거라 기대하기도 힘든 게 그들 만화의 속성.

    와인을 놓고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다 말하려면 와인을 얼마나 먹어야 할지. ^^
    저는 술을 거의 안 마시기 때문에 와인에 대해 뭐라 말하기도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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