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빠 선후관계는 사양

영화 ‘Monty Python and Holy Grail’의 첫 장면은 이렇다.  아더 왕이 시종 한 명과 함께 원탁의 기사를 모으러 여행을 다닌다.  왕 치고는 너무 초라한 행색이다.  말을 타는 흉내를 내지만 사실 말은 없다.  대신 시종이 코코넛 껍질 두 개를 두드려서 말발굽 소리를 낸다.  그렇게 한 성에 도착했다.  아더 왕이 성지기에게 주인과 말을 하고 싶다고 하자 성지기는 아더 왕의 시종이 들고 있는 코코넛을 지적하며 영국에는 코코넛이 나지 않는데 어디서 났냐고 묻는다.   아더 왕은 귀찮아 하지만 성지기는 호기심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코미디가 시작된다.

황우석 논문 조작을 밝혀내어 유명해졌다는 BRIC의 피카소님이 쓴 인간광우병이 발생하기 위한 전제조건들 이란 글이 있고, 이 글을 전폭지지하는 한겨레 블로그의 한정호님도 있고, 다 괜찮은 글들이다.  (내가 동의하거나 반대한다는 건 아니고)

이번 광우병 사건이 황우석 사태의 재현이라면, 황빠였고 심빠였던 딴지일보 총수는 이번 사건으로 3빠가 되는 것인가?  영예의 트리플 크라운을 수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인구 중에 상당수는 3빠인 것 같은데. 

하지만, 이번 광우병 사태는 광우병 발병 위험율이 높다는 데서 사건이 촉발된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광우병 발병율이 낮았다면 촛불문화제가 안 열렸을까?  나에겐 MB 정권 출범 전부터 슬슬 생기기 시작한 정권에 대한 불만이 쌓여서 폭발한 걸로 보이는데.  광우병 발병율이 낮았다면 다음 건수, 의보 민영화, 대운하 추진, 등으로 폭탄이 미뤄졌겠지. 

정확한 교차군 분석이 이루어지기 어려우니 단정지어 말하긴 어렵지만, MB가 대통령이 되면 집값 오를 것이고 일자리 좀 생기고 그럴 것 같아서 MB를 찍어준 사람 중에 상당수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것 같다.  나는 그런 그룹의 사람들과는 입장이 다르다.  이렇게 말하면 촛불문화제 참가한 사람들과 심정적으로 지지한 사람들 중 다수는 나와 입장이 달라지게 된다.

이번 촛불문화제랑 민주주의의 진전을 논하는 것도 아직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평가는 1년 후로 미루고.

이런 생각 해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일단 적당히 집값 올리고, 대운하는 아니더라도 대규모 토건 사업 벌여서 일시적으로 취업률 높이고, 그랬다면 지지율이 좀 오를 것이다.  그런 후에 대운하나 한미 FTA 발효를 위한 작업을 했더라면?  조삼모사이긴 하지만 이러면 국민들의 저항이 좀 약하지 않았을까? 

MB는 미국이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면 FTA 비준 안될것 같다는 조바심에 빨리 FTA부터 처리하자고 방향을 잡은 모양인데, 이건 FTA 협상 전략의 부재고 미국과 한국이 어떤 카드를 들고 포카를 치고 있는지 미국은 잘 알고 있는데 한국만 잘 모르는 상황이다.  이것 때문에 전체적인 조삼모사의 그림이 틀어져버린 것이라고 보는 것도 가능한 시각이다.  전체적인 그림을 짜는 데에는 디테일에서 전문적이고 빡센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교훈이 여기서 다시 나온다. 어쨌든 이제 조삼모사로 갈 수 있는 방법은 MB에게 없다.

그건 글코, 나는 이미 미국에서 소고기 제법 먹었으니 이왕 버린 몸이다.  내가 먹을 수도 있는 소고기에 광우병 인자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수입을 반대한다는 입장에는 그닥 동의하지 않는다.  물귀신 작전이냐? 라고 묻는다면 ‘그렇든가 말든가’가 내 답변이고. 

남들이야 어찌 됐든 내 집값 오르고 나만 잘 살면 된다고 MB 찍었던 사람들이 내 입에 그리고 내 아이 입에 광우병 소고기 들어간다니까 들고 일어서 얄팍한 민심에는 그닥 동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게 아니고 후퇴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 일어선 것이라면 동의한다.  과연 답은 무엇인지?

아!  제일 처음에 ‘Monty Python and Holy Grail’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직 우리는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엄밀하게 따지는 데 아주 약하다는 걸 지적하고 싶어서였다.  우리는 아직도 한-미 쇠고기 의정서의 법적 성격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에 가서 (재협상이 아닌)’추가협상’을 하고 왔다.  그럼 그 결과물로 나올 문서의 법적 성격은 무엇일까?  이미 이 블로그에서 의문을 제기한 것인데, 나는 아직도 답을 잘 모르겠다.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은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나? 

이 이야기하다 보니까, 몇 달 전 라캉 논쟁에서 원전도 읽어보지 않고 요약문만 여기저기서 베껴와서 자기 마음대로 조물딱거리면서 주장을 펼치던 이가 생각난다. 

글고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는데,

성공한 CEO라서 국민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MB를 찍은 사람도 꽤 있는 걸로 아는데, 이런 사람들은 성공한 CEO 밑에서 빡세게 굴러봐야 한다.  아주 극소수의 (‘성공한’이 아닌) 훌륭한 CEO들이 자기도 성공하고 직원들도 성공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성공한 CEO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남을 희생시켜 왔다.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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