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권에 관한 글들 중간정리

관련글들: 오른쪽의 Categories에서 Property Law를 선택하면 나오는 글들을 보시면 됩니다.

몽고의 마르코 폴로 봉토

부동산 공개념 검토는 필요하다

벤자민 터커 Benjamin Tucker, 1854 – 1939

존 로크의 자연법 사상에 따른 재산권

1839년 체로키 헌법 – 1839 Cherokee Constitution

존 로크는 재산권 철학의 대부인가?

Interjection In Between Ramblings on Property Law

임꺽정의 재산권 사상

바이마르 헌법의 재산권 조항

아누그닌의 전설

루소의 재산권 사상 1

한국에 존재했던 아누그닌

관련된 글만 나열해도 11개가 되는군요. 벌써 꽤 많이 썼습니다. 게으른 저의 천성을 생각할 때 하나의 주제로 일관되게 11개의 포스팅을 올린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원래 쓰기 시작했을 때도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Property Law라는 주제로 뭉뚱그려질 글들이 적당한 분량이 되면 편집을 해서 E-book의 형태로 만들어 배포할 예정입니다. 블로그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글들을 읽는 것보다는 편집된 한 권의 책을 보는 것이 편할 것 같아서입니다.

이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온다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블로그’에 실린 글 중에서 가장 지루한 것들만 모은 편집이 될 것입니다.

Interjection In Between Ramblings on Property Law에서 썼듯이, 이 일련의 글들의 시초는 재산권이라는 개념에 대한 탐구입니다. 재산권 중에서 부동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추상적인 개념들 중에서 “예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에”라는 것이 유일한 근거가 되는 것이 몇 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부동산이라는 개념입니다.

부동산이라는 개념은 간단히 말하면 땅을 사람이 소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땅을 사람이 소유할 수 없다라는 개념의 반대가 됩니다. 땅을 사람이 소유한다라는 개념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연원은 인류학자들이 제일 잘 설명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장 자끄 루소는 인류학적으로 짐작하기에 인간이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 땅에 경계를 치고 권리를 주장하면서 부동산의 개념이 생겼으리라고 말합니다. 저도 루소의 짐작과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부동산이라는 개념은 사실 자연법에서는 근거가 없습니다. 자연법이라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지구라는 곳의 원리에 따라 추론해 볼 때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자연법의 원리가 됩니다. 존 로크는 자연법의 추론을 통해 인간이 노동으로 생산한 것은 노동한 인간의 소유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장 자끄 루소 역시 로크와 같은 추론을 합니다. 두 사람 모두 부동산의 소유는 근거가 없다고 결론내립니다.

굳이 두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지 않더라도 우리의 머리로 충분히 추론해낼 수 있습니다. 땅은 인간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것이고 인간이 노동을 통해 땅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죠.

때문에 부동산이란 개념은 자연법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입법(positive law)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입법(positive law)는 기존부터 전해내려오는 관습들을 법으로 못박은 것이라 볼 수 있으며, 그 법들을 누가 만들었느냐를 살펴보면 왜 입법(positive law)이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부동산이란 개념이 법의 체계에 정립이 되면서 절대적 소유권이란 개념이 부동산에 결합이 됩니다. 절대적 소유권은 땅 주인이 땅에 관련된 모든 권리를 가진다는 말입니다. 절대적 소유권의 반대는 부분적 소유권이 되겠지요.

부분적인 소유권이라는 말이 낯설게 보이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땅에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권리만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가장 좋은 예는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에 국왕이 관리들에게 주었던 토지입니다. 대충 상식선에서 아는 얘기지만, 관리들이 토지를 받았다는 것은 그 토지에서 농사짓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매년 농작물의 일부분(혹은 대부분)을 받을 수 있는 권리였습니다. 아주 제한된 권리였지요.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없었고, 세습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부동산 소유권이 무제한의 소유권과 동일하다는 것과 비교해볼 때 차이점이 있습니다.

왜 부동산 소유권이 절대적 소유권과 동일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부동산이란 개념이 입법화되는 과정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중간정리 성격의 이 글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에 이어질 글은 한국 헌법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지는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과 그 뒤를 잇는 서독과 동독의 헌법에 대해 잠시 써보겠습니다.

