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돈스쿨

서울대 법대의 이용식 교수가 ‘현대형법학’이라는 책을 쓰면서 그 서문을 아래와 같이 썼다고 한다.

7-3 사태. 2007년 7월 3일 23시 57분 통과된 로스쿨법으로 인하여 야기된 일련의 사태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로스쿨의 유치를 위하여 대학들이 벌이는 무한경쟁은 가히 살인적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교수 숫자를 엄청 늘리고 빌딩을 번쩍번쩍하게 새로 짓고 도서를 몇 만 권씩 구입하여 수백 억씩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로스쿨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면서 저자의 머릿속에 들었던 질문은, 로스쿨의 본질은 무엇일까이었다. 본인은 로스쿨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이에 대답하는 것은 난센스이고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념형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로스쿨 모습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는 그 제도적 원형(프로토팁)으로서 미국 로스쿨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이 무엇인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로스쿨 유치를 위해 우리나라 대학들이 해야 하는 일들을 보면 또 조금 알 수 있을 것이다. 로스쿨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저자가 보기에 로스쿨의 본질적 핵심은 돈에 있다. 누가 뭐래도 결국 로스쿨은 돈이라는 것이다.

‘로스쿨=돈’이라는 명제. 그것이 모든 것의 결론이다. 그런데 윗분들은 로스쿨은 돈으로 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분들이 로스쿨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저자는 모르겠다. 로스쿨의 본질이 돈인데, 로스쿨을 돈으로 사지 말라고 하는 것은 로스쿨의 본질에 반한다. 로스쿨은 돈으로 사는 것이다. 바로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로스쿨을 국민들이 결단했다. 그동안 법률가들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층이라고 여겨져 왔다. 사법서비스의 문턱에 접근하려고 하면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를 먼저 보이는 그런 자들로 치부되고 있다. 그래서 이를 허물어야 하겠다는 것이 국민들의 뜻이다. 그 수단이 바로 로스쿨의 도입으로서 법률가 숫자를 대폭 늘려 사법서비스를 개선,향상시키자는 생각이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로스쿨은 선인 것이다. 기존의 대학 학부 시스템은 악이고 폐해이며 청산의 대상이다. 국민이 선이라고 선택한 것은 로스쿨이었는데, 그러나 그 본질에는 돈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서민 대중과 약자를 위한다는 참여정부가 돈을 결단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로스쿨은 돈스쿨이고 이는 결국 미국에서처럼 유전무죄,무전유죄, 그리고 사법의 스포츠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를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한다.

그 런데 이러한 돈스쿨을 선택한 국민들이 1,500만원 내외의 등록금이 비싸다고 아우성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의 로스쿨 등록금은 5000만원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회계학 전문가들의 분석이고 보면, 1500만원 내외의 로스쿨 등록금을 책정하여 적자를 안고 살아가겠다는 우리 대학들도 뭔가 이상하다. 심지어는 등록금 무료의 로스쿨을 시행하겠다고 신청한 대학들도 있다. 로스쿨을 유치하려는 목적이 다른 어딘가 정치적 이유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로스쿨 허가에서 지역 안배 내지 지역 균형발전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조하는 것을 보면 역시 로스쿨은 정치적 산물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 로스쿨은 바로 정치이다. 우리나라 로스쿨은 정치적으로 논의가 시작되어 정치적으로 논의가 끝났다. 우리나라에서 로스쿨 도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이었고(참여정부 주연, 한나라당 조연, 국민 관객의 영화였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로스쿨의 비극이다. 우리 모두가 패자이다.

