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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수 8:05 am on September 22, 2012 Permalink | Log in to leave a Comment  

    안철수와 이헌재의 조합이라… 

    안철수의 출마 선언은 꽤 잘 쓰여진 원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출마선언 이후에 안철수와 지근거리에 있었던 몇몇 사람 중 눈에 띄는 건 이헌재.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듯이 이헌재는 안철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둘의 인간적인 조화의 문제가 아니라, 안철수가 지향하는 가치와 이헌재가 지향하는 가치가 잘 맞을 것 같지 않다는 것.

    이헌재가 누구인지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 경제를 유심히 들여다본 사람들은 다 아는 바이고. 안철수가 그걸 몰랐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앞으로 경제 분야에서 안철수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다. 그 책을 사서 읽고 싶지는 않고.

     
  • 잠수 10:59 am on August 18, 2012 Permalink | Log in to leave a Comment  

    보고싶은 것만 보지 말라고 

    인간의 인식 과정에는 선입견이 강하게 개입한다. 취업 면접을 실시하는 면접관이 된 경우를 상상해 보면, 구직자를 직접 보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의 상당 부분을 서류를 통해서 형성하지 않던가? 구직자를 직접 보게 되면 그러한 판단의 일부가 변경되기도 한다. 하지만 선제적인 입증과 반증 중에 어느 것이 배심원에게 더 강한 인상으로 작용하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일차적으로 형성된 인상을 극복하기 위한 반대 자료를 쌓는 것은 더 어려운 과정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쉽게 알 수 있다”? 쩝. 글이 너무 산만해지네)

    취업 면접을 얘기하려던 건 아니었고. 사람들은 어떻 형태로든 선입견의 포로가 되기 마련이다.

    강연을 간다. 강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강연이 끝났다. 청중들이 질문을 한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게 되면서 그렇지 않은 삶을 동경하게 되지는 않는지. ‘자유로운 영혼’으로 계속 살고 싶은지. ‘자유로운 영혼’이 예술적인 영감을 얻는 데 어떤 영향을주는지.

    근데 이 강사는 5년 전부터는 더 이상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있지 않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자유로운 영혼’이기보다는 자신의 일을 꾸준히 성실하게 하는 소시민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더 이상 ‘자유로운 영혼’이 아닌 사람에게 계속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기대하면서 사람들은 질문들을 던진다.

    중세 성화를 보자.

    유디트는 많은 화가들에 의해 많은 양식으로 변주된 소재이다. 유디트는 자신을 도와주는 할매와 함께 남자의 목을 벤다.상당히 많은 화가들은 살해당하는 남자의 여러 신체 부위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썼다. 칼이 배를 찔렀을 때 창자가 튀어나온 모양, 고통을 겪을 때 돌아가는 눈, 부르르 떠는 손가락.

    화가는 아름다움을 추구함과 동시에 고어 영화를 찍는 스트릿 펑크의 기분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성화를 그리면서 그 밑에 포르노를 한두장 끼워넣는 것 같은 행동. 그 그림을 보면서 성호를 긋지만 마음 속으로 고어 영화를 즐기는 변태적 취미를 가진 스폰서.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하기 쉽지 않은 이런 코드는 고상한 그림 감상회에 가면 흔히들 간과되곤 한다. 아니. 오히려 애써 모른 척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상하지 않으니까.

     
  • 잠수 11:03 am on June 27, 2012 Permalink | Log in to leave a Comment  

    직접 말하지 왜 자꾸 딴 사람한테 퀘를 줘? 

    엔하위키의 ‘아즈텍’ 항목을 읽고 있었는데, 아래 부분이 눈을 끄네.

