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 연상호

돼지의 왕, 사이비. 이 두 제목만으로도 부산행은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연상호의 첫번째 실사영화? 그렇다면 한 번 봐줘야지. ‘서울역’도 봐야겠지?

  1. 한국 영화의 클리쉐

‘돼지의 왕’도 그렇고 ‘사이비’도 그런데, 연상호 감독은 한국 영화의 클리쉐에 익숙하다. 클리쉐를 쓰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제작사의 입김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연상호 감독 스스로가 한국 영화의 클리쉐를 좋아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살하라’와 ‘구출하라’ 사이의 극적 반전. 반전은 모든 영화에서 기도하는 것이지만, 한국적 반전이란 건 있다. 성경(정유미 분)과 거지가 마지막 순간에 눈빛으로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이라든지. 천리마 고속 상무(김의성 분)이 마지막에 최종 보스 좀비가 되어서 공유와 일기토를 벌이는 장면. 공유가 결국 좀비한테 물려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 장면. 다들 좀 오글오글한 한국 영화의 클리쉐이다. 그런 장면이 없이 좀 드라이하게 갔다면 어땠을까? 내가 연상호 감독에게서 기대한 것은, 제작사가 원하는 클리쉐들을 거부하고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 같이 드라이하면서도 서늘하게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 정도까지는 못 만들겠지? 연상호 감독이 세번째 상업영화를 만들게 되면 가능해지기를 기대해본다. (곡성이 나홍진 감독의 세번째 영화였기 때문에)

2. 디테일이 어그러진다

대전역에서는 왜 군인 좀비들이 역 바깥 쪽을 바라보며 무리지어 서 있어야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관객들로 하여금 군인들이 밖에서 대전역을 지키고 있다고 믿게 하고, 반전으로 그 군인들이 좀비라는 걸 알려줌으로써 놀라게 하려는 것이다. 그건 알겠는데. 그 앞까지 좀비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일단 움직이는 생명체를 쫓아서 뛰어가는 것이 좀비의 행동양식이다. 대전역에는 움직이는 생명체가 없어서 군인 좀비들이 서 있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그 전에 이미 누군가를 쫓아서 어디론가 이동했어야 했다. 동대구역도 그랬고 나중에 나오는 부산으로 들어가는 터널 앞에서도 군인 좀비들이 무리지어 서있지는 않았다. 뛰는 좀비라면 일관되게 뛰는 좀비였어야지.

성경(정유미 분)이 무궁화호 기관차를 타러 가는 장면에서는 좀비가 성경을 따라붙지 못한다. 어? 정말 그런가? 좀비는 수한도 따라잡지 못한다. 쩝. 공유가 스테이시스 필드를 쳤겠지. 그렇게 생각하자구.

좀비들이 무궁화호 기관차에 주르륵 달라붙는 장면. 꽤 좋은 장면인데, 거기서도 디테일이 죽었다. 바닥이 돌이기 때문에 좀비들이 그렇게 질질 끌려가면 좀비들 살이 돌에 갈려나가면서 핏자국이 나야 한다. 그런데 바닥이 너무 깨끗해. 그리고, 좀비들이 매달려있는 있는 모양이 삼각형이야. 그 삼각형 모양이 너무 잘 유지되더라. 기차는 굴곡진 구간도 지나가는데 말이야. 이유는 간단하지. 기차에 삼각형 매트를 달고 그 매트 위에 좀비역 엑스트라들이 매달려서 끌려갔기 때문이겠지. 그 장면은 좋은 장면이긴 한데, 좀더 사실감 있게 만들질 못했어. 원래는 다이아몬드 모양이 되었어야 하지. 그리고 중간에 좀비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야 하고. 떨어져나가는 좀비들은 바닥에 깔려 있는 좀비들이고 그 좀비들의 살이 갈려 나가면서 너덜너덜한 상태로 떨어져나가야 했었지. 그렇게 안 하니까 너무 티나잖아.

좀비가 헬기에 매달려 있고, 기차 위로 뛰어내리고 하는 장면은 액션감을 살리기 위한 장면이라고 이해해주려고 하긴 하는데, 그것도 좀비가 창궐할 때 일어날 일 같진 않은데. 좀비가 왜 창을 깨고 기차 위로 뛰어내릴까?

마동석, 공유, 야구선수의 삼인조가 좀비들이랑 싸울 때는 좀비들이 왜 그렇게 약한지. 마동석이 좀비들을 때릴 때는 사실감이 좀 있지만, 좀비가 한대 맞고 넘어졌다고 해서 체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기차 좌석에 너무 맥없이 앉아있다가 공유랑 야구선수한테 맞고 얌전해지는 건 좀 사실감 떨어지긴 함.

1등석 승객들이 공유 일행을 거부할 때도 좀 디테일이. 이전 장면까지는 사람들은 좀비에 물리자마자 좀비가 된다. 잠복기가 없다. 그런데 눈 앞에서 멀쩡하니 서 있는 사람들이 감염되었는지를 의심하는 건 좀 이상해. 그 장면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알겠는데, 메시지 전달을 위해 사실감이 희생되어서는 안 되지. 공유 일행이 어디 물린 데가 있는지만 검사해봐도 간단히 해결되는 거 아니었나?

김대리는 어떻게 살아남았지? 김대리는 그 사건이 종원 바이오에서 일어난 일이란 건 어떻게 알았을까? 그 난리가 시작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방송이 마비되고 사람들이 다 좀비가 되어서 전화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기도 힘든 상황인데 말야. 기껏해야 부산 정도만 방어에 성공한 상황.

다시 말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실감과 디테일의 일관성을 희생하면 안된다.

3. 좋은 액션 좀비이지만…

일단 한국에서 이 정도의 좀비 영화가 나온 것은 상찬 가능. 기차에서의 좀비 액션이라니. 괜찮은 설정이다. 그리고 잘 살려냈다. 거기다가 몇 가지 메시지를 넣은 것도 장점. 근데 그 장점이 동시에 단점도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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