이러한 로스쿨 체제하에서 법학의 모습은 어떠할지에 관해서도 로스쿨 문턱에 가 보지 못한 본인은 전혀 알 길이 없다. 대체로 법률 이론이 아니라 실무적인 교육이 요구된다는 말을 한다. 즉 로스쿨의 본질은 이론이 아니라 실무에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하다. 이것 또한 미국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다. 로스쿨에서 법학의 학문적 성격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그 도착점은 법학의 학문적 종말이다. 로스쿨의 본질상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러한 운명적 결단을 이미 내린 것이다. 그것이 로스쿨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스쿨법의 통과는 학문으로서의 법학에 대한 사형선고이고 법학의 학문적 성격에 종말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필자가 전공하는 형법에 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형법학은 쇠락해 가는 것이며, 이를 국민들은 기꺼이 선택하였다. 형법학의 종말. 그것이다.

로스쿨 유치신청을 하면서 나라에서는 교수들에게 지난 5년간 연구업적 800퍼센트를 요구했다. 당초에는 2007년 7월 3일 법이 통과되고 8월 31일까지 이 업적 기준을 충족시켜야 했다. 이 연구업적 기준을 채우기 위해 본서가 계획되었다. 로스쿨 인가신청서에 연구업적으로 카운팅되지 않은 논문들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급한 요구 때문이었다. 로스쿨이 없었더라면 본서는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로스쿨에 깊이 감사한다. 이 책을 로스쿨 평가위원회에 바친다.

2008년 1월 24일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이 용 식

로스쿨을 도입해야 마냐는 건 많은 논란들이 있었고, 일단 시작하기로 한 걸로 결론이 났다.  일단 시작하기로 한 거니까 몇년 운영해 보고 로스쿨이 제대로 된 선택이었냐에 대해 평가해보는 수밖에 없다.

로스쿨 도입 논란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낸 교수들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너무나 쉽게 짐작이 되는 이용식 교수의 ‘현대형법학’ 서문을 보면, 이 나라의 먹고사니즘이란 건 좀 먹고 살 만한 정도를 넘어서 사회의 존경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꿀꺽해버리는 대단한 이데올로기다라는 생각을 한다.

다른 모든 자잘한 이야기들은 다 제끼자.  이용식 교수 글의 핵심은 ‘형법학의 종말’ 더 나아가서 법학의 학문적 성격의 종말이다.  이것이 개탄할 일이라는 게 이용식 교수의 주장이다.  이용식 교수는 법대 교수이기 때문에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지위에 vested interest가 있다.  그래서 이용식 교수의 개탄은 자기 밥그릇 지키기로 보일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 했다.

소위 ‘다수설, 소수설, 판례설’하면서 가르치는 학설법에 기초한 법학이란 미국식 로스쿨에는 없다.  미국식 로스쿨은 철저하게 성문법과 판례 위주이다.  소위 ‘다수설’ ‘소수설’이라 불리는 법학자들의 ‘썰’이 자리 잡을 곳이 미국에는 없다.  즉, 한국식의 법학 교육은 미국식 로스쿨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미국식 로스쿨에서 가르치는 성문법과 판례법은 한국의 법대에서 봤을 때는 학설법을 떼어놓고 가르치는 반쪽짜리로 보일 것이다.  한국의 학설법 교육은 미국의 로스쿨에서 봤을 때는 법원(source of law)이 되지도 않으며, 판사들이 들여다보지도 않는 ‘썰’을 쓸데없이 가르쳐서 교과서 부피만 늘려놓는 비실용적인 교육이라 생각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두 가지 학풍은 아주 다르다.

미국식의 성물법과 판례 위주의 법교육이 옳은 것이냐, 아니면 한국식의(혹은 독일/일본식의) ‘학설법’ 교육이 옳은 것이냐는 큰 논의 주제이다.  아마도 로스쿨 도입 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많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논의가 법대교수들의 밥그릇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법대에서는 성문법과 판례만 가르치면 가르칠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피곤한 현실이 있다.  학설법을 집어넣어서 복잡하게 만들어야 교과서도 두꺼워지고 강의 시간도 늘어나고 법학이 어려워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학설법을 배워야 진정으로 법학을 배우는 것이라는 주장도 거리낌없이 한다.  거기에 더해서 자기 학설을 집어넣고 후학들을 계보에 채워넣어 패밀리를 만들어서는 세력 싸움도 한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너무 심한 건가?  하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미국식 로스쿨로 단점이 많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걸 이용식 교수가 지적하려 했다면 거기까지는 오케이.  왜냐하면 로스쿨이라는 건 학문을 가르치는 방식의 문제일 뿐이니까.  나는 우리나라에 로스쿨이 생긴다 해서 지금의 학설법 기반의 법학 교육이 당장 미국식으로 성문법과 판례에만 기초한 실무적인 법학교육으로 바뀔지에 의문이 있다.

