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은 것만 보지 말라고

인간의 인식 과정에는 선입견이 강하게 개입한다. 취업 면접을 실시하는 면접관이 된 경우를 상상해 보면, 구직자를 직접 보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의 상당 부분을 서류를 통해서 형성하지 않던가? 구직자를 직접 보게 되면 그러한 판단의 일부가 변경되기도 한다. 하지만 선제적인 입증과 반증 중에 어느 것이 배심원에게 더 강한 인상으로 작용하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일차적으로 형성된 인상을 극복하기 위한 반대 자료를 쌓는 것은 더 어려운 과정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쉽게 알 수 있다”? 쩝. 글이 너무 산만해지네)

취업 면접을 얘기하려던 건 아니었고. 사람들은 어떻 형태로든 선입견의 포로가 되기 마련이다.

강연을 간다. 강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강연이 끝났다. 청중들이 질문을 한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게 되면서 그렇지 않은 삶을 동경하게 되지는 않는지. ‘자유로운 영혼’으로 계속 살고 싶은지. ‘자유로운 영혼’이 예술적인 영감을 얻는 데 어떤 영향을주는지.

근데 이 강사는 5년 전부터는 더 이상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있지 않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자유로운 영혼’이기보다는 자신의 일을 꾸준히 성실하게 하는 소시민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더 이상 ‘자유로운 영혼’이 아닌 사람에게 계속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기대하면서 사람들은 질문들을 던진다.

중세 성화를 보자.

유디트는 많은 화가들에 의해 많은 양식으로 변주된 소재이다. 유디트는 자신을 도와주는 할매와 함께 남자의 목을 벤다.상당히 많은 화가들은 살해당하는 남자의 여러 신체 부위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썼다. 칼이 배를 찔렀을 때 창자가 튀어나온 모양, 고통을 겪을 때 돌아가는 눈, 부르르 떠는 손가락.

화가는 아름다움을 추구함과 동시에 고어 영화를 찍는 스트릿 펑크의 기분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성화를 그리면서 그 밑에 포르노를 한두장 끼워넣는 것 같은 행동. 그 그림을 보면서 성호를 긋지만 마음 속으로 고어 영화를 즐기는 변태적 취미를 가진 스폰서.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하기 쉽지 않은 이런 코드는 고상한 그림 감상회에 가면 흔히들 간과되곤 한다. 아니. 오히려 애써 모른 척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상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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