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에서 복귀 – 루저 논란

일요일 밤에 대전에 도착했다. 항상 그렇듯이 출장 갔다 와서 일주일 동안은 힘들다. 약간 헤매고 있는 중. ㅋ

오늘 4대강 사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한다고 하던데… 한 인간의 고집(혹은 확신)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것이다. 

‘루저’ 논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유사한 생각을 하는 여대생들은 많은 것 같은데 그걸 극단적인 용어인 ‘루저’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이슈화하려 했던 PD와 작가와 여대생의 합동작전이 성공했다는 것 정도.

nerd스런 해석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nerd스럽게 보자면, ‘루저’가 인생의 실패자라는 뜻이라면, 남자는 키가 작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실패자라는 의미인데, 이게 틀린 말이라는 건 대부분 공감하지만 그 말에 어느 정도 공유되는 인식이 존재하는 것은 어렴풋이들 느낄 것이다. 키작은 남자가 성공하는 경우도 많고 키가 작다 해서 영원히 인생의 실패자는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키와 능력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전쟁이 일상이던 시절에 큰 키가 가지던 이점이 지식노동이 주가 되는 사회에서는 그닥 큰 이점이 없어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키큰 사람에 대한 심미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다. 이게 사람의 가치선호체계가 사회의 변화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든, 아니면 사람의 가치선호체계가 사회의 변화보다 더 앞서나가서인지는 모르지만,

가끔씩 신문에 나오는 ‘키큰 사람이 승진 빨리해’라든지 ‘키큰 사람 소득이 000원 더 많아’류의 기사들은 “키=능력”이라는 등식에 대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를 확인시켜주거나 이를 강화시켜준다.  [여기까지가 nerd 스런 분석이고]

그렇다고 해서 그 여대생이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말 대신 “키작은 남자는 성공 가능성이 비교적 낮다”라는 비교적 정확하고 객관적이려 노력하는 진술을 했을 경우는 텔레비젼 쇼의 특성인 선정성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지루한 발언이 되는 것이다. 선정성을 만족시키는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말에 선정성을 보고 덤벼드는 오징어떼처럼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그렇게 몰려든 오징어떼 중에는 키가 작아 열등감을 느끼는 남자도 있었을 테고, 키가 작지 않지만 남자가 여자의 시선에 의해 규격화되고 등급이 매겨지는 것에 분노하는 남자도 있었을 테고, ‘루저’가 아니라 ‘위너’지만 품격을 더 높이기 위해 PC 한 척 하며 돌멩이를 던지는 남자도 있었을 것이다. 비판하는 여자들 중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었을 것이고.

한 가지 재미있는 관찰은, 키에 따른 남자의 등급 매기기는 직업에 따른 등급 매기기와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의 등급 매기기의 주요 변수란 직업, 재산, 키 등등이다. 여자의 등급은 미모(키, 몸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으로 매겨진다. 이미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정보회사가 정해놓은 등급에 큰 거부감이 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의 등급이 비슷하게 짝이 지워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무난한 결혼이라고들 생각한다.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는 ‘키’라는 한 가지 기준만 가지고 남자의 등급을 매겨버리는 오류가 있고, 키가 작지만 직업이 좋거나 재산이 많은 남자까지 도매금으로 인생 실패자로 라베루 붙이게 되면서 이처럼 ‘키만 작은’ 능력남들의 공분도 얻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키만 작은’ 능력남과 결혼했거나 사귀고 있는 여자들의 공분도 동시에 얻게 되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면은, 키라는 선천적인 자질에 의해서 등급을 매기는 시스템과 후천적인 성취(직업, 재산)에 의해 등급을 매기는 시스템을 비교했을 때, 제도적인 계급이 철폐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선천적인 자질에 바탕한 등급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클 것이라는 것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또또 한 가지 면은, 키에 따른 등급매기기라는 게 이슈화가 되고 그 이전에 결혼정보회사가 정하는 기준에 따라 사람들의 등급매기기가 보편화되는 것이 사실상의 계급 고착화가 완성되어가는 시점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넘사벽인 사실상의 귀족계급은 키가 작든 외모가 못생겼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벌3세는 단순히 재벌3세임으로 귀족이다. 그 귀족에 속하지 못한 하류계급들은 직업, 재산, 키로 등급을 분류한다. 계급고착화 이후의 단계인 계급 세분화의 단계이다. 귀족 계급은 그들 나름대로 세분화된 계급을 갖고 있거나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고.

위에서도 말한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선천적인 자질(키)에 따라 계급이 매겨지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 중에 키 180이상은 귀족이고 180미만은 상민으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아직은 신분상승의 기회가 남아 있고 신분상승은 선천적인 자질이 아닌 노력과 실력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몇몇 SF 작가들이 상상한 바, 미래에는 상류층과 하류층이 외모만 가지고 판별되게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은 그게 가능성이 높기에 더욱 암울하고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아직은 남자의 키가 능력의 유일한 잣대가 되지 않지만, 우리 사회가 전쟁을 겪지 않고 몇 세대를 거치게 된다면 “키=재산=능력”이 되는 사회가 되고 키만 보면 재산과 능력이 짐작되는 사회가 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함과 거부감은 그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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