정작 이용식 교수가 지적한 학문으로서의 법학이라는 건 로스쿨과는 별개의 문제다.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성격이 너무 강해지면 법학을 공부하지 않은 국민들이 법에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이용식 교수의 글에 그러한 고민이 있었나?  아쉽지만 그런 흔적은 없었다.

내 말은, 니네들 밥그릇 생각만 하지 말고 법의 수요자인 국민들의 편의성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어떤 직역이나 어떤 계층이나 막론하고 먹고사니즘만 앞세우면 불법도 마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불편이나 불이익도 개의치 않는 의식이 너무나 보편화된 증거를 본 것 같아 이용식 교수 글 읽고 씁쓸했다.

11 thoughts on “로스쿨 돈스쿨

  1. 코알라 says: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계신 것같아 글을 남깁니다.

    제가 잘못읽은 것이 아니라면 두가지 전제가 깔려잇는 말씀을 하고계신데요.

    일단 이용식교수의 글은 교수로서 밥그릇을 지키기위한 발언이다.

    두번째 로스쿨은 법학교육을 정상화하고 국민들을 법률서비스에 가깝게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설립되었다.

    두가지다 잘못된 전제라 여겨지는군요…

    개인적으로 이용식교수님은 가깝게 지켜본저로서는…첫번째 전제는 좀 황당하다라고 느껴질 정도이구요…
    설사 그분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저글만으로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써서는 안된다.’는 말을 인용할 필요가 있을 정도의 오해를 하는 것은 지나친 곡해라고 여겨집니다.
    무엇보다 로스쿨이 생기면 이용식교수의 밥그릇이 더 커지면 커졌지 작아질 이유는 없기때문이기도하구요.

    두번째 지금 한국의 로스쿨 도입과정에서는 그 어떠한 법학교육의 방향전환에대한 논의나 고민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님은 그런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 짐작하고 계시지만…실상 그런 것에대한 준비나 논의는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로스쿨이란 곳에서 진행될 법학교육은 법대 고학년과 대학원생이 배울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겁니다. 물론 연수원에서의 교육내용이 일부반영되기는 하겠지만요. 이런것은 대학들이 발표하고 있는 커리큘럼이나 그 로스쿨에서 가르칠 교수들의 면면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죠. 법대 교수들사이에 변호사 한두명 끼워넣었다
    고 갑자기 학설교육에서 실무교육이 될리는 없겠죠.

    그렇다면 로스쿨은 왜 도입하려하는가. 그게 이용식교수님이 글을 쓰신이유라고 보여입니다. ‘돈’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법률서비스의 질향상? 법률교육의 개선? 이런것 따위의 고민은 사실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보여지구요.
    님의 입장에 따른 님만의 문제의식을 어느정도는 이해하지만, 로스쿨과 관련해서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은, 말씀하신 것보다는 로스쿨의 도입 명분은 그야말로 명분일 뿐이고 결국은 로스쿨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점입니다.

  2. 코알라/ comments well taken.