Technorati :

한국에 존재했던 아누그닌

K. Rudalston의 Undercurrent에 나오는 아누그닌은 한국에도 있었습니다. 그저 유럽의 한 조그만 땅덩이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지요. 박노자 교수가 그의 블로그에 올린 우리와 북한인들의 처지는 과연 본질적으로 다른가?에 한국에서 있었던 아누그닌의 역사들이 나옵니다.

다만, 아누그닌의 역사가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지워졌듯이 한국의 아누그닌도 철저하게 지우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1) 박노자교수가 말한 “국민”이 몰라야 국가운영이 순조롭다는 말.

(2) 인터넷에서 무관심이 악플보다 무섭다는 말.

(3) 이아고님의 Truly well-trainted capitalist parrots are those de facto capitalists who do not belive in capitalism; they believe in skepticism.

(4) 장 자끄 루소의 But there is great probability that things had then already come to such a pitch, that they could no longer continue as they were.

다 비슷한 말입니다. 이런 말들은 개개인들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면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묻어버리기를 원하는 정보는 억눌러서 관심을 받게 하기보다는 관심을 받지 못하도록 합니다.

Technorati :

루소의 재산권 사상 1

THE first man who, having enclosed a piece of ground, bethought himself of saying This is mine, and found people simple enough to believe him, was the real founder of civil society. From how many crimes, wars and murders, from how many horrors and misfortunes might not any one have saved mankind, by pulling up the stakes, or filling up the ditch, and crying to his fellows, “Beware of listening to this impostor; you are undone if you once forget that the fruits of the earth belong to us all, and the earth itself to nobody.”

Jean Jacques Rousseau, A Discourse On Inequality

땅을 에둘러 경계를 치고 그 땅이 자기 것이라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다닌 최초의 인간이 시민사회(civil society)를 설립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박은 말뚝을 뽑아버리고 경계에 파놓은 도랑을 덮어 버린 후, “이 사기꾼 말을 듣지 마시오. 땅에서 나는 곡물이 우리 모두의 것이고 땅은 누구도 소유할 수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우리는 망하는 겁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범죄, 전쟁, 살인, 공포, 그리고 불행에서 인류가 구제되었을까?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루소는 “시민사회(civil society)”나 “문명화된 사람들(civilized people)”이란 말들을 나쁜 뜻으로 썼다. 그는 시민사회와 문명화가 인간의 불평등과 궤를 같이 했으며, 이는 곧 죄악의 발전과 동일하다고 봤다.

아누그닌의 주민들은 땅에 경계를 치고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몰매 놓고 아누그닌에서 쫓아버렸다. 아누그닌 주민들은 루소가 말한 “시민사회의 설립자”로 인해 아누그닌이 불행해질 거라는 걸 알만큼 현명했기에 “시민사회의 설립자”가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구나 그런 깨끗하지 않은 사상이 혹시라도 마을에 퍼지지 않을까 저어하여 그를 마을로부터 영구히 추방했다.

루소를 읽지 않았던 그들은 루소만큼이나 현명하게도 아누그닌이 평화와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 아누그닌의 역사가 담긴 두루마리 종이를 전해준 사람은 아누그닌의 후손이었다. 그가 나에게 두루마리 종이를 넘겨줄 때의 눈빛은 긴장감과 안도감, 그리고 슬픔이 섞여 있었다. 여러 번 확인했음에도 내가 “그들”의 하수인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그가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루마리 종이는 죽음을 의미했기에 그는 죽음의 징표를 떠나보내면서 자신의 생명이 더 이상 위태롭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의 슬픔은 아누그닌의 역사는 이제 잘해봐야 역사로만 남게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두루마리 종이의 역사는 존 로크와 장 자크 루소의 사상과 비교할 만큼 대단한 것입니다. 여기에 쓰여진 내용이 반드시 책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이 읽도록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누그닌 사람들은 기록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록을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그들”이 철저하게 아누그닌의 역사를 지워버리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누그닌을 뺏긴 후에 루소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그의 글들이 널리 읽혀지고 있는데 왜 아누그닌의 역사만을 지우려고 “그들”이 힘을 쏟는지는 분명합니다. 아누그닌이 루소의 머리 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체념합니다. 아누그닌은 존재했다는 것으로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존재한 것과 머리 속에서만 존재한 것의 차이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루소가 재산권에 대해 남긴 말 중 가장 유명한 구절인 위의 문구들에 바로 이어지는 다음 문장들이 사람들에게 체념과 회의를 가지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K. Rudalston, Undercurrent

But there is great probability that things had then already come to such a pitch, that they could no longer continue as they were; for the idea of property depends on many prior ideas, which could only be acquired successively, and cannot have been formed all at once in the human mind.

