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기로 결정한 이유

지금 세상은 아이를 낳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특히나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아기르는 데에 너무 큰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아이를 갖고 싶어졌다는 식으로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 이 세상 전체를 이롭게 하는 데에 내가 기여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자조적으로 인정하고 나서부터는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만족감을 줄 수 있다면 죽기 전에 좋은 일 한 가지는 하고 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내가 아이를 갖고 싶어한다면 그 소망을 들어주는 것이 그나마 세상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여겼다.  그렇기에 지금 입덧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내를 돌보는 일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아이를 빨리 보고 싶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노우이다. 기대감은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인가? 어쩌면 게임에서 넥스트 스테이지로 넘어갈 때의 기대감 정도는 있을 수 있겠지만 … 이미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겪어보고 글로 남긴 이야기가 나한테 펼쳐지는 것이기 때문에 생전 처음보는 스토리로 만들어진 영화가 개봉할 때의 기대감 정도는 아니다. 남들이 다 해보고 경탄해마지않는 게임을 내가 직접 해볼 때의 스릴 정도. 

 

알바를 이용한 마타도어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문제

금속노조, 국궁, 보험금, 양육비

이 정도가 대충의 키워드인가?

금속노조: 온건 노조원이고 주동자는 아니었다는데.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적극적 주동자였으면 단식을 자신의 이권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쓴다는 증표인가?

국궁: 1년 회비 3만원이라는데. 이게 고급 취미?

보험금: 유민이 위해서 넣은 거 아니었나?

양육비: 잘 냈다던데. 가끔 사정이 안 좋아 못낸 적은 있다지만.

이런 걸 일일이 반박한다는 게 구차해서 차라리 자진하겠구만.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면서 일방에서 전달하는 마타도어를 쉽게 받아들여 재생산하는 부류들. 그들이 스스로를 온건보수라고 부르면서 유민아빠의 근육에서 피를 빨아내고 있다.

진보와 보수로 사람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근본적 차이는 타인을 동정하고 공감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알바들의 마타도어를 실어나르는 자칭 온건보수들은 …

이런 쓰레기는 어디서 찾았나?

병역 의혹은 없다는 게 조금 의아하긴 한데, 나머지는 모두 골고루 갖추고 있는 종합 선물세트네. 

이날 정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처음부터 정 후보자의 거짓말과 성의 없는 자료 제출로 얼룩졌다. 정 후보자는 서울 강남 일원동 아파트 전매 금지 위반 외에도 음주운전, 속도위반 등 20건의 위법행위와 과태료 체납, 강남 아파트 양도세 탈루, 자녀·부인의 미국 영주권 취득 과정, 파주 당원협의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희망연구소의 공천 대가성 무상임대, 정치 편향적 트위터 막말 논란 등 온갖 의혹에 대한 해명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4/07/11/story_n_5575699.html

다음 총리후보 지명자

법조계(안대희), 언론계(문창극)이 나왔으니 그 다음은 학계가 아닐까? 혹시 박효종 교수? ㄷㄷㄷ

누가 나올지 기대된다. 일반인의 평균적 기대를 뛰어넘는 사람을 지목할 것 같은데.

세간의 농담처럼, 총리후보 명단이 데스노트가 되는 것 같다.

문창극 – 깎여나가지 않은 모난 돌

조선일보에 조갑제가 있었다면, 중앙일보에는 김희영이 있었나? 아니면 문창극이 있었나? 중앙일보가 동아일보는 제꼈지만 조선일보를 제끼지 못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어찌됐든 조갑제 같은 칼럼니스트를 키워낸 조선일보와, 어찌됐든 문창극을 주필로까지 앉혔던 중앙일보의 차이점.

조갑제나 문창극이나 깎여나가지 않은 모난 돌임에는 다름이 없으나 조갑제는 좀더 세련되었고 날렵하다. 문창극은 세련되지 않았고 둔탁하다. 날렵함과 둔탁함의 차이는 세상의 분위기를 감지하는 눈치의 차이다. 조선일보는 어느 정도 조갑제가 혼자서 자신을 깎아내도록 기다린 면이 있으나, 중앙일보는 문창극이 스스로를 깎아낼 수 없으니 그를 깎아주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문창극이 총리후보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게 누구야?”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겠지만, 나는 그를 만난 적이 18년 전에 있었고 가끔 중앙일보 칼럼을 읽으면서 그의 건재함을 확인하곤 했다. 18년 전에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 역시도 “그게 누구야?”라는 반응을 보였겠지만.

