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

오늘 여의도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시간이 좀 남길래 서점에 들러 책을 샀다.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이다.  번역티가 풀풀 나는 책인데, 번역티가 난다 하여 직역을 해서 어색한 느낌이 바로 느껴지는 그런 번역티가 아니다.  영국 사람처럼 글쓰기를 한 책이란 게 티가 나고, 그건 아무리 번역을 해도 탈색되지 않는다.  이미 영국 사회에 녹아들어 살아간 지 꽤 되는 사람이니까 이해가 된다. 

장하준 교수의 강의를 한 번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이미 10년전이다.  그때도 이미 캠브리지대학의 교수였다.

두 시간 짜리 강의였기에 장하준 교수의 관심 연구영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아주 짧게 축약된 포맷으로 전달하는 자리였다.  그때 받은 인상은 ‘brilliant’하다는 것과 자신이 말하는 것에 확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촌스런 외모와는 다르게 세련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나쁜 사마리아인’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읽은 내용으로 판단하여 말하자면 이 책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다들 알만한 내용을 대중들을 위해 쉽게 써놓았고 아주 효과적으로 내용이 전달되게 썼다.  좋은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조작된 경제사를 믿으면서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절대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경제사가 조작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부르짖는 사람은 덜 나쁘며 이들은 나쁜 사마리아인까지는 아니다.  동감한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게 책 후반부에 나오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제학을 석사/박사까지 공부한 사람들 중에도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꽤 많다는 거다.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의 주제는 개발경제학과 관련된 문헌들을 읽어봐도 숱하게 나오는데도 말이다. 

지적재산권의 강력한 보호를 주장하는 선진국들은 21세기의 사다리 걷어차기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 정책담당자의 과제는 2008년과 그 이후 우리나라는 사다리를 걷어차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것인가?  어떤 사다리를 어떻게 걷어차고 어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것인가? 이런 문제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중에는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있고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읽고서 감전되어 세계화와 자유주의를 부르짖는 것이야 구제불능인데, 경제학을 대학원 과정까지 공부하고서도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 감화되는 사람은 최악의 사마리아인이라 해야 할 것이다.  either 머리가 나쁘거나 or 자기 최면 상태.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앨런 그린스펀을 마에스트로라고 칭송하며 그의 전기도 사서 읽을 것이다.  (난 지난 10년간의 미국 경제를 보았을 때, 정상적으로 의심할 두뇌가 있는 사람이라면 알랜 그린스펀과 관련된 음모론을 꽤나 설득력 있다고 볼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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