    첫번째에 대해서는 이용식 교수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요. 저 글을 읽는 독자인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논지와 다른 얘기지만, 이용식 교수 글에서 느끼는 것 중에 또 하나는 ‘국민’을 깔보는 선민의식인데, ‘국민’들이 멍청해서 로스쿨 도입을 결정했다라는 것도 하나의 논지이기 때문이죠. 로스쿨 도입은 ‘국민’이 결정한 건 아니잖아요. 최근의 로스쿨 도입 논의에서 국민은 거의 구경꾼이었거든요. 자기가 반대한 로스쿨 도입 되었다고 ‘국민’을 까는 건 법대 교수로서 할 일인가 모르겠네요.

    사실 이용식 교수가 주장하는 학문으로서의 법학, 소위 학설법,이라는 건 선민정치의 관습에 기인한 것인데, 그 선민법학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법대 교수이구요. 그런 사람이 국민이 바보라고 이야기하면 안 되겠지요. 정말 로스쿨에 그렇게 반대했다면 선민의 정점에 있는 법대 교수가 뭔가 액션을 보였어야죠. 로스쿨 도입 되고 연구 성과 맞추기 위해 억지로 책을 써야 하니까 서문에다 대고 **대는 건 좀 격이 안 맞네요.

    두번째, 로스쿨의 의도가 그렇다고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제 글을 잘못 읽으셨습니다.

  3. 코알라 says:

    ‘국민’이라는 단어에서 반감을 느끼실만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결국 로스쿨 도입쟁점에서 주인공은 국민이아니라 세력이 다른 기득권층들간의 다툼이란점에서, 그리고 그결과가 로스쿨 도입의 근본취지는 완전히 형해화시켰다는 점에서 이용식 교수님의 결론은 타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말씀드리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적어도’ 서울대법대교수에겐 로스쿨은 밥그릇차원에서라면 아주 반가운 일입니다.
    잘하면 사시패스 못한 교수들에겐 변호사 자격증이 부여된다는 이야기조차있구요.

    열린우리당이 사실은 진보의 탈을 쓴 보수정당이었다는 점을 떠올리게되는 점이기도하구요…

    별론이지만, 소위 ‘학설법’교육이 법률서비스 국민을 괴리시키는 이유중 하나라고 보시는 것같은습니다만, 실상 “법조인이 되기위해” 현재 법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조문’이고 그다음이 ‘판례’입니다. 학설은 기본적으로 이해하면 흐름정도만 기억하면 되는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장황한 ‘교과서’들을 보시고 답답함을 많이 느끼신 모양입니다. 교과서들의 불필요한 부분들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덜어내고 읽죠…

    어디까지나 중요한건 변호사 선발 숫자죠…로스쿨을하던 사시로하던 변호사만 많이뽑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입니다.

  4. 토토로 says:

    큰 취지보다는 작은 부분을 가지고 비판하시는 것 같네요. 코알라님 말씀대로 중요한 것은 배출되는 변호사의 숫자이지요. 이용식 교수님 취지는 국민은 별로 얻는 것이 없이 돈많은 사람만 변호사가 될 수 있게 된 것을 비판하시는 건데요… 밥그릇싸움으로 보시는 건… 교수님 입장에선 로스쿨이 되면 편하고 좋습니다… 법학에 대한 이해가 없으신 분같구요.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학설법만 의미할까요? 로스쿨식 교육이 정말 국민에 쉽게 다가갈까요? 제가 보기에는 배우기에 쉬울지 몰라도 국민들이 법률서비스를 잘 받을 수 있느냐와는 상관없을 것 같고요… 변호사비용은 어느나라보다 미국이 많이 들지 않나요? 국회의원들이 결정했다고 국민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네요… 님은 ‘수요자’를 말씀하시지만 ‘변호사(혹은 가 되려는 사람)’을 수요자로 생각하고 계시는 것같습니다.

  5. 글쎄요 says:

    ‘학설’에 대해서 무언가 반감을 갖고 계신 것 같네요. ‘학설법’이라는 단어 선택에서나 법대에서 학설을 가르치는 동기에 대한 (동의할 수 없는) 분석에서나 뭔가 학설에 대해서 싫어하는 느낌이 뚝뚝 묻어 나옵니다.