한 번의 만남에서 받은 인상과 그 이후 그의 칼럼에서 확인하곤 하는 그의 성향으로 보건대, 그는 ‘저거너트’라는 명칭에 딱들어맞는 사람이다.

이번 총리후보 사퇴로 인해 그도 일정정도 내상을 입었겠으나 그에게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 “왜 이리 난리법석들인지 모르겠군.” 정도가 그의 속마음이 아닐까 싶다. 독립유공자 할아버지 같은 내용은 주변에서 만들어준 것 같고, 문창극은 저거너트처럼 강력한 헤딩으로 벽을 뚫고 전진하고 싶었을 것 같다.

오늘 그의 사퇴의 변을 읽어보면 역시 그렇다.

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그동안 많은 관심을 쏟아주신 것에 대해 마음 속 깊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신 총리실 동료 여러분들 그리고 밖에서 열성적으로 지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또 밤을 새우며 취재를 하시는 기자 여러분을 보면서 저의 젊은 시절을 다시 한 번 더듬어보는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저의 40년의 언론인 생활에서 본의 아니게 마음 아프게 해드린 일이없었는가를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저는 왜람되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히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나라의 근본을 개혁하시겠다는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또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에 저도 조그만 힘이지만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 받은 후 이 나라는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께서 앞으로 국정운영을 하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에 조금이라도 기여코자 한 저의 뜻도 무의미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 인권, 그리고 천부적인 권리는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 의사와 법치라는 두개의 기둥으로 떠받쳐 지탱되는 것입니다.

국민의 뜻만 강조하면 여론 정치가 됩니다. 이 여론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습니다.

법을 만들고 법치의 모범을 보여야 할 곳은 국회입니다. 이번 저의 일만 해도 대통령께서 총리 후보는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청문회 법은 국회의원님들이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러한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저에게 사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습니까?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습니다.

언론의 생명은 진실 보도입니다. 진실 보도입니다. 다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 보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보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실 보도가 아니라 진실 보도입니다.

우리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는 희망이 없습니다.

신앙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은 신앙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것은 소중한 기본권입니다. 제가 평범했던 개인 시절 저의 신앙에 따라 말씀드린 것이 무슨 잘못이 됩니까?

제가 존경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은 그의 옥중서신이라는 책에서 신앙을 고백하며 고난의 의미를 밝히셨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고 젊은 시절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신앙 고백을 하면 안 되고, 김대중 대통령님은 괜찮은 것입니까?

마지막 드릴 말씀은 제가 총리 지명을 받은 후 벌어진 사태로 인해 우리 가족은 역설적으로 뜻하지 않은 **기쁨을 갖게 됐습니다. 저를 친일과 반민족이라고 주장하시는 데에 대해 저와 제 가족은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의 가족은 문남규, 남녘남자, 벌 규 자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만세를 부르시다가 돌아가셨다는 가족사를 아버님 문규석, 터기 자, 주석석자, 아버님으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사실 우리 당시 민족 가운데 만세를 부르지 않은 분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돌아가셨다 했기 때문에 저도 그런 당당한 조상을 모시는 분이구나, 모신 사람이구나 저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습니다.

저에 대한 공격이 너무 사리에 맞지 않기에 검증 과정에서 제 가족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검증팀이 저의 집 자료를 가지고 보훈처에 알아보았습니다. 뜻밖의 저의 할아버님이 1921년 평북 삭주에서 항일투쟁 중에 순국하신 것이 밝혀져 건국훈장 애국장이 2010년에 추서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자녀들도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여러분도 검색창에 문남규라고 삭주 이렇게 한번 쳐보십시오. 저의 원적은 평북 삭주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실려 있는 1921년 상해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독립신문을 찾아보십시오. 이것은 언론재단에 원본이 다 보관되어 있습니다.

저의 가족은 이 사실을 밖으로는 공개치 않고 조용히 절차에 따라 처리하기로 했다고 이미 제가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정치 싸움 때문에 나라에 목숨 바치신 할아버지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혹시 다른 독립유공자 자손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나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의 손자로서 보훈처가 이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 절차에 따라 다른 분의 경우와 똑같이 처리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이도 그분이시고 저를 거두어드릴 수 있는 분도 그분이십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오늘 총리 후보를 자진사퇴합니다.

감사합니다.

 

새 총리 후보 문창극

음…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신문 칼럼이나 사설을 꼭 챙겨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익은 이름.
생긴 것 하고 비슷하게 저거너트 스타일로 밀어붙이는 돌격형 수구 칼럼니스트.
조갑제는 좀 날렵한 느낌이 있었다면 거기에 대비되는 느낌.