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v 전통의학

한의학 까는 김에 하나 더 까자면, 이 사상의학이란 놈이 있다.

사상의학이란 게 100여년 전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이라는 책에서 주장한 이론이라고 대략 역사교과서에서 배웠는데…  이 사상의학이란 게 혈액형 심리학만큼이나 폐해가 크다.  체질별로 먹으면 좋은 음식과 먹으면 안 좋은 음식이 구별되어 있다고 하기도 하고, 약도 어떤 건 어떤 체질에 좋고 어떤 체질에는 안 좋고 뭐 그렇다는데.

체질분류의 근거가 되는 게 그닥 없고, 그냥 철학적인 방식으로 태와 소, 양과 음으로 대별하고 이의 조합을 통해 태양, 태음, 소양, 소음으로 체질을 나눈다. 태와 소를 나누는 기준과 양과 음을 나누는 기준은 그닥 뚜렷한 게 없는 듯. 상식적으로 보자면 남자는 대부분 양이어야 하고 여자는 대부분 음이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닌 듯 하다.

그래서인지, 한의원마다 체질분류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게다가 어떤 한의사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체질 체계를 만들어서 사상의학에서 가지치기를 하기도 한다.

사상의학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이게 의술의 수단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일관된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내 체질도 한의사에 따라 소양이었다가 태음이었다가 소음이었다가  하면서 왔다갔다 한다.  이래서야 어디 진단과 치료의 기본자료로 쓸 수가 있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람들의 몸을 체질로 나눌 수는 있다고 본다. 누가 보더라도 사람들의 몸의 모양새나 강약, 단단함과 부드러움 등이 여러가지 특질이 차이가 있으니까.

만약 체질을 나누어서 병의 진단과 치료에 이용한다고 한다면 체질을 어떻게 나누는 것이 좋은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혈액형 심리학에 심취한 사람이라면 혈액형이 제일 좋은 체질판별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혈액형은 수혈할 때는 중요한 자료이지만, 골수이식 같은 장기이식에 있어서는 HLA가 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근데, 현재의 기술의 진보방향을 본다면 DNA를 이용한 체질분류가 제일 의미가 있겠지. 인간 게놈 프로젝트도 완료되었고, 이걸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결국은 DNA의 분석을 통해 개별 인간의 생리적 특성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분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단, 개인이 그 분석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고.

현재의 생명공학 발전 수준을 보면, 사상의학이니 하는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체질설은 그냥 신경쓸 일이 없을 텐데, 왓슨 크릭이 DNA 구조를 밝혀낸지 30년이 넘은 지금에도 사람들은 DNA 분석을 통한 정교한 의학의 발전에 기대를 걸기보다 뭔가 획기적인 썰에 좀더 기대를 거는 것 같다.  (i.e. 봉한학설)

그건 대중의 무지도 큰 몫을 하고 있고, 학계는 검증되지 않은 결과를 섣부르게 발표해서 대중의 기대감을 부풀리는 데에는 좀 조심스런 반면, 재야의 연구자들은 대중의 호승심에 기대어 한 몫 챙기려는 심리들이 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학계가 완전히 도덕적이어서 섣부른 결과를 부풀려 내놓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암튼, 한 문단으로 요약하자면, 현재의 DNA 바탕의 의학으로 전통의학이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앞으로의 가능성은 훨씬 더 큰데도 대중은 DNA 연구를 하는 생명공학자 의학자들은 전통의학을 하는 사람들보다 시야가 좁고 자기 학문밖에 모르는 샌님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구도는 인문학 v 자연과학 논쟁의 구도와 닮아 있다. 자연과학에서 뭘하는 건지 마이크로 레벨에서의 이해가 전무하고, 그걸 이해할 의지나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학에서의 연구가 전체 그림에서 어떤 함의가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인문학의 사고로 큰 그림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 자심감.

사상의학 같은 전통의학의 방법론을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현대 생명공학/의학에서 어떤 첨단 연구가 수행되고 있고 어떤 함의가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서 전통의학의 방법론이 큰 그림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 자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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