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영향력 – Wiki 지수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생각이지만, 2009년 1월에 시점을 고정시키고서 세계의 수많은 언어들을 그 영향력의 순서대로 랭킹을 매겨보기로 하자. 그렇다면 어떤 데이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잣대가 될까?

Wikipedia 첫 페이지를 보면 언어별로 등록된 article의 갯수가 나온다. 이 갯수대로 언어의 영향력 랭킹을 매기면 대략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언어의 영향력이란 게 뭔지를 정의할 필요가 있고 그걸 측정하기 위해 wikipedia 에 언어별로 등록된 article의 갯수를 비교한다는 게 얼마나 정확한지는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현재 스코어로 Wikipedia에 등록된 article별로 순위를 매긴 것은 아래와 같다.

1. 영어 (2,715,000개)

2. 독일어 (857,0000개)

3. 프랑스어 (756,000개)

4. 이탈리아어 (535,000개)

5. 러시아어 (353,000개)

6. 일본어 (557,000개)

7. 스페인어 (439,000개)

8. 폴란드어 (572,000개)

9. 포르투갈어 (454,000개)

10. 네덜란드어 (514,000개)

영어는 2위인 독일어에 비해 3배가 넘는 article수가 올라와 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영어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이다. 그리고 이는 상당 기간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흥미로운 건, 우리가 국제기구에서 많이 쓰거나 공식어로 인정하는 국제언어인 1. 영어, 2. 프랑스어, 3. 스페인어, 4. 러시아어, 5. 중국어의 순서가 Wikipedia에서는 꽤 혼란스럽게 뒤섞인다는 점이다.

국제어로서의 지위는 거의 상실해버린 독일어가 2위이며, 반면 국제어로서는 3위의 지위를 갖고 있는 스페인어는 Wikipedia에서는 7위에 그친다.

좀 과격하게 말해서, 미래의 언어 영향력을 Wikipedia의 article 갯수로 예상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미안하지만 스페인어는 아웃이다. 흥미롭게도 중국어는 리스트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경제적인 영향력으로 봤을 때 중국어가 향후 중요한 언어가 될 것이라는 것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단, Wikipedia로 알 수 있는 언어의 영향력이란 것이 문화의 수준, 언어공동체가 공유하는 지식의 정도, 그리고 더 나아가 흔히 말하는 ‘민도(民度)’의 정도라고 정의를 한다면 중국어가 세계의 중요한 언어가 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10억이 넘는 인구 덕분에 세계 2~3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여전이 3,000불 정도에 그치고 있는 나라에 불과한 것이니까. 거기다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아직도 심하게 통제되고 있는 나라이니까.

일본어는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언어이다. 특허 서양인들 사이에서는 일본어 몇 마디 할 줄 아는 게 교양으로 인정받는 유행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게다가 일본인들은 어떤 정보이든지 잘 정리해놓기로 유명하다. 마치 집단정보편집증이라는 병리학적 현상이 있다면 그건 마치 일본인을 묘사하기 위해 생겨난 말인 것처럼. 그리고 일본어를 제1언어로 쓰는 언중(言衆)이 1억이 넘는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일본어는 Wiki지수에서는 6위로 상당히 낮다.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정보를 얻는다는 목적으로 배워야 할 언어는 영어 다음으로는 일본어이다. 그만큼 일본어로 된 좋은 책이나 정보들이 많다. 그런데도 Wiki article은 6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일본인들이 Wiki에 대해 가지는 태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국인이 집단지성에 가지는 자세와는 또 다른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한국어. 안습이라 할 수 있지만, 한국어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언어가 될 때는 21세기 내에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가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적이 2007년에 있었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국제특허시스템(PCT)에 이용되는 국제공개어로 한국어가 포함되었다. 이때 같이 포함된 언어로 포르투갈어 등이 있는데, 이후로 PCT 국제공개어는 9개가 된다. 의미가 있는 사건인데, 이는 한국에서의 국제출원수가 세계 4위로까지 도약하면서 한국어가 국제특허시스템에서의 중요성이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일이 사회 다방면에서 발생해야 한국어가 국제언어로서 중요해지게 된다. 특히 문화에서 그런 일이 발생해야 한다. 현재 한국어판 wikipedia를 보거나, 혹은 naver 지식인을 보건대, 그러한 추세는 잘 보이지 않는다.

사족: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국제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들, 즉, 해외 주재관, 외교관 등등의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일본 문화(상품)이 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이유가 일본인들이 자국 문화를 잘 포장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국제사회에서 사람들과 어깨를 비비다보면 일본의 위상과 한국의 위상이 너무 차이가 나거든. 그래서 자존심도 상하는데, 그런 열등감을 보상받고 싶어서 만들어내는논리이다.

나도 한 때 일본을 그렇게 폄하한 적이 있었다. 이거 큰 착각이다. 우물 안 개구리식 생각이다.

