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영어 못하는 이유

어제 이아고님과 점심 먹다가 나온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영어 배우는 데 무쟈게 고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유전적으로 혀가 짧은데 그걸 수술해서 늘려주지 않아서일까?  이런 유도성 질문은 너무 단순하지.

내가 생각하는 답은: 한국인은 문장을 통한 의사소통보다는 문맥에 의한 의사소통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잘 못 배운다. 

알다시피 영어에서는 주어, 술어, 목적어/보어가 정확하게 나오게 문장을 쓴다.  거기다가 주어의 인칭과 수에 따라 동사를 변화시켜주게 되어 있고. 

한국어에서는 어떨까?  일단 주어를 생략한다.  주어는 문맥을 통해 짐작한다.  소위 이심전심 화법이다.  술어가 주어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술어만 보아서는 주어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남성인지 여성인지, 1인칭인지 2인칭인지 3인칭인지 알 수 없다. 

‘밥 먹었어?’라는 표현은 널리 쓰이는 표현이고 문법적인 하자는 없다.   하지만 이 문장은 문맥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한다. 

1. 네가 밥을 먹었어?

2. 내가 밥을 먹었어?

3. 그 사람이 밥을 먹었어?

4. 그들이 밥을 먹었어?

이 네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애매한 표현이 ‘밥 먹었어?’이다. 

영어 표현도 문맥에 따라 의미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소지가 있지만, 주어를 명시하고 술어가 변화하면서 의미를 달리 해석할 여지를 줄인다.

“Did you have meal?”라는 표현은 “네가 밥을 먹었어?”라는 뜻 이외로는 해석의 여지가 많지 않다. 

‘밥 먹었어?’가 무슨 의미인지를 알 수 있게 하기 위해 한국어의 화자들은 눈빛, 표정, 어조, 몸동작 등의 보조적 의사전달 수단을 이용한다.  영어의 화자들은 상대적으로 보조적 의사전달 수단을 적게 이용하고 문장 자체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한국어의 화자들은 말을 대충하고 상대가 여러 가지 정황으로 그 의미를 알아듣기를 기대하지만, 그런 화법은 영어의 화자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영어의 화자들은 완전한 문장(주어, 술어, 목적어/보어가 갖춰진)을 상호간에 기대한다.  여기에서 상당한 의사전달의 괴리가 생기는데, 한국어의 화자가 이 상황을 극복하고 완전한 문장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익숙해지는 것이 그가 영어로 능숙하게 의사소통을 하는데 관건이 된다.  

‘밥 먹었어?”의 직역이라 할 수 있는 ‘eat meal?’이란 표현은 영어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어의 화자가 흔히 쓰는 초보 영어의 유형인데, 이런 표현으로는 한국인을 접해보지 않은 영어의 화자들과 의사소통이 아주 어렵다. 

한국의 인터넷 언어와 영어 습득력

이런 논리의 연장에서 보자면, 인터넷 언어에 흠뻑 빠져 있는 한국어의 화자는 영어를 배우기가 더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인터넷 언어는 일상적인 회화로서의 한국어보다 더욱 문법이 파괴되어 있고, 주어나 술어의 생략이 과감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영어를 배우지 않은 어린이가 인터넷 언어에 먼저 익숙해지고 나서 영어를 배우게 된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짐작된다. 

음, 이걸 사회학적으로 접근해 보면, 돈 많은 집 아들 딸 들은 어릴 때부터 외국에 나가서 영어를 배우고 오는 반면, 부모가 적절한 언어 습관을 키워주지 않고 충분한 시간 동안 보살펴(감독해) 주지 않을 경우 인터넷 언어에 일찍부터 노출되면서 인터넷 언어스러운 언어습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경제적 부유함으로 영어 습득 기회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그에 더해서 추가적인 영어 실력의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조기 영어 교육을 받을 형편은 되지 않지만, 인터넷은 무제한 쓸 수 있는 정도의 가정이면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영어에 취약한 그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2 thoughts on “한국인이 영어 못하는 이유

  1. 최호영 says: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 생각엔 동아시아권에서는 언어의 축약이 언어사용에서 일종의 미덕으로 인정되는 전통이 있지 않나 싶네요. 한자문화권이다보니 여러가지 의미를 글자 하나에 담는 한자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고 봅니다. 실제 7언절구니 5언절구니 하는 고대의 싯구들도 사실 긴 문장을 일곱글자, 다섯글자로 압축하는 일종의 테크닉이었고 그때엔 그런 언어테크닉에 능숙한 사람이 사회적 존경을 받았으니까요.
    실제 학교에서 국어를 배울 때에도 많은 문학작품에서 축약된 문장을 통해 여운을 남기는 글들을 좋은 문장으로 배운 기억이 있네요.
    형이 예로 든 “밥 먹었냐”도 더 줄이자면 “밥은?”, 아니 더 줄이자면 “밥?” 이렇게까지도 줄일 수 있겠고, 정말 얼굴을 맞대고 있자면 눈빛만으로도 대화가 되겠죠. ^^

    어쨌건 아주 설득력있게 들리는데 아마 영어교육에 광분한 소위 강남엄마들이 형 글을 읽는순간 아이들의 인테넛을 끊으려 달려들지 않을까요? ^^

  2. 응, 글치. 한자 문화권에서 오래 살아왔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야. 우리말에서 대화란 결국 의미의 자그마한 덩어리를 하나씩 하나씩 던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맞다고 봐. 그래서 중국어를 배우는 건 비교적 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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