    자, 생각해보죠. 학설이 없다면 법이 만들어질까요? 판례가 나올 수 있을까요? 입법이나 판례나 다 그 ‘학설’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입법을 할 때 실무가들만 들어가서 입법 활동을 합니까? 법대 교수들이 그 수많은 학설들에 대한 이해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들어가서 입법 기초를 세우고 검토를 하고 한답니다. 판례도 마찬가지지요. 헌법을 공부하셨다면
    알겠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문 가운데에는 특정 학자의 학설을 채택하고 그 학자의 책에서 인용한 듯한 문구가 자주 나옵니다. 그런 직접적인 경우가 아니라도 학자들이 법학계에서 기존의 판례를 비판하고 학설로서 더 나은 해결방법을 주장하면 그게 판례에서 받아들여지는 예들이 있죠. 즉, 학설은 입법과 법조계의 실무가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바탕이 되는 겁니다. 학설이 없을 수가 있을까요?

    학설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글쓴분의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세요. 학설은 교수들의 말잔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법에 대한 해석과, 법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탐구”입니다. 그러한 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여러 명의 학자들이 있다보니 제각기 ‘학설’이라는 이름을 띠고 나타나는 것이지요. 법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학설 때문에 골치 아프고 공부할 양도 많아지긴 하지만 그래도 학설 자체가 바로 ‘법학’이며 다른 무엇이 아닌 것입니다. 그저 성문법 달달 외우고, “판례는 이렇게 말했다”만 달달 외우는 게 진정한 법대에서의 교육이라고 보시는지? 법대 교수들의 밥그릇을 위해 학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게 법학 교육의 구성부분이기 때문에 가르치는 겁니다. 법을 공부하신 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참 소견이 좁으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성격이 너무 강해지면 국민들이 접근하기 어렵다..라… 국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우므로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성격을 적당히 가져가야 하는 건 아니지요-_-; 그럼 모든 학문이 다 국민들 수준에 맞춰서 적당히 연구해야겠군요. 문제의 해결책은 ‘학문으로서의 법학’도 최고도로 발전시키면서 전문가들이 국민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에 있지, 법학의 학문성 포기에 있는 게 아닙니다.

  6. 블로그에는 익명으로 댓글 달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에 댓글이 꽤 들어왔지만, 익명이라서 approve 안했다. 최소한 이메일 주소라도 남기면 댓글을 풀 수 있지만 그것도 무조건적인 건 아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는 블로그에 이런 것까지 공지로 올릴 필요는 없고.

    이 블로그는 인터넷 게시판이 아니라는 점.

  7. 코알라/ 님의 댓글에 일리는 있습니다. 깊은 고민이 없이 로스쿨이 추진되고 있다. –> 동의. 하지만 그게 현재의 법학 교육 시스템을 유지할 논거가 되지는 않지요.

    토토로/ ‘학문으로서의 법학’이란 게 학설법만 의미하는 건 아닐 수 있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학설법 말고 있나요? 비교법학? ㅋㅋㅋ
    (‘법학에 대한 이해가 없으신 분같구요.’같은 찌질한 멘트에 답변하고 있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음. 학설법이나 비교법학 정도 공부하는 학생이 법학에 대한 이해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음)

    무엇보다, 내 글을 로스쿨 도입을 지지하는 글이라고 생각하는 독해력 부족한 법학도들은 댓글 달지 말기 바람.

  8. says:

    정작 중요한 부분에 대해선 답변 안 하시는 것 같은데요.