단재 신채호의 민족사관과 여타 민족을 강조하고 한민족의 긍지를 드높이려 한 많은 사학자들의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지만, 그런 노력들 속에서 일본을 야만족의 섬나라이며 문화란 것은 죄다 신라-백제, 고려, 조선에서 전수받은 것 뿐이라는 주장/믿음은 사실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해보자. 장보고가 해상왕이고 서해/남해의 해로를 장악했다고 한다. 그거가 사실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장보고가 해상을 호령하고 있었을 때는 같은 바다를 놓고 경합하는 다른 세력들이 있었을 것이다. 풀한포기 없는 사막에 사자 한 마리가 앉아서 사파리를 호령했다고 하는 건 웃긴 일이니까. 그 경합하는 다른 세력이 일본이나, 중국의 강남 지역 해상 세력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이야기 아닌가? 장보고는 그러한 경쟁세력들보다 우위에 서서 해상을 장악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말이 되는 것일게다.

장보고 이야기는 하나의 예일 뿐이고, 한반도의 역사는 한족의 거대한 영향력과 일본 열도의 세력들의 중간에서 그들과 교류 또는 경쟁하면서 이어져온 역사라고 보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해석일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일본은 섬나라의 야만족이라고 폄하할 수 없는, 우리 혹은 한족과 당당히 맞설 정도의 세력을 유지해온 나라라고 봐야할 것이다. 몽고가 긴 여정을 무릅쓰고라도 정복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무시할 수 없는 나라였다는 것.

3 thoughts on “한국어의 영향력 – Wiki 지수

  1. 일전에 어느 다큐 채널에선가 일본 근대화 하면서 부터 목숨을 걸고 하던 도서관 사업들에 대해 봤었는데요.
    그거 보고 그전까지 이유없이 폄하했던 것 정말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당장 일본어를 버리고 영어를 사용하는건 무리이니까 세상 모든 지식을 아무때가 찾아서 볼 수 있도록 다 번역해서 정리하자’식의 모토였던것 같은데
    그렇게 국가가 나서서 밀어부친 사업이 이미 그때에 그런거라니 살짝 무섭기까지 하더군요.
    대한민국에 대한 비하인것 같아 좀 그렇지만 적어도 여긴 과거 200년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100년 이내엔 그런일 없을거라 확신합니다.

  2. passing by says:

    제가 한국어 위키백과 편집에 참여하고 있어서 위키동향에 대해서 조금은 말씀드릴 수 있는데 저 순위자료는 좀 오래되었거나 잘못된 것 같습니다. 저 순위에서 4위는 폴란드어이고, 5위는 일본어입니다. 이 순위는 몇 년사이에 바뀌지 않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폴란드어(인구 약 3800만)는 주요 국제어도 아니고 슬라브어권에서도 러시아어라는 더 큰 언어가 있지만, 위키백과 초창기때부터 줄곧 높은 순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 이유는 원래 폴란드 자체에서 서비스하고 있었던 위키형 지식사이트가 위키백과가 생기면서 그쪽으로 옮겨와서 처음부터 넉넉한 데이터를 깔고 시작한데다가 열성적인 편집참여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본어의 경우는 이탈리아어등 몇 개 언어들을 차근차근 제치고 5위 자리를 계속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동의 1위인 영어와 독일어(2)-프랑스어(3)를 제외하면 비유럽어로서는 가장 앞서 나가는 셈이죠. 20위권 내에서 일본어를 제외한 비유럽어는 터키어와 중국어뿐이고, 그나마 터키는 EU가입후보이고 영토일부가 유럽에 포함되니 완전히 비유럽이라고 하기도 어렵죠. 30위권까지를 보면 한국어는 2009년 2월 현재 26위에 랭크되어 있고 25위부터(인도네시아어) 25~30 30위(베트남어)까지 비유럽어가 꽤 포진해 있습니다.

    한국어의 영향력을 위키지수라는 용어로 설명하셨는데, 위키백과의 규모차이는 실제 언어들의 규모및 영향력과 어느 정도 비례관계에 있긴 하지만, 반드시 비례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즉, 열성적인 위키편집참여자수를 얼마나 확보하냐에 따라서 위키의 규모를 그 언어의 현실적 영향력에 관계없이 충분히 키울 수 있다는 것이죠. 그 예로 유럽언어들중에는 소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큰 위키백과를 보유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카탈루냐어같은 경우는 스페인의 지방 공용어에 불과하지만 15위나 되고(중국어는 현재 12위) 인구 2000만 규모의 네덜란드어나 스웨덴어도 각각 7,11위이며, 공용어로 쓰는 국가가 없는 인공어인 에스페란토같은 경우도 편집자확보에만 의지해서 22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한국정도의 인구규모와 컴퓨터 보급율이라면 5,6위권은 결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닙니다.

    한국어 위키나 중국어 위키가 사용인구에 비례해서 기사수가 형편없는 것은 아마 위키에 대한 인지도 부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인터넷 보급율에 비해 위키규모가 형편없는데, 그 이유가 기존에 구축된 대형포털및 지식검색서비스에 너무 익숙해져서 위키 서비스나 효과에 대해 잘 모르는 점, 그리고 일종의 자원봉사형식인 위키참여에 대한 인식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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