Jean Jacques Rousseau, A Discourse On Inequality

하지만 세상일이 이미 그런 식으로 살아져왔기 때문에 이전처럼 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재산이라는 개념은 이전의 개념들에서 이어져 온 것이고, 이 개념은 세대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습득되는 것일 수 밖에 없으며 인간의 마음 속에 어느 순간 갑자기 형성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Technorati : ,

아누그닌의 전설

연구가 진행되면서 사료의 부족으로 애를 먹었다. 침략과 정복이 반복된 유럽의 역사가 모두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없었지만, 작은 지방의 값진 과거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가 아누그닌(Anugnin)의 역사가 기록된 두루말이 문서를 구한 것은 운이 좋았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아누그닌의 역사를 활자로 찍어냄으로써 전설을 다시 역사로 만들어놓아주기를 두루말이 문서가 나에게 바라고 있었다. 그 두루말이 문서를 한 자도 빼지 않고 이 책의 부록으로 실었다.

그 두루말이 문서가 전해주는 아누그닌의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상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성된 형태의 경제체제가 존 로크(John Locke)의 머리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와 동시에 그런 역사를 인류의 기억에서 지워버리려 했던 “그들”의 노력도 알게 해준다.

아누그닌의 전설은 이렇게 전한다. 아누그닌에서는 누구도 땅의 임자가 되지 못한다. 아누그닌에서 최초로 땅의 임자임을 주장했던 사람은 땅의 경계에 말뚝을 박고 말뚝에 이름을 써넣자마자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났다. 그후로 아무도 땅의 임자라고 주장한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은 19세까지 부모가 만들어온 식량을 먹으며 살았지만, 20세가 되는 첫 날에 성인식을 가진 후 자신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는 어떤 농토이든 들어가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할 수 있었으며, 노동의 양에 합당한 양식을 분배 받았다.

곡물이 생산되지 않는 시기에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곡물을 보관해두었다. 그 양은 항상 2년 정도의 흉작을 버티기에 충분했다.

사람이 죽으면 그가 남긴 재산은 아누그닌의 공동재산이 되었다. 그의 자식들은 죽은 부모의 재산에 대한 권리가 없었으며 오로지 공동체의 일원으로 재산의 분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평화를 누리며 살던 아누그닌이 몰락하게 된 것은 어느 날 몰려들어온 창과 갑옷으로 무장하고 말을 탄 일군의 기사단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아누그닌의 모든 땅이 그들이 섬기는 부호의 것으로 등기되었다고 아누그닌 사람들에게 알렸다. 기사단은 아누그닌 사람들이 그 땅에서 계속 농사를 지으려면 땅 주인에게 매년 세작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누그닌 사람들은 기사단의 ‘통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기사단을 아누그닌에서 몰아내려 했지만 무장되어 있지 않은 그들이 기사단을 무력으로 밀어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아누그닌 사람들은 기사단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났고, 아누그닌이라는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from K. Rudalston, Undercurrent

Technorati :

Jean Jacques Rousseau – A Discourse on the Arts and Sciences

진정 혁명적인 저작들은 염산 항아리에 던져져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다. 글쓴이들의 빵에는 몰래 비소가 첨가되었고, 시체들은 공동화장터에서 원인모를 죽음을 당한 다른 시체들과 함께 불태워졌다.

“그들”은 허용할 수 있을 만큼의 혁명적인 사상들만 의도적으로 살려둠으로써 이 사회가 충분히 자유롭다는 착각을 대중들 사이에 퍼뜨리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그것을 “그들”이 원했던 것이다.

from K. Rudalston, Undercurrent.

쟝 쟈끄 루소의 “예술과 과학에 대한 논설(A Discourse on the Arts and Sciences)”은 그의 저작 중에서는 못 쓴 편에 속한다. 이 글의 주제는 이것이다.

