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향욱 개돼지

생각의 자유는 신이 준 것이다. 나는 신을 안 믿지만 좀 그럴 듯 하게 표현하려고 신을 들먹여봤다. 사상의 자유는 천부인권이다라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좀더 나은 표현 같다. 사상과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은 개념 같지만, 언젠가부터 사상은 생각이 표현된 것이라는 해석이 덧붙여지면서 생각과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유효한 것은, 머리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든 그것은 자유이고 권리이며 신이 보호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표현해버린 이상 절대적 자유의 영역에서 추방된다. 책임이 붙게 된다. 그리고 그 책임이란 것은 그 사상의 내용이 절대적인 진리를 표현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사상이 표현된 시대의 대중이 용인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나향욱이 국민이 개돼지라고 생각한 것은 술김에 한 말이 아니며 실수도 아니고 기자가 왜곡해서 기사를 써제낀 것도 아니다. 나향욱의 사상이며 진심이다. 국민이 개 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적인 자유의 영역에 속하지만 그걸 표현한 이상, 그것도 기자들 앞에서, 그 말은 대중이 용인할 수 있느냐의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2016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 사상을 용인할 수 없었다.

멍청이는 아닌 것 같은 나향욱이 왜 기자들 앞에서 그 말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사람들은 한창 잘 나가는 전성기 때에 큰 실수를 저질러 고꾸러진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때는 전성기가 아니라 이미 전성기를 지난 하락기에 접어들었을 때이고 스스로는 전성기라고 착각하고 있을 때이다. 약간 운명철학적인 얘기이다. 나향욱은 엄청난 자신감이 있었던 듯 하다. 3급 부이사관이며 국장인데다가 주요 보직인 정책기획관을 맡고 있으니, 앞으로 1급까지는 무난할 것이고 차관, 장관까지 바라볼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꺾인다.

이런 여러 곁가지를 뒤로 하고, 나향욱의 ‘국민 개돼지론’은 그 자체로 분명히 오류인 명제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과두정치, 철인정치, 제한적인 대의정치 같은 것들이 조금씩 다른 변주곡이지만 결국은 한 사회는 똑똑한 몇 사람이 이끌어가야 하고 다수의 우매한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좋은 세상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면서 그 과실을 받아서 적절히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소위 엘리트들이 가지기 쉬운 생각인 데다가, 흔히들 미국 유학파들이 경도되기 쉬운 생각이다. 그런 사고는 미국의 건국 역사를 공부하게 마련인 정치학 전공, 법학 전공, 미국사 전공 같은 사람들한테서 흔히 발견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의 역사, 그 중에서도 특히 알렉산더 해밀턴의 저술들을 읽어보면 귀족정치, 선민정치가 대중민주주의보다 나은 것이라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해밀턴은 영국의 귀족주의를 열렬히 찬미하고 숭배하였으며, 민주주의가 국민들의 변덕과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분위기에 의해 좌우되는 통치라고 이해하였다. 동료인 제임스 매디슨과 달리, 미국 상원을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귀족의 대표라고 보았다. (한국어 위키피디어 알렉산더 해밀턴 항목) [note: 한국어 위키피디아 원글로 가면 나오는 각주가 무려 정종섭이다.]

굳이 해밀턴이 귀족정치를 찬미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미국 건국 역사는 그야말로 똑똑한 소수의 사람들이 미국의 기초를 잘 만들어나가는 현실 세계의 심시티였기 때문에 그 히스토리를 읽게 되면 자연스레 귀족정치/선민정치를 선망할 수 있다.

나향욱이 해밀턴보다 못한 것은, 그런 생각을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나향욱이 1%에 들어갈 뻔 했다가 개돼지가 되는 결과가 온 것이겠지. 정말 강한 신념이 있고 그걸 뒷받침하는 논리가 있었다면 스스로 한국판 “The Federalist Paper”를 만들었어야겠지. 기자들을 앞에 두고 극단적인 표현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나향욱이나 혹은 다른 어떤 엘리트가 정말 근사하게 귀족정치 이론이 대중민주주의보다 낫다는 것을 주장하는 저술을 낸다면 나는 그 사상을 지지할 의사도 있다. 문제는 나향욱이든 다른 누구든 2016년의 대한민국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매끈한 사상서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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