    가톨릭 전승에 의하면 이 시기에 과달루페의 성모가 발현했다고 한다. 교회 측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1531년 12월 9일 이른 아침, 아스텍 농부인 성 후안 디에고 쿠아우틀라토아친(San Juan Diego – Cuauhtlatoatzin)이 미사에 참석하려고 테페약 언덕 꼭대기를 넘고 있었을 때 신비롭고 찬란한 빛을 내는 구름 속에 푸른 망토를 입은 성모 마리아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는 그에게 나우아틀어로 “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믿으며 내 도움을 요청하는 지상의 모든 백성의 자비로운 어머니이다. 나는 그들의 비탄의 소리를 듣고 있으며 그들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나는 너희가 나의 사랑과 연민, 구원 그리고 보호를 증거로 제시하는 표시로 내가 발현한 이곳에 성당을 세우길 바라고 있다. 그러니 너는 멕시코 주교관에 가서 이곳에 나를 위한 성당을 세우는 것이 내 소망임을 전하도록 하여라.”라며 자신이 발현한 장소에 성당을 세워 자신을 공경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성모를 보고 놀란 쿠아우틀라토아친은 그대로 주교관으로 도망가서 자신이 보고 들은것을 보고했지만 주교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것이 테페약 언덕은 과거 아스텍인의 신이었던 토난친 여신의 성소였기 때문이다. 주교는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기적의 증거를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쿠아우틀라토아친이 주교를 만나고 나서 테페약 언덕을 지났을때 그는 다시 성모와 마주쳤다. 그는 성모에게 주교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는데, 그러자 성모 마리아는 ‘언덕위에 장미꽃이 피어있으니 꺾어다가 주교에게 보여주라’고 말한다.

    문제는 테페약 언덕 꼭대기는 꽃이 필 수 없는 험한 바위 언덕이었던데다가, 당시 계절도 꽃이 필 수 없는 겨울이었기 때문의 성모 마리아의 말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후안은 그곳에서 (그 지역 자생종이 아닌 주교의 고향인) 카스티야산 장미꽃들이 만발한 것을 목격하였고, 꽃들을 채집하여 자신의 망토로 쌌다. 그러고는 서둘러 내려와 성모 마리아에게 다시 갔다. 성모 마리아는 그가 가지고 온 장미꽃들을 보고 손수 그의 망토에 가지런히 다시 놓아주었다. 뒤이어 그녀는 쿠아우틀라토아친에게 “후안, 이 여러 가지 장미송이들이 네가 주교에게 가져가야 할 표적이다. 너는 주교에게 이것들을 가져가서 내 소망을 깨닫도록 하고, 내가 요청한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내 이름을 들어 말하도록 하여라. 너는 나의 심부름꾼으로서 신념을 지니고 행동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나는 너의 망토에 싸인 꽃송이들을 주교 앞에 나아갈 때까지 풀어 보이지 않을 것을 엄격하게 명령한다. 그것들을 조심해서 가져가도록 하여라. 네가 그에게 모든 사실을 설명할 때, 내가 너를 산 위로 보냈으며 거기에서 이 꽃들을 발견했다고 전하여라. 그렇게 한다면 너는 그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며 내가 요구한 성당이 세워지는 날까지 너는 그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주교는 쿠아우틀라토아친이 가져온 장미꽃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그런데 그때 신기하게도 장미꽃들이 마루 바닥에 폭포처럼 흩뿌려지면서 성모의 형상이 후안 디에고의 망토에도 새겨져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를 본 주교는 그 경이로움에 놀라 그 즉시 성모 형상이 새겨진 망토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성모 마리아의 요청을 믿지 않고 무시한 죄를 지은 자신에 대해 용서의 기도를 바쳤다. 성당이 그대로 세워졌음은 물론이다. 이 성당이 과거 아스텍인이 제례를 행하던 피라미드 바로 위에 세워지긴 했지만….

    그냥 직접 주교한테 말씀하시지 뭐하러 어려운 토착언어 배워가면서 그저 평범한 노동자한테 나타나서 말을 전하라고 하는 건지. 주교 입장에서야 당연히 이놈이 사기꾼일거라고 의심하는 게 맞지 정상적인 정신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쿠아우 어쩌구하는 토착민이 성모를 봤다고 말할 때 그냥 덥석 믿겠어?

    하여튼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 빈틈이 많아서 실소가 나게 한다.

     
  • 잠수 9:54 pm on June 6, 2012 Permalink | Log in to leave a Comment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내 아내의 모든 것

    1. 국내 여배우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임수정이 유부녀로 나오는 영화. 임수정의 극강 동안도 이제 저물기 시작하는구나.

    2. 임수정의 나체가 나오는 영화. 훌륭한 몸매다.

    3. 강릉. 강릉 한 번 가야 하는데. 주문진에서 방파제 위를 걸어보기도 하고. 그런데 강릉에 아는 사람이 없다.

    4. 황태. 황태찜 먹고 싶다. 강릉이 황태 나오는 고장이었나?

