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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져보지 못한 여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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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백혈병 카페에서 본 가입인사말이다. 좀 부럽네.
내 경우에는 백혈병 있다는 말 하면 다 도망가던데. ㅋㅋ
아, 뭐 만나서 사귀다가 백혈병에 걸리는 경우(위의 경우)라면 좀 다르긴 하지.
그런 병 없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알게 된 경우랑은 좀 다르긴 한데.

그래도..
사귀다가도 백혈병 걸렸다 하면 여자가 도망갈 거 같은데. 백혈병 카페에 가입해서 정보도 얻고 하려는 여자를 보니 좀 감동이다.

백혈병 증상 몇 가지

이야기 시작한 김에 몇 가지 하자면,

백혈병이 뭔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백혈병 걸리면 어떻게 되냐요?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도 많고 해서…

백혈병은 골수의 조혈모세포(피를 만드는 세포)에 암이 생기는 혈액암의 일종이고, 조혈모세포에 만성골수성백혈병이 생기면 백혈구를 무쟈게 많이 생산해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백혈병이 백혈구가 모자라게 되는 병이라 잘못 알고 있는데, 백혈병은 백혈구가 무쟈게 많이 생기는 병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묻는 게, 백혈구가 무쟈게 많이 생기면 백혈구는 병원균을 잡는 세포니까, 백혈구가 많으면 병에 잘 안 걸리겠네?라는 거다. 백혈병에 걸렸을 때 생산되는 무쟈게 많은 백혈구의 대부분은 미성숙 백혈구이고 병원균을 잡지 못한다. 즉,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혈관의 공간만 잡아먹는 백혈구이다. 오히려 정상적인 백혈구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병에 잘 걸린다.

백혈병 걸리면 어떻게 죽나요? – 백혈병 환자는 다른 병에 잘 걸린다. 위에 쓴 것처럼 정상적인 백혈구의 수가 줄기 때문에 다른 병에 잘 걸리고 우리가 흔히 걸리는 병이 감기, 그리고 감기가 잘 치료 안 되면 폐렴으로 확대되고 그 다음에 죽는 경우가 많다.

내가 경험했던 증상들을 몇 가지 말하면,

1. 밤에 잠을 푹 잘 수 없고 열이 나고 땀이 많이 난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쉽지 않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다.

2. 뛰는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병이 더 진행되면 미약한 노동도 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면 벽에 페인트칠하기 같은 것도 엄청 힘들다. 100미터를 조깅으로 뛰는 것도 힘들다. 난 조깅을 즐겨해서 4~6킬로 정도는 개운하다고 할 정도로 뛰었는데, 병이 걸리고 나서(병이 걸렸다는 걸 모르는 상태지만) 점점 뛸 수 있는 거리가 줄었다. 나중에는 100미터도 뛸 수 없었다. 

이런 증세는, 혈관속에 미성숙 백혈구가 잔뜩 자리잡고 있어서 정상적인 백혈구와 적혈구가 매우 드물게 존재하게 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적혈구가 몸속에 산소를 배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적혈구가 부족하니까 산소 배달이 느려져서 운동을 하기가 힘들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은, 백혈구가 찐득찐득한데, 찐득찐득한 백혈구가 많으니까 혈액이 도는 속도도 느려지고 어떤 혈관은 막히기도 한다고 한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정신이 몽롱해지고 기절할 것 같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기절하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마 뇌에 전달되는 산소가 아주 부족했었던 듯.

3. 비장이 비대해진다. 비장은 죽은 피를 처리하는 기관이라고 들었는데, 이게 정상적일 때는 크기가 작고 배 안 쪽에 위치해 있어서 배를 가르지 않고는 만지기가 어렵다고 한다.

근데 백혈병 걸리면 미성숙 백혈구들이 많이 생산되고 이 미성숙 백혈구들이 빨리 죽어버리기 때문에 비장이 처리해야 할 죽은 혈액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비장은 이런 죽은 혈액을 다 처리하지 못하고 쌓아두게 되는데, 그래서 비장이 커진다.

내가 백혈병 진단 받을 때는 왼쪽 배가 부풀어 있었다. 손으로 비장을 찾으려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왼쪽 배 갈비뼈 아랫 부분이 튀어나와 있었으니까.

4. 손발이 차다. 이것도 역시 혈액순환이 잘 안 되면서 생기는 문제라고 보여진다.

만성골수성백혈병 글리벡만으로 완치 가능

http://ash.confex.com/ash/2009/webprogram/Paper18033.html

American Society of Hematology의 2009년 학회에서 글리벡 치료만으로 완치 가능성을 보인 경우가 보고되었네요. 논문 요약본은 위에 나와있고요.

내 나름대로 재구성하자면 대략: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 중 글리벡을 먹으면서 완전분자생물학적 관해(complete molecular remission)을 유지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이들 환자 중에서 글리벡을 중단해도 4년 동안 백혈병이 다시 활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4년 동안 백혈병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완치에 가깝다는 것.