“예술과 과학의 회복이 인간의 도덕을 순화하는 효과가 있었는가 아니면 오염시키는 효과가 있었는가?”

“Whether the Restoration of the arts and sciences has had the effect of purifying or corrupting morals.”

계몽시대 철학자답게 기초부터 쌓아나가는 논리적 전개로 전반부를 잘 이끌어나갔지만 후반부에 든 논거들에는 반론의 여지들이 있다. 루소 역시 그가 속한 시대에 발을 딛고 있었기에 그가 속한 상황에 충실한 논리전개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과학에 대한 논설”에는 오늘날 한국사회에까지도 적용되는 부분들이 있다. 예술과 과학(Arts and Science)이 인간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발달된 것이 아니고 예술가와 과학자 그리고 그것을 향유하는 부자들의 허영심(vanity)와 자만심(pride)을 충족시키기 위해 추진되어 왔다는 지적은 예술과 과학의 발달 정도와는 관계없이 어느 시대나 맞는 얘기이다. 거기에 물질적인 욕구도 포함시킨다면 좀더 맞는 얘기일 것이다.

가까이는 황우석의 예에서도 알 수 있다. 황우석이 거대한 사기를 친 것은 그의 과학(혹은 사기)이 난치병 환자에게 치료법을 제공하기 위해서 진행된 것이 아니고 황우석 자신의 명예와 자만심, 그리고 물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은 굳이 황우석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다른 과학자들은 이에서 자유로울까? 루소가 살던 시기에 그의 눈에 비친 예술가와 과학자들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난치병 정복의 날을 앞당기기 위해 의대에 진학한다고 말하는 고등학생은 아직 세상을 잘 모르거나 혹은 지나치게 영악하다.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과학”은 광고 문구나 정치적 프로파간다에서만 존재할 뿐 인류 역사상에는 없었다. 루소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서의 예술과 과학을 얼음장처럼 냉소적으로 묘사한다. (번역된 것을 읽기보다 영어문단을 읽기를 권한다.)

정부와 법제도가 안정과 인간 존재에 필요한 물질들을 제공하는 동안에는, 독재적이지는 않지만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 예술, 문학, 과학 같은 것들이 사람들을 옭아맨 쇠사슬 위로 꽃다발들을 쏘아올린다. 이들은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자유의 느낌을 억제하며 자신의 노예생활을 사랑하도록 만들며 따라서 그들이 소위 말하는 문명화된 시민이 되도록 한다.

So long as government and law provide for the security and well-being of men in their common life, the arts, literature and the sciences, less despotic though perhaps more powerful, fling garlands of flowers over the chains which weigh them down. They stifle in men’s breasts that sense of original liberty, for which they seem to have been born; cause them to love their own slavery, and so make of them what is called a civilised people.

루소의 철학은 맑스만큼이나 혁명적이지만 그의 이름이 한국에서 자유로이 유통되었던 것은 그의 혁명적 사상들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제된 빨갱이는 불에 타 없어져도 박제된 철학자가 살아남았던 것은 루소의 사상이 정권이 허용할 수 있을만큼만 혁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빨갱이 잡느라 바빠서 죽은 철학자에 신경쓸 시간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학교의 국민윤리 교육은 학생들이 철학에 눈을 뜨게 하기보다는 철학을 멀리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보는 것은 나만의 상상일까? 아니면 철학을 수박 겉핥기로 맛보여줌으로써 철학자들의 진정한 사상은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도록 하는 고도의 술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 악플보다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 한다. 이는 철학 사상에도 적용된다. 루소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의 사상은 박제된 박쥐나 다름없다.

“그들”은 사람들이 모든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왔고,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의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과학의 진보가 세상을 이롭게 만든다는 명제나, 땅은 누군가가 소유할 수 있다라는 명제, 혹은 그를 뛰어넘어, 땅은 반드시 누군가의 소유여야 한다라는 명제를 의심하지 않는다.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계획은 점점 완성에 가까워진다.

우리가 존 로크, 장 자크 루쏘, 푸르동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이 사상가들은 “그들”이 허용할 수 있는 만큼의 혁명적 사상을 말했기 때문이다.