    제가 보기엔 커다란 맥락에서 님이 비판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밥그릇’싸움이다.라는 건데
    그에 대해서 로스쿨 들어오면 교수는 오히려 좋은데 뭐가 밥그릇 싸움이라는 거냐!라는 비판에 대해서 대답 안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위의 글이 처음에는 논리적으로 잘 가다가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성격이 너무 강해지면 법학을 공부하지 않은 국민들이 법에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의 부분부터 논리가 부족해진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판도 들어오는 것 같고. 그냥 제 생각을 말하자면, 열심히 쓰시다가 정말 하고 싶은 말에 들어서서는 대충 쓰신 건 아닌지… 남을 설득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글의 성격이라면 그렇게 써도 충분하할테니까요.
    암튼 제가 생각하는 비판점을 말씀드리자면,
    학문으로서의 법학에 왜 국민들이 접근해야 하나요? 국민들은 실무로써의 법학에만 접근하면 충분할 것이고, 그에 대해서도 변호사 등의 전문가들을 사용함으로써 접근하면 될터입니다. 굳이 시간들여 일반 국민이 법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 예로 몸이 아프다고 해서 의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펀드에 투자해 돈을 벌고 싶다고 해서 펀드매니저 만큼의 지식을 지녀야 하는 것도 아니죠.
    학문으로서의 법학은 말 그대로 ‘학문’으로서의 법학이고, 서울대는 고시의 물결 속에서도 법학이라는 학문을 최대한 ‘학문’으로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학문은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것이고 그 학문의 결과가 실무에 반영되어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더 정의롭고 정당한 판결을 내려주면 족하다고 봅니다.

    또한 별론으로 법에 국민이 접근하기 힘든 건 일상적인 의미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어져 버린 어려운 법학용어의 사용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이건 법사회학 시간에 양현아 교수님과 학생들간의 토론 내용이기도 했습니다만…

    아무튼, 위의 문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근거가 누락되어 있고, 비판의 여지가 많아 보입니다.

    p.s. 욕을 쓰는 것도 아닌데, 왜 익명이면 안되나요? 님도 지금 충분히 익명인 것 같습니다만…. 이메일 주소를 남긴다고 해서 익명이 풀리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실명이라고 해서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런 이유만으로 댓글을 승인하지 않은 건 관심을 갖고 댓글을 단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욕이 달려있다면 또 다르겠습니다만…

  9. 글쎄요/ 우리 서로 낮은 곳으로 향해 가지는 맙시다. 익명으로 댓글 남기는 것이라고 이런 저런 말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말자는 거죠.

    학설법이 법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라는 주장에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법학은 근본적으로 legal thinking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전제에서라면 말이죠.

    내가 지적했던 것은 과도하게 비대해져버린 한국에서의 학설법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학설법이 법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문제는, 학설법을 통한 법학만이 법의 발전에 기여하느냐이겠지요. 학설법의 연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변호사들의 변론과 판사의 판결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지요. 정책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 두 가지 옵션(혹은 달리 존재하는 다른 옵션)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이냐입니다. 여기에서 님과 나는 의견이 갈리겠죠. 이 갈리는 의견을 좁히려는 시도를 여기서 하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학설법 교육이란 게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그 정(正)의 기능보다 역(逆)이 훨씬 더 커져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본문에 쓴 것 같은 비대해진 학설법의 폐해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 밖에 없나요?

    두번째로, 국민에의 접근성. 이것은 ‘학문으로서의 법학’이란 것이 무엇이냐라는 것을 생각해야겠죠. ‘학문으로서의 법학’이란 게 학설법이면(우리나라에선 그렇죠), 국민들이 법에 접근하기 어렵다. 이거는 동의하는 걸로 assume하죠. 이견이 없는 것 같으니.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고도로 발전하면서 국민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말을 하셨는데, 이 지점에서 질문은 다시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무엇이냐라는 문제로 다시 회귀하게 되죠. 만약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학설법이면 국민들에게 접근성이 떨어지는 학설법을 고도로 발달시키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있을 것입니다. 학설법을 학교에서만 가르치고 연구하는 시스템과 변호사의 변론과 판사의 판결을 통해 새로운 판례를 정립시켜나가는 방식 사이에 정책적인 선택을 하는 문제는 여기서도 제기되죠.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학설법이 아닌 그 무엇이라면(그 무엇에 해당하는 예는 많이 있죠), 나는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의 문제의식은 ‘한국의 법대에서 학설법이 아닌 그 무엇인가의 법학을 해왔는가?’입니다.