경향성 분석에 따르면, 남성 환자 중에서 말초혈액에서 세포독성(cytotoxic) NK 세포가 많은 환자들이 백혈병이 다시 활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글리벡만으로 완치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좋은 소식이네요. 당연한 얘기지만 스스로 의사 역할을 자임하고 글리벡 복용을 중단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가 올 수 있습니다. 글리벡에 내성이 생기면 스프라이셀이나 다사티닙, 보수티닙 등의 약이 있지만 글리벡 내성 환자에게는 60~70% 정도의 반응만 보여도 성공적이라 하니, 30~40%는 약이 없다는 거죠. 만성골수성백혈병에 약이 없을 경우는 골수이식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항암치료로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이 치료가 안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요.

사실 글리벡에 잘 반응하니까 방심하고서 약 복용을 임의로 중단하거나 게을리해서 치명적인 결과를 보게 된 환자들이 좀 있습니다. (치명이라는 건 죽음을 의미하죠.)  다들 꼬박꼬박 약을 먹으면서 지내기로 해요. 

글고, 현대의학을 “서양의학”이라고 부르면서 동양-서양 편가르기를 하고, 현대의학을 증상의 말단만 보고 치료하는 기계론적 인간관에 바탕하고 있다고 하면서 전체를 보고 인체 전반의 면역력을 높이는 게 동양의학이라는 총체적인 관점(holistic view)이 기계론적 인간관보다 우수하다는 식의 주장을 하면서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약초 팔아먹는 사람들은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의 의학은 동양의학-서양의학의 구분이 없고, 현대의학과 현대적이지 않은 의학이 구분될 뿐이죠.

글리벡을 먹으면 여러가지 부작용이 있는데, 그 정도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한데 어떤 사람들은 참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난 부작용이 그닥 힘들지는 않던데.

내가 백혈병 걸린줄 모르는 상태에서 증세가 심했을 때는 100미터를 조깅처럼 천천히 달리는 것도 제대로 못했고, 좀 활동하고 집에 들어와서 욕조에 몸 담그고 있는데 힘이 들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게 이러다가 죽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쯤 병을 발견했고, 그때 백혈구 수치가 25만. 가속기나 급성기였다고 보는 게 맞을 듯. 그때 의사는 백혈구 수치만으로는 만성기인지, 가속기인지, 급성기인지 모른다 했지만, 그건 나를 안심시키려고 한 거짓말이고 사실은 상당히 위급한 상황이었다.

말이 샜지만, 그렇게 힘든 것에 비하면 글리벡 부작용은 별 것 아닌 것이다. 글리벡 부작용이 힘들어서 약을 복용하기 힘든 사람도 분명히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의사와 상의하여 약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지 자기 혼자 집에서 먹었다 안 먹었다 하면 정말 큰일난다. 의외로 그런 사람 많다. 글리벡 뿐만 아니라 다른 약들도 혼자서 먹었다 끊었다 하는 사람들 많다.

존댓말 했다 반말 했다 해서 포스트의 어조가 어지러운데, 암튼, 좋은 소식도 있지만 결코 글리벡 챙겨먹는 걸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살다보면 완치가 되는 날도 오겠죠. 지금 글리벡 먹으면서 지내는 생활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고. 글리벡 아니었음 난 아마 2005년에서 2006년 사이에 죽었을 거라고 보죠. 살아서 2010년을 보게 되었으니 다행이죠. 

그래서 살면서 그닥 욕심을 안 부려야지 하는데, 사람이란 게 다 욕심이 있게 마련이고, 주변 사람들이 다 욕심부리는 거 보면 나만 욕심 안 부리고 살면 바보 같은 것 같기도 해서 욕심이 부려지게 되는데, 이런 마음을 다스리는 게 쉽지 않은 것이죠.

골수이식에 대한 정보 조금 더

비행기에서 본 드라마시티인가 베스트극장인가에 “또” 백혈병 얘기가 나오더라구. 저번에 어떤 포스트에서도 얘기했지만, 드라마작가들은 백혈병 말고는 난치병 이름을 모르는 게 아닌가 싶어.

근데, 그 얘기가 어떤 거냐 하면, 애가 백혈병에 걸렸는데, 아버지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이거지. 왜냐, 엄마는 미혼모인데 그 아이를 잉태할 때 잤던 남자가 세 명이었던 것이지. 근데 맞는 골수를 찾기 위해서 아빠 혐의자 3명을 다 불러서 골수검사를 하자고 하는 것이 이야기의 끝부분이거든.  진짜 아빠가 누군지만 알면 골수검사 할 필요없이 골수이식 할 수 있다는 거였지.

이 이야기에는 큰 사실 오류가 2개 있거든.