다시 고쳐서 말하면, 우리가 존 로크, 장 자크 루쏘, 푸르동을 읽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그들의 책을 읽지 않는 것은 “그들”의 계획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바이마르 헌법의 재산권 조항

Artikel 153

(1) Das Eigentum wird von der Verfassung gewährleistet. Sein Inhalt und seine Schranken ergeben sich aus den Gesetzen.

(2) Eine Enteignung kann nur zum Wohle der Allgemeinheit und auf gesetzlicher Grundlage vorgenommen werden. Sie erfolgt gegen angemessene Entschädigung, soweit nicht ein Reichsgesetz etwas anderes bestimmt. Wegen der Höhe der Entschädigung ist im Streitfalle der Rechtsweg bei den ordentlichen Gerichten offen zu halten, soweit Reichsgesetze nichts anderes bestimmen. Enteignung durch das Reich gegenüber Ländern, Gemeinden und gemeinnützigen Verbänden kann nur gegen Entschädigung erfolgen.

(3) Eigentum verpflichtet. Sein Gebrauch soll zugleich Dienst sein für das Gemeine Beste.

Die Verfassung des Deutschen Reichs
[“Weimarer Reichsverfassung”]
August 11, 1919

웹 소스

Article 153

(1) Property is guaranteed by the constitution. Laws determine its content and limitation.

(2) Expropriation may only be decreed based on valid laws and for the purpose of public welfare. It has to be executed with appropriate compensation, unless specified otherwise by Reich law. Regarding the amount of the compensation, the course of law at general courts has to be kept open in case of a controversy, unless Reich laws specify otherwise. Expropriations by the Reich at the expense of the states, communities or charitable organizations may only be executed if accompanied by appropriate compensation.

(3) Property obliges. Its use shall simultaneously be service for the common best.

Weimar Constitution, August 11, 1919.

웹 소스

153 장

재산은 헌법에 의해 보장된다. 재산의 내용과 제한은 법률이 정한다. 재산의 징발은 유효한 법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으며 공공의 복지를 위해서 이뤄져야만 한다. 재산을 징발할 때는 공화국 법률에 달리 규정되어 있지 않는 한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보상의 금액에 관해서는, 공화국 법률이 달리 규정하지 않는 한, 분쟁이 있을 때 일반 법정에서의 법률 절차를 이용할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 주 정부, 공동체, 혹은 자선 단체의 재산을 공화국에서 징발할 경우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재산에는 의무가 따른다. 재산의 사용은 동시에 공공의 최선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바이마르 헌법
1919년 8월 11일

[번역: 잠수]

일단 자료 수집차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서 재산권에 관련된 조항만 카피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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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의 재산권 사상

대학 1학년이나 2학년 때 샀던 책으로 기억되는 조해일의 [임꺽정에 관한 일곱 개의 이야기]라는 연작소설이 책장에 꽂혀 있어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130쪽 남짓되는 얇은 책이다. 조해일은 이 글들을 쓸 때,

명종조(明宗朝)에 그 성망은 높았으나 평생 환로(宦路)에라곤 나간 적이 없는 재야 선비 허순(許洵)의 [근기야록(近畿野錄)]이라는, 경기도 일원과 그 주변의 충분히 기록할 가치가 있으되 다른 서책에는 기록되지 않은 사실들을 모아 엮은 책자[를]… p.32.

바탕으로 썼다고 했다. 허순의 [근기야록]이 실재한 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동아일보 김정희 기자의 책소개는 허순의 [근기야록]이 이야기의 근거가 되었다는 걸 확인해주지만 이 기사가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낀 것이라면 대략 낭패다. 그외에 허순의 [근기야록]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다른 사료가 없으므로 조해일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픽션일 수 있다.

그 두번째 이야기에 임꺽정이 서림의 배신으로 관군의 공격을 받아 27대의 화살을 맞고 잡혀서 죽을 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임꺽정이 토포사(討捕使) 남치근(南致勤)과 나눈 대화가 기록이 되어 있다.

남치근: 묻는 말에 대답할 수 있겠느냐?

임꺽정: 대답 못할 바 없다.

