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50/50를 보고 나니 드는 생각.
어디 게시판에 가보니 50/50에서 조셉 고든-레빗(암환자)의 친구로 나오는 세스 로건이 조셉 고든-레빗을 이용해서 여자를 꼬셨다라는 식의 해석을 하는 글이 있던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봐.
친구가 암에 걸렸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친구 옆에 계속 친구로 남아 있으면서 그 친구가 즐겁게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야. 세스 로건은 그렇게 하기 위해 조셉 고든-레빗을 데리고 클럽에 가서 여자를 꼬시기도 하고, 배신 때린 여자친구의 그림을 함께 칼로 찢고 불태우면서 유쾌해했던 것이지.
조셉 고든-레빗의 여자친구는 현실에서 일어날 개연성이 높은 행동들을 하지. 처음엔 남자친구의 곁에 끝까지 남아서 그를 보살필 것이라 말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 동시에 그녀의 머리 속에는 새로운 남자를 만날 생각이 피어오르고 있었을 거야.
하지만 섣불리 여자를 욕하면 안돼. 어쩌면 그건 본능에 깊숙히 임베드된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 나타난 행동일 수 있으니까. 본능적이기만 하면 용서가 되나요?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다고 봐.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남자친구를 배신하는 것이 범죄는 아니잖아?
내 경우는 어땠냐면,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친구들이 오히려 더 나를 섭섭하게 하더라. 이런 이야기는 이 블로그에 처음 쓰는데. 근데 무작정 그 놈들이 나쁜 놈들이라고 보기보단 본능에 깊숙히 임베드된 프로그램이 활성화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곤 했어. 그런 게 니들의 본성이라면 그렇게 사는 게 맞겠지.
한동안 연락 안하던 놈이 뜬금없이 연락 하더니 나보고 왜 연락 자주 안하냐고 화내던 일도 있었는데, (너는 이 글 볼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무리 해도 이해가 안되긴 하더라. 그런 프로그램이 임베드되어 있다면 그건 아마 생산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잘못 심어진 컴퓨터인 거 같거든. 그래도 이해는 하려고 해. 범죄는 아니잖아?
나에겐 바이러스가 임베드된 친구들보다 세스 로건 같았던 친구들이 더 많았으니까 상관은 없었어.
다시 여자친구 이야기로 넘어가서,
50/50는 나에게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영화였어. 조셉 고든-레빗이 자신의 담당 상담사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해피엔딩이라서 그런 것인데. 나에게는 여자가 나의 병을 알고서는 떠나간 사례들이 몇번 있기에 여자와 깊은 관계에 들어가는 데 있어 심리적인 장벽이 있는데, 이 영화가 그런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지.
여친이 레빗을 왜 떠나는가와 상담사가 왜 레빗과 사랑에 빠지는지를 비교해보면 좀더 사안은 명확해질 것 같은데, 똑같은 한 인간이 전 여친에게는 depreciating asset으로 인지되고 상담사에게는 appreciating asset으로 인지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이거 bargaining 이야기할 때도 나오는 것인데. 길게 이야기하기는 싫고.
암튼, 50/50을 보면서 나는 많은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는 것. 그래도 조셉 고든-레빗은 행복한 암환자였다는 것. 대부분은 그 전에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데 말이지. 특히나 미국이라면. 뭐 이것도 너무 현실적으로 가자면 마이클 무어의 영화가 되어버릴테니 관두고.
육담 9:59 am on January 16, 2012 Permalink |
역대 대통령중에서야 노통이 뭐…
보다 좋은 대통령과 정부를 못만난 우리네국민들은 또한 얼마나 불행인지… ㅡ,.ㅡ
잠수 11:19 am on January 16, 2012 Permalink |
네,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그닥 나쁘진 않았죠.
하지만 2012년 대선 이후 참여정부의 인사들로 다음 정권이 꾸려진다면 그것도 좋은 그림은 아닙니다. 이거 완벽한 데자뷰 아닙니까?
경제정책에 있어서 신자유주의 보수 정책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하등의 차이도 없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