    5. 말 많고 독설을 내뱉고 남편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집착증을 가진 여자지만 사랑스러워 보이는 건 임수정의 힘과 영화 속 요리의 영향이겠지?

    6. 카사노바가 결국 재벌로 밝혀지는 건 필요없는 전개였던 듯. 그래서 뭐?라고 물어볼 수 밖에 없는 장면. 오히려 카사노바는 원조 카사노바처럼 사라져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7. 사랑해줘. 사랑받고 싶어. 이런 것들의 가치가 너무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8. 휴일 오전 8시40분에 극장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 잠수 9:32 pm on June 6, 2012 Permalink | Log in to leave a Comment  

    Hesher (2010) 

    Joseph Gordon-Levitt as Hesher: 뜬금없이 나타난 노숙자가 알고보니 현인이었고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주고 떠난다는 새롭지 않은 구도에서 현인의 역할을 담당하는 캐릭터. 근데 진짜 현인인지도확실하지 않아. 현인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미국인들이 사회의 규율에 따라느라 감히 하지 못하는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보임으로써 그래도 된다라는 걸 보여주는 양아치. 제도가 고도로 안정화된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고. 노숙자 캐릭인데 노숙자임을 전혀 개의치 않고 남의 집에 빌붙어 먹고 사는 성격인데, 보통의 미국인들이라면 그렇게 못하지. 아니 웬만큼 살만한 국가의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못하는데. 영화 속 니콜만 하더라도 렌트를 못내는 실정인데도 어떻게든 일해서 해결해보려고 하잖아. 어차피 앞날이 보이지 않는 마트 캐시어이면서.

    Natalie Portman as Nicole: 마트 캐시어인데 오래 일해도 마트 주인이 일하는 시간을 늘려주지 않아서 한달에 렌트만큼도 못버는 기초생활수급자 수준의 여자. 근데 이뻐. 이쁜데 이쁜 게 도움이 안돼. 기껏해야 꼬마나 관심을 가져주고, 노숙자 Hesher가 섹스를 구걸하는 대상이지.

    예전에 나탈리 포트만이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위노나 라이더가 나온 영화가 있었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은 안 간 여자 아이들이 성인 통과의례를 치르는 내용. 이 영화하고는 직접 관련은 없지만…

    그리고 The Company Men. 이건 미국 경제가 힘들어지면서 사람들이 겪는 스트레스를 다룬 것인데. 어떤 문제를 다루든 미국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정신과 의사.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이나 집단 테라피 같은 건 거의 클리셰처럼 나오지.

    최근 기사에서 미국 대학생들이 졸업할 때 직장을 가지는 사람이 25% 정도라고 하더군. 졸업한 지 1년 이내에 직장을 잡는 경우가 50% 정도. 졸업한 지 1년 이내에 직장을 못 잡으면 그 다음에는 학위가 필요없는 직업을 가지게 되지. 마트 캐시어나 햄버거 가게에서 패티 굽기.

    미시적 수준에서 사람들을 살펴보면 무지하게 우울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게 미국이고 거기에 대해 뾰족한 해법도 없어. 다시 70년대의 황금기로 돌아갈 수 없는 게 미국이지. 근데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해 맹신하고 있고 그저 자기 자신을 탓하기만 하지.

    영화를 보고 나서 딱히 메시지로 남는 건 없고,

    나탈리 포트만이 아줌마 안경 쓰고 나올 때는 진짜 아줌마 같더니 안경 벗고 수영장에 한번 빠지니까 다시 미인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근데 워드프레스 기본 에디터가 왜 이렇게 반응이 느려졌지?

     
  • 잠수 3:59 pm on June 5, 2012 Permalink | Log in to leave a Comment  

    돼지의 왕(2011)에서 교사 

    돼지의 왕에 나오는 캐릭터 중에서 생명력이 없는 건 교사이다.

    교사는 인지능력이 초등학생에도 못 미치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걸 적극적으로 묘사하는 게 아니고, 중요한 장면에서 교사가 등장하지만 표면으로 드러나는 상황을 일차원적으로 받아들일 뿐이지 그 이면의 진실을 캐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존재이다.  문제가 있음을 분위기를 통해 감지하는 높은 수준의 능력은 고사하고 박찬영이 얻어맞아서 눈텡이가 부었는데 그걸 구타의 증거라고 인지하지도 못한다.