남치근: 화살을 그렇게 맞고도 입을 열 힘이 남은 걸 보면 네 기운이 듣던 바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겠다. 헌데 그 기운을 왜 바르게 쓰려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구나.

임꺽정: 난 내 기운 바르게 쓰다가 죽는다.

남치근: 도둑 소굴 만들어 인명 살상하고 남의 재물 빼앗는 게 기운 바르게 쓰는 게냐?

임꺽정: 나는 옳은 인명 살상한 적 없고 바른 재물 빼앗은 적 없다.

남치근: 그러면 네가 살상한 인명은 모두 살상당해 마땅한 인명이며 네가 빼앗은 재물은 모두 빼앗겨 마땅한 재물이란 말이냐?

임꺽정: 그렇다.

남치근: 어째서 그러하냐?

임꺽정: 내가 빼앗은 재물은 모두 백성의 피땀을 짜내어 만들어 가진 재물이며 나는 그것을 빼앗아 본디 임자에게 돌려 주었다. 내가 살상한 인명은 그러한 바르지 못한 재물을 가진 자거나 그것을 지키려던 자들이다.

pp. 34-35.

이 기록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면, 임꺽정의 재산권 사상은 존 로크의 노동에 기반한 재산권 사상과 부합한다. 백성이 땀흘려 만든 재산은 백성의 것이라는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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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jection In Between Ramblings on Property Law

재산권에 대한 글을 쓰기로 처음 마음 먹은 때에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가지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다음의 문제의식이었다.

저작권을 필두로 한 지적재산권이 많은 이슈를 생산하고 있다. 이 이슈들 중 상당수는 인터넷 시대에 저작물의 사용을 둘러싼 문제들이다. 많은 네티즌들이 인터넷 상의 저작권 문제에 관해 저작물 사용자의 입장을 많이 반영하는 쪽으로 법 제정을 요구하는 반면 저작권자 단체나 유통회사들은 그 반대쪽 입장을 견지하면서 의견 차이가 발생한다. 많은 경우 네티즌들은 저작권법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정을 요구한다. 저작권법의 철학을 바꾸는 정도의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논의는 많이 있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근본주의적인 주장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면서 좋은 지적유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열띤 논쟁을 접하면서 나는 이런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지적재산권 문제에 대해 열을 올리는 만큼 부동산 소유권 문제에 대해 열을 올린 적이 있었던가?”

이 질문을 조금 다르게 물어보면 이렇다.

“지적재산권 문제와 부동산 소유권 문제 중에서 우리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두 질문은 지적재산권이나 부동산이나 다 재산권이라는 큰 집합에 속해있는 개념들이며 같은 철학적 논리적 바탕에서 이루어진 시스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부동산 소유권 문제가 지적재산권 문제보다 우리의 행복에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가 근본적인 발상과 철학의 변화를 요구하는 데 있어 더 시급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부동산 소유권 제도이다.

글이 아주 지루하게 길게 길게 이어진 후에 내가 왜 부동산 소유권 문제가 지적재산권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올 것이다. 아마 많은 독자들은 답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몽고의 마르코 폴로 봉토존 로크의 자연법 사상에 따른 재산권, 혹은 벤자민 터커 Benjamin Tucker, 1854 – 1939 같은 글들은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절대적 개인 소유 재산권 제도라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 그러한 제도가 낳은 수많은 폐해들을 극복하기 위한 근본주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어놓은 사상가들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기 위해 쓴 것이었다. 흔히들 생각하리라고 내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상가들이 절대적 개인 소유 재산권에 딴지를 걸었다.

쓰다 보면 이 블로그의 제목인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블로그’에 걸맞는 지루한 글들이 양산될 것이라고 본다. 결국 이 블로그를 타이틀에 걸맞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존 로크는 재산권 철학의 대부인가?

관련글: 존 로크의 자연법 사상에 따른 재산권

재산권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과정은 나 스스로도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존 로크의 자연법 사상에 따른 재산권은 간단하게 읽으면 재산권에 대한 철학적 기초를 놓은 존 로크의 사상을 한 번 훑어보는 기회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진지한 독자라면 존 로크가 정말 재산권 사상의 철학적 기초를 놓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요 국가(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등)의 재산권 법제제도를 살펴보았을 때 존 로크의 사상을 진정으로 기반삼아 만들어진 제도는 없기 때문이다.

