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사람보다 남는 사람이

내가 처음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10일 정도의 입원 기간 동안 다양한 검사를 압축적으로 실시하고 짧은 기간 내에 항암치료 및 글리벡 투여가 시작됐다.  이렇게 말하면 아주 급박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텐데…  사실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치의가 회진 돌면서 레지던트와 속삭이듯 나눈 말들을 나는 들었거든.  그들은 내가 못 알아들으리라고 생각하고 말을 했겠지만, “near blast crisis“란 말을 분명히 들었다.  듣고도 모른 척 했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상태는 세 가지 단계로 나눈다. 만성기(chronic phase), 가속기(accelerated phase), 급성기(blast crisis).  가속기가 되면 이미 상당히 치료가 힘들어지고, 급성기가 되면 거의 치료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 글리벡이 임상 적용된 이후 가속기와 급성기에서도 글리벡에 반응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안다.  어찌 됐든, 나는 급성기에 가까이 갔었다.  이건 누나가 나중에 나에게 확인해준 것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나한테 말해줄 수 없었겠지.

내가 near blast crisis에 있다고 해서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고통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그게 가슴 아팠다. 살아남은 이들이 감당해야 할 슬픔을 어찌 위로해야 할지. 그 슬픔이란 게 어떤 이유의 것인지를 따지기에는 그 원인제공자로서 느끼는 책임이 너무 컸다.  그래서, 암이든 다른 어떤 원인으로 가족이나 배우자가 죽은 경우에 남은 이들이 짊어지는 슬픔에 대해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는 계속 까먹고, 자꾸 기억을 왜곡하는 존재들이기에 그 슬픔도 언젠가는 희석될 것이니.   그때쯤 연락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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