    학급을 장악한 아이들은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악을 저지르고, 교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악을 저지른다.

    작가는 학급을 장악한 아이들을 돼지를 잡아먹는 늑대같은 악으로 묘사한다.

    교사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고, 소수의 아이들이 학급을 폭력으로 장악하게 조장함으로써 편하게 통치하려는 독재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 잠수 8:54 pm on May 20, 2012 Permalink | Log in to leave a Comment  

    트위터에서 말싸움하는 사람들 

    나는 트위터를 열심히 안하기 때문에 그럴 일이 별로 없는데,

    트위터 열심히 하는 사람들 보면 말싸움에 얽히는 경우가 많다.

    무단히 잘 모르는 누군가가 RT된 트윗을 보고 시비를 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시비에 걸린 사람은 RT가 많이 될만큼 트위터를 많이 하고 그 때문에 어떤 트윗이 의도하지 않은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

    그래서 시비는 말싸움으로 발전하고 몇몇 주변 트위터리안이 편을 들어주다가 결국 서로 블락하는 것으로 끝맺음된다.

     

    근데 그 과정의 트윗을 읽어보면 정말 하찮은 시비거리에 불과한 것이 감정을 소모시키고 있는 거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도대체 트위터는 왜 열심히 하지?

    정말 소모적이다.

    소모적이고

    소모적이다.

    차라리 트위터를 통해 프로메테우스 개봉일에 그룹 관람할 사람을 찾는 것은 덜 소모적이지 않을까?

    헛되고 헛되다.

     
  • 잠수 4:37 pm on February 21, 2012 Permalink | Log in to leave a Comment  

    92년 장마 종로에서 

    이 음반 나왔을 때 정말 즐겨들었엇다. 테이프로 샀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서점을 찾아봐도 CD를 구할 수가 없군.

     

     
  • 잠수 1:11 am on January 16, 2012 Permalink | Log in to leave a Comment  

    이번 대선은 아바타 대결? 

    박정희의 아바타인 박근혜와 노무현의 아바타인 (     )가 대결하는 양상으로 몰고 가려고 하나?

    꼼수빠들의 wave가 있을 거라는 걸 누구나 잘 아는 상황에서 국민경선을 하면 그 결과야 꼼수빠들이 원하는 대로 나오는 것이다. 노빠 김어준이 내건 깃발아래 꼼수빠들의 wave는 참여정부의 부활로 나아가는데…

    근데 정말 다시 생각해 봐. 참여정부 시절이 정말 좋았어?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 최선의 대통령이었어? 단기 기억상실증이 있으면 장기 기억이라도 좋아야 할 거 아냐?

     
    • 육담 9:59 am on January 16, 2012 Permalink | Log in to Reply

      역대 대통령중에서야 노통이 뭐…
      보다 좋은 대통령과 정부를 못만난 우리네국민들은 또한 얼마나 불행인지… ㅡ,.ㅡ

      • 잠수 11:19 am on January 16, 2012 Permalink | Log in to Reply

        네,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그닥 나쁘진 않았죠.
        하지만 2012년 대선 이후 참여정부의 인사들로 다음 정권이 꾸려진다면 그것도 좋은 그림은 아닙니다. 이거 완벽한 데자뷰 아닙니까?

        경제정책에 있어서 신자유주의 보수 정책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하등의 차이도 없는데 말이죠.

  • 잠수 10:59 pm on January 15, 2012 Permalink | Log in to leave a Comment  

    클래식이 부르주아 예술이라고? 

    뒤늦게야 알게 되었는데, 정명훈 까기 물결이 일었을 때 김성수라는 인간을 옹호하면서 나왔던 말이 클래식이 부르주아 예술이라는 거였다며.

    어떤 놈은 클래식이 당대 대중이 즐기던 예술이라 고상하거나 엄숙할 필요없이 즐기자고 하더니, 어떤 놈은 클래식이 부르주아 예술이라고 까대네. 근데 그게 다 소위 “같은 진영” 인간들이 한 말이야.

    감탄고토(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더니…

    난 부르주아 아닌데 클래식을 즐긴다구. 니들이 룸살롱 가서 즐기고 다음 날 1/N 한 돈인 20만원(요즘 시세는 모름)에 훨씬 못미치는 돈으로 연말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구.

    이 angry crowds를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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