존 로크의 사상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기독교의 신이 인간에게 지구를 주었다는 것은 인간이 생존과 누림을 위해 지구를 이용할 근거를 준 것이다. 인간의 몸은 자신의 것이다. 인간의 노동도 자신의 것이다. 인간이 생존과 누림을 위해 자신의 노동을 지구에 섞어 넣어서 나온 결과물도 자신의 것이다. 이 때 배타적 소유권이 발생하는데, 이 배타적 소유권에는 사회적 합의는 필요치 않다. 인간이 생존과 누림을 위해 노동을 땅에 섞어 넣어 열매를 맺었다면 그 땅도 노동을 한 인간의 소유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생존과 누림에 필요한 이상의 것을 생산하기 위해 땅을 소유해서는 안된다. 이는 죄악이다. 금이나 귀금속 혹은 돈의 가치는 인간간의 계약에 의한 것일 뿐 실질적인 가치는 없다. 금이나 귀금속 혹은 돈을 이용하여 자신의 생존과 누림에 필요한 이상의 재산을 축적하는 것 역시 낭비이며 죄악이다.

이렇게 간략하게 요약한 위의 존 로크의 재산권 사상을 그대로 기틀로 삼고 있는 재산법 체계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 가지 예외는 1839년 체로키 헌법 – 1839 Cherokee Constitution이다. 1839년 체로키 헌법은 존 로크의 책을 읽고 만든 헌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산법 사상에서는 존 로크와 아주 유사하다. 하지만 1839년 체로키 헌법은 백인들의 땅 욕심에 맞서기 위해 만든 대항적 성격의 헌법이라고 보아지며 그나마도 오래 가지 못했다. 체로키 부족은 이후 여러 차례의 헌법 개정을 통해 백인 문화에 동화되어 갔다.

그에 더해서, 존 로크의 사상은 사회계약설이든 자연법 사상이든간에 그의 당대에는 영국에서 그다지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게 역사적인 사실이다. The Early Reception of John Locke’s Two Treaties of Government 1668-1702. 오히려 미합중국의 건설에 사상적 기반이 됨으로써 영광을 얻게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그의 정치 사상에 초점을 맞춘 것이며, 그의 재산권 사상은 대부분의 문헌에서 조연 역할에 그쳤고 존 로크의 주요 사상으로 소개되지는 않는다. 설사 존 로크가 위대하다 할지라도 정치 사상에서일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토마스 제퍼슨을 비롯한 미국의 연방주의자(Federalist)들은 미합중국의 아버지들(the Founding Fathers)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들은 자신을 존 로크의 후예라고 생각했다는 증거들이 있다. 정치학에는 Lockeanism이라는 단어가 있다. 로크의 사상이라는 뜻의 또 하나의 ‘이즘’인데, 이 단어는 종종 미합중국의 설립자들과 뭉뚱그려져서 얘기된다. 그들이 로크의 정통후계자로 자임했느냐 아니면 로크의 사상을 나름대로 변용한 새로운 학파였느냐는 확실하지 않다. 46-OCT Fed. Law. 53, Book Review on PROPERTY AND FREEDOM, BY RICHARD PIPES; ALFRED A. KNOPF, NEW YORK NY. 재미있는 것은 토머스 제퍼슨이 쓴 독립선언문(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에 이런 문장이 있다는 점이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존 로크가 쓴 말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은 “life, liberty, and property”이다. 그의 저작들은 이 세 가지 개념이 바탕이 되고 있는데, 독립선언문에 나오는 문구는 존 로크의 삼돌이 중에서 “property”를 “the pursuit of Happiness”로 바꿔놓은 것이다. 영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많은 각광을 받았기에 American philosopher라고 불리기도 하는 존 로크도 그의 재산권 사상까지 미국에 전파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는 미국의 법체계의 형성에서도 재산법은 존 로크의 사상과는 전혀 무관한 영국의 common law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던 역사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존 로크의 사상 중에서 왜 재산권 사상만큼은 인기를 얻지 못했고 지금은 그의 저작 중에서 사람들이 많이 인용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존 로크가 살았던 17세기 18세기는 이미 common law에 의한 영국의 재산법 체제가 상당히 갖추어진 시점이었기에 근본주의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존 로크의 재산권 사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게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다. 다른 설명으로는, 존 로크는 왕조 체제를 무너뜨리는 혁명세력에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던 사람이었다. 혁명세력들이 혁명에 성공하였고 존 로크의 정치사상이 유용하였지만 그의 재산권 사상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쓰여지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존 로크는 이른바 대륙법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하는 한국의 헌법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헌법의 체계에서 자연법 사상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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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길 – Trail of Tears 체로키의 눈물의 역사