    스탠스를 정확하게 하죠. 학설법을 계속 연구하고 가르치기 위한 목적의 ‘학문으로서의 법학’ 옹호에는 반대입니다. 학설법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서의 법학을 해야겠다면 오케이. 단, 지금까지는 그닥 해오지도 않은 (학설법이 아닌)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로스쿨 도입한다니까 해야겠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누가 댓글 달았는지 기억 안 나지만/

    이용식 교수 및 서울대 법대 교수들은 로스쿨 도입되면서 변호사 자격도 생길 거고 등등 더 좋아진다라는 논지의 반론이 있었는데, 이용식 교수의 글에서도 보이지만 ‘학문으로서의 법학’ 자체가 이용식 교수의 vested interest가 있는 지점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에게 변호사 자격이 얼마나 큰 메리트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 급여는 더 올라가겠지. 하지만, 큰 그림에서 봤을 때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포기하고 실무형 교육을 강요당하면서 서울대 법대 교수가 잃는 것이 더 많다고 보이는데.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이용식 교수가 서문에서 투덜댄 것으로 읽히는데. 물론 여기서도 이용식 교수가 말한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뭔지에 대한 정의가 있어야겠지만.

    첨언으로, 학설법이 아닌 그 무엇으로서의 법학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자면, 법의 기술적인 면이 아닌 정책적인 면을 보는 법학이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되어야 한다. 로스쿨 때문에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죽었다고 이용식 교수가 말하는 미국에서는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과 접목된 interdisciplinary research로서의 법학이 진행되고 있다.(Posner나 Unger정도가 예) 물론 로스쿨 도입한다 해서 이런 연구들이 활성화되는 건 아니다. 로스쿨 도입하면 학문 죽는다는 논지에 대한 반증일 뿐이다.

  10. 헐/
    익명 블로그라 하지만 이미 내가 누군지 관심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님이 어느 경로를 통해 오셨는지 모르지만, 특정 게시판에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중에는 내 identity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설사 이게 완전한 익명블로그라 한들, 내가 익명이라 해서 남의 익명 댓글도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법학에의 접근성.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법률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변호사를 사서 문제를 해결하면 되니까 법학에의 접근성이 필요 없을 수도 있죠.

    하지만, 법이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죠. 법치주의 사회에서는 사회 운영의 정책이 반영된 것이 법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어느 정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만들어진 나라에서는 힘의 논리보다 법의 논리가 우선되어야 하죠. 이건 누구보다도 국민들이 찾아야 할 권리입니다.

    금태섭 변호사인가요? 검사 하다가 한겨레에 ‘검찰에서 수사 잘 받는 법’이란 글을 썼다가 검사 옷 벗은 사람이요. 그 사람이 책을 하나 썼더군요. ‘성찰하는 진보”디케의눈”‘? 서평을 읽었는데,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의 판례가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읽히고 있고, 중요한 판례는 국민들이 대부분 내용을 알고 있다.

    미국을 찬양하려고 인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호사와 판사로 대표되는 ‘법’은 당면한 문제만 해결해주고 바이바이해서는 안 됩니다.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가 어떠하다라는 걸 제시해주어야하죠. 그리고 그 판례들은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정책 토론을 통해서 고쳐져 나가야 하는 것이구요. 여기서 비전문가로서의 국민이 배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국민에의 접근성이 중요한 것이죠.

  11. 예외적으로 익명 댓글을 풀었다.

    하지만 자꾸 내가 마우스 클릭을 해서 approve해야 할지를 고민하도록 하지 말기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익명 댓글은 허용하지 않고, 감정 상하게 하는 말이 있으면 approve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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