(1) 골수검사를 위한 조직접합성 테스트에는 골수검사가 필요없다. 영어로 HLA라고 하는데, 이걸 검사해서 공여자와 수여자가 100% 일치하면 가장 좋은 것이고, 적합성이 낮을수록 골수이식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근데 HLA를 검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혈액만 있으면 된다.  즉, 팔에다 바늘 꽂아서 피 조금 뽑아내면 HLA 검사하는 데 충분한 시료가 된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3명의 아빠 혐의자들이 골수검사 무서워서 병원 안 가려고 하다가 결국에 가게 된다는 얘기로 나오는데, 그건 드라마 작가들이 사실 검증도 안해보고 작가들 사이에 도는 괴담을 퍼나르기 한 거라는 증거이다.

(2) 부모-자식간에는 HLA 적합도가 50%밖에 안 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골수이식 안 한다. 이건 중고등학교 때 생물시간에 나오는 정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아빠와 엄마의 염색체 절반씩을 아이가 물려받기 때문에 아이는 아빠와 50% 적합하고 엄마와도 50% 적합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100% 적합한 경우는 없다.  50% 적합도가 있을 경우 골수이식은 위험도가 상당히 높아지기 때문에 웬만하면 부모-자식간 골수이식은 하지 않는다. 

HLA가 맞을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은 형제지간이다.

골수검사는 척추에다 하는 게 아냐

이건 뭐 거의 괴담 수준인데, 골수검사는 척추에 바늘을 꽂고 골수를 뽑아내는 거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90%이더군.

이런 괴담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진 거지? 골수검사를 척수검사랑 헷갈린 건가?  척수검사란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말이지. 골수가 척추뼈에 많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서 척추에서 골수검사를 한다고 생각한 건가?

암튼, 골수 기증 얘기 나오면 익명의 댓글러들이 펄쩍 뛴다. 척추에서 골수 뽑아내는데 무쟈게 아프다면서.  한 번도 골수 뽑아본 적 없는 인터넷 댓글러들이 알지도 못하는 얘기로 괴담을 만들어내는 거다.

내 블로그에다가 써봐야 몇명이나 보겠냐마는, 골수검사 여러번 받아본 내가 이런 글이라도 써야지.

골수는 척추에서 뽑는 게 아냐. 엉덩이 뼈에서 뽑는 거야.  엉덩이 살 많은 곳 바로 위쪽에 살이 별로 없는 곳에 있는 편평한 엉덩이 뼈에다가 바늘을 꽂고 골수를 뽑아내는 거라구. 다른 뼈에도 골수가 존재하는데 굳이 위험도 높은 척추에다가 바늘을 꽂는 일을 할 필요야 없지 않겠어?

게다가 별로 아프지도 않아. 살에 바늘 들어가는 거야 주사 맞는 거랑 똑같고. 게다가 마취를 하니까 감각도 없지. 단, 바늘이 뼈를 뚫을 때는 감각이 좀 있을 수도 있다. 뼈도 마취를 하지만 뼈는 살보다 마취가 잘 안 되는 경향이 있어서 바늘을 꽂을 때까지 마취약이 충분히 퍼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설사 마취가 잘 안 되었다 하더라도 엄청 아픈 수준은 절대 아니다. 

나는 골수검사할 때하고 치과치료 받을 때마다 느끼는 게, 유식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라는 거. 그걸 느끼는데. 골수검사 받으면서 드는 통증이란 게 사실 누군가랑 장난치면서 주먹으로 팔 툭툭 때릴 때 살이 없는 부분을 맞을 때 느끼는 통증보다 약하거든.  치과치료를 받을 때 느끼는 통증이란 것도, 간호사가 치료 준비를 위해 솜을 혀밑에 넣을 때 느끼는 통증보다 약하기도 해. 근데, 골수검사나 치과치료를 받을 땐 무쟈게 아프다고 느끼는 건 환자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허상이거든. 공포심이 통증을 마음 속에서 증폭시키는 거지.  요다가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공중부양을 가르칠 때 가르치는 것이 공포심의 극복이었지 아마?  그니까 골수기증 서약서 쓴다고 죽을 정도의 고통을 예약했다고 호들갑 떨지 말라구.

골수 검사

7월31일에 골수검사를 받았다. 지금까지 받았던 것중에선 가장 가볍게 끝난 검사였다. 바늘이 들어갈 때의 통증이 거의 없었고, 골수를 뽑아낼 때의 통증도 이전과 비교하면 미미한 정도였다. 그리고 검사후의 지혈도 원활하게 되어서 예정했던 시간에 퇴원했다. 이 병이 나에게 주는 불편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눈의 부기도 많이 줄었다. 단, 아침에 약을 먹을 때 각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메스꺼움이 몰려온다. 이건 웬만해선 없어지지 않는 부작용이라 한다. 그리고 다리에 아토피처럼 생겨나는 두드러기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다 사소한 부작용일 뿐이다.

3년

7월 25일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2005년 7월 25일.  그날에 내가 CML에 걸린 걸 알게 됐다.  다음주 금요일이면 3년이 된다. 

한 4년 정도 더 지나면 그때 있었던 일들 중 흥미로운 것 몇 가지를 얘기할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