1839년 체로키 헌법 – 1839 Cherokee Constitution에 대해 쓰고 나서 체로키의 역사에 대해 조금 검색을 해봤다.

그들의 땅에서 금이 발견되자 체로키를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체로키 부족의 소수가 1835년 미국과의 조약 체결을 통해 미시시피 강 동부의 모든 땅을 미국에 양도한다. 대다수 체로키인들은 조약이 무효라고 주장했고 미국 연방 대법원도 그 주장을 인정한다. 하지만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앞에서 말한 인디언 이주 법안에 근거하여 체로키 부족을 미시시피 강 서부 지역으로 이주시킨다. 소스: Newswriter.

1835년 체로키 부족 중의 배신자에 의해 체로키 부족들은 원래 살던 미시시피 강 동부의 땅에서 쫓겨나 강 서부로 이주한다. 이 때 체로키 부족이 걸었던 길이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다. 블로그 검색을 해보면 아메리칸 인디언의 후예들 중에 블로그에 선조의 역사에 대해 쓰는 사람들이 있다.

Woodsong 블로그에 관련글이 있고, Cherokee Girl의 블로그에도 체로키 부족에 대한 내용들이 있다. Woodsong 블로그에 따르면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땅을 어머니로 생각했다고 한다. 땅을 어머니로 생각하는 것은 아메리칸 인디안만의 고유한 생각은 아니다. 세계 여러 문명에서 땅을 어머니로 생각하는 흔적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흔적들은 고대의 생각의 자취일 뿐 현재는 땅을 어머니로 생각하는 문명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없다. 왜냐 하면, 어머니를 이리저리 잘라서 네모반듯하게 만들어서 서로 돈을 주고받으면서 사고팔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땅을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지구적인 스케일의 수사학은 아니었다. 그들은 땅을 정말로 어머니라고 생각했기에 땅을 어떤 개인이 소유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들의 땅에 대한 사상은 1839년 체로키 헌법의 재산권 부분에 반영이 되어 있다.

재산권에 관한 부분이 체로키 헌법에 들어가 있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임은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왜냐하면 땅이 인간을 출산하고 키우는 어머니라면 인간이 어머니를 관리하고 규제하는 법을 만들어서 헌법에 끼워넣는 건 하위법으로 상위법을 제한하는 행위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는 땅의 소유권을 법으로 규정한다는 것이 희한한 발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839년 전후의 상황들이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압박하면서 그들이 그런 헌법을 만들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 미시시피강 동부에서 발견된 금 때문이었음을 상기해 보자. 땅에서 금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서양 재산권 구조에서는 치열한 법적 투쟁을 예약하는 것이다. 그러한 법적 투쟁에서 서양의 재산법이 진화한 것이기도 하다.

체로키 부족이 비탄의 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오클라호마의 동북부지역으로, 영화 <파 앤드 어웨이>의 주인공들이 재회하고 포옹하던 그 부근이다. 그런데 체로키 부족이 도착한 땅에도 이미 백인 정착민이 있었고 잠깐 사이에 또 다른 백인들이 몰려들었다. 체로키 부족으로서는 도무지 편히 정착할 수 없는 땅이었다. 그뿐 아니다. 미국 정부도 나선다. 미국이 체로키 부족을 비롯한 전체 인디언의 토지 소유권을 일거에 뒤흔드는 법안을 만들어 내는데, 토지 불하 법안이 그것이다. 소스: Newswriter.

새로이 이주한 곳에서도 역시 백인들의 땅따먹기 투쟁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재산권 없음의 철학은 계속 위협을 받아온 것이고 그들의 재산권 없음의 철학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헌법에 positive law로 자신들의 땅에 대한 철학을 명시적으로 선언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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