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로부터 아버지를 알 수 있겠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의 행동이 상궤를 벗어난 게 많다는 건 대부분이 동의하는 바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어떤 심리학자는 그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기를 “박근혜는 연산군… 대통령 하기 싫다”라고까지 했다. 이 심리학자는 그 사람이 대통령 할 생각이 크게 없는 사람이며 바지사장으로 최고권력자 자리에 앉아있다라고 분석하는데, 나는 그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특별 기사가 기사로서 의미를 가지게 된 걸로 볼 때 대다수 독자들이 그 사람을 이해불가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는 정도는 추론이 가능하다.

나는 그 사람의 이해불가한 행동들이 아버지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본다. 많은 행동들이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고, 그 행동방식이 맞다는 데 대한 의심없는 믿음이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위의 심리학자가 지적한 사람을 믿지 못하는 마음. 이건 그의 아버지의 성격을 묘사할 때 종종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격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고, 사람을 믿지 못하는 태도가 습관의 정도를 지나 성격과 비슷한 정도로 체화된 것이 그의 아버지이다. 그의 아버지는 통치시절 내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감시 방식으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꼼꼼히 감시했다. 그리고 누구라도 자신의 권력에 조그마한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가차없이 숙청했다.

그는 정치를 정쟁의 매트릭스로 이해한다. 정치에서 세력들간의 다툼을 다른 견해의 절충을 위한 과정으로 이해하지 않고, 상대를 압살해야 이길 수 있는 전투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전투를 이기기 위해서는 페어플레이도 필요없다. 페어플레이는 아이들한테나 줘버려야 한다. 이 역시 그의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국민을 바라보는 태도가 왕조시대 임금이 백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유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은 아닐 터이다. 거기다가 자신이 성군이라고 착각하는 데에 이르러서야 그의 아버지와 판박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삼성서울병원 원장에게서 사과를 받는 사진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짐이 곧 국민이고 국가이다. 삼성병원 원장이 메르스를 조기에 잡지 못한 것은 국민과 국가에게 누를 끼친 것이므로 국민이고 국가인 짐에게 사죄해야 한다. 이런 자세 역시 그의 아버지와 같은 것 아닌가?

한 때 유효했던 그의 아버지의 통치방식은 수십년의 민주화 과정을 통해 깎여내려갔고, 그 중에 2015년에 유효한 방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의 아버지의 통치방식을 답습하는 데에 반성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는, 그의 정치에 대한 인식, 세계에 대한 가치관이 아버지가 사망한 때로부터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게 내 진단이다. 영화에서도 곧잘 나오는 PTSD라든지 …

똥에서도 비료를 뽑아낼 수 있듯이, 이런 최고권력자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도 좋은 일이 어찌 없겠는가? 바로 1970년대의 세계관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다가 이번 지도자와 공진(resonance)이 잘 되는 일군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 The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에서 패로디했던 그런 상황이 한국의 현